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44화 (144/275)

< 144. 바이킹과 거북함(4) >

바벨 성 북쪽 마을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머! 너무 예쁘다."

"그치!"

"고마워. 이런 행사가 있다는 걸 알려줘서. 이렇게 크고 예쁜 크리스마스트리는 처음 봐."

며칠 전, 말끔하게 단장된 커다란 전나무가 마을 광장 한가운데 세워졌다.

소양에 사는 사람들은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전나무에 형형색색 이것저것 붙이며 아름답게 단장하자 환호성을 질렀다.

말로만 들었던 크리스마스트리.

그것도 엄청난 크기의 트리가 완성되자 모두가 감동했다.

조선군이 점령하면서 몰라보게 변해가는 마을은 이곳만이 아니었다.

관공서와 포도청이 들어오면 어김없이 초등학교가 세워졌다.

그 누구라도 15세 이하면 입학할 수 있었다.

또한 성인들을 위한 야간 조선어학당도 운영했다.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가로등도 세웠다.

우중충했던 마을의 밤이 밝아졌다.

"정말, 밤이 되면 불이 들어온다고?"

"그렇다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태자님께서 계신 바벨 성처럼 저 나무에도 불이 들어온다고 했어."

"그래 정말 예쁘겠다."

기수에 짓고 있는 발전소가 완공되려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은동리에서 전력 공급용 발전기를 만들어 보냈지만, 아직 설비가 구축되지 않았다.

그래서 연이 타고 온 무장열차로 발전해서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연의 거처가 된 바벨 성.

밤이 되면 환한 전구의 불빛들이 성벽을 따라 밝게 켜졌다.

어둡기만 한 소양의 밤을 밝게 빛내주는 바벨 성의 불빛은 발달 된 조선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발달 된 문명을 보면 흠모하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조선의 품에 안긴 사람들은 너도나도 정식으로 조선인이 되고자 했다.

"몇 시에 켜진다고 했지?"

"음···, 6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불이 들어온다고 했어."

얼마 전 순이는 부모님을 따라 소양에 정착했다.

만반도를 떠난 조선인들은 대부분 키이우를 넘기 전에 자리를 잡았다.

키이우 너머로는 개간된 농지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이의 부모님은 상사의 직원이라 소양까지 왔다.

마을 광장에 게시된 글을 보고 순이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단짝 친구인 카트리나를 데리고 마을 광장에 나왔다.

전 같으면 밤에 돌아다닌다는 건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한 짓이었다.

자경단이 있었지만, 어두운 크라쿠프의 밤거리는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모를 정도로 어두침침했다.

하지만 소양으로 마을 이름이 바뀐 후 많은 게 변했다.

바벨 성을 따라 마을 광장까지 이어진 길에 가로등이 생겼고 수시로 포졸들이 돌아다녔다.

소양은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한 마을이 되었다.

전에는 무섭기만 한 자경단이었지만, 조선의 포졸은 그러지 않았다.

육모 방망이를 들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포졸들은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알아서 해결해 주었다.

그러나 반항하면 권총을 꺼내 가차 없이 쏴다.

그랬기에 싸우더라도 포졸이 오면 멈추었고, 범죄자들은 마을에서 사라졌다.

그렇다고 마을 외곽에서 나쁜 짓을 할 수 없었다.

예맥 기병대가 수시로 돌아다니기에 도적놈들이 안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뎅! 뎅! 뎅! 뎅! 뎅! 뎅!

여섯 번의 종소리와 함께 마을 광장에 우뚝 세워져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전구들이 밝게 빛을 내품었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 등등 무지개 색깔로 칠해진 전구가 켜지자 사람들이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감탄의 탄성을 질렀다.

바벨 성 탑 꼭대기에 올라가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연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눈이라도 내렸다면 더 좋았을 건데, 아쉽군."

"눈이 오면 마을 사람들이 안 모이는 것 아닙니까?"

쌍식이 대신 연을 따라온 민삼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민삼아, 생각해 봐라. 하얀 눈밭에 세워진 푸른 전나무에 형형색색의 전구가 밝게 빛나면 어떤 모습일지."

"네?"

"거기에 둥근달까지 둥실 떠 있지 않으냐."

"아···."

이제야 뭔가를 떠올렸는지 민삼이는 입을 벌린 채 눈만 깜빡였다.

"···흰 종이에 멋진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습니다."

"맞다. 운치 있지 않으냐? 크리스마스는 이곳 서역에서는 명절 같은 날이다. 그러니 우리도 함께 즐기자."

"네, 사장님."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 누구라도 좋아했던 크리스마스이브라 연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준비하라고 했다.

"초파일에는 연등도 걸어야겠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양에 조선전력공사 분점이 생긴다는 걸 알고 조선의 상사들도 분점을 세웠다.

그러다 보니 조선인들도 많아졌다.

