< 146. 작전명 토벌(2) >
효종 7년(1655) 8월 1일.
리가에서 완성된 거북함 3척이 출항 준비를 마쳤다.
조서원의 요원들이 작성한 해도가 완성되자 기다리고만 있던 해경 대원들은 서둘러 거북함에 승선했다.
"와···! 멋진데!"
"끝내준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나 대단할 줄이야!"
운항을 담당하는 해경 대원들이 수시로 발트해까지 나가서 성능을 검사했다.
하지만 다른 대원들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운행 중에 사고가 날 수도 있기에 최소한의 인원만 승선하여 실험했기 때문이다.
"길이가 55m면 조경함보다 반밖에 안 되는데 훨씬 커 보이네."
"상판이 덮여 있어서 그럴 걸 거야. 저 대포수 좀 봐! 완전 공격용 무장함이야."
조경함에 비해 거북함은 조303 곡사포가 5배나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철도 공사는 진행 중이지만, 바이킹을 피해 남하한 핀란드인들이 동원되어 키이우까지 도로 공사가 끝났다.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어서 그런지 진창이나 다름없던 동유럽 뻘밭을 단단하게 매꿀수 있었다.
도로를 개설하면서 나무 또한 필요 이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온통 숲으로 이루어진 동유럽 땅은 목제를 얻기에 최상이었다.
특히 오크(Oak)라 부르는 수백 년이 넘는 다양한 참나무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굳이 집성목(集成木)으로 만들어 집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새로 지은 집들은 향기로운 오크 향이 집안에 풍겼다.
"그런데 저건 뭐지?"
거북함 옆면에 열린 입구로 들어가는 소형마차 크기만 한 물체를 보고 해경 대원 한 명이 궁금하지 물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정체를 아는 대원이 없었다.
"최근에 기동타격대를 따로 뽑아서 훈련 시키더니 그거 아닌가?"
"그거라니?"
"나도 잘 몰라. 극비라고 입을 열지 않아서 말이야."
"뭐, 도착하면 알겠지."
"나도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 타격대 애들이 말하는데 기대해도 좋다고 엄청 자랑하더라."
"뭔지 모르지만 대단한 건가 보네."
"우리에게도 쉬쉬한 걸 보면 그럴 거야. 이곳은 보는 눈이 많아서 어쩔 수 없나 봐."
리가는 온통 인종의 용광로였다.
루스-차르국인, 폴란드-리투아니아인, 핀란드인, 조선인까지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에 모두가 몰려들었다.
원래부터 큰 도시였던 리가.
한자 동맹 당시 발트해 연안에서 가장 번창한 상업 도시였다.
그런데 조선군이 주둔하면서 조선소까지 활발하게 돌아가자 일자리를 찾던 이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래서였다.
새로 만든 장비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 이유가.
이번 토벌 작전을 빨리 끝내는 데는 이 장비가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달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해경 대원들이 모두 승선하자 조선전력공사 해경 사령관인 해수가 나섰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장교 세 명에게 다가선 해수는 그들을 보고 굳게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진만이, 삼돌이, 은국이. 너희들만 믿겠다. 보이는 족족 파괴하고 진격하라. 절대 봐줘서는 안 된다. 감히 우리 조선을 얕보다니 본때를 보여줘라. 절대 봐주지 마라! 알겠나?"
"""멸!"""
새로 진수된 거북함의 함장이 된 세 사람은 힘차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해수는 '번개' 표시가 달린 지휘봉을 하나씩 세 명에게 주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하셨던 나대용 장군의 후손이 만든 거북함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적진을 휩쓸어 버려라!"
"""멸!"""
"그동안 우린 육경과 기병대가 명예를 드높이는 동안 우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젠 우리 차례다. 우리! 조선전력공사 해경도 육경이나 기병대 못지않게 대단하단 걸 꼭 보여줘야 한다. 알았나!"
"""멸!"""
해수는 작전명인 '토벌'이라는 말처럼 해적 소굴인 스톡홀름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두 번 다시 그 어떤 세력도 조선을 희롱할 생각은 꿈도 못 꾸도록 말이다.
새로 함장으로 임명된 세 사람에게 '해경의 명예를 걸고 선전하길 바란다'는 말로 해수는 그들을 출전시켰다.
사실 연은 토벌 작전을 구상하면서 고민이 많았다.
지금까지 전쟁을 치르는 동안 강력하게 응징했던 세력은 말박이 몽골족뿐이었다.
