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작전명 토벌(1) >
핀란드인들은 바이킹의 후손이 아니다.
그저 바이킹에 정복당해 노예로 살아왔을 뿐이다.
언어조차도 우랄어족의 일파인 핀우그리아어파이고, 신석기 시대부터 농경문화를 시작했다.
스웨덴이 유럽을 침략하는데 전초기지로 쓰였던 핀란드.
그중에서도 리가는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페테르, 태자께서 이곳을 방문한다는 게 사실이야?"
"맞아. 그런데 왜?"
"곧 있으면 바이킹 놈들을 쳐부수러 간다는데 그냥 이대로 있을 거야?"
"그냥 있지 않으면? 조선군이 다 알아서 할 거잖아."
"우리도 나서야지!"
"아서라. 타피오, 괜히 나섰다간 혼날지도 몰라."
하지만 타피오는 주먹을 꽉 움켜 주고 나지막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평생 놈들의 노예로 살아오신 부모님을 죽인 악마들이야. 난 태자님을 찾아가서 참전을 요청하겠어."
"참아! 타피오. 그러다 혼나면 다행이지. 목이라도 잘리면 아르미와 아이들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나도 나서고 싶은 마음은 너 못지않아. 하지만 어쩌겠어. 조선의 태자라고 다를 게 있을까? 왕족이나 귀족은 다 똑같은 거 아니야? 괜히 우리 같은 천한 것들이 말 걸었다고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아니야. 페테르. 조선의 태자 님은 다를 거야. 소양에서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 우리 같은 이들을 위해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도 만들어 주셨다고 했어. 그러니 난 태자 님을 찾아가 뜻을 밝히겠어."
"으음···. 좋아 나도 같이 가지. 너 혼자 가는 것보다 낫겠지."
이렇게 마음이 통한 젊은 남자들이 무려 2만 명이나 되었다.
연은 무장 열차를 타고 리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별일 아닙니다. 전하. 저들은 이번 스웨덴을 공격할 때 자신들도 함께 참전하겠다고 나선 이들입니다."
"그래?"
"네, 전하."
"그렇단 말이지···."
그러지 않아도 연은 스웨덴을 점령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피오르'라 말하는 빙산에 침식되어 형성된 깎아 지르는 형태의 골짜기 지역이라 예맥 기병대를 투입해도 답이 없었다.
"일단 만나봐야겠다. 저들의 대표를 데리고 오너라."
"네, 전하."
연은 완성된 거북함을 보기도 전에 핀란드인 대표를 만났다.
타피오와 페테르는 연을 보고 엎드려 넙죽 절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조선의 예절이라 해서 그리 한 것이다.
"위대하신 대조선의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어눌한 발음을 예를 올리는 타피오를 보고 연은 방긋 미소 지었다.
"일어나 이 의자에 편히 앉아라."
"네? 소인이 감히 어찌···."
"너 또한 조선의 백성이 되려는 자가 아니더냐? 그러니 개의치 말고 앉도록 해라."
하지만 타피오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만 조아렸다.
귀족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했다간 큰 곤욕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뭐 하느냐? 저자를 의자에 앉히지 않고."
"네, 전하."
억지로 의자에 앉게 된 타피오와 페테르는 어찌할 바 몰랐다.
온통 흙투성이인 자신들의 옷으로 고급스러운 의자가 더럽혀져 버렸으니···.
"그래, 참전하고 싶다고?"
"네. 네, 전하. 우리 핀란드인들도 악마 같은 바이킹 놈들을 죽이는 데 동참하고 싶습니다."
"흐음···, 하지만 너희들은 총 쏘는 방법도 모르지 않느냐?"
"저희는 그런 무기가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갈퀴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흐음···, 그래도 그럴 수는 없다. 민삼아!"
"네, 전하."
"이들을 훈련 시킬만한 곳을 만들고 즉시 제식훈련부터 시작해라. 그러는 동안 조1 소총을 이곳으로 가지고 오면 되겠다."
"알겠습니다. 전하."
이제 조선군은 모두 황동 탄피를 쓰는 조2 소총을 쓰고 있다.
그래서 남게 된 종이 탄피를 쓰는 조1 소총은 창고에 그대로 쌓여있다.
'그러지 않아도 총이 탄피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잘됐군.'
그렇다고 팔 수는 없었다.
종이 탄피를 쓰는 총이지만, 후장식이라 전장식 수석총과 비교가 안 되는 연사력과 적중률을 보이는 게 조1 소총이다.
'어차피 민간에 풀고 있는 총이야.'
조선은 총은 물론 도검까지 철저히 관리한 수 있는 무기 허가증을 발급하고 있다.
