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29화 (129/275)

< 129. 응징(13) >

창공이는 무장열차의 기관총 사수가 되었다.

운이 좋아서였다.

창공이는 조선군에 지원하면서 경비대원이 될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경비대원이 되려면 별도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남보다 체력이 뛰어나지 않는 창공이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원하던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이 될 수 있었다.

그것도 현장 특채로.

이번에 현두 요새를 지원하면서 무장열차의 화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기관차 앞에 설치된 기관총대를 둘로 늘렸다.

하지만 기관총을 맡을 대원이 없었기에 새로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무장열차에 매료된 창공이가 그곳에 있었다.

아니 시간만 나면 무장열차를 기웃거렸다.

"타고 싶나?"

"넵!"

무장열차를 관리하는 장교는 며칠 전부터 자주 보이는 창공이에게 탑승을 허락했다.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해하는 눈으로 무장열차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는 창공이를 보고 장교는 물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물었던 거다.

"그런데 너 주특기가 뭐야?"

"기관총 사수입니다."

"그래?!"

창공이는 그 자리에서 바로 대원으로 선발됐다.

그리고 새로 설치된 기관총 사수를 맡게 되었다.

창공이가 기관실 한쪽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서 첫날 밤을 보내는 날.

너무나 가슴이 벅차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늦게서야 눈을 붙였다.

그런데 창공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일어나라! 어서 빨리 일어나!"

무장열차의 최고책임자인 중대장이 소리를 지르며 임시 숙소를 뒤집어 놨다.

"정신 차리고 각자 위치로 즉시 이동한다!"

"네? 네!"

대원들은 꺼칠한 눈을 비비며 급히 옷을 걸치고 있는 사이에 창공이는 3층 침대칸에서 뛰어내려 바로 임시 숙소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본 중대장은 '빠릿빠릿한 녀석이네'라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어 급히 뽑으면서 걱정되었는데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차를 운행하는 대원들이 각자의 위치로 이동하자 중대장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기관수는 즉시 시동을 걸고, 기관총 사수는 총기와 탄환을 점검하라!"

"""멸!"""

아직 잠에서 덜 깼지만, 대원들은 힘차게 구령을 외쳤다.

"엔진실 이상 무!"

"시동을 걸어도 됩니다."

"좋았어!"

기관수 바로 시동 스위치를 눌렀다.

-드드드드드르릉!

날이 포근해서 그런지 8,000cc 나 되는 두 개의 8기통 디젤 엔진은 납축전지에 연결된 동력 모터의 힘을 받아 바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기관총 사수는 준비가 끝났으면 대기하라!"

"""멸!"""

중대장은 무장열차가 작동되자 바로 뒤편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현수와 참모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준비 끝냈습니다."

"수고했다."

중대장을 격려한 작전 참모는 현수를 보며 물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작전 참모는 마이크를 잡았다.

-비상이다!

-비상이다!

-모두 일어나 각자 맡은 위치로 즉시 복귀하라!

아직 한밤중인 새벽 4시.

갑작스레 울려 퍼진 스피커 소리에 조선군 제15사단 병사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두 잘 들어라!

-전방에 오고 있는 사람들은 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따라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려놓지 말고 대기하라!

작전 참모의 말에 병사들은 각자 맡은 위치로 뛰어가면서 앞을 내다보았다.

멀리서 횃불을 들고 천천히 다가오는 사람들.

적의는 없어 보였다.

좀 전, 막사에서 자고 있던 현수는 부관이 깨우자 깜짝 놀랐다.

눈을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뭔 일이 난 나 싶었다.

'사단장님, 성문이 열리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래?'

현수가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모스크바 성밖에 횃불을 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더니 서서히 다가왔다.

'즉시 비상 걸어!'

'넵!'

루스 차르국 병사들 대부분은 현두 요새에서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따라서 모스크바 성안에는 적군이라 해봐야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보초를 맡은 병사들만 빼고는 모두 편히 쉬게 했다.

낼부터 할 일이 많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밤중에 성문이 열리다니!

'아무래도 모스크바 백성들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그래도 모르니 모두 전투 준비하도록!'

