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38화 (138/275)

< 138. 협상(3) >

효종 6년(1654) 3월.

불타버린 경복궁 터에 무언가 거대한 건축물이 올라가고 있을 때.

준가르 왕국이 벵골 지역을 정복하고 있을 때.

다두 왕국이 필리핀 민다나오섬을 공격하고 있을 때.

교황 인노첸시오 10세가 소양(小陽)을 방문하기 위해 새로 확정된 조선의 땅으로 발을 디뎠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오스트리아 대공국(Archduchy)의 북쪽 국경도시인 오스트라바(Ostrava)를 지나 이제 기수라 부르는 카토비체에 도착했다.

"대단하군! 이곳은 조그마한 마을이라고 들었는데···."

교황은 엄청나게 넓어진 마을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사는 사람만 어느새 5만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조선전력공사가 시멘트공장, 제철소, 발전소를 세우면서 경비대가 요새를 짓고 관리하다 보니 사람들이 몰려든 거였다.

조선전력공사 기병대 사령관 기수가 마중 나와 있었지만, 그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멀리 보이는 높이 솟아오른 탑에서 연기가 품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또한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성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 기수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교황 예하. 앞으로 제가 모시겠습니다."

"반가이 맞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대는···."

"저는 기병대 사령관인 기수라 합니다."

기수는 굳이 조선전력공사란 말을 붙이지 않았다.

만반도에 사는 조선인이라면 몰라도 이곳에서는 경비대와 조선군을 구별하지 못했다.

"아, 그렇습니까? 이 도시의 이름을 변경했다고 하더니 그대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었나 보군요."

"맞습니다. 교황 예하. 태자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직 돈보다 명예가 더 중요한 세상이다.

물론 명예가 있어야 돈 벌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도시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그대를 무척이나 아끼는가 보군요."

"고마울 따름입니다."

교황은 다른 조선군보다 체격은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기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의 기사들도 주군을 위해 싸우며 명예를 중요시하지만, 기수처럼 자신의 용맹보다 주군에게 감사를 표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교황은 기수에게 호감을 느끼며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그런데 저기 보이는 회백색의 단단한 성은 무엇으로 만든 겁니까? 저렇게 이음새가 없이 돌처럼 된 성은 처음 봅니다. 이 바닥도 저 성벽과 같은 것 같은데, 마치 로마 시대에 사용했다는 콘크리트 같군요."

"콘크리트를 아십니까?"

되려 물어보는 기수의 놀란 표정을 보고 교황은 콘크리트가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알 다뿐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살아계시던 로마 시대에는 콘크리트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 흔적이 아직도 로마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로마의 건축 기술을 조선이 가지고 있다니 경이롭군요."

"아···, 그렇습니까?"

콘크리트란 이름까지 같았기에 기수 또한 신기했다.

하지만 더는 떠들지 않았다.

사장님의 스승이신 아담 샬 신부가 전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굳이 떠들어서 아담 샬 신부를 곤경에 처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교황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 조선은 사제 왕 요한이 세운 나라인가?'

10여 년 전, 연을 만난 아담 샬은 동방의 어린 왕자에 관해 인노첸시오 10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프레스터 존의 후인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어린아이라 들었는데 독일어는 물론 영어까지 구사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렇게 거대한 영토를 가진 대조선으로 발전시킨 이가 그 어린 왕자였으니 더욱 생각이 깊어졌다.

혼자만의 상상에 빠진 교황을 보고 기수가 말했다.

"교황 예하, 해가 떨어지기 전에 소양에 가시려면 서두르셔야 합니다."

"아, 바로 소양으로 가야 합니까? 나는 이곳에서 하루 묶고 내일 아침 출발할 줄 알았습니다."

"길이 잘 닦여 있으니 지금 출발하시면 세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게나 빨리요?"

약 70km 나 되는 거리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말에 교황은 믿을 수 없는지 눈이 커졌다.

"네, 교황 예하. 그래서 죄송하지만 저희가 준비한 마차를 타고 가셨으면 합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훨씬 안락할 겁니다."

"그래요? 그럼 어서 갑시다."

햇빛을 받아 은색으로 반짝이는 4두 마차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빠르게 달려 나갔다.

