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31화 (131/275)

< 131. 응징(15) >

총소리에 놀란 하마단 주민들은 겁을 먹고 숨어버렸다.

자국의 군인도 어느 순간 도적으로 변할지 모르는 세상이다.

그런데 적국이었던 조선군이라면 어떻겠는가.

소문으론 주민들을 해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게 무기를 든 병사였다.

그것도 총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동방에서 온 군인들이 아닌가.

300년 전 몽골이 휩쓸고 간 악몽이 다시 재현되는 건 아닌지, 주민들은 두려움에 문을 꼭꼭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곤란함을 느낀 명득이는 즉시 무전을 때렸다.

작전 중,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본부에 알리라는 규칙을 따른 것이다.

* * *

한양에서 연은 바쁘게 돌아다녔다.

어머니인 인선왕후와 누나, 동생들을 만났다.

김육처럼 알고 지내는 관리들과 조선전력공사 직원들에게 자기가 없어도 할 일을 점검하고 분담해 주었다.

어린 태자비의 두 손을 꽉 잡고 안심하라고 다독였다.

가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기에 멀리 떠나기 전에 인사하러 다닌 거였다.

그리고 은동리로 돌아온 연은 하마단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받았다.

하지만 그는 간단하게 해결책을 내놓았다.

"등록하지 않는 백성은 세금을 열 배로 받겠다고 해라."

"네? 그게···."

"그래야 나올 것 아니냐?"

"그러긴 하지만, 처음부터 강압하는 것은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은쌍식은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힘들게 살았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억압하는 것을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걱정하며 반대를 표했다.

"걱정할 걸 없다. 인두세를 내지 않으려고 종교도 바꾼 이들이다. 그러니 세금 내기 싫으면 기어 나오겠지."

"그럴까요?"

"그러지 않겠냐?"

은쌍식이 갸웃거리자 연이 설명했다.

"쌍식아, 사람이란 다 똑같단다. 다 세금 내는 건 싫어하지 않느냐? 그런데 안 내도 되는 세금을 열 배나 내게 한다면 어찌하겠느냐?"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곳은 후속부대가 맡으면 되니 빨리 진격하라고 해라."

"네, 사장님."

지금 하마단이 문제가 아니었다.

"감히, 빈집털이를 하려고 해!"

조서원에서 입수한 정보를 듣고 연은 기가 막혔다.

사파비 제국이 무너지자 오스만 제국의 병사들이 사파비 제국 국경 근처로 이동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조선군이 떠나면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사파비 제국 땅을 먹을 생각인 거다.

'그렇게 둘 순 없지.'

그래서 연은 회의 끝에 사파비 제국의 영토를 조선에 포함하기로 했다.

'죽 쒀서 개 줄 수는 없지.'

그것만이 아니었다.

속속 들어오는 조서원의 보고로는 사파비 왕조의 수도였던 타브리즈(Tabriz)에서 남아있는 사파비 왕족들이 세력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뒈지려고 까불고 있어.'

그래서 명득이가 이끄는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제2사단 2연대를 급판 한 것이었다.

그런 급한 일 때문이라도 하마단에서 일어난 일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무튼 연은 굳이 사파비 제국민을 조선인으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따르면 몰라도 반항하면 다 내쫓을 수밖에 없지.'

후세에 비난할지 몰라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그런 것 따위는 따지지 않는 세상이니.

지옥 같은 유럽의 중세시대가 끝난 줄만 알았는데 아직도 지속되고 있었다.

왕과 귀족들은 전쟁을 놀이라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영토를 늘리려고 치고받고 싸우고 있었다.

'지들이 죽을 일이 없으니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연은 기분이 나쁜지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넘어오기만 해봐라! 아작을 내 주지."

오스만 제국군의 예상 경로는 타브리즈였다.

타브리즈는 1514년 오스만의 셀림 1세가 찰디란 전투에서 일시적으로 점령한 적이 있었던 만큼 탐 나는 곳이었다.

타브리즈 남쪽에는 사핸드(Sahand)라는 3,000m가 넘는 설산이 있다.

설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있기에 타브리즈 주변은 곡창지대였다.

그랬기에 오스만 제국은 타브리즈 주변을 노리고 있었다.

* * *

백령도 대붕에서 무전 연락을 받은 명득이는 바로 움직였다.