끝이 안 보이는 드넓은 초원에 사는 이들은 언제든지 예맥의 땅을 위협할 세력이었기에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약탈을 자행할 만한 성인 남자들은 전부 잡아들였다.
그들을 광산과 일본으로 보냈다.
그 결과 일본의 인구는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단, 10만 명의 몽골족을 풀어놓았을 뿐인데 열도 전체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몽골을 무서워했던 일본인들.
가미카제라 말하는 신풍(神風)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몽골족들은 닥치는 대로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저항하며 싸우기보단 떠받들었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전형적인 왜의 습성.
그 습성 때문에 다이묘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다이묘들은 병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보였지만, 점점 비등해져 갔다.
다수의 농노가 몽골족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는지 그쪽으로 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몽골족과 다이묘 두 세력의 싸움은 오래갈 수 없었다.
매일 같이 벌어진 전쟁.
그로 인해 농사를 지을 사람들은 사라지고, 농지는 황폐해졌다.
왜란 때 조선의 농토가 처참하게 파괴된 것처럼 열도 또한 망가져 버렸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굶주림과 역병을 피해 대마도로 탈출하려는 일본인들은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대마도를 지키는 조선군은 그들을 전부 받아 주지 않았다.
'무사였던 자들은 모두 돌려보내라! 반항하면 즉시 처벌하고.'
이는 연이 구상한 왜구 말살 정책에 따른 것이다.
'칼 들고 설치는 놈들은 우리 조선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그러니 열도에서 지들끼리 싸우다 죽게 하라.'
연은 왜구를 멸하는 데 굳이 나서지 않았다.
'조선인들은 너무 착하고 순박해서 탈이야.'
왜란을 겪었지만, 굶주림을 견디다 못하고 넘어온 일본인들에게 조선 백성은 밥숟갈을 건넸다.
이처럼 온정을 베풀 줄 아는 사람들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지진 났을 때 도와줬지만, 모른 체했지.'
그 기억 때문이라도 직접 일본에 쳐들어가 정복할 생각을 버렸다.
'아직 멀었어···.'
1,500만 명 정도 되는 열도 사람들이 1천만 명 아래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연은 더 지켜볼 생각이었다.
'완전히 쪼그라들 때까지 기다릴 거다.'
연에 의해 세상과 고립된 열도.
그곳에서 아비규환이 벌어지고 있지만, 연은 단호하게 마음을 굳혔다.
지겹도록 짜증 나고 열받았던 기억을 완전히 지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을 굳게 먹은 곳이 또 하나 있었다.
그곳은 바로 스웨덴이었다.
연은 예맥 대륙 동쪽 끝을 정리한 것처럼 서쪽 끝도 깔끔하게 밀어버릴 계획을 짰다.
단지 조선에 대항했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놔둬 봐야 분란만 조성할 게 틀림없어.'
전장에서 싸우다 죽는 것을 최고라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러니 조선의 품 안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조서원의 원장인 은진이도 그들을 제거하자고 나섰다.
'사장님, 너무 호전적입니다. 그들을 동화시키려면 돈도 돈이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리고 받아 들여봐야 남쪽으로 내려가서 용병이나 할 겁니다. 그러니 정리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받아들였을 때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러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바이킹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같은 바이킹이라도 스웨덴과 덴마크는 달랐다.
'북방 7년 전쟁'과 '토르스텐손 전쟁'이라 말하는 '30년 전쟁'에서 덴마크는 스웨덴에 탈탈 털리고 왕권이 무너지면서 기가 꺾였다.
하지만 스웨덴은 심심하면 주변국을 침략했다.
'사장님, 그들의 저변에 깔린 의식은 어찌해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 차례 스웨덴을 검토해 본 결과 은진이는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결론 지었다.
그래서 연은 이번 기회에 쓸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남에게 밥 한 숟갈 주지 못할망정 심심하면 침략하는 놈들은 깨끗이 정리하는 게 좋아.'
미래에는 복지국가라고 소문난 곳이지만, 지금 당장은 인류의 악이나 다름없는 곳이 바로 스웨덴이었다.
만약 연이 나서지 않았다면, 올해부터 북유럽은 전쟁에 휩싸였을 거다.
그런 것을 알지 못하는 연이지만, 핀란드인들의 대표로 나선 타피오를 불러 자주 말을 듣다 보니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우리 핀란드는 기본적으로 귀족과 호족, 병사들이 문제가 많았습니다.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전부 죽이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지들이 선동해 놓고 그런 짓을 벌였습니다.'