그들은 바벨 성 동쪽에 조선 양식으로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절까지 지었다.

"사장님, 시간 됐습니다."

"알았다."

민삼이가 시계를 꺼내 보이며 말하자 연은 연회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기수와 해수, 참모들과 장교들, 연구원과 공돌이들이 모여 있었다.

"""사장님을 뵙습니다."""

"""전하를 뵙습니다."""

연은 자신을 보고 고개를 숙여 예를 올리는 이들을 보고 손을 저으며 밝게 미소를 띠었다.

"오늘은 서역 사람들에게 축제와 같은 날이니 편하게들 먹고 마시도록 하자."

"""감사합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전하."""

그동안 전쟁을 치르고, 뒤를 정리하느라 쉬지도 못하고 뛰어다녔던 이들이다.

연은 이들에게 포상하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할 일이 태산같이 많다. 그래서 내가 너희들에게 준비한 것이 있으니 잊지 말고 꼭 받아 가도록 해라."

"""와···!"""

이미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보상은 역시 돈이 최고지.'

적게는 1원부터 많게는 100원까지 공훈에 따라 금일봉을 주기로 했다.

21세기와 비교했을 때, 1문이 약 1만 원 정도다.

그리니 1원은 1천만 원이나 되고, 100원은 10억 원이다.

단발성 성과금으로 주는 금액치고 엄청난 거금이지만, 연은 조선을 위해 애쓴 이들에게 아낄 생각이 없었다.

'나라를 위해 힘쓴 이들에게 넉넉하게 줘야지. 그래야 딴생각을 안 하지.'

조선전력공사는 조선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직장이다.

기본적으로 월급이 높았고, 다양한 복지 또한 최상이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제 버릇 개 주지 못한 직원은 있었다.

그런 자는 적발되면 바로 탄광으로 보냈다.

조선전력공사는 왕실 기업이기에 간략 재판으로 바로 처리할 수 있었다.

"오늘부터 새해 셋째 날까지는 푹 쉬도록 해라. 너무 멀어서 고향에 갈 순 없지만, 이곳에도 볼 것이 많으니 너무 아쉬워 말고. 알았느냐?"

"""넵!"""

우렁찬 대답이 연회장을 넘어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포상금에 장기 휴가라.

모두에게 기쁜 성탄절이었다.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연은 자리를 떴다.

"참 묘하구나, 서양악과 동양악이 어울리는 소리가 이리 좋다니."

이제 너무나 넓어진 조선의 영토.

만반도는 동역이라 부르고, 몽골고원은 중역 그리고 이곳은 서역이라 불렀다.

하지만 21세기에 살다 온 연이기에 아직도 서양과 동양이 입에 붙어 있었다.

"몇 달 동안 합을 맞춘다고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겠지. 쉽지는 않았을 거야."

느린 조선 음악과 빠른 서양 음악을 어울리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조선전력공사의 정식 악단원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전혀 다른 두 조직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21세기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멋진 선율이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합주를 들으며 침실로 돌아가는 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야코프 이놈이 배를 타고 떠나 버렸다는 데 어디로 갔을까?'

모두가 들떠 있는 성탄절이지만, 연은 야코프의 행방이 궁금하기만 했다.

* * *

효종 7년(1655) 5월.

사마르칸트와 돈황에서 출발한 기찻길 공사가 예맥남로 중간에서 만났다.

한양에서 서맥까지 7,700km나 되는 전 구간을 개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안전을 위해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하기에 개통식은 뒤로 미뤘다.

다두 왕국이 드디어 필리핀 민다나오섬을 점령했다.

카마찻 말로에 왕은 다두 왕국의 전사들을 이끌고 다바오에 상륙하여 모두를 굴복시켰다.

약탈과 학살이 취미라 볼 수 있는 스페인도 어찌하지 못한 무슬림들을 정복한 것이다.

술루, 라나오, 모로 왕국이 원시림에 숨어서 강력히 저항 했지만, 다두 왕국 전사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들 또한 원시림에서 살아왔기에 거침이 없었다.

또한 다두 왕국은 스페인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무슬림들에게 기독교를 믿으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불교 국가인 다두 왕국은 조선의 영향을 받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줬다.

수십 년 동안 스페인에 저항했던 민다나오의 원주민들.

생각이 바뀌었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말에 저항하기보단, 다두 왕국을 섬기는 쪽으로 돌아섰다.

아무튼 필리핀을 전부 점령한 카마찻 왕은 생고무 생산을 늘리고 가격 또한 낮췄다.

카마찻 왕은 박문식과 함께 다니면서 조선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

특히 연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자주 요청했다.