새로운 조경함이 부셰르에 정박하고 있었기에 전처럼 복잡한 과정 없이 간단하게 통신할 수 있었다.

은동리의 연구원들이 드디어 자동으로 전파를 중계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고, 그 장치는 새로운 조경함에 탑재되었다.

아직 원시적인 방법이라 하울링(Howling)을 억제하려면 지연 현상이 어쩔 수 없었지만, 직접 대붕으로 통신할 수 있었기에 명령은 바로 전달되었다.

명득이는 야수즈에서 대승을 거든 정봉이에게 말했다.

"정봉이 네가 이곳에 남아 책임지고 백성들 등록하고 바로 따라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등록하지 않으면 세금을 열 배나 추징한다는 말에 하마단의 주민들은 조선군이 주둔하고 있는 중앙 광장으로 나왔다.

죽어도 세금은 내기 싫었던 거다.

명득이는 정봉이에게 하마단을 맡기고 바로 타브리즈로 출발했다.

사파비 제국의 왕족들이 외부에서 온 상인들을 모두 성 밖으로 쫓아내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마단에서 타브리즈까지는 400km가 넘는 거리다.

고산지대라 서둘러도 20일은 잡아야 한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다 날려 버려야지."

기원전 714년 전부터 수많은 왕조의 수도였던 타브리즈다.

그래서인지 성 자체가 매우 튼튼했다.

정봉이가 이끄는 대대 병력이 합류한다 해도 3천 명밖에 안 되는 연대 병력으로는 타브리즈 성을 공략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러니 파괴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 *

16세기에 유럽의 곡창지대로 알려진 폴란드는 귀족들이 국왕을 선출하는 귀족 공화정이다.

그랬기에 스웨덴의 요한 3세와 폴란드의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지그문트 3세 바사가 폴란드 국왕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

1587년, 지그문트 3세는 그때 당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대공을 제치고 왕이 되었다.

1592년, 복잡한 유럽의 왕가 계승 순위로 인해 지그문트 3세는 스웨덴의 왕위도 계승했다.

그러면서 왕궁도 이전 했다.

폴란드의 수도였던 크라쿠프가 스웨덴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였다.

지그문트 3세는 바르샤바로 왕궁을 이전하고 두 나라를 통치했지만, 종교 문제 때문에 믿었던 칼 공작의 반란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지그문트 3세는 폴란드를 포기하고 스웨덴의 왕위만 계승하려 했다.

아버지 요한 3세의 뜻도 있었지만, 귀족들의 힘이 너무 강한 폴란드 왕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폴란드 귀족들은 허수아비 같은 지그문트 3세를 왕으로 모시고 자기들 뜻대로 폴란드를 가지고 놀려고 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반복되지.'

그래서 연은 폴란드를 점령하면 제일 먼저 귀족들부터 목을 쳐버릴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폴란드의 수도가 된 바르샤바에 조선군이 나타났다.

조선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눈앞에 나타난 조선군이 나타났다.

변변한 성벽조차 없는 바르샤바 시민들은 겁에 질려 도망치려고 했지만, 가능하지 않았다.

이번에 바르샤바로 온 조선군은 전부 기마병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4개 연대나 되는 기마병들이 바르샤바를 완전히 포위하고 도주하려는 사람들을 잡아 한곳으로 몰아넣었다.

조선전력공사 기병대 사령관인 기수는 그들 중 한 명을 풀어주며 말했다.

"가서 폴란드 왕에게 전해라. 당장 오지 않으면 이곳을 흔적도 없이 파괴할 것이라고."

폴란드의 수도라 하지만 바르샤바는 인구가 5만 명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겁에 질린 폴란드 국왕 얀 2세 카지미에시 바사는 순순히 기수 앞에 나타났다.

그는 기수가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말을 꺼냈다.

"나, 나를 살려주면 스웨덴도 넘겨주겠소."

"스웨덴이라? 저 북쪽에 있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소."

"네가 무슨 권리로?"

"내가 스웨덴 왕위의 정당한 계승자인데 크리스티나 그년이 왕위를 강탈하고 내놓지 않고 있소. 그러니 나를 살려준다면, 그 권리를 조선에 양도하겠소."

"뭐? 그게 무슨 말이냐?"

