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26화 (126/275)

< 126. 응징(10) >

효종 5년(1653) 5월.

이달 들어 대낮에 목성이 자주 관찰되었다.

하지만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 별이 우리가 사는 태양계에서 가장 큰 별 맞아?"

"응. 가장 큰 건 맞는데, 저건 별이 아니라 행성이야.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처럼."

"앗! 고마워. 낼 시험 보는 데 틀릴뻔했네."

이제 조선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거나 신병 교육을 받았다면 이 모든 것이 자연현상이라 알고 있었다.

연의 명에 따라 초등학교는 물론 신병 교육대에 천체 망원경을 보급했다.

미신을 타파하려면 직접 보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선식이가 라디오방송에서 자주 설명해 주었다.

선식이는 사람이 사는 지구라는 행성이 태양이라는 항성을 돌고 있다는 것을 수시로 방송했다.

매월 1일, 11일, 21일에는 '과학 탐구'라는 특별 방송을 저녁 시간에 별도로 편성하여 내보내고 있었다.

물론 남산천문대에 근무하는 연구원이 초대 손님으로 나와서 자세히 설명했다.

선식이와 만담식으로 주고받는 대화 형식이라 과학 탐구 방송의 인기는 나날이 증가했다.

그래서인지 라디오방송을 들은 조선 사람이라면,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 저는 이연공과대학에 꼭 진학할 겁니다."

"이놈아! 세종대학교에 가야지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이연공과대학에 가서 훌륭한 과학자가 될 겁니다."

"이놈이! 지체 높은 관리가 되려면 세종대학교를 가야하고, 장군이 되려면 봉림사관학교를 가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연공과대학에 가려고 하느냐?"

"아버지께서 모르셔서 하는 말씀입니다. 은동리에 있는 연구원들이 얼마나 대우를 받는지 모르시지요?"

"공과대학 나오면 공돌이가 되는 건데 대우는 무슨 대우?"

"정말 아버지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공돌이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처음 받는 월급이 200문이 넘는다고 합니다."

"뭐? 그게 참말이냐?"

"네, 아버지."

몇 년 전부터 짓고 있던 세종대학교와 봉림사관학교, 이연공과대학이 이제야 완성됐다.

내년 봄부터 신입생을 모집한다고 하자 조선팔도는 물론 만주까지 난리가 났다.

성균관에 입학해봤자 잘해야 예절교육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물론 높은 지위로 가게 되지만, 새로 생긴 3곳의 대학교만 못하다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를 마친 학생들은 때아닌 입시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이런 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현두 요새에서는 모스크바로 진격하기 위해 모든 병사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무수 요새에서 출발한 조선군 1개 사단 병력이 추가되자, 현두 요새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다시 말하는데 허접한 놈들에게 공격당해 상처라도 입으면 병신 취급할 줄 알아라! 알겠나!"

"""멸!"""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 15사단 병사들이 으스대는 꼴이 보기 싫었는지, 무수에서 온 16사단 장교들은 거세게 병사들을 교육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창공이는 최근에 배운 담배를 혼자 피우고 있었다.

선임 대원인 두현이가 장교로 승진함과 동시에 혼인하러 고향으로 돌아갔기에 창공이는 기관총 사수가 되었다.

그것도 그토록 원했던 무장열차의 기관총 사수가.

"위험한데 꼭 가야 하겠어? 지원까지 하며."

같이 보초탑에서 근무했던 동료 병사가 창공이에게 다가와 물었다.

"응, 멋지잖아."

"참나···. 담배나 한 개비 줘봐."

연병장 한쪽에 자리 잡고 담배를 피우는 둘은 신병 훈련소에서부터 동기였다.

그래서 집안 사정도 잘 알고 있었다.

"너네 매형이 부자가 됐다며 계속할 거야?"

"계속해야지?"

"왜? 돌아가면 호의호식할 건데."

"멋지잖아."

"에잇! 뭐가 멋있다고. 아무튼 몸조심해라. 난 이곳이나 지키고 있을 테니."

동료 병사는 창공이의 어깨를 두드린 후 자리를 벗어났다.

내일 아침이면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날이지만, 창공이는 한가하게 쉬고 있었다.

창공이는 별도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무장열차 기관총 사수라 개인 군장을 이미 무장열차에 실어 놓았기 때문이다.

