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바이킹과 거북함(2) >
연은 어떻게 하면 사신 같지도 않은 사신을 보낸 칼 10세에게 조선의 힘을 보여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제대로 한 방을 먹어야 하는데···.'
틀림없이 칼 10세는 안심하고 있을 것 같았다.
'수많은 섬과 암초 사이를 지나야만 스톡홀름에 접근할 수 있기에 그렇게 도발한 거겠지?'
조경함이 온다고 해도 발트해에서 스톡홀름까지는 직선거리가 50km나 되니 어찌할 방도가 없다.
섬 사이가 넓기에 최대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지만, 수심이 4m가 안 되는 곳이 많다는 보고였다.
최대한 스톡홀름에 접근한다고 해도 15km가 넘기 때문에 사정거리가 10km 정도인 조303 곡사포로는 스톡홀름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러니 조경함 말고 다른 방도를 생각해봐야 했다.
'아주 끝내주는 곳에 자리를 잡았군.'
바이킹의 본진인 스톡홀름은 해안 깊숙한 곳에 있기에 안심하고 다른 곳을 약탈하러 다녔던 거였다.
갤리온을 사서 곡사포로 공격해 볼까 생각했는데 그것도 답이 아니었다.
'허접하고 내구성이 약하다 해도 대포는 대포지.'
스웨덴을 유럽의 강대국으로 올라서게 한 구스타프 아돌푸스( Gustavus Adolphus) 왕 시절에 만든 가죽 대포가 섬 곳곳에 포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1620년부터 사용했다는 가죽 대포.
얇은 구리관으로 제작한 포신에 가죽을 둘둘 말아 만든 거였다.
그러나 내구성이 형편없었다.
가죽의 특성상 열전도가 낮아 쉽게 가열되고 휘어졌다.
하지만 싸게 만들 수 있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가벼워서 구스타프 왕은 이 대포를 가지고 다니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조선에서도 네덜란드에서 온 박 연(벨테브레)이 이를 이용해서 지총(紙銃)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방짜유기로 만든 얇은 포신 겉에 기름먹인 한지를 여러 겹 씌워 만든 거였다.
하멜표류기에서 조선군도 가죽 대포를 사용했다고 나오는데 아마 이 지총을 말하는 것일 거다.
몇 번 쏘고 나면 망가져 버릴 것이 틀림없지만, 그래도 포는 포였다.
'야코프가 머스킷을 만드는 방법으로 제조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가죽 대포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내구성을 가져야 해.'
그래서 떠오른 것이 바로 거북함이었다.
나무배에 철판을 덧대 거북함을 만들기로 결정한 연은 나진서와 수시로 만나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거북함을 만들지 서로 가진 생각을 교류했다.
조선 최고의 선박 기술자였던 나대용(羅大用) 장군의 후손인 나진서는 소양에 오기 전에 이미 거북함 설계를 끝냈다.
연의 명으로 이순신 장군의 후손을 찾으면서 함께 데리고 온 나진서는 선친이 어떻게 거북선을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전하, 거북선의 기본적인 구조는 판옥선입니다. 판옥선의 하부 구조에 옆을 막고 뚜껑을 덮어 왜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음···, 판옥선을 개조해서 거북선을 만들었구나."
"그렇습니다. 전하."
판옥선이라면 평저선이라 수심이 깊지 않다고 해도 걱정할 일은 없었다.
"따라서 갤리온을 사서 개조하는 것보다는 직접 배를 제작했으면 합니다."
"시간이 문제인데 가능하겠느냐?"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주변에 배 만들 나무가 넘쳐납니다."
"그렇다 해도 나무를 말려야 하지 않느냐?"
목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수많은 대체역사 소설을 읽었기에 연은 배를 건조할 때 쓰이는 나무는 오랜 기간 건조한 것을 써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비틀림 때문에 그러는 것인데 강철로 보강하고 강판을 겉에 씌우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처음 만든 함선인 조경 1호 함도 그렇게 만들었으니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다른 거라면 건조한 원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만들고 있는 조경함처럼 내부를 강철 빔으로 보강하면 된다.
"그런데 전하, 무수에서 캐내기 시작한 크롬으로 녹슬지 않는 강판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로 거북함을 만들 때 썼으면 합니다."
"그래 벌써 생산하고 있더냐?"
"네, 전하. 전하께서 알려주신 비율대로 섞었더니 물에 담가 놓아도 녹이 슬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은 광식이에게 크롬을 섞어 녹이 슬지 않는 합금을 만들 수 있는 비율을 알려주었다.
'기본적으로 크롬은 16~20% 정도 넣고, 니켈은 8~14% 정도 넣어 만들면 무녹강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몰리브덴을 2~3% 정도 첨가하면 바닷물에서도 녹슬지 않을 것이다.'
조선에서 무녹강이라 부르는 스테인리스강은 크롬, 니켈, 몰리브덴의 첨가 비율에 따라 다양한 제품이 있다.