단조롭지만 나름대로 신경을 썼는지 최고급 가죽으로 치장한 마차 안은 아늑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교황 예하, 어찌 이런 마차가 있을 수 있습니까? 놀랍습니다."

"그렇게 말이다. 정말 편하구나."

콘크리트로 포장했기에 뒤뚱거리지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마침 구름 위를 떠가는 듯한 느낌에 교황과 사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조선의 기술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마차까지도 엄청납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이렇게 크고 두꺼운 유리창은 처음 봅니다."

교황을 수행하고 있는 사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마차에 달린 커다란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툭툭!

그런데 느낌이 달랐다.

"어? 유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응?"

놀란 사제의 말에 교황도 유리창을 두드려 봤다.

알고 있던 유리창을 두드렸을 때와 느낌이 아주 달랐다.

손으로 만져 보았는데 차가운 감이 전혀 없었다.

"이건 도대체 뭐로 만든 거지? 유리는 분명 아닌 것 같은데···."

"조선의 태자를 만나면 물어보시지요. 교황 예하."

"그래야겠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넓은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밖을 바라본 교황은 또다시 놀랐다.

수많은 사람이 길을 따라 수로를 만들고 있었는데 돌 대신 가루를 물에 섞어 벽을 만들고 있었다.

'저게 조선의 콘크리트인가 보구나.'

로마 시대에도 석회 반죽을 이용해 토목 공사를 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기술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런 기술을 조선에서 사용하고 있을 줄이야.

몇 달 동안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여독이 쌓였는지 피곤해진 몸으로도 교황과 사제는 눈을 붙이지 못했다.

기수에서 이제는 소양이라 부르는 크라쿠프로 오는 동안 보이는 모든 것이 황홀할 정도로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이 길을 따라 만들고 있는 농지가 완성되면 몇십만, 아니 백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겠구나."

"정말 대단합니다. 교황 예하."

유럽의 군주와 영주들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농지를 차지하기 위해 수시로 전쟁을 일삼고 있다.

그런데 조선은 이 지역을 점령하자마자, 도로와 수로를 만들고 농지까지 개간하고 있었다.

'이러니 갈수록 힘의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나라의 힘이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수와 그 수를 부양할 농업 생산력에 좌우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주변 나라나 영지를 침공하여 점령하고 약탈과 수탈을 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이란 나라는 자체적으로 농업 생산성을 끌어 올리고 있으니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고 힘은 더욱 축적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어느덧 해가 지기 전에 기수가 직접 호위하는 마차가 바벨 성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바벨 성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정렬해 있는 조선군.

그 주변에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수많은 사람이 교황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교황이 손을 흔들어 답례하자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그만큼 인노첸시오 10세의 인기는 대단했다.

마차가 바벨 성 입구에 도착하자 키는 크지만 앳돼 보이는 젊은이가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교황 예하.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가 조선의 태자입니까?"

"네, 교황 예하. 제가 조선의 태자 이연입니다."

시종을 시키지 않고 직접 와서 마차의 문을 열어준 이가 태자라니 교황은 여기서 감명을 받았다.

유럽 왕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귀한 신분임에도 저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였다.

"아담 샬 신부에게 그대에 관해 소식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마중을 나와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교황 예하. 많이 늦었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연은 교황을 바벨 성안에 있는 대성당까지 안내했다.

"교황 예하, 내일은 주일이라 미사를 하셔야 하니 모레 점심때 찾아뵙겠습니다. 그러니 푹 쉬시며 여독을 푸시길 바랍니다."

"알겠소. 모레 봅시다."

아무리 승차감이 좋은 마차를 타고 왔다고 해도 피곤함은 어쩔 수 없는지 교황은 서둘러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바벨 성북 쪽 광장 오른편에 있는 '성모 승천 대성당'에 소양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몰려온 이들로 인해 북적거렸다.

교황이 직접 주도하는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소양에 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1379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성모 승천 대성당은 매우 독특한 곳이었다.

1536년부터 1572년까지는 가톨릭과 루터파 개신교가 함께 사용했고, 지금은 루터파 개신교의 교회가 되었다.

그렇지만, 로마에서 교황이 왔기에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모 승천 대성당에서 미사와 예배를 통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연은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미사와 예배가 끝난 후 음식을 제공했다.

