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35화 (135/275)

< 135. 뒤섞기(2) >

연이 모스크바까지 오는 동안 많은 것이 변해갔다.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귀족들이 사라졌다.

눈치 빠른 귀족들은 가산과 시종들을 챙겨 서유럽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한 귀족들은 처형당했다.

그것도 자신이 다스리던 영지민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굳이 조선군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전쟁을 준비하면서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세상.

그런데도 착취를 일삼던 영주들에게 영지민들이 반기를 든 거다.

추수의 계절이 다가왔지만, 제대로 농사를 짓지 못해 흉작이 들었다.

사라져버린 영주가 없기에 착취당할 일이 없지만, 먹을 것이 떨어진 사람들은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일만 한다면 먹을 것을 준다는 조선군 요새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고향을 버리고 동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농민들만이 아니었다.

음악과 미술, 극작과 시, 성악과 연극 등으로 먹고 사는 예술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인들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대원들과 조선군 병사들은 쉬는 날이면 넓은 공터에서 축구와 농구를 하며 땀을 뺀 후,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음주·가무에 특화된 민족성이 어딜 가지 않았다.

또한 젊은 혈기를 풀 곳이 없기에 그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승자의 문화는 존경하고 따르는 법.

미화되어 퍼져나갔다.

말박이들이 쳐들어온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조선의 태자이자 조선군의 총사령관인 연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은빛용을 타고 다닌다고 하던데···.'

'에이! 그거 용 아니래. 조선에서 만든 열차라고 했어.'

'찾아가 봐야 하는 것 아니야? 이럴 때 안면이라도 익혀두면 떼부자 되는 건 일도 아닐 것 아냐?'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나이는 어려도 덩치도 크고 수십만을 거느린 대장군이야. 거기다 놀고먹는 귀족들을 엄청 싫어 한데. 그런데 되겠어?'

'설마 뿔 달린 건 아니겠지?'

'그랬으면 교황청에서 가만히 있었겠어?'

유럽 사교계는 연에 관한 소문으로 연일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살던 핀란드인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몰려왔다.

이제는 '서의주'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춥기도 하지만, 매년 홍수가 발생하는 지역이라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조선군 2개 사단, 예맥 기병대 2개 연대, 무굴제국 포로 5만 명이 나타났다.

그 소식을 듣고 핀란드인들이 대거 몰려왔다.

갑작스러운 일을 보고 받은 조선군 15사단장 현수가 연에게 물었다.

"이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모두 몇 명이나 된다고 했지?"

"40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핀란드인들 전체라고 봐도 됩니다."

"흐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일이 생겼지?"

조선의 영토가 된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북쪽에서 살고 있던 이들이 몰려오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도 민족 대이동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어서 연은 깜짝 놀랐다.

"얀 2세가 스웨덴의 통치권을 조선에 넘겼다는 소식을 듣고서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알렉산드라 왕의 섭정이었던 악셀 옥센셰르나 백작이 총동원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왕은 뭐하고?"

"그녀는 조선에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말한 이후로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백작이 반란을 일으킨 거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봐야 소용이 없을 건데,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아직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조사 중이라···."

"우리와 싸워봐야 답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짚어봤다.

새로 확보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지역에 조선군을 보내고, 서의주에도 2개 사단이나 되는 대병력을 배치했다.

북유럽 전체를 온전히 조선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건데···.'

아무리 통신이 발달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대군이 이동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기에 군이 이동하는 정보는 돈이 된다.

상인이 아닌 농노라도 대군의 이동 정보를 팔면 팔자를 고칠 정도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핀란드인들은 그 소식을 듣고, 되려 조선군이 있다는 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총동원령이 내리면 어찌 되는 거지?"

"무기를 들 수 있는 남자라면 모두 징집된다고 합니다."

"흐음···, 가만히 있다가 끌려가서 죽을 수도 있으니 도망쳐 온 것 같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연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대단한 곳인 줄만 알고 무굴제국군 포로들을 보내 도시를 건설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습지여서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곳이었다.

서쪽에 있는 의주(義州)라 서의주로 이름까지 지어주고 대도시를 만들려고 했지만, 가능하지 않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더라도 북쪽에 수백km나 되는 거대한 호수가 있고 강이 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

'라도가' 호수는 17,700km²에 달하는 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였기에 그곳에 요새를 짓고 농지를 개간하라 했다.