기수는 얀 2세를 노려봤다.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왕좌를 장난도 아니고 권리를 넘겨줄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던 거다.

"난 폴란드와 스웨덴의 왕이셨던 지그문트 3세의 정당한 계승자요."

"음···."

얀 2세는 지그문트 3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형인 브와디스와프 4세 바사가 사망하자 폴란드 국왕 자리를 승계했다.

그러면서 형의 미망인 루드비카 마리아 곤자가와 결혼했다.

막장 유럽 왕가라 그런지 유목민족의 풍습인 형사취수(兄死娶嫂)를 한 거였다.

기수는 혼란에 빠졌다.

조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죽일 놈들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기에 생각을 달리했다.

'꼭두각시 같은 저자 하나 죽여봤자지.'

기수는 참모에게 지도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한참 지도를 살핀 기수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스웨덴까지 확보한다? 그럼 조선의 영토가···.'

탐이 났다.

스웨덴이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명나라와 청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조그마한 대륙이 아니라 진짜 대륙이라 말할 수 있는 '예맥 대륙'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모두 조선의 영토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봤다.

"네 말이 사실이냐?"

"그렇소."

벌벌 떨고 있는 얀 2세의 표정을 보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알았다. 일단 조선의 국왕 폐하께 문의를 드리고 결정하겠다."

아무리 탐이 나도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 판단한 기수는 즉시 무전을 때렸다.

* * *

모스크바로 출발하려고 준비 중이었던 연은 그 소식을 듣고 즉시 회의를 소집했다.

'도대체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러지 않아도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모스크바까지 가려고 했다.

그런데 상황은 이상하게 변해 버렸다.

전략회의실에서 토의하는 중에 은진이가 연에게 말했다.

"사장님, 저의 생각은 그곳까지 조선의 영토로 했으면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사장님께서는 그 누구도 조선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곳을 포기하고 돌아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오스만이 사파비 제국 땅을 노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물러선다면 그곳을 차지하려고 승냥이 떼처럼 몰려들 것입니다. 사장님, 그걸 원하십니까?"

"흠···."

은진이의 말에 연은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은진이 말이 맞아. 내가 먹지 않는다고 그곳이 그냥 있는 건 아니겠지.'

이미 루스 차르국 백성들은 조선의 품 안으로 들어오기로 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모스크바에서부터 퍼져나간 소문을 듣고 농노들이 각지에서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다.

아직 유럽은 몇 개국을 빼면 국가라는 게 정립되지 않았다.

민족이란 개념은 아예 없었다.

오직 몇몇 왕가에 의해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 곳이 바로 유럽이었다.

그러면서 농노나 다름없는 백성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그들을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연은 인류애 같은 건 따지고 싶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살았던 21세기 같은 상황에서 후손들이 벗어나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주변 강대국에 치어 좁은 땅덩이에서 힘겹게 살았던 시절.

섬나라 쪽발이들이 심심하면 도발했다.

대륙을 물려받은 중국은 한복과 김치까지 자기들 것이라 했다.

'만만해 보인 거지.'

찔러도 행동하지 않고 소리만 질렀기에 심심하면 건든 거였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해.'

연은 조선 왕조에서 몇 안 되는 정통성을 가진 왕이 될 수 있다.

그랬기에 왕 노릇 하면서 편히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안주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거지 같은 상황을 다시는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일이 돌아가고 있었다.

시베리아를 예맥의 땅이라 우기며 차지했다.

자원이 탐나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서쪽으로 진출했다.

그런데 그 꼴을 보지 못하고 탐욕에 눈이 돌아간 4대 제국이 조선을 공격했다.

응징하려고 나섰는데 어찌 된 일인지 영토가 계속 넓어지고 있었다.

'젠장 할!'

연은 생각지도 않았던 세계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강철로 만든 총과 화약이 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해 보였다.

"아니야!"

연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해했는지 은진이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연은 은진이를 불렀다.

"은진아?"

"네, 사장님."

"네가 생각하기로는 우리 조선이 대대로 안전 해지려면 스웨덴이란 곳까지 영토로 만드는 게 좋다고 보느냐?"

"네, 사장님."

"흠···."

연은 은진이가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가 한 말이 맞다고 봤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몽골처럼 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럴 수는 없지!'

연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