따라서 맹수가 많이 사는 지역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사냥꾼들에게 조1 소총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수요가 많지 않았다.
엄청나게 만들어 놓은 종이 탄피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문제였다.
습기에 약하기에 그대로 놓아두면 폐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생산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민간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도 조선인이 될 건데 미리부터 관리하는 게 좋겠지.'
조선인이라면 18세가 된 남자들은 8개월 동안 신병 교육을 무조건 받아야만 한다.
여성 또한 사회 교육이란 명목으로 똑같이 교육을 받고 있다.
조선군은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운영되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남자들이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군대 이야기지.'
여자들 또한 사회에 나오기 전에 기본적인 교육과 소양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와 대학교는 있지만, 아직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없는 조선이다.
'백성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이 제일 먼저 선행돼야 해.'
남녀 할 것 없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18세.
초등학교를 나왔어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함께 생활하며 기초적인 교육을 받으며 조선의 문화를 공유하고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게 해줘야 한다.
그게 바로 신병 교육과 사회 교육이다.
"민삼아?"
"네, 전하."
"하는 김에 행식이에게 연락해서 신병 교육과 사회 교육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모스크바에 만들라고 해라."
"네?"
"그곳이 서역의 중심이지 않으냐?"
"아···, 네, 알겠습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도시가 근처에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효종은 만반도라 부르는 동역 외 지역은 모두 연에게 처리하도록 맡겼다.
어찌 보면 왕이라는 직업은 정치인이었기에 매일 같이 대신들과 조율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중역과 서역에 눈을 돌리 틈이 없었다.
어차피 중역과 서역의 모든 땅은 왕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가 점령했기에 처분도 조선전력공사가 하기로 했다.
"이름이···?"
"타피오입니다. 전하."
"페테르입니다. 전하."
"그래, 타피오와 페테르는 조선말을 빨리 익혀서 조선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들을 중히 쓸 수 있지 않겠느냐? 앞으로 너희 핀란드인들을 위해서라도 노력하도록 해라."
""전하, 성은···.""
연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그런 말은 오직 폐하께만 쓸 수 있다. 그냥 명심하면 된다. 알았느냐?"
""전하, 명심하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연을 찾아온 타피오와 페테르는 연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란드인들에게 돌아가 그들은 연과 나누었던 대화를 공개하자.
연이 탄 무장열차가 조선소로 떠난 뒤를 바라보며 모두 엎드렸다.
"""전하, 명심하겠습니다."""
"""대조선 만세!"""
어눌한 발음이지만, 그들이 연과 조선에 향한 마음이 깊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 * *
리가에서 스톡홀름까지 직선거리는 440km 정도이다.
하지만 수많은 섬이 가로막고 있다.
수심이 낮은 곳이 너무 많다.
그래서 훨씬 먼, 북동쪽을 돌아 접근해야 한다.
"정말 섬이 많습니다."
"저게 네 눈에는 섬으로 보이냐? 다 암초 덩어리지."
"그렇습니까?"
"잔소리 말고 측정부터 해. 하루 이틀에 끝낼 일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드디어 작전명 '토벌'이 시작됐다.
스웨덴 왕위를 얀 2세로부터 정식으로 인수했기에 명분은 조선에 있다.
현재 스웨덴을 점령하고 있는 바이킹들은 반란 세력일 뿐이다.
따라서 반란군인 바이킹들을 토벌하는 것으로 작전명을 정했다.
"우리가 빨리 끝내야 두 번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고생 좀 하자."
"네, 선배님."
그동안 스톡홀름으로 진입하는 경로를 수집하기 위해 핀란드인들과 덴마크인들을 지원자로 모집했다.
생김새가 같기에 그리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조서원에서 거금을 약속하고 정보를 캐오라고 보냈던 이들.
의심 많고 흉포한 바이킹들에게 이유도 없이 죽어갔다.
'외지인은 무조건 잡아들여라!'
'반항하는 놈은 바로 쳐 죽이고!'
칼 10세의 명을 받은 스웨덴 병사들은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정찰을 하면서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자는 일단 죽이고 봤다.
그래서 조서원의 요원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요원들은 목숨을 걸고 다시 해도를 작성해야만 했다.
"쳐 죽일 놈들! 왜구랑 똑같군."
멀리서 몰려오는 바이킹들의 배를 본 요원은 망원경을 눈에서 떼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이만 가자! 배를 돌려라."
"빌어먹을 놈들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반도 못 했는데···."
짜증 나는지 투덜거리던 요원은 계기반 옆에 붙은 시동 단추를 눌렀다.
검게 칠해진 10m 정도 되는 요원들이 타고 있는 철선에서 '부르릉'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철선은 빠르게 튀어 나갔다.