앞으로 발생할 대기근을 염두에 두고 여러 곳에 곡창지대를 만들고자 한 거였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핀란드인들이 몰려 내려왔다.

그들을 쫓아 스웨덴군이 온다는 말을 듣고 즉시 예맥 기병 연대가 출동했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수적으로도 우세한 예맥 기병대를 스웨덴군은 당할 수가 없었다.

12연발 조3 소총에서 튀어나온 총알들은 스웨덴 병사들의 거대한 덩치를 표적으로 인식했다.

몇 명이 퍽퍽 쓰러지자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극히 일부가 도망쳤지만, 일부러 죽이지 않았다.

그들이 알아서 소문을 내고 사기를 떨어트릴 터이니.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른 문제?"

"포로로 잡은 스웨덴군이 약 2천 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핀라드인들이 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이런 젠장! 예맥 기병대는 뭐 했는데···! 그냥 보고만 있었단 말이냐?"

"그게···, 남하 중인 핀란드인들 가운데 스웨덴 포로들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기병 대장 말로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이용하여 루스 차르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포로들을 이송할 때처럼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런!"

연은 온갖 돈으로 치장한 듯 보이는 호화로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관계는 한일관계보다 더 지독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1397년부터 1523년까지 칼마르(Kalmar) 동맹을 맺어 거의 같은 나라 같이 보이긴 했지만, 그 어디에도 핀란드는 없었다.

스웨덴은 핀란드를 650년 동안 지배했다.

루스 차르국에 빼앗기기 전까지 100년 동안은 핀란드 말을 쓰지도 말지도 못 하게 했다.

핀란드에서 ‘바이킹'이라 말하면 밥도 못 얻어먹는다는 말이 이래서 생긴 거였다.

바이킹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핀란드인들에게는 약탈의 대명사인 스웨덴의 바이킹이란 말은 치가 떨렸기 때문이다.

연은 펼쳐놓은 지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음···, 어찌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차피 핀란드인도 조선의 백성으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40만 명 정도라면···.'

그들을 모두 만주로 이동시켜도 될 듯싶었다.

'호전적이지 않으니 괜찮을 거야.'

비록 포로로 잡은 스웨덴 병사들을 모두 도륙 내 버렸지만, 기본적으로 순하다는 보고가 있었기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모두 모스크바로 데리고 와라. 겨울을 보내기에는 서의주보다는 모스크바가 좋을 듯하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그들에게 물어봐라. 내년에 날이 풀리면 동쪽으로 가길 원하는지. 원하면 보내 주겠다고. 이렇게 된 마당에 스웨덴인과 아예 떨어져서 살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사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본에 시달린 조선처럼 스웨덴에 착취당한 핀란드라면 조선 백성들과 잘 어울려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러운 유럽문화에 때 묻지 않은 핀란드인이라면 우리 백성들에게도 좋을 거야.'

2만 개가 넘는 청정한 호수가 있는 곳에 사는 핀란드인은 기후 때문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지배를 받고 살아서인지 모르지만, 과묵하고 정직하다는 대명사였다.

"아무튼 스웨덴에 통보해라. 내년 3월 말까지 왕권을 넘기지 않고 저항한다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귀족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조선은 귀족 따위는 인정하지 않으니 그리 알라고 전해라."

"네, 사장님."

현수가 나간 후 연은 생각에 빠졌다.

'스웨덴을 어떻게 하지?'

왕권을 넘겨받든지 쳐서 빼앗든지 명분이 있기에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호전적인 스웨덴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핀란드와 비슷한 수준인 덴마크는 조서원의 요원들이 활동을 시작했으니 큰 문제 없이 넘어 올 것 같았다.

'핀란드보다 2배 정도 많다고 했나?'

이제 조선의 인구는 4천만 명이나 된다는 보고를 받았다.

점령하고 관공서가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백성등록부터 하게 했기에 수치가 틀릴 일이 없었다.

조선말과 조선글을 쓸 줄 알면 '주민증'을.

아니라면 '거주증'을 발급했다.

주민증이나 거주증만 있다면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살만큼 먹을 것을 주었기에 강압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와 발급받았다.

