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응징(6) >
일본 열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갔다.
그렇지 않아도 쇼군이 되고자 한 다이묘들의 싸움으로 무법천지였는데, 약탈을 즐기는 몽골인들이 일본 열도에 상륙했다.
그로 인해 열도는 인세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다이묘들끼리 싸울 때는 농사라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말박이 몽골인들이 나타나자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굶주린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뗏목을 만들어 대마도로 향했다.
살길은 열도를 떠나 조선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장님, 하루에도 수백 명씩 대마도로 몰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일단 수용소를 만들어 살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해라.'
'그러지 않아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마도는 대부분 산지라 이미 일본인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급한 대로 부산에도 수용소를 만들어 모야 놓아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연은 바로 효종을 찾아갔다.
상황을 들은 효종은 연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할 생각이냐?'
'일본말은 여진말과 같이 조선말과 말하는 순서가 비슷합니다.'
'또 예맥을 써먹을 생각이냐?'
효종은 연이 신의주 훈련소에서 여진족을 같은 예맥족이라 말하고 조선의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네, 아버지.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그렇다면 잘해보도록 하거라. 하지만 명심하거라. 이 나라 조선 백성들은 왜놈들이라면 치를 떤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잘 화합할 수 있도록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네, 아버지. 소자 명심하겠습니다.'
효종은 조선의 인구가 너무 적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효종뿐만 아니었다.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커져 버린 조선의 영토를 두고 대신들은 어찌 관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다행이라면 많은 백성이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급한 대로 백성들을 관리로 모집하고 있었다.
과거가 사라진 조선이지만, 선비들은 따지지 않았다.
어려운 유학을 공부해도 관리가 되기 힘들었는데 한글만 깨우치면 바로 관리가 되었다.
관리가 된 선비들은 처음에는 기분 나빠했다.
무식한 백성들과 말을 섞기조차 하기 싫었했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자를 알기에 다른 평민 출신 관리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급부터 시작한 관리였지만, 선비들은 빠르게 승진했다.
그런데 평민 출신 관리 중에서도 똑똑한 자들은 너무나 많았다.
자연스럽게 고위직 관리들은 둘로 나누어져 버렸다.
선비 출신과 평민 출신.
이 두 세력은 서로를 견제하며 빠르게 행정을 처리해 나갔다.
먹을 것이 작다면 서로 다투었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먹을 것이 늘어났다.
싸울 시간이 없었다.
싫다고 견제하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협력한 관리들이 높은 자리로 올라가 버렸다.
그러다 보니 선의의 경쟁으로 변해갔다.
서로에게 잘 보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게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이에 치고 올라가는 동료를 보고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늦어 버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새로 들어온 관리들이 있었다.
그들마저 위로 올라가 버리자, 가문을 내세우고 으스대기만 하는 관리들은 낙오되었다.
조선의 관리는 지위가 높아질수록 월급이 급속도로 많아지기에 비리 따위는 없었다.
인정받아 승진하고 새로운 개척지의 장으로 나가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란 사실을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연의 명을 받은 행식이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행정 체계를 잡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읍내에 나가 일하거나 장사하면 생각 이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농사를 지을 사람들이 적어졌다.
그래서 연은 일본인 난민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원래는 적당한 시점에 일본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말박이들을 때려잡고 일본을 안정시킨다는 목적으로.
그런데 뜬금없는 전쟁으로 모든 계획이 미뤄졌다.
대신 살기 위해 오는 일본인들을 모두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다 입국을 허용한 건 아니었다.
'대마도와 부산에 난민 수용소를 만들고 그곳에서 조선말과 조선글인 한글, 산수, 예절을 가르쳐라.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조선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계속 늘어나는데 어찌합니까?'
'농업협동조합에 보내라. 그곳에 새로 개간된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하고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완전한 조선인이 될 수 있도록 하라.'
임시 거주권을 발행하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교사가 부족합니다.'
신병 교육을 받은 사람 중 많은 이가 교사가 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교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연은 이번 전쟁 결과를 라디오방송을 통해 알리면서 대대적으로 교사를 모집했다.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했던 조선.
이제는 먹을 것은 넘쳐났지만, 사람이 부족했다.
산동반도에서 생산한 쌀만 하더라도 조선 백성 모두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런데 만주까지 개간되면서 이제는 쌀 수출국이 되었다.
그로 인해 땅 가진 지주들은 더는 기득권 행세를 할 수 없었다.
가진 땅을 조선전력공사에 팔고 읍내로 이주했다.
