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37화 (137/275)

< 137. 협상(2) >

교황 인노첸시오 10세가 크라쿠프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인노첸시오 10세의 인기는 대단했다.

제236대 교황으로 선출된 인노첸시오 10세는 선출되자마자 전임 교황이었던 우르바노 8세의 친가인 바르베리니 가문의 땅과 재산을 압수했다.

비리로 얼룩지다 못해 마굴이 되어버린 교황청을 개혁하기 위해서 앞장섰다.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친지들이 저지른 짓에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죽자, 그의 친지들도 우르바노 8세의 친지들처럼 도망쳤다.

아무튼 그런 자세한 역사를 모르는 연이지만, 종교와 결부되는 것을 싫어했기에 짜증이 났다.

'온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미치겠네.'

전 유럽과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한 교황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유럽 전체가 침공하면 쓸어 버릴 계획이다.

신성로마제국 연합이든 헝가리 왕국이든 아니면 오스만 제국이든 도발만 하면 박살 내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함께 온 조선군 5개 사단 중 3개 사단을 크라쿠프에 주둔시켰다.

어디에서 도발해 오던 유럽 한가운데 위치한 크라쿠프라면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게다가 크라쿠프 남쪽 2km 지점에 석회암으로 된 동산을 찾아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채석했던 곳인 만큼 석회암으로 된 동산은 거대했다.

'시멘트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앞으로 도로와 철도, 수로, 다리를 건설할 시멘트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크라쿠프에서 서쪽 70km 떨어진 카토비체(Katowice) 근처에 석탄이 널려있는 것도 확인했다.

'아주 맘에 드는군. 좋았어! 카토비체에 시멘트 공장과 발전소를 만들면 되겠군.'

연은 몰랐지만, 카토비체가 속한 실레시아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큰 석탄 지대 중 하나이다.

그랬기에 19세기에 독일 제국이 지배하고 있을 때, 독일은 그곳에 제철소를 짓고 산업도시로 키웠다.

아무튼 연은 시멘트가 생산되는 대로 크라쿠프와 카토비체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부터 개설하라고 했다.

그래야만 더욱 빠르게 시멘트를 생산하고 주변을 발전시킬 수 있으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카토비체에도 경비대를 배치해 놓아야겠군.'

앞으로 조선전력공사의 유럽 생산기지가 될 카토비체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선군이 아닌 경비대를 투입하기로 했다.

연은 그곳을 경비대 주둔지로 확정하고 시멘트 공장, 제철소, 발전소를 지으라고 했다.

또한 도로를 따라 수로를 만들어 주변을 농지로 개간하라고 했다.

'굳이 화학단지는 만들 필요가 없겠지.'

조선 비단이라고 불리는 폴리프로필렌 섬유와 폴리에스터로 만든 다양한 합성 섬유 제품은 조선전력공사의 주 소득원 중 하나이다.

따라서 전략자원으로 취급했기에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할 생각이 없었다.

'물류비와 생산비 아끼려다 골로 갈 수 있지.'

이제 조선의 임금은 하루 4문이 공식화되었다.

쌀 본위제라 하지만, 조선전력공사에서 만들어 내는 공산품이 쏟아지자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상업이 발달했다.

또한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인건비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모두 연이 원하는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조선의 다른 곳과 임금 격차가 커져 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연은 모든 곳을 똑같이 맞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소득 수준이 높은 조선의 문화가 퍼져나가게 해야 해.'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따라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조선의 문화를 세상에 퍼트리려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월들이 소득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동경하게 만들어야 해.'

이제 거대해진 조선의 영토.

그곳에 사는 사람 중 조선말과 조선글을 알고 조선왕을 섬기면 조선인이다.

인종이나 민족 따윈 따지지 않기로 했다.

'따져봐야 좋을 게 없지.'

영토만으로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대조선이다.

그 넓은 영토를 사람으로 채워 나가야 하는데 이것저것 따지다가는 분란만 조성할 게 뻔했다.

그래서 조선의 문화를 최고라 생각하게 만드려고 했다.

인종을 섞으려고 다양한 지원정책을 내놓았다.

바벨 성에서 비스와강을 내려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연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정말 맘에 드는 곳이야.'

석회질로 된 바벨 언덕에 지어진 바벨 성은 영의 마음에 딱 들었다.

크지 않아 아담하긴 했지만, 여름에도 선선한 곳이라 더위를 피할 궁전으로 최상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바벨 성은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궁전이다.