다행히 무장열차가 있었기에 전투 준비는 빠르게 할 수 있었다.

없었다면 일일이 뛰어다니면서 병사들을 깨우거나, 아니면 열식 발전기를 가동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테니.

기관차 제일 앞에 설치된 기관총 점검을 끝낸 창공이는 옆에 있는 선임 대원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일까요?"

"모르지만, 폭동이 성공한 건 같다."

멀리서 횃불을 들고 다가오는 사람들.

약 100m 정도 남겨 두고 걸음을 멈췄다.

이런 상황을 처음 맞이한 창공이는 긴장했는지 목젖이 계속 꿀렁거렸다.

"3명이 오고 있습니다."

"밤눈이 좋구나?"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선임 사수는 창공이를 보며 밝게 미소 지었다.

눈이 좋은 그것도 밤눈이 좋은 동료와 같이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믿을 수 있고 든든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스피커에서 명령이 하달됐다.

-전군 모두 대기하라!

-전군 모두 대기하라!

-이들은 적이 아니다!

안내 방송을 끝낸 작전 참모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현수에게 말했다.

"저들이 대표인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제가 가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음!"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 * *

은동리에서 모스크바 상황을 전해 들은 연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굳이 우리가 처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것보다는 그들이 끝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

"어떻게 말입니까?"

"잔인할 수 있지만, 결자해지(結者解之)라 했으니 일을 저지른 자들이 직접 처형하라고 전해라."

"솔선수범(率先垂範)하라는 말씀이시죠?"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공자는 군자가 신뢰를 확보하려면 솔선수범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은쌍식은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 말을 썼다.

요즘 들어 사자성어를 제법 사용하고 있는 은쌍식이기에 연은 대충 넘어갔다.

"그리고 폐하께서 허락하셨으니 떠날 준비를 하거라."

"참말입니까?"

"그래."

"태자비께서도 함께 가시는 거 맞습니까?"

"그건 아니다. 그러니 간단하게 준비하거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은쌍식이 나가자 연은 양순이를 불렀다.

떠나기 전에 믿을 수 있는 양순이에게 맡길 일이 있었다.

은쌍식과 함께 연의 집무실로 들어온 양순이는 예를 올리고 난 후 조용히 기다렸다.

이렇게 단독으로 오라고 했을 때는 뭔가 중요한 일을 맡을 때였으니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김충선의 후손들과 충무공의 후손은 어찌하고 있느냐?"

"김충선의 후손들은 바로 부산으로 내려가 일본인 중에서 쓸만한 자들을 선발하는 중입니다. 충무공의 후손은 사장님 말씀에 따라 나대용(羅大用) 장군의 후손을 찾으러 떠났습니다."

"그래? 언제쯤 올 것 같으냐?"

"늦어도 한 달 안에는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흐음···."

김충선의 후손들과 충무공의 후손을 만났지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서쪽에서 일어난 전쟁 뒤처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면 바로 송림제철소로 보내 준비한 공장을 짓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원하는 것은 뭐든 다 지원해주고."

"네, 사장님."

"이 일은 극비에 부쳐야 하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은진이와 상의하도록 해라."

"그리하겠습니다. 사장님."

연은 뜻하지 않게 얻은 인재들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바로 충무공을 기리는 역사관을 만들고 싶었지만, 먼저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좋을 듯해서다.

'거대하게 만들 거야. 아예 이순신 장군님의 발자취를 따라 대단위 해양 공원 및 순례길을 만드는 것도 좋겠지.'

역사 속에 묻혀 있었던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

그런 영웅을 역사에서 끄집어낸 자는 다름 아닌 일본군 해군 제독이었다.

1905년 5월.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대한해협으로 들어온 러시아 발트함대를 맞이하여 대승을 거둔 일본군 제독이 있었다.

그는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러시아 함대를 학익진으로 감싸 포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게 바로 러일전쟁의 변곡점이 된 쓰시마 해전이었다.

도고 제독은 자신을 '동방의 넬슨(The Nelson of the East)'이라 칭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넬슨 제독에 비교될 수 있지만,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는 비교될 수 없소'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스승이라고 한 도고 제독.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을 감추지 않고 군신(軍神)으로 예우했다.

