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36화 (136/275)

< 136. 협상(1) >

연은 모스크바에서 폴란드 크라쿠프로 거처를 옮겼다.

언제 급강하할지 모를 모스크바의 겨울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예전 폴란드의 수도였던 크라쿠프는 살만하다고 알려져 있다.

비스와강 변에 세워진 황홀한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인 크라쿠프는 교회가 많다는 것 말고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그런데 크라쿠프 남쪽을 막고 있는 비스와강은 신기하게 흘렀다.

해발 1,106m인 베스키디 산맥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던 비스와강은 크게 원을 그리며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북쪽 발트해로 빠진다.

그래서인지 비스와강은 수상 교통로로 활용하고 있는 중요한 강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방어진을 구축해야겠군.'

원래는 바르샤바를 중심으로 발전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조선전력공사 기병대 사령관 기수의 조언에 따라 처음 들어 본 크라쿠프에 조선군 주둔지를 만들기로 했다.

'사장님, 바르샤바는 너무 작은 마을입니다. 그것보다는 원래 서울이었던 크라쿠프가 훨씬 좋을 듯합니다. 그곳이 신성로마제국과 헝가리 왕국을 견제(牽制)하기에 적합합니다.'

게르만 인들의 침공으로 망해버린 서로마 제국 대신 신성한 로마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동로마 제국은 신성로마제국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지랄 같은 교황청의 간섭으로 황제의 권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로마가 사라진 후 그 자리를 차지한 기독교의 교황청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하며 온갖 악독한 짓을 저질렀다.

망상이나 다름없는 신의 뜻을 난발하며 돈과 영지를 차지하고 사람들의 삶을 제한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파문령(破門令)이었다.

교황청에서 파문령이 내려지면 영주나 왕이 아닌 황제라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Excommunication이란 말처럼 가족까지도 말을 걸지 않았기에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왕좌를 노리는 야심가는 늘 존재하기 마련.

교황청에서 파문령이 내려지면 신하들은 왕을 죽이려 했다.

일반인은 가족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11세기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4세에게 성직자의 임명권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황제는 거부했고, 교황을 해임해 버렸다.

이에 맞서 교황은 오히려 황제에게 파문령을 내렸다.

그런데 영주와 귀족들이 교황에게 붙었다.

졸지에 황제의 지위는 물론 생명까지 위태로워진 하인리히 4세는 견디지 못했다.

끝내 그레고리오 7세가 머물고 있던 북이탈리아 카노사(Canossa)로 찾아가 맨발로 3일간 빌며 용서를 구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하인리히 4세는 암살당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이다.

그래서인지 '교황은 태양, 황제는 달'이라는 말이 노골적으로 세간에 떠돌았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성전이라 말하며 여러 차례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던 교황청도 몰락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파문장을 꺼내 들었던 교황청이 십자군 전쟁이 패배로 끝나면서 권위가 추락해 버렸다.

'전가의 보도'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파문령을 따르는 자가 없어졌다.

종교가 아닌 권력과 돈을 노리고 남발했던 파문장이 소용없게 된 것이다.

치가 떨리는 교황청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 시대.

고양이를 악마의 동물이라고 몰살시켰던 탓인지 흑사병이 휩쓸고 지나갔다.

믿음 하나로 지옥 같은 중세 시대를 버티던 사람들.

흑사병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교회는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다.

끝내 교회는 자신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교회에서 마음이 떠나 버렸다.

게다가 르네상스가 일어난 14세기 후반부터 종교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오직 자신들의 권력과 부만 위해 신을 팔았던 교황청의 성직자들.

따르며 헌신했던 사람들이 마음을 돌리자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온갖 망상으로 사람들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며 진정한 빌런 짓을 했던 교황청의 성직자들은 몰락했다.

허울 좋은 권위와 함께 참혹했던 중세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인류 역사를 따져 봤을 때 몽골의 말박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을 선사했던 로마의 교황청.

신을 팔아 1천 년 넘게 유지하던 권위는 회복되지 않았다.

영국의 헨리 8세는 파문을 당하자 아예 성공회를 만들어 독립했다.

루터는 파문을 당했지만, 대 놓고 종교개혁에 나섰다.

나폴레옹 또한 파문장을 받았지만, 코 푸는 데 썼다.

쿠바의 혁명가였던 카스트로도 파문되었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튼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점령한 조선군에게 형식적이나마 교회의 권위를 세우려던 교황청의 심정은 복잡했다.