기대와 흥분에 사로잡힌 창공이는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 무장열차로 걸어갔다.

그의 마음속에는 최악의 순간에 나타난 무장열차가 가슴 깊이 새겨져 있었다.

* * *

연이 효종의 허락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을 때 정용식이 은동리를 방문했다.

정용식의 보고를 받던 연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물었다.

"압바스 2세가 죽었다고 했느냐?"

"네, 사장님. 가신과 경비대장이 짜고 그를 죽였다고 합니다."

"이런··· 젠장."

그러지 않아도 이스파한 성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이스파한 성을 점령한 신수는 그곳을 조선의 영토로 만들고 싶다고 수시로 연락을 해왔다.

이유라고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입니다'였다.

17세기에 아름다워 봤자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하지만 제2사단 대원들 모두 감탄했다고 하니 가보고 싶었다.

그렇다 해도 이번 전쟁의 원흉인 압바스 2세를 잡아 죽여야 한다.

그런데 이미 죽어 버렸다니 허망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그게······."

박격포의 경고 포격에 두려움을 느낀 압바스 2세는 가신과 함께 경비대의 보호를 받으며 성을 탈출했다.

하지만 북으로 올라가는 길에 가지고 나온 보물에 눈독을 들인 가신과 경비대장에게 살해당했다.

그들은 그길로 오스만 제국을 통하여 유럽으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남하하던 예맥 경비대에 발각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무전 연락을 받은 예맥 기병대는 도망친 압바스 2세를 찾고 있었다.

6천 명이나 되는 예맥 경비대는 알리카푸 궁전 수비대 병사 3천 명을 순식간에 쓸어 버렸다.

"······그래서 현재 이스파한 성을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흐음···,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었군."

"네, 사장님. 지방에서도 그 걸을 알았는지 권력자들이 이스파한 성으로 찾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수가 매일 같이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된 게 원하지 않았는데도 땅이 저절로 계속 굴러들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라.

하지만 사파비 제국의 인구는 400만이 넘는다.

물론 조선에 비하면 적은 수이지만, 문화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연이 망설이며 생각에 잠기자 은쌍식이 조심히 말을 꺼냈다.

"사장님. 세금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응?"

"들어보니 종교를 바꾸면 인두세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사파비 제국이 커졌다고 합니다. 그러니 조선말과 조선글, 예절을 배우면 아예 세금을 면제해 준다고 하면 좋을 듯한데요."

"그렇다고 무작정 세금을 안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판매세로 대체해도 충분한 세금을 걷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은진이가 그러더냐?"

"네, 사장님. 조선전력공사에서 생산한 물품만 팔아도 이익 아닙니까? 거기에 인심도 얻고요."

"흐음···."

나름대로 똑똑한 은쌍식이기에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은진이는 자신의 부군인 은쌍식이 더 큰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전략과 전술, 심리전까지 은쌍식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연은 그런 은쌍식을 보니 '바보 온달'이 생각나서 씩 웃었다.

천부적인 전략가이자 모략가인 은진이와 순박하기만 한 은쌍식 부부는 어찌 보면 환상의 조합 같았다.

갑자기 연이 웃자 은쌍식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줄 알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번에 선생 모집에 수많은 백성들이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들을 보내면 될 것 같습니다."

선식이의 홍보 방송을 들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지원서를 접수했다.

'스승'이란 말 자체가 대단한 권유를 가진 조선이기도 하지만, 복지 또한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은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국가가 뭔지 조차 모르는 게 틀림없어.'

이스파한 성을 점령하면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보았다.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물론 21세기에도 대한민국만 빼면 다 개판이었다.

미국만 하더라도 폭동이 일어났다 하면 약탈과 방화가 기본이었다.

어쩌면 한민족만 특이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은 다른 생각도 해 봤다.

'혹시, 성리학 때문인가?'

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은 성리학을 다시 짚어봤다.

'어쩌면 성리학이 국가를 통치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인지 몰라.'

예절교육 담당 선생으로 선비들을 보낸 곳은 어느 곳이나 평화로웠다.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를 존중하며 예의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믿고 행동했다.

물론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면 성리학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이용한 놈들이 나쁜 건지 몰라. 성리학에 나오는 삼강오륜을 곡해 없이 교육하기에 문제가 없었던 거야.'

연은 예절교육 선생으로 선비들을 보내면서 단호히 경고했다.