멋들어지게 바다 위를 선회한 철선은 쫓아오는 바이킹들을 비웃기라도 수면 위를 날다시피 갈지자로 움직였다.
"닭 쫓던 개새끼들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그냥 갈겨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린 해도만 만들면 돼. 그러니 딴생각하지 마라."
"그래도 아쉽습니다."
"너 그러다 조서원에서 쫓겨난다. 우린 명령 받은 대로만 하면 돼. 나머지는 조선군에 맡기고. 알았나?"
"네, 선배님."
드디어 휘발유 엔진이 개발됐다.
점화장치도 문제지만, 카뷰레터(Carburetor)라 말하는 기화기를 최적화하는 작업이 오래 걸렸다.
기화기는 연료를 기화시키는 장치가 아니다.
엔진의 흡기통로에 휘발유와 공기를 섞어 안개처럼 보내는 장치이다.
21세기 휘발유 자동차는 인젝터(Injector)라는 연료 분사 주입기를 사용하지만, 그전까지 카뷰레터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속도가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하고, 속도가 감소하면 압력이 증가한다는 베르누이(Bernoulli)의 정리를 이용한 기화기.
공기와 혼합된 연료를 좁은 흡기통로로 보내기에 빠른 속도로 실린더에 들어간 혼합된 연료는 안개처럼 고르게 퍼진다.
따라서 밟으면 밟은 만큼 카뷰레터 휘발유 엔진은 미친 듯이 작동했다.
힘찬 엔진 소리와 함께 멀리 떠나 버린 조서원 요원들이 탄 배를 보고 바이킹들은 욕을 하며 왜 꾸진 도끼를 바다에 던졌다.
몇 번이나 봤지만, 놀랍고 황당했다.
자신들이 타고 다니는 배보다 훨씬 작은 데도 돛도 없는 배가 물고기처럼 날렵했다.
여러 차례 발견하고 뒤를 쫓았지만, 돌고래만큼 빠르게 달아나기에 열불만 났다.
"조건 틀림없이 조선 놈들이 만든 배일 거야."
"그러겠지. 그나저나 어떡하지?"
"뭘?"
"자주 나타나는 걸 보면 곧 쳐들어올 것 같은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그 말에 다른 바이킹이 도끼를 쳐들었다.
"아르네, 넌 발홀에 가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그건 아닌데···."
"그런데 왜 그리 약한 소릴 하지? 그냥 내 도끼에 죽는 게 낫겠다."
"발더! 생각 좀 해봐! 너와 나는 발홀로 가면 끝이야. 그런데 가족들은?"
"가족들? 흥! 그들도 싸우면 되지."
"그들은 전사가 아니잖아! 선택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
거의 2m 가까이 되는 거구의 발더는 도끼날을 혀로 핥더니 씩 웃었다.
"상관없어! 나만 발홀로 가면 그만이야. 그러니 또 그런 말을 지껄이려면 내 배에서 꺼져!"
아직도 스웨덴 병사 중에는 발홀과 발키리, 발할라, 폴크방을 믿는 자들이 많았다.
13세기 이전에 구전되던 서사시를 모아 놓은 '고 에다'와 이후 '스노리 스투를루손'이 쓴 '신 에다'는 살인과 약탈을 좋아하는 바이킹들의 성서가 되었다.
두 책에는 북유럽 신화와 초기 노르웨이 왕들에 관한 전설과 역사가 혼합되어 있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만 딱 집어내서 전장에서 죽는 거야말로 가장 멋진 일이라 포장했다.
그랬기에 연은 토벌 작전을 시작하면서 강하게 명했다.
'놈들이 감히 허락도 없이 조선의 땅을 강제로 점령하고 있다. 더구나 조선인이 될 핀란드인들을 노예로 삼고, 덴마크인들이 사는 곳을 수시로 쳐들어가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다니···, 그냥 둘 수 없다. 그러니 놈들이 원하는 곳으로 모두 보내버려라! 단 한 놈도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작전에서 포로 따위는 취급하지 말라고 했다.
보이는 족족 모조리 죽여 버리라고 했다.
'전쟁을 미화시키는 놈들은 단 한 명이라도 조선의 땅에 남겨 두지 마라!'
수도 없이 조선의 해안을 침범하고 약탈과 살인을 저질렀던 왜구들.
마침내 조선의 위정자들이 개판을 치고 있는 상황을 이용해 날름 삼켜버렸다.
'그 후로도 끊임없이 도발했지.'
그런데 알아보니 핀란드인들의 삶은 더 심했다.
그래서 이번 작전에 핀란드인들에게도 기회를 줬다.
복수할 기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