추기경들은 인노첸시오 10세를 찾아가 논의했지만, 별다른 수가 보이지 않았다.

"조선의 태자는 기독교를 믿고 있지 않은데 어찌할 수 있단 말이오? 불가하오."

인노첸시오 10세는 추기경들의 말을 단숨에 거절했다.

"하지만 교황 예하(猊下, His Eminence),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신성한 기독교를 믿고 따르는 신도들이 사는 곳입니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만합시다. 괜히 그러다가 반발이라도 사면 어쩔 겁니까?"

"감히, 그 누가 교황 예하의 말씀을 거역한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교황 예하, 즉시 조선의 태자에게 서신을 보내 교회를 탄압하는 일을 중단시키십시오."

"에이···! 그게 어찌 교회를 탄압하는 일이란 말이오. 그 일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소'란 말을 차마 잇지 못한 인노첸시오 10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사건의 발단은 조선군 병사에 의해 발생했다.

그전에도 알게 모르게 있었던 일이고 21세기에도 심심하면 터져 나왔던 더러운 일이 공개적으로 들통나고 만 것이다.

조선에서 기독교가 퍼지자, 구만이는 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녔다.

조선군에 입대해서도 주일날이면 착실하게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다.

서양과 달리 한 주가 5일이던 조선이지만, 종교 문제만큼은 예외를 인정했기에 서양의 일요일에는 교회를 나갈 수 있게 배려해 줬다.

하지만 구만이는 폴란드 크라쿠프까지 오면서 예배를 할 수 없었다.

진군 중이었기에 특혜는 없었다.

당연하지만, 그래도 타당한 이유를 내세웠다.

'모든 종교를 믿는 수 있는 자유를 준 만큼 모든 종교를 똑같이 대하겠다.'

극히 일부가 반발했지만, 즉시 퇴역 조치시키고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조선군 총사령관인 연은 모스크바로 이동 중에 그 소식을 듣고 명령을 내렸다.

'공동생활이 필수인 군에서 특혜를 바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자를 군에 두면 분란의 소지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바로 퇴역시켜라!'

구만이는 그에 해당하지 않았다.

'신도가 모이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성경을 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라쿠프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짬을 내서 교회에 예배하러 갔던 구만이는 그곳에서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즉시 달려들어 어린 여아를 겁탈하던 성직자를 두드려 폤다.

그런데 성직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성직자의 비명에 놀라 모여든 사람들에게 구만이를 비방하며 악마라고 쥐고 있던 십자가를 들이밀었다.

언어가 다르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구만이는 조선말을 아는 사람에게 무슨 말인지 물었다.

'당신을 악마라고 하는 겁니다.'

순간 빡 돌아버린 구만이.

참지 않았다.

'누가 악마란 말인가!'

항상 휴대하고 다니던 대검으로 그 성직자의 심장을 찔러 버렸다.

이 일은 크라쿠프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던 연에게 바로 통보됐다.

그리고 조사 결과 성직자의 만행이 밝혀졌다.

연은 그 사건을 덮지 않았다.

모든 관공서에 통보하여 공개적으로 게시판에 기재하도록 했다.

추가로 교회 재정의 투명성을 요구했다.

'앞으로 교회는 모든 소득과 지출을 공개하여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라.'

이미 조선에서 행해지고 있는 제도였기에 조선인이라면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또한 크라쿠프 주민들도 찬성했다.

하지만 성직자들이 반대하며 들고 일어났다.

'신을 섬기는 신성한 곳을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말을 들은 연은 기가 막혔다.

이미 한반도에 있는 교회에서는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곳 성직자들은 무엇이 구린지 몰라도 딴소리를 지껄였다.

'소득과 지출을 공개하라는 것과 교회가 무슨 상관이야?'

연은 극단적으로 대체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을 모두 추방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라!'

본보기가 필요했다.

한반도에서도 심심하면 말썽을 일으키는 조선군 병사들이지만, 이곳에 오면서 문제 될 만한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혹독한 정신교육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점령지를 관리하면서 발생할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조선군이라고 하면 모두가 우러러봤다.

그런 조선군에게 대항하다니.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대들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물론 처형당한 성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성직자들이 도망쳤기 때문이다.

이 일은 즉시 로마 교황청에 전달됐다.

내용을 파악한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속이 다 시원했다.

신을 섬기는 성직자들의 비리가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조선의 태자가 해결해 준 것이다.