'태자께서는 한없이 베풀지만, 단호할 때는 사정을 보지 않습니다. 또한 은혜를 입으면 절대로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았는지 카마찻 왕은 왕자들이 있는 곳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은혜를 잊으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다. 난 그런 자가 되고 싶지 않다. 너희들 또한 그런 자를 왕으로 삼지 말라. 내가 죽더라도 내 후손 중에 그런 이가 나타난다면 단호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카마찻 왕이 시키지도 않는 짓을 했다.

'앞으로 조선말과 조선글을 쓸 줄 안다면 10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주겠다.'

어찌 알았는지 사파비 제국을 점령한 조선군이 한 일을 그대로 따라 했다.

성과가 좋았다는 것을 들어서였다.

벵골 술탄국 다카를 점령한 준가르 왕국 또한 남하하여 치타공을 점령하고 조선에 사신을 보냈다.

'폐하, 우리 준가르 왕궁이 기름진 땅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대조선 제국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토고친 왕이 저를 보냈습니다.'

'그래 고생이 많았구나.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연락도 없이 이리 온 거냐?"

효종의 물음에 준가르 사신은 가지고 온 베개만 한 상자를 열었다.

'이것을 조선의 태자 전하께서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눈이 부셨다.

정전 유리창을 통과한 햇빛에 반사된 빛은 휘황찬란했다.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등.

반짝이는 보석이란 보석은 상자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폐하, 다카와 치타공에서 수거한 것들입니다.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우리 준가르 왕국이 폐하께 입은 은덕은 하해와 같습니다. 호토고친 전하는 이를 갚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한이 될 거라 하셨습니다.'

그동안 총과 화약, 대포까지 지원해 줬다.

거기다 처음 정착하는데 힘들다는 말을 듣고 곡식도 보내 줬다.

어찌 알았는지 고조선의 이념인 '홍익인간'을 들먹이며 하소연을 했기에 효종은 부탁을 들어줬다.

만주 땅을 개간한 후로 쌀은 남아돌고 있었기에 인심 쓴 거였다.

그런데 조선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귀한 보석을 엄청나게 가져왔다.

'호토고친 왕에게 전해라. 잘 받겠다고 그리고 혹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해도 좋다. 짐이 오늘 기분이 아주 좋구나.'

효종은 너무 기쁜 나머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그 말을 듣자마자 사신은 바로 말을 꺼냈다.

'폐하! 우리 준가르 왕국은 이번에 치타공을 점령하면서 조선군이 주둔하기를 원합니다.'

'으응?'

'하지만 조선은 타국을 간섭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에 호토고친 왕은 치타공 앞에 있는 손딥(Sandwip)섬을 조선에 양도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이것 또한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폐하!'

'크흠.'

호토고친 왕은 야심이 큰 만큼 머리 또한 좋은 이었다.

조선이 서역까지 점령했다는 것을 알고 조선을 자신의 뒷배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전쟁으로 얻은 보석을 아낌없이 바쳤다.

치타공 앞에 있는 손딥섬까지 조선에 상납했다.

손딥섬은 비옥한 땅이고, 벵골의 중요한 소금을 공급하는 곳이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야만 무기를 원활하게 지원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효종은 대신들과 상의 끝에 손딥섬을 양도받기로 했다.

어차피 준가르 왕국은 조선을 따르는 우방국이다.

그러니 히말라야산맥을 넘나들며 교역하는 것보다 해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연은 이 소식을 듣고 기가 막힌 지 한동안 허하고 웃어버렸다.

'원치 않아도 알아서 조선말을 퍼트리고, 보석을 갖다 바친다? 보통내기들이 아니군.'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따르는 자가 진정한 영웅이란 말이 있다.

카마찻 왕과 호토고친 왕은 떠오르는 조선의 기세에 합승하려 한 것이 분명했다.

'뭐, 나쁠 건 없지. 헛수작만 하지 않는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계획대로 조선을 완성해 놓아야만 했다.

'배신자는 배신할 만한 이유가 있고, 당한 자는 당할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

그래서 연은 그들이 절대 배신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을 계획이다.

* * *

봄이 되자 오스만 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이 드디어 붙었다.

양쪽 다 조선에서 구매한 수석총을 가지고 치열한 땅따먹기를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유럽에서 또다시 전염병이 크게 성했다.

종교적 망상으로 고양이와 개까지 몰살시킨 이후 크게 돌았던 흑사병은 다행히도 아니었다.

천연두였다.

조선인이라면 신분증을 발급받으면서 예방 접종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었다.

"국경은 잘 막아 놓았느냐?"

"네, 사장님. 염려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그래, 천연두가 이곳까지 넘어오지 않게 단단히 조심 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장님."

연은 기수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해수와 함께 리가로 가는 무장열차에 올랐다.

기수에 세워진 발전소가 가동되면서 더는 무장열차가 발전기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거북함이 완성됐다고 했지.'

진해 벚꽃 축제 때 거북선을 보았다.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대용 장군의 후손이 만든 거북함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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