하지만 왕조가 바뀌면서 14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변경된 후 16세기 초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개조되었다.

21세기에 박물관으로 사용될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 놓은 바벨 성안에는 얀 2세가 챙겨가지 못한 수많은 예술품이 널려있었다.

'이게 진짜 보물이지.'

땅따먹기에 정신없는 유럽의 군주와 영주들은 금은보화만 보물로 취급했으나, 연은 아니었다.

예술품이야말로 후세나 남겨줄 진짜 보물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나씩 예술품을 감상하고 있던 연에게 기수가 다가왔다.

"사장님, 이 그림이 마음에 드십니까? 화려하긴 하지만, 저는 조선의 그림이 더 좋습니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이건 이것대로 좋구나."

"그렇습니까?"

기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이 보고 있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조선에서도 유명한 화가들이 있었고 그들이 그린 그림을 소유하고 있는 권세가들은 자랑으로 여겼다.

하지만 은동리에는 그런 그림은 단 한 점도 없었다.

단지 효종 대왕께서 써주신 '은동리 연구소'란 현판만 걸려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림이나 붓글씨 같은 예술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장님이 한참 동안 그림을 보고 있으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기수야?"

"네, 사장님."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드는구나. 한양과 비슷하지 않으냐?"

"맞습니다. 사장님. 산이 없어서 그렇지 정말 한양과 비슷하다고 저도 생각했습니다."

바벨 성 위에서 바라보는 주변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평평했다.

끝없이 펼쳐진 숲으로 이루어진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마저 청량해지는 것 같았다.

특히 바벨 성 남쪽에 흐르는 비스와강은 작지만 한양처럼 크라쿠프를 감싸며 흐르기에 경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난 이곳을 '소양'이라 부르고 싶구나."

"작은 한양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마을도 작고, 궁전도 작고, 앞에 흐르는 강도 작지만, 이곳을 중심으로 발전시킬 생각이니 소양이라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좋은 이름입니다. 사장님."

기수도 그런 느낌을 받았기에 소양이란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서쪽에 있는 카토비체는 네 이름을 따서 '기수'라 하겠다."

"네?"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요새 이름을 지워 주기로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그곳은 요새가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 중요한 시설이 들어설 곳이니 그곳에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를 배치할 요새를 만들 기로 했다."

"네? 고, 고맙습니다. 사장님."

기수는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 남을 수 있게 되자 가슴이 터질 듯했다.

앞으로 소양이라 부르게 될 크라쿠프와 시멘트 공장과 제철소, 발전소가 지어질 카토비체는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걸 기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주민들은 어떻더냐?"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네, 사장님. 교인들이 알아서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구나."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성직자들을 모두 쫓아낸 후, 처음에는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교인들이 서로 돌아가며 예배를 주도하면서 빠르게 안정되었다.

그래도 문제가 있을지 몰라 연은 기수에게 주민들의 반응을 알아보라고 했다.

기수는 즉시 정보 참모들을 풀어 주민들의 동태를 살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주민들이 모두 들떠 있습니다.'

'큰일이구나. 주동자는 찾았느냐?'

'그, 그게 아니라 희망에 차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앞으로는 내가 오해하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라.'

'죄송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희망에 차 들떠 있다는 거냐?'

'그게, 조선전력공사 분점이 개설된다는 말을 듣고 축제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인구가 3만 명도 되지 않는 크라쿠프에 조선군 3개 사단과 5개의 기병연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약탈하지 않고 예의까지 바른 조선군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있지만, 조선군 옆이 있으면 안전하고 먹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깨끗하고 다정하다고 소문난 조선군 병사들을 사귀기 위해 가족 전체가 이주해온 예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원들과 병사들이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깔끔히 면도까지 했다.

위생 문제로 면도하는 것을 권장했지만 들은 척도 안 했던 대원들과 병사들.

깔끔히 면도한 얼굴이 여인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단장하기 시작했다.

1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도 말을 듣지 않고 버릇없다고 소문난 젊은 병사들의 최대 관심사는 젊은 여성이었다.

때문에, 인사 참모와 보급 참모들은 고생이 심했다.

'어디 가서 사고 치지 마라!'

'혹시라도 몸에 이상 있으면 즉시 의무병을 찾아가라. 잘못되면 눈멀고 귀멀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대머리 되지 않으려면 함부로 놀리면 안 된다. 알았나?'