1596년, 스웨덴에 시달린 핀란드 농민들은 곤봉, 몽둥이, 도리깨, 철퇴를 들고 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알고 보니 스웨덴의 칼 공작과 시기스문드 3세 사이에 일어난 분쟁의 희생자였다.
구스타브 1세 바사의 셋째 아들인 칼 공작이 멋모르는 핀란드 농민들을 선동하여 벌인 짓이다.
그로 인해 핀란드 포흐얀마 지역은 초토화됐다.
그 말을 듣던 연은 슬펐다.
'우리도 동학농민운동이 있었지.'
맥락은 다를지라도 살기 힘든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건 같았다.
'빌어먹을 민비가 일본군을 끌어들여 전부 죽였지.'
민비의 요청으로 조선에 온 일본군은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농민들을 쓸어 버렸다.
순박했던 농민들은 일본군이 가져온 개틀링 기관총 앞에 대항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게 하지 않을 거야.'
연은 왕과 귀족은 죽이거나 추방하더라도 농민들은 조선인이 될 수 있도록 받아들였다.
문식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어느 때나 농민들은 잘못 한 게 없었다.
그저 땅을 일구고 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하지만 위정자들이 문제였다.
조선의 x선비들처럼 핀란드에도 그런 자들이 넘쳐났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 * *
스톡홀름 북동쪽 70km 지점.
중요한 관문이 되는 카펠스카르(Kapellskär)에는 엄청난 수의 포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곳 말고는 수심 때문이라도 다른 곳에서 스톡홀름까지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찰을 서고 있던 코리는 간밤에 마신 스납스(Snaps)로 인해 숙취로 꺽꺽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술이 있나. 다시 먹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에흐, 죽겠네."
향신료와 허브를 가미한 감자주인 스납스는 50도가 넘는 독한 술이다.
그런데 숙성이 덜 된 싸구려 스납스를 진탕 마셨더니 건장한 체구에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시 한번 속을 게워낸 코리는 차가운 물로 목을 축이고 입을 행군 후 내뱉었다.
"에이! 지질맞은 술 같으니라고."
다시는 싸구려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한 코리는 힘이 빠진 다리로 망루에 올라섰다.
"코리! 저것 좀 봐봐!"
"뭔데 그래?"
"저, 저, 해룡 아니야?"
"무슨 헛소리야? 넌 어제 술도 마시지 않았잖아!"
동료인 에베의 말에 시선을 돌린 코리는 '헉'하고 허파에 남아있는 공기를 마저 빼냈다.
"에, 에베! 빨리 종을 울려! 조선 놈들의 배가 틀림없어!"
"어찌 배가 은빛으로 빤짝여? 말이 돼? 저건 해룡이야!"
"에잇, 니 눈은 동태 눈깔이야? 잔말 말고 빨리 종이나 울려! 루스와 폴란드 놈들도 흑룡이라고 했는데 아니었잖아."
"마, 맞아!"
에베가 망루에 달린 종을 울리려고 손을 든 순간.
떠오르는 해와 함께 멀리서 다가오는 은빛 선박에서 번쩍 이는 빛이 발했다.
'쉬잉'하고 망루를 스쳐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꽈앙!
뒤편에 있는 포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으아악!"
멧돼지처럼 거대한 에베가 그대로 주저앉으며 공포에 어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해룡처럼 보이는 은빛 선박은 거침없이 바닷물을 가르며 다가오면서 연신 번쩍이는 빛을 품어냈다.
마치 천둥의 신 토르같았다.
"저, 저건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포탄이 아니었다.
포탄이라면 구멍을 내야 했지만,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 냈다.
-꾸앙! 꽈앙!
다양한 폭음과 함께 검은 구름이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파면이 비상했다.
"으···어···어."
"정신 차려! 코리!"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한 에베는 코리를 둘러업고 망루에서 뛰어내렸다.
-파앙!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지만, 통나무로 튼튼하게 지어 놓은 망루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런 미친···!"
따스한 느낌이 얼굴에 흐르자 손을 들어 머리를 매만 저 본 에베는 놀라 손을 뗐다.
흥건한 피가 손바닥에 가득했다.
"이런 시발! ···죽을 뻔했네."
온몸에 나무 파편이 박힌 에베는 축 늘어진 코리를 땅에 내려놓았다.
둘러업은 코리 덕분에 살아남은 에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을 향해 뛰어갔다.
'윙'하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서 덮쳐오는 뜨거운 열기가 살아남으려면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