그래서인지 일본이라면 이를 가는 문식이도 도고 제독만큼은 존중했다.

'조선을 침략한 적이지만, 멋지지 않냐?'면서 그에 대해서는 일절 험한 말을 하지 않았다.

물론 일본의 원균이라 말하는 '무타구치 렌야'만큼은 아니지만, 말년에 일본 해군의 발전을 저해했기에 그랬다.

아무튼 연은 후손이 귀한 충무공 가문이기에 찾아낸 후손을 전쟁터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대신 이순신 장군의 넋을 기릴 기념관과 새로운 바다의 무기를 만드는 일에 투입할 계획이었다.

* * *

모스크바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살려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차르가 숙적이던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연합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더는 전쟁이 없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알렉세이 차르는 조선을 정벌한다고 했다.

더 큰 전쟁을 위해 연합한 것이었다.

전쟁을 선포한 알렉세이 차르는 루스 차르국의 젊은 자식들을 착출해 갔다.

먹을 것조차 전부 징발해 갔다.

조선을 치고 나면 엄청난 보상을 약속했지만, 루스 차르국 백성들은 믿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쟁터에 끌려간 자식들의 생사가 걱정되었지만, 당장 먹을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먹을 양식이라고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모스크바 성의 곡물 창고를 담당하던 이반 호반스키가 그것마저 챙겨서 도주해 버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선 자신의 영지로 줄행랑을 친 것이었다.

알렉세이 차르는 즉시 병사들을 모아 이반의 영지로 쳐들어가지만, 그자는 모든 것을 팔아 버리고 사라져 버린 후였다.

망연자실한 알렉세이 차르는 그러는 와중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조선과 평화협정을 맺고 원조를 받아 오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밑도 끝도 없는 황당한 말에 시민들이 들고일어났지만, 가혹한 탄압만 있을 뿐이었다.

매일 같이 술에 절어 산다는 말이 정말인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조선군이 쳐들어온다는데 넋 놓고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조선군이 나타났다.

시민들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동쪽에서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도 그랬기에 모스크바 시민들은 희망을 버리고 죽을 날만 기다렸다.

그런데 조선군은 달랐다.

성을 에워 싸지도 않았고, 공격하지도 않았다.

멀리 떨어져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하늘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린 것은 비싼 종이였다.

종이에는 알기 쉽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시민들은 성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는 차르의 친위대가 성문으로 다가오는 시민들을 가차 없이 죽였다.

결국 폭동이 일어났다.

친위대를 물리친 시민들은 크렘린궁까지 들어가 술에 곯아떨어진 알렉세이 차르를 묶어서 데리고 나왔다.

시민 대표와 대화를 나는 현수는 어찌 처리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일어 벌어졌기 때문이다.

현수는 연의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죽을 끓여서 시민들에게 주라고 했다.

얼마나 굶었는지 모스크바 시민들은 뜨거운 죽을 맨손으로 집어 먹었다.

"우리도 얼마 전까지 저랬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사장님께서 모든 것을 바꿔 놓으시기 전까지는···."

연이 조선전력공사를 세우고 종이와 연필을 만들어 쌀을 사 오기 전까지 양난을 겪은 조선 백성들에게 굶주림은 익숙했다.

많지 않은 농지가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그런 땅을 다시 개간하여 이제는 모두 바로 잡았다.

그래서인지 현수는 이곳까지 오면서 이해할 수 없었다.

예맥 산맥을 넘어서자 끝도 없이 평평한 땅이 나왔다.

울창한 숲으로 되어 있었지만, 반듯한 대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이들은 그곳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지 않았다.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다지만, 농사짓지 못할 건 없어 보였다.

'우리 같으면 이 좋은 땅을 모두 개간하여 사용했을 것인데···.'

참으로 알 수 없었다.

현수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사단장님!"

멀리서 정보 참모가 뛰어왔다.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

정보 참모로부터 연의 명령을 들은 현수는 즉시 모스크바 시민 대표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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