수시로 돌아다니는 예맥 기병대에 의해 검문을 받기에 주민증이나 거주증이 없으면 즉시 체포됐다.

그래서인지 남의 것을 훔쳐 다니는 자도 있었다.

위조라는 게 불가능했기에 그런 거였다.

하지만 발각되면 즉시 처형당했다.

드넓은 영토를 관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언제든지 도적으로 변할 수 있기에 도적이라면 치를 떠는 예맥 기병대원들은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달리 주민증과 거주증이 있는 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기에 평판이 갈수록 올라갔다.

병사나 용병들이 날뛰며 약탈과 방화가 생활화된 세상이었다.

그런 곳에 예맥 기병대가 돌아다니자 평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번개' 표시가 휘날리는 깃발을 보면 환호를 질렸다.

안심할 수 있었다.

'예맥'과 '조선'을 번갈아 외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렇게 잘 진행되고 있지만, 연은 고민이 많았다.

조선의 전체 인구 중 동양 문화를 가진 이는 절반인 2천만 명.

나머지의 3/4반은 서양 문화권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고, 1/4은 사파비 사람들이다.

'일본을 쳐야 하나?'

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지금도 지옥으로 변한 열도에서 수많은 일본인들이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 수만으로도 충분하지.'

조선말과 조선글을 교육하고 그중 일부를 사파비 제국으로 보내고 있다.

세금을 10년 동안 면제해준다는 말에 사파비 사람들은 빠르게 조선에 동화되고 있다.

조경함이 수시로 왕복하면서 대량의 물자 공급이 가능하기에 그곳에 설치된 관청에서는 라디오방송까지 하고 있다.

'이제 남은 곳은 무굴뿐인가?'

조선을 침략했던 4 제국 중 무굴제국만 남아있다.

물론 준가르 왕국의 호토고친 왕이 벵골부터 치고 있기에 기다리면 된다.

연은 뒷짐을 지고 크렘린 궁전을 거닐면서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조금씩 날리기 시작한 눈발이 쌓여가고 있었다.

'무굴은 그냥 준가르가 차지하라고 해야겠다.'

연은 필리핀을 다두 왕국에 넘겨준 것처럼 무굴제국을 준가르 왕국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굳이 그곳을 차지할 필요는 없어.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했어도 그곳은 아니야.'

어찌 보면 서양보다 더 힘든 곳이 무굴제국이다.

1억이 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사는 무굴제국을 점령해봐야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태가 딱 좋아. 잘만 섞으면 돼.'

연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조선이 온전하게 발전하려면 혼합이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개소릴 하며 독립하겠다는 말이 안 나오지.'

아직 민족이란 개념도 국가라는 개념도 희미하다.

오직 왕을 따르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물론 유럽은 달랐다.

로마가 망한 후 교황청에서 파면권을 난발했기에 왕권이 무너졌다.

영주와 귀족들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세상을 지배하려던 교황청이 무너졌다.

십자군 전쟁에서 패하면서 다시 왕권이 강화되고 있다.

'아직 시간은 넉넉해.'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시작했기에.

또 빠르게 영토를 넓혔기에.

생각한 대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야코프의 흔적을 찾아왔지만,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놈의 수준을 겁낼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야코프는 증기기관을 완성하지 못했다.

'방아나 찍는 수준이었지.'

흩어진 조각을 모아 분석한 끝에 놈이 만든 증기기관은 회전운동이 가능하지 않았다.

단순히 압축된 증기압을 이용해 머스킷을 제조하는 정도였다.

1712년 토머스 뉴커먼이 만든 것과 비슷했다.

'나도 증기기관부터 만들려고 했으면 망했겠지.'

허접하나만 증기기관을 만들 정도로 기반 기술이 있는 유럽이라 그런지, 야코프가 만든 증기기관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증기기관은 원리가 쉽고 말이 쉽지, 절대 만만한 기관이 아니다.

엄청난 열과 압력을 견디는 것은 물론 큰 힘을 내야 하기에 대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더 큰 열과 압력을 견뎌야 하기에 증기기관차처럼 무지막지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뭔가 분명히 있는 놈이야.'

조서원의 요원들이 추적하고 있지만,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단단히 준비하고 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내려가야겠군.'

연은 첫눈이 내린 크렘린 궁전을 거닐며 생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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