조선전력공사는 이 땅을 사들여 묶어서 반듯하게 개간하고 농업협동조합에 빌려줬다.
급격하게 변해버린 세상이지만, 조선 백성 모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배불리 먹기만 해도 원이 없다는 시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 *
조선전력공사 육경과 해경 대원들은 부셰르 남쪽에 주둔지와 정박지를 만들고 있었다.
주변에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암이 널려 있었기에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흰 제복을 입은 해경 대원들이 조경함이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을 만들고, 회색 제복을 입은 육경 대원들은 주둔지 외곽을 쌓고 있었다.
"우와! 이제 살 것 같네. 어제는 죽은 줄만 알았네."
"나도! 무슨 날씨가 이리 변덕이 심하지? 밤 되면 엄청 춥고 말이야."
"그러게? 바닷가인데도 그러네."
"그래도 끈적거리지 않아서 좋군."
"맞아 조선 여름 날씨인데 땀이 금방 말라."
한낮 기온이 40도 넘게 올라가는 부셰르의 기온이지만, 햇볕만 피하면 선선했다.
뜨거운 날씨지만, 상대적으로 습도가 낮기 때문이다.
"여기 담만 쌓으면 바로 출발 한다며?"
"응, 이스파한까지 바로 간다고 하더라고."
"그래?"
"정찰 대대가 벌써 야수즈라는 곳까지 싹 쓸어 버렸데."
"오호! 그럼 우린 그냥 편히 걸어가면 되겠군. 역시 신수 사단장님이야!"
기수가 이끄는 기병 1연대가 새로운 작전을 실험하는 부대라면, 신수가 이끄는 육경 2사단 또한 같았다.
육경 1사단은 제일 중요한 대륙의 관문인 산해관을 지켜야 한다.
그랬기에 신의주를 지키고 있던 육경 2사단이 전술 검증 사단으로 배정됐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부셰르.
임시로 지어진 막사 안에서 제2사단장 신수가 작전을 검토하고 있었다.
정보 참모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사단장님!"
"꽤 덥지?"
"덥긴 한데 지낼 만합니다."
1년 내내 더운 곳이라 들었는데 생각보다 살만했다.
"사단장님. 정봉이가 야수즈 주변을 점령하고 기다린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잘했군. 그곳에 큰 강이 있다고 했지?"
"네, 사단장님. 생각보다 수량이 꽤 되나 봅니다. 그곳에 2차 주둔지를 만들어도 될 거라는 보고입니다."
대군이 진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마시는 물이다.
먹는 거야 각자 휴대하고 가도 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셔야만 하는 물은 부피가 커서 휴대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이곳은 강가나 오아시스 같은 웅덩이가 있는 곳이 아니면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신수는 대대 병력만 미리 보내서 수원지를 찾아 주둔지를 만들라고 명했다.
사파비 영토에서 수원지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곳곳에 수목이 우거진 곳이 많았고 수원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도 있었다.
하지만 1만 명이나 되는 사단 병력이 물을 얻고 주둔할만한 곳은 드물었다.
자그로스산맥 중앙에 위치한 야수즈는 바샤르강(베샤강)을 끼고 형성되어 있기에 2차 주둔지로 최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놈들의 저항이 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
"정보에 의하면 지방에 있는 병사들까지 전부 모아 서맥 요새로 보냈다고 합니다."
"흥! 죽으려고 환장했군."
"그러게 말입니다."
정보 참모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비웃었다.
기수 사령관이 지키고 있는 서맥 요새를 침공할 생각을 한다는 차체가 미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 * *
사파비 제국 압바스 2세는 화려한 알리카푸 궁전(Ali Qapu Palace) 안에서 고심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증조부인 압바스 1세보다 더 큰 업적을 쌓고 싶었다.
'선대를 볼 낯이 없구나···.'
위대했던 군주인 압바스 1세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군사적 능력과 정치력에서 압바스 1세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했다.
'조선에서 제안한 대로 총을 받고 땅을 넘겨줄 것을 잘못했군. 그랬다면 이런 곤혹스러운 일은 없었을 텐데···.'
잘못된 선택이 제국의 운명을 바람 앞에 촛불 신세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골적인 협박을 받고도 거부했다가는 조선보다 먼저 망했을지도 몰랐다.
"도대체 어찌 된 거냐? 북쪽에 있을 조선군이 어떻게 부셰르에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냐?"
"그게···."
"말하라!"
"거대한 배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크흠···. 모두 몇 명이나 된다고 하더냐?"