그중에서도 304라 말하는 스테인리스강은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제품이다.
식기부터 자동차부품까지 304 스테인리스강이 쓰이지 않은 곳이 없다.
여기에 몰리브덴을 첨가한 제품이 316인데 내식성과 내산성, 인장력이 뛰어나고 고온에도 잘 견디기에 해수 설비로 이용된다.
하지만 스테인리스강은 고가이기에 큰 배를 만들 때는 쓰지 못한다.
그러나 무수에서 캐내고 있는 크롬이나 니켈은 아직 가격조차 정해지지 않는 금속이다.
모두 조선전력공사의 소유이기에 가격을 따질 필요가 없고, 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해라. 단, 적의 포탄에 견딜 수 있도록 잘 만들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연은 스테인리스강을 개발하면 식기부터 만들어 팔려고 했다.
'수저, 젓가락, 가위, 칼부터 만들려고 했는데···.'
21세기에 살아왔기에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식기가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알고 있었다.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식기라면 조선전력공사의 새로운 효자 상품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거북함을 만드는데 필요한 무녹강판을 생산해 내야 한다.
연이 은동리에 없어도 조선의 산업기술은 발전하고 있었다.
처음 연이 발굴해 가르친 천재급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선발되었던 상황을 그대로 적용했다.
팔도 곳곳에 세워진 초등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을 모아 선발하고 교육했다.
행식이처럼 관리 쪽이라면 몰라도 과학을 연구하는 데는 잡다한 지식을 쌓기 전부터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는 연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격 형성에 문제가 있지 않았다.
같은 생각을 가진 아이들끼리 모여 있었다.
언제든지 정신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은동리의 연구원이 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엄청난 것이기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아무리 어려도 연구원이라면 월급을 받았다.
그랬기에 가족들에게도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렇다고 성질이 모나거나 싹수가 없지 않았다.
은동리에는 뛰고 나는 대단한 천재급 연구원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까불지 못했다.
아무튼 새로운 천재급 연구원들이 은동리에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연에게 일일이 다 보고 하지 못할 정도로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제는 그들끼리 알아서들 잘 개발하고 있었다.
"전하, 그런데 지형을 분석해 본 결과 함부르크(Hamburg)보다는 리가(Riga)라는 곳에 조선소(造船所)를 짓고 거북함을 만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응? 제철소가 있는 기수에서 함부르크가 더 가깝지 않으냐?"
"그러긴 합니다만, 무녹강판은 무수에서 생산해서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기수에 있는 제철소에는 무녹강판을 만들 설비가 아직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 무녹강판 만드는 설비를 짓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전하."
연은 지도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부르크에 갤리온을 만드는 조선소가 있어서 그곳에서 거북함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키이우에서 함부르크로 가는 길보다 북쪽 발트해 연안에 있는 리가가 훨씬 가까웠다.
게다가 드네프르강을 이용해 중간까지 수송할 수 있었다.
아직 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았지만, 무거운 무녹강판을 운반하는 데 수로를 이용하면 효율적일 것 같았다.
"앞으로 키이우가 물류의 중심지가 될 것 같구나."
"그렇습니다. 전하. 수로만 잘 연결하면 철도를 개설하기 전에도 배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친을 따라다니며 거북선과 판옥선을 만들었던 나진서는 배에 대한 강한 예착을 보였다.
"리가에서 거북함을 만들면 바로 스톡홀름까지 가기도 편하겠구나."
"그렇습니다. 전하. 그런데 리가에도 조선소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
"네, 전하. 스웨덴 놈들이 그곳에서 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잘됐구나."
오래전부터 배를 잘 만든다고 소문난 바이킹이다.
그들의 후손인 스웨덴인들은 발트해 건너 동쪽 리가까지 손에 넣었지만, 이번에 조선군에게 빼앗겼다.
급히 도망가느라 선박 제조 시설을 그대로 두고 갔다.
얼마 되지 않은 인구로도 북유럽을 점령하려던 바이킹의 후손들이지만, 평지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평지에서도 대단한 전사들이긴 하지만, 초원을 누볐던 예맥 기병대에게는 꽁지를 말고 도망치는 늑대나 다름없었다.
"그럼 얼마나 크게 거북함을 만들 수 있겠느냐?"
"직접 가서 살펴봐야 하겠지만, 놈들이 만든 배가 70m 가까이 된다고 하니 못해도 50m가 넘는 거북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0m라 그러면 밀리지 않겠구나."
"네, 전하."
그러지 않아도 걱정되는 게 있었다.
발트해와 대서양을 휩쓸며 약탈을 벌이던 스웨덴군이 보위하고 있는 배의 크기는 생각보다 컸다.
길이가 69m나 되고 폭이 11.7m나 되는 그들의 배는 500명이나 되는 승조원과 전투원들을 싣고 다녔다.
