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33화 (133/275)

< 133. 뒤흔들기(2) >

작전명 '교반(攪拌)'이 시작되었다.

은진이가 내놓은 새로운 작전은 오스만 제국과 유럽을 뒤흔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야만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점령해도 탈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얀 2세를 이용한 첫 번째 작전이 수행됨과 동시에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지배하고 있던 귀족들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루스 차르국 귀족들은 전부 잡아다 처형했지만, 종교 문제를 건들기 싫어서 편의를 봐준 거였다.

하지만 이들은 '황금의 자유(Golden Liberty)를 들먹이며 까불었다.

조선이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지배하는 건 인정해 줄 터이니 자신들의 권리 또한 인정해 달라는 거였다.

'제정신이 아니군.'

연은 그들이 말하는 황금의 자유 7가지 항목을 보다가 기가 차서 피식 웃고 말았다.

'지들이 국왕을 선출하겠다고?'

그것만이 아니었다.

재판 없이는 귀족을 체포해서도 안 되고, 재산권을 침해할 수도 없으며, 법률 또한 자기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항목 중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었지만, 조선은 그것을 인정하기에 별말은 없었다.

그래서 연은 바로 기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재판을 열어서 전범으로 모두 처벌하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재판 날.

그곳에 남아있던 귀족들이 모두 참여했다.

자신들이 요구한 대로 조선에서 정식으로 재판을 열었기에 그들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재판장에 등장했다.

하지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참혹한 판결을 들어야만 했다.

'조선을 침공한 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의 재산을 모두 압류하고 사형에 처한다.'

그러는 법이 어디 있냐고 모든 의사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소리를 지르며 따졌지만.

-탕! 탕! 탕!

바로 끌려 나가 총살당했다.

사형이 집행 후 기수는 예맥 기병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즉시 모든 귀족들을 잡아들여라!'

이미 판결이 났기에 서둘러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허겁지겁 나타난 이가 있었다.

그는 로마 교황청에서 보낸 주교(主敎, Bishop)였다.

루스 차르국과 손을 잡고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조선을 침공하려고 했을 때는 반응조차 없던 로마 교황청에서 사람을 보낸 거였다.

그 소식은 바로 연에게 전달됐다.

'로마 교황청을 제거하기 전에는 답이 없지.'

그동안 관계가 좋았던 인노첸시오 10세의 친서까지 가지고 왔기에 연은 무시할 수 없었다.

전임 우르바노 8세가 군사력과 정치력을 이용해 교황령의 영토를 넓히면서 로마 교황청은 엄청난 부채가 쌓였다.

하지만 인노첸시오 10세가 조선과 교역하면서 교황청이 지고 있던 부채를 해결했다.

그래서인지 인노첸시오 10세가 보낸 내용은 무척이나 정중했다.

그렇다고 귀족들을 살려 보내고 싶지 않았다.

'전 재산을 남겨두고 몸만 떠나라고 통보하라!'

그렇지 않을 경우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그러는 사이에 신중하지 못한 오스만 제국의 병사들이 타브리즈 북쪽 서피얀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몇 명이나 돼 보이냐?"

"약 3만 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명분은 확실하군."

"충분하고도 넘치는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명득이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단에서 일을 끝낸 정봉이가 이끄는 대대까지 합류했지만,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의 수는 3천 명뿐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군이 정예라고 하지만, 냉 병기 따위는 무시할 수 있으니.

그러나 유럽에서 수입한 수석총은 만만히 볼 순 없었다.

그래서 미리 진지를 구축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즉시 작전을 수행한다."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작전 참모가 휴대용 무전기의 단추를 눌러 명령을 하달했다.

-박격포병은 적의 주변으로 포탄을 날리고, 기관총 사수는 적의 도주로를 차단하라!

팔뚝만 한 휴대용 무전기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즉시 박격포에서 포탄이 튕겨 나갔다.

-퍼옹!

묘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포탄은 당당하게 진군하고 있는 오스만 제국군의 정면에 떨어졌다.

-쿠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퍼져나가며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놀란 말의 울음소리와 다급한 병사들의 외침이 합쳐지면서 오스만 제국군의 대열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수석총으로 무장한 최정예 예니체리들이 급히 화약과 총알을 장전하며 주위를 살폈다.