"1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1만 명이? 어찌 그 많은 병사가 타고 올 수 있는 배가 있다는 말이냐? 설마 수백 척이 온 건 아니겠지?"
설사 조선이 수백 척의 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대륙 동쪽 끝에 있다고 들었는데 이곳까지 그 많은 배가 무사히 올 방법은 없다.
자국의 병사들을 끔찍이 아낀다고 소문이 난 조선이 그런 짓을 하진 않았을 거다.
그런데 조선군이 나타났다.
이해가 되지 않은지 압바스 2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대신이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단 3척이라고 했습니다."
"뭣이! 단 3척이라고?"
"네, 질룰라. 조선이 몰고 온 배는 거대한 성채(城砦, Citadel)만 하다고 합니다."
"이런!"
압바스 2세는 후회가 밀려왔다.
"사신의 말을 믿었어야 했나···?"
쇠로 만든 거대한 마차가 철길을 달린다고 했다.
이맘 광장(Imam Square)만큼 넓은 대로가 있고, 밤에는 환한 불이 대로를 밝히고 있다고 했다.
압바스 2세는 사신의 말이 너무 터무니없었기에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았기에 조선을 공격하자고 했을 때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거부할 수도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무굴제국이 자신의 사파비 제국을 공격했을지도 모른다.
'질룰라께서 동참하지 않으신다면 저를 보내신 주군뿐만 그분의 친구들께서도 좋아하지 않으실 겁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온 사신은 대놓고 협박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압바스 2세는 대항하지 못했다.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욕심이 났다.
조선을 치고 얻을 금은보화가 탐이 났다.
욕망에 사로잡힌 압바스 2세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사신의 말에 조선을 치는 데 동참했다.
그런데 부셰르에 조선군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다.
"북쪽으로 떠난 이맘은 어찌하고 있는지 들은 소식은 없느냐?"
"죄송합니다. 질룰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크흠···."
당장 회군하라고 전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부셰르에 상륙한 조선군이 이곳으로 더 빨리 올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 해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남아있는 병사들을 모집하도록 해라. 아니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는 자들은 모두 징집해라!"
"그런데 질룰라. 쓸만한 장군이 없습니다."
조선을 치기 위해 사파비 제국의 명장들을 모두 보냈다.
혹시라도 동맹을 맺은 무굴제국에서 수작을 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파비와 무굴은 서로 믿지 못하는 관계이다.
그래서 양 제국의 명장과 병사들을 모두 보냈기로 합의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으란 말이냐?
"알겠습니다. 질룰라."
대신이 밖으로 나가자 가신이 다가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질룰라, 조선군에게 사신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선을 치고 있는데 받아들일 것 같으냐?"
"그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조선군에 사신을 보내 협상을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일단 시간을 끌어야지요."
"흐음···, 시간을 끈다?"
"네, 질룰라."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승리만 한다면, 남쪽으로 쳐들어온 조선군은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무엇을 가지고 협상을 한단 말이냐?"
"조선이 원했던 북쪽 땅을 넘긴다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그들이 물러갈 듯싶으냐?"
"그건 모르는 일 아닙니까?"
"흐음···.
압바스 2세는 난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협상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질룰라, 이곳이 위급합니다. 조선군 1만 명이 왔다고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벽에 의지해서 그들을 막아 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 잘 아는 놈이 왜 반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냐?"
"그거야···."
가신 또한 동맹을 거부했을 때 당할 보복이 두려웠다.
그와 달리 조선을 쳤을 때 얻을 이득이 욕심났다.
아무리 발달 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조선군이라지만 이길 수 있다고 봤다.
4 제국이 연합하면 세계도 정복할 수 있을 거로 판단했다.
그런데 북쪽에서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남쪽에서 조선군이 쳐들어왔다.
'설마, 사신이 말한 것이 진짜였던 건가? 아니야 그럴 일은 없어.'
가신은 사신의 말이 너무나 터무니없어 믿지 않았다.
'그렇게 발달 되었다는데 황제가 산다는 궁궐이 내 집만도 못할 리는 없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기에 압바스 2세는 물론 가신과 대신들은 사신의 말을 믿지 않았다.
가신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순간.
방금 나간 대신이 문을 열고 들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질룰라! 조선군이 야수즈까지 점령하고 그곳에 진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했느냐? 부셰르에 도착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야수즈까지 왔단 말이냐?"
"전부는 아니고 1천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
"네, 질룰라."
"흐흠···, 그렇단 말이지···."
뭔가 떠오르는 듯한 압바스 2세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