'삼강오륜의 본질을 곡해하는 이는 바로 탄광으로 보내 평생을 살도록 하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예절교육 선생들은 헛생각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라'는 삼강오륜의 참뜻을 있는 그대로 가르쳤다.

아무튼 예절교육 때문인지 모르지만, 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서로를 존중할 줄 알았고 다툼이 심하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성리학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이용하는 x선비들이 문제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생각이 정리된 연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은쌍식에게 말했다.

"좋아! 쌍식이 너는 은진이에게 가서 사파비 제국을 조선에 포함할 계획을 짜보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활짝 웃으며 은쌍식이 일어나자 연이 말을 덧붙였다.

"여차하면 포기하고 철수할 계획도 포함해서. 알았지?"

"네, 사장님."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면 포기하면 된다.

연은 굳이 말썽 많은 곳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 * *

현두 요새 사령관이었던 조선군 제15사단장 현수는 보로비쯔끼 언덕 위에 있는 크렘린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단장님, 또 사신이 오고 있습니다."

"소용이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인제 와서 죽기는 싫은가 봅니다."

현수는 무수 요새에서 지원 온 조선군 제16사단장 방걸이에게 현두 요새를 맡겼다.

전투 경험이 없는 16사단을 모스크바로 바로 보내기에는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현수는 경비대 1년 후배인 방걸이와 회의 끝에 병력교환을 하기로 했다.

16사단 병사 중 지원자만 15사단으로 갔고, 15사단에서도 모스크바 진격을 원하지 않은 병사는 16사단으로 보냈다.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와 전투 중에서 문제가 심각했던 병사 또한 당연히 16사단으로 소속을 옮겼다.

16사단 자체가 15사단의 예하 사단 성격이라 인수인계는 빠르게 진행됐다.

방걸이에게 현두 요새 지휘권을 넘긴 현수는 바로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했다.

현두 요새 서쪽을 막고 있는 예맥산맥은 해발 500m가 넘지 않는 구릉 지대라 통과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넓은 카마강과 볼가강을 건너는 문제로 많은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모스크바까지 가는 도중에도 루스 차르국에서 보낸 사신이 수시로 찾아왔다.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차르께서 조선에 사죄하고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넓은 아량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돌아가라!'

어찌 된 일인지 한번 돌아간 사신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신이 찾아왔다.

그러나 현수는 그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협상은 없다'는 사장님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은 심심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왕과 귀족들을 모두 제거할 생각이었다.

'놈들을 놔둬 봐야 좋을 게 없어.'

잘못된 생각일지 모르지만, 일단 폐단이 될 만한 인물은 모두 제거해놓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살아 있을 때는 몰라도 그들이 남아 있는 한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

루스 차르국의 황제와 귀족들이 폐단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중에라도 조선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망국의 황자니 그런 건 두렵지 않아. 다시 건국하면 박살을 내면 되니.'

그러기에 연은 발본색원(拔本塞源)하겠다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발본색원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로 폐단의 근본 원인을 뿌리 뽑아 완벽히 없애 버린다는 뜻이다.

현수가 무전으로 받은 사장님의 명령을 상기하는 사이에 사신이 다가왔다.

"위대한 대조선의 장군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루스 차르국 차르이신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께서 보낸 세르게이 프리마코프라 합니다."

"나는 조선군 제15사단장 현수요. 무슨 일로 왔소?"

너무나 정중하게 예를 올리는 사신을 보고 현수는 차마 반말로 대할 수는 없었다.

"오면서 느끼셨겠지만,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 아닙니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는데도 아직도 서늘하지 않습니까?"

"신선해서 좋소 이만?"

영상 15도 정도 되는 쌀쌀한 날씨를 빗대 사신이 말했지만, 현수는 되받아쳤다.

"그게···."

사신은 말이 막히는지 한 박자 늦게 다시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저희 루스 차르국은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조선을 섬기고 따르겠습니다. 제발 루스 차르국을 불쌍히 여기셔서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루스 차르국 백성들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조선의 태자이자 조선군 총사령관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냈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당신네 백성들이 불쌍해서 구해주러 왔단 말이오."

"하아···!"

사신은 하늘을 쳐다보며 깊은숨을 내쉬더니 하소연하듯 입을 열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야코프 체르카스키란 놈 때문입니다. 결코 차르께서 원하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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