'조선의 태자는 언제나 나에게 득이 되는 일만 하는구나.'

하지만 추기경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즉시 교황을 찾아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회의 권위가 추락할 겁니다."

"추락할 권위가 있었소?"

"에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교황 예하."

"우리는 신을 섬기는 사람이오. 어찌 권위를 따진단 말이오."

"그건, 그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추기경을 보고 인노첸시오 10세는 물었다.

"그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오?"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가 추기경인데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니 저를 모독하시는 겁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비리를 저지른 성직자를 옹호하는 것이오?"

"그건 옹호가 아니라 교회의 이득을 위해서입니다."

"이득이라···."

"이대로 가다간 교회의 수입에 차질이 있습니다."

"아니요. 교회의 수입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오."

"에에?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인노첸시오 10세는 가지고 있던 장부를 추기경에게 넘겼다.

"잘 보시오. 조선에 있는 교회에서 들어 온 성금이오."

추기경은 장부를 보더니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폴란드에서 들어오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신도 수를 보시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조선과 폴란드의 신도 수는 100배나 차이 납니다. 하지만 조선에서 들어 온 성금이 폴란드의 20%나 됩니다. 그 말은 20배나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추기경은 심음을 내뱉더니 눈을 감아 버렸다.

아무리 조선이 잘 사는 곳이라 하지만, 신도 한 명당 20배나 차이가 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시오?"

교황이 눈을 감고 있는 추기경에게 물었지만,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다른 추기경이 대신 답했다.

"그거야 조선이 잘 살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교황 예하."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게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조선에서 교회에 나오는 이들은 대부분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조선이 잘산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었던 거지요."

"그럼 무엇입니까?"

"나는 여럿 날 동안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신앙심이 높아서일까? 아니었습니다. 바로 교회의 재정에 관한 일이 모두 투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투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

여기저기서 추기경들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전임 교황이 어떤 짓을 했는지.

권위를 끌어올리려고 군사적 개입은 물론 돈을 뿌리듯이 낭비했기에 교황청의 부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크게 약화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르바노 8세는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족벌주의 정책을 폈다.

우르바노 8세를 배출한 바르베리니 가문은 그 덕분에 크게 부유해졌지만, 교황청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바르베리니 왕조가 세워진 것 같다고 비꼬았다.

"그래서 나는 이곳부터 공개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그대들이 찬성해 주셨으면 합니다."

인노첸시오 10세의 말에 추기경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추기경이 되려고 얼마나 많은 돈을 뿌렸는가.

그 모든 자금은 대부분 가문이나 후원자들의 돈이었다.

그들에게 마땅히 지원해준 만큼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교황청부터 투명하게 재정관리를 한다면···.

'안된다!'는 생각이 추기경들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좋으신 말씀입니다. 교황 예하."

그런데 웬 또라이 같은 추기경이 나섰다.

살벌한 눈빛으로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허!"

그자야말로 비리가 많기로 소문난 추기경 아닌가.

그런데 그런 말을 하다니.

'''미친 건가?'''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는 빙긋 웃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교황 예하. 그건 독단적으로 하시면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추기경들이 투표로 결정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이런 좋은 결정을 하신 교황 예하께 존경을 표합니다."

그의 말에 추기경들의 표정은 펴졌지만, 인노첸시오 10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다.

'주여! 힘을 주시옵소서···.'

원했던 개혁이 무산된 것을 알게 된 인노첸시오 10세.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그대들이 투표하여 결정하는 동안 나는 조선의 태자를 만나 보고 오겠소."

"에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황 예하께서 굳이 그런 자를 찾아가 만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럼 폴란드 교회를 포기하자는 말입니까?"

"그, 그건 아니지만···."

"우리가 관리하는 성직자가 문제를 일으켰소. 그 때문에 틀어져 버린 조선과의 관계를 다시 세우려면 나라도 갈 수밖에 없소. 그러니 그리 알고 계시오."

하지만 추기경들은 반발했다.

"예하! 교황 예하! 어찌 불신자를 교황 예하계서 찾아가신단 말씀입니까?"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찬성할 수 없습니다."

추기경들의 반발에도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그들을 무시하고 자리를 떠났다.

교황 방문 소식을 들은 연은 골치가 아팠다.

'이런···! 왜 온다고 하는 거야.'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는데 뜻밖의 교황 방문 소식에 당황하는 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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