-너희들은 모두 포위됐다!

-즉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저항하면 죽음뿐이다!

열식발전기의 동력을 이용한 스피커에서 나온 소리가 골짜기를 울렸다.

예니체리들은 그 소리를 듣고도 당황하지 않고 병사들을 지휘하여 계곡 양쪽으로 흩어지게 했다.

하지만.

-두드드, 두드드.

기관총에서 튀어나온 총알들이 그들이 흩어지지 못하게 이동을 막았다.

총탄에 의해 돌들이 튀고 흙먼지가 피어오르자, 그때서야 사태를 파악한 오스만 제국군은 모두 바닥에 몸을 붙였다.

총격이 끝난 계곡.

놀란 말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앞으로 나와라!

-허튼짓은 용납하지 않겠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놈들은 반응이 없었다.

작전 참모는 짜증이 나는지 인상을 쓰면서 무전기의 단추를 눌렀다.

"저격병은 말들을 사살하라!"

-탕! 탕! 탕!

계곡을 울리는 총소리와 함께 시끄럽게 울면서 날뛰던 죄없는 말들이 픽픽 쓰러졌다.

-즉시 나오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

그제야 대장으로 보이는 붉은 색으로 된 화려한 복장을 한 예니체리가 몸을 일으키더니 앞으로 걸어 나왔다.

흙과 포대로 위장된 진지 앞에 선 놈들의 대장.

"난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4세의 명을 받고 이곳을 다스리러 온 베이릭(Beylikler) 예니체리의 아나드다. 너희들은 누군데 감히 나를 막느냐?"

"몰라서 묻나?"

명득이의 말에 아나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제기랄! 조선군은 모두 철수 했다고 했는데 이건 뭐야? 이곳까지 와있다니···.'

폭발하는 폭탄을 처음 겪어 본 아나드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런 막강한 화력 공격을 할 수 있는 세력은 조선군뿐이지.'

공격을 받자마자 뭔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아나드는 조선군의 함정에 걸린 것을 직감했다.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죽이려면 진작 죽였겠지.'

어린 시절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끌려 온 아나드는 예니체리에서 자라면서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기에 상황 판단이 빨랐다.

"원하는 게 뭐요?"

"너희는 선전포고도 없이 조선의 영토를 침범했다. 따라서 모두 죽여버려도 되지만, 기회를 주고자 한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아나드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씩 웃었다.

어쨌거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득이는 손짓으로 그를 불렀다.

"따라와라."

아나드는 명득이를 따라가며 조선군 진지를 살폈다.

'대단하군. 막강한 화력을 보위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땅을 파서 숨어 있다니.'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을 겪어봤지만, 이런 경우는 보지 못했다.

용맹한 전사라면 이런 짓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 화력만 충분하다면 이보다 더 좋은 방어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 전쟁은 참호전인가?'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 조선을 공격했던 일은 어느새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참호를 파고 막강한 조선의 화력을 피했다는 사실까지.

그래서 참호의 중요성에 관해 연구하는 전략가가 많았다.

아나드 또한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참호 한쪽에 마련된 탁자와 의자.

두 사람이 마주 앉은 가운데, 명득이가 두루마리를 꺼내 폈다.

"오스만에서 우리 조선의 영토를 침략했지만, 우린 너희들과 싸울 의사는 없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으니 이곳을 넘기도록 하라."

"크흠···."

아나드는 조선군의 파놓은 함정에 자신이 걸려들었다는 걸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를 보니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건?"

모술과 바그다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위 북쪽 예레반, 카르스까지 그어진 붉은 선을 보고 아나드는 놀라며 침음을 뱉었다.

"어차피 그곳은 사파비 제국의 땅이지 않았느냐? 그러니 돌려주는 것이 정당하다."

"그거야 오래전···."

"오래전이라니? 20년 전 일이다."

"아니요! 백 년 전의 일이오."

"백 년이나 20년이나 아무튼 사파비 제국의 영토였던 건 사실이다."

명득이는 명령받은 대로 사파비 제국에서 얻은 지도에 국경선을 그었다.

그런데 실수했다.

대붕에서 내려온 명령은 압바스 1세가 다스리던 영토였다.