조선군의 전투식량으로 만든 죽은 이곳에서도 최고의 인기였기에 죽과 함께 제공된 빵으로 모두가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다음날. 바벨 성안에서 오찬(午餐)을 끝낸 후 연은 교황과 단둘이 자리를 가졌다.

오찬 중에 많은 대화를 나누었기에 연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교황 예하, 이곳까지 오신 이유가 단순히 교회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까?"

연은 놀란 교황의 말에 빙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탁자 위에 놓인 두루마리 지도를 펼쳤다.

"누가 뭐래도 명분은 우리 조선에 있습니다. 또한 조선은 그들을 응징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연은 슬쩍 교황을 바라보며 말을 멈추었다.

생각보다 더 당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목젖만 움직이고 있는 교황을 보며 연은 다시 말을 이었다.

"교황 예하, 이곳의 관례가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뒤에서 군자금을 대준 것도 침략 행위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 조선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에 뒷돈을 대준 보헤미아 왕국과 오스트리아 대공국에 선전포고할 명분이 있습니다."

"태자, 신성로마제국과 전쟁을 하겠다는 말입니까?"

"못할 것도 없지요. 조선 속담에 '당하고도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라는 말이 있거든요."

"크흠···."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과 사파비 제국-무굴제국 동맹이 조선을 먹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조서원의 조사 결과 참여한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사장님, 오스만 제국만 빼고 거의 모든 나라의 왕과 영주들이 뒷돈을 대고 군자금을 지원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조서원의 요원들이 보내온 정보를 분석하던 중 은진이는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야코프가 만들어 판 머스킷 총만 하더라도 20만 정이다.

그에 다른 화약값만 해도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다.

그래서 은진이는 상인으로 위장하여 유럽을 드나들며 정보를 캐내고 있는 요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돈이 얼마가 들어가도 좋으니 뒷돈을 대준 이들을 찾아내라.'

조선의 금화를 받은 이들의 입은 너무나 쉽게 열렸다.

아니 금화를 보자마자 없는 사실까지 확대하여 말했기에 진의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다.

아무튼 밝혀진 진실을 보고 받은 연은 화를 내기보단.

'그러면 그렇지' 하며 허탈하게 웃어넘겼다.

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종교 문제로 80년 또는 30년 동안 수도 없이 싸웠던 이들이 뭉쳤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돈이었군.'

돈에 대한 욕망이 종교문제보다 더 크게 사람들을 자극한 것이 틀림없었다.

조선에서 들여오는 종이와 연필, 옷감과 실, 그릇과 접시 등 모든 것이 값비싼 제품이었기에 탐이 났다.

그래서 그들은 조선을 침략하는 데 돈을 보탰다.

마치 동남아시아를 약탈하러 가는 동인도회사에 투자하듯이 돌아올 이익을 계산하며 주판을 튕긴 거였다.

1618년부터 1648년, 30년 동안 구교와 신교 사이에 종교 문제로 전쟁을 벌어졌다.

30년 전쟁의 계기는 개신교 국가인 보헤미아 왕국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보헤미아를 점령한 로마 가톨릭 병사들의 잔악 행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를 두고 볼 수만 없었던 주변 개신교 제후국이 참여하면서 전쟁은 점점 커졌다.

최종적으로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랑스의 대결로 변해버렸다.

시작은 종교적 박해였으나, 30년 동안 전쟁이 지속되면서 이익을 노린 주변국들이 참여한 전쟁으로 변해 버렸다.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주축이 된 개신교 동맹의 승전으로 끝났다.

1648년 베스트팔렌에서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고 처참했던 30년 전쟁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유럽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사망자 수만 800만 명에 달했고, 유럽 전역이 공포에 떨었고, 재정이 바닥났다.

그랬기에 십시일반 돈을 모아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국에 군자금을 대준 거였다.

조선만 점령한다면 막대한 금은보화를 챙길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모두가 나서서 투자한 것이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만 내쉬고 있는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보며 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신 성의를 생각해서 해결책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교황 예하."

"그게 무엇입니까? 알려만 준다면 바로 전하도록 하지요."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연을 보고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표정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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