17세기 초반에 나무로 만든 전함이지만, 2층 갑판으로 이루어진 3열 함포를 상대할 전함은 조경함 말고는 없었다.
24파운드 포만 48문에 3파운드 이하 작은 포도 16문이나 장착된 바이킹의 전함은 아직 유럽에 있는 그 어느 나라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런 전함이 50척이나 있다니, 대단하군. 역시 바이킹의 후손들인가?'
그랬기에 엄청난 화력을 가진 조선군이라고 하지만, 스톡홀름을 쳐들어가기가 겁났다.
물론 조선군의 희생을 강요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연은 지금까지 그런 짓을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급하게 서두를 것 없어. 시간은 내 편이야.'
곧 있으면 15살이 되지만, 아직 한참 어린 나이이다.
아버지인 효종의 건강 또한 설파제가 있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착실하게 생각한 대로 테크트리를 쌓아가야 해.'
갑자기 나타난 칼 10세 구스타브가 도발을 해왔지만, 연은 그의 계략대로 움직여 주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누구 좋으라고!'
21세기에 전 세계와 맞짱을 떠도 이긴다는 미군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참패를 당했다.
철이 많이 포함된 험악한 산악지형이라 통신조차 잘되지 않았고, 첨단 무기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러니 미군이 당할 수밖에.
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는 강력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는 조선군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다가 당한 미군 꼴이 되지 않으려면 철저히 준비해야만 한다.
'무턱대고 스웨덴을 쳐들어갈 순 없지.'
* * *
효종 6년(1654) 9월.
전라도에 큰 기근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경상도에 살던 백성들이 우크라이나 지역으로 대거 몰려왔다.
"아니, 전라도에 흉년이 들었는데 어찌 경상도 백성들이 이주해 왔단 말이냐?"
"그게, 산동반도와 가까운 전라도는 늦지 않게 쌀이 배달되었는데 경상도는 보름 정도 늦었나 봅니다."
"음···."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었다.
몇 년 동안 배를 곯은 적이 없었던 조선의 백성들은 조금도 참지 않았다.
조선전력공사에 보관해 놓았던 쌀까지 떨어지자, 그들은 기다리지 않았다.
서쪽으로 가면 새로 개간한 넓은 땅을 준다는 말에 가산을 챙겨 이동했다.
'그게 말이 되나? 어찌 한 달 만에 수만 리 길을 갈 수 있단 말인가?'
'아···참! 내가 참말이라고 몇 번이나 하지 않았는가. 내가 서역을 오가며 장사하는 것 알지 않나. 수만 리 길이 다 포장이 되어 있어서 마차를 타고 한 달만 가면 도착할 수 있다니까 그러네."
'진짜여?'
'아 그렇다니까! 왜 사람 피곤하고 믿지를 못하는가. 태자께서 예맥의 땅을 다 점령했다고 라디오에서도 그러지 않았는가.'
그동안 조선방송공사에서는 서역으로 이주하라고 매일 같이 홍보했다.
-태자께서 간악한 서역의 제국 놈들을 물리치시고 그곳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알려 드립니다.
-또한 만주보다 더 넓은 옥토를 개간해 놓았다고 하니 그곳에 가서 그토록 원하는 넓은 땅에서 벼농사를 지으세요.
-다시 말하지만, 여름에는 덜 덥고 겨울에는 덜 추운 곳입니다.
-태자께서 작은 한양이라는 소양에 머물고 계시니 안심하고 이주하세요.
-정착비도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든 고향을 버리고 떠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쌀 배달이 보름 늦어졌다고 이주비를 받고 기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선녀 같은 처자들이 많다고 하던데 참말이여?'
'왜? 새장가 들려고? 어림도 없는 말 꺼내지도 말게나. 자네 처가 시퍼렇게 지켜보고 있지 않나.'
'내가 그러겠다는 게 아니라 우리 순돌이 생각해서 그런 거지. 날 보게나. 우리 순돌이 만큼은 잡혀 살게 할 순 없네.'
'뭐, 그렇다면 어서 챙겨 떠나게나. 그곳은 아직 그 뭐였지?'
'남녀평등?'
'맞아! 남녀가 평등하지 않다고 하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칠거지악이란 말은 있지도 않았다.
호란으로 인해 x선비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온 조강지처를 버리긴 했지만, 대부분 백성은 힘이 없던 시절의 아픔을 받아들였다.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조선이기에 그만큼 조선 백성들의 마음 또한 넓어진 거였다.
아무튼 사파비 제국에서 소양까지 온 해수의 말을 듣고 연은 한양에 갔다 오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젠장! 보고 오려고 했는데···.'
1년 가까이 떨어져 지낸 태자비가 보고 싶기에 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태자가 서역에 있다는 말에 만반도에 사는 조선 백성들이 서역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태자가 한양으로 간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어찌 되겠는가.
'어서 전화선이 깔려야 될 텐데.'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는지 연은 바벨 성안에 있는 통신기지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