'미친놈 되지 않으려면 조심해! 이놈들아!'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는 전쟁 기간에는 철저하게 군기를 잡았지만, 그 외에는 자율 행동을 허락했다.

그게 전통이 되어 조선군에도 도입됐다.

그러자 병사들은 쉬는 날만 기다렸다.

그러지 않아도 말썽이 많았던 조선군 병사들은 젊은 혈기를 억누르지 못했다.

쉬는 날이면 크라쿠프 광장과 시장을 찾아다니며 받은 월급을 쓰기 바빴다.

'이거 얼마요?'

'2문입니다.'

'와···! 2문밖에 안 한다고요? 주시오.'

양털로 만든 멋진 코트가 2문이라 하자 병사들은 너도나도 코트를 사서 걸쳤다.

그러다 보니 가격이 점점 올라갔다.

2문이었던 양털 코트는 어느새 10문이나 했다.

하지만 10문으로 올라도 병사들에게 부담되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모아 놓은 돈만 해도 최소 몇백 문은 되었기 때문이다.

크라쿠프 주민들의 평균 임금은 많아야 하루 0.2그로스였다.

조선군이 점령하기 전에는 0.4그로스가 1문 정도였는데,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망하고 조선이 점령하자 1그로스가 1문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다.

모든 곳에서 위조가 불가능한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동전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물가 차이가 엄청났기에 조선군 병사들은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교육을 했는데도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병사들이 있었다.

일반 가정에서 자란 처자를 만나 혼인하고 정착하면 지원금까지 준다고 했지만, 옆길로 샌 병사가 있었다.

조선군이 주둔한다는 말을 듣고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든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병사들.

프랑스 병이라 말하는 매독에 걸렸다.

그 때문에 주둔지가 발칵 뒤집어졌다.

매독은 공기 중으로 전파되지는 않지만, 신체 접촉으로 전염되는 전염병이기에 함께 뒹굴며 사는 병영에서는 쉽게 퍼질 수 있다.

설파제가 있기에 치료할 수 있지만, 잘 못 하다간 빠르게 전파될 수 있기에 외출 후 돌아온 병사들은 따로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연은 유럽에서 매독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상했고 있었지만, 막상 문제가 터지자 골치가 아팠다.

"빌어먹을 유럽 놈들! 사기꾼 새끼들!"

연은 문식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갑자기 군부대에서 매독이 퍼지자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문식이가 물었다.

'공식아, 너 매독이 어디서 온 건지 아냐?'

'그거야 남미에서 전파된 거잖아.'

'역시 그렇군.'

'뭐가 그래?'

문식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으면 한잔 걸쳤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때가 1492년 10월 12일이고, 리스본으로 돌아온 날이 1943년 3월 4일이야. 그런데 유럽에서 매독이 확산하던 해가 1493년이지.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조작된 거야?'

'그치! 잠복기가 긴 매독을 선원 몇 명이 그토록 빠르게 퍼트릴 수는 없지.'

연은 문식이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럼 매독은 누가 퍼트린 거야?'

'매독이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된 계기가 프랑스 샤를 8세의 군대가 이탈리아를 침공하면서 집단강간을 자행했기 때문이지. 그러니 누가 퍼트린 건지 알겠지?'

'그럼 프랑스에서 매독이 발생했다는 거야?'

'뭐, 프랑스일 수도 있고 이탈리아일 수도 있지. 하지만 남미는 아니야. 남미 원주민들이 매독 보균자였다면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멸종하지 않았을까?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홍역 병균이 묻은 담요를 선물 받기 전에는 그 어떤 전염병도 없던 청정 지역이었다는데 말이야.'

연은 문식이의 말이 너무 신기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문식이의 말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국 병리학 연구팀이 800년 전의 이탈리아 사체에서 매독의 흔적을 발견했고, 석기시대 유골에서도 매독 흔적을 여러 차례 발견했다는 기록을 찼을 수 있었다.

아무튼 연은 유럽에 매독이 엄청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설파제를 대량으로 가지고 왔다.

르네상스 이후, 퇴폐적인 쾌락주의가 뿌리내린 유럽에서 가발을 쓰기 시작한 것도 매독에 의한 탈모라는 설이 있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해 왔다.

비싸게 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팔기도 전에 조선군 병사들에게 써야 했다.

'틀림없이 설파제를 판매하라고 할 텐데···.'

교황이 이곳까지 자신을 찾아오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설파제라는 것은 짐작하기 쉬웠다.

이미 조선군에게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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