하지만 그가 얻은 지도는 사파비 제국을 세운 이스마일 1세 시대에 만들어진 거였다.

그것을 알 리 없는 명득이는 우겼다.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전쟁이니까.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이오."

"알고 있다. 즉시 이스탄불로 가서 너희 황제에게 보여 주고 답을 달라. 기한은 앞으로 한 달이다. 한 달 안에 연락이 없다면 모두 처형하고 우린 오스만을 공격할 것이다."

"그건 말이 되지 않소! 여기서 이스탄불까지 거리가 얼만데···."

"흥! 걸어갈 생각이냐?"

"크흠···."

모술에서 이스탄불까지의 거리는 약 1,500km.

걸어간다 해도 한 달이면 충분히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바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중대한 일이다.

보병인 예니체리 대장 아나드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알았소. 기병을 보내도록 하겠소."

"잘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말도 전하도록 하라."

"또, 무슨 조건이요?"

아나드는 눈을 부릅뜨고 명득이를 노려보았다.

지금 말한 조건도 들어 주기 힘든데, 또 다른 조건이라니 그냥 자기들을 죽이려 한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흥분하지 말고 잘 들어라. 이건 너희 제국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별히 말해 줄 터이니 잊지 말고 꼭 전하도록 하라."

"큼! 무슨 말이요?"

"얼마 전 헝가리에서 너희 오스만 제국을 치겠다고 뭉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게 정말이요?"

"참말이다."

명득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너희가 원하면 조선의 수석총을 팔겠다. 우린 너희 오스만 제국과 좋은 이웃이 됐으면 한다."

"그 말은 믿기 힘드오."

"이곳에서 지내보면 알 거다. 우리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알았소."

자신의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아나드는 즉시 무장을 해제하고 포로가 되었다.

'빌어먹을! 완전 당했군.'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사파비 제국을 먹으려 했다가 되레 빼앗은 땅까지 돌려주게 생겼다.

거부할 수도 없었다.

들어는 봤지만, 직접 본 조선군의 수준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마법을 부리는 놈들을 어찌 이길 수 있나?'

팔뚝만 한 신기한 막대를 들고 서로 교신하는 조선군을 상대할 방법이란 없어 보였다.

게다가 단조롭지만 활동하기 편해 보이는 복장을 한 병사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좋고 빠릿빠릿해 보였다.

'우리 예니체리가 최정예라고 하지만, 이들에 비하면 잡졸이나 다름없구나.'

부모가 누군지 기억도 없는 어린 시절.

무서움을 극복하고 파디샤의 최측근이 되었다.

그런 연유로 사파비 제국 점령 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영주가 될 수 있었는데···.'

모든 게 한낮 꿈처럼 사라져 버린 아나드는 밤하늘을 물들인 은하수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효종 5년(1653) 8월 14일.

장마철인데도 비가 내리지 않았던 지난달.

이제는 억수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서리까지 내렸다.

"세상이 미쳤나 봅니다."

"앞으로 더 심해질 거다. 그러니 내가 없더라도 곡물 저장 창고를 많이 짓고 흉년에 대비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저도 따라가고 싶은데 아쉽습니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네가 없으면 누가 관리하냐?"

"양순이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양순이보다 네가 더 믿음직스럽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연의 말에 은쌍식은 기분이 좋은지 씩 웃었다.

사실 은쌍식을 데리고 가면 여러모로 편하다.

하지만 그는 이곳을 관리해야 한다.

비록 연 앞에서는 기를 못 펴는 은쌍식이지만,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사령관들은 은쌍식의 말이라면 꼼짝을 못한다.

어릴 때부터 연과 함께 다니는 은쌍식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 너만 믿고 가니 나 없어도 잘 관리해야 한다."

"염려 마십시오. 사장님. 참 이번에 새로 추가된 조선군 5개 사단은 벌써 출발 했다고 합니다."

"그래? 준비는 잘했겠지?"

"네, 사장님. 그곳에서 지낼 선생들도 모두 함께 떠났습니다."

"음···. 알았다 난 이만 가겠다."

"사장님, 잘 다녀오십시오."

연은 은쌍식의 인사에 미소로 대답하며 기차에 올랐다.

'얼마나 걸릴까···?'

1년 정도 예상하고 떠나는 길.

하지만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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