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20화 (120/275)

< 120. 응징(4) >

"은진아?"

"네, 사장님."

"무굴제국의 상황은 어떻더냐?"

"무슨 말씀이신지···?"

"죽은 황비의 무덤을 지으면서 국고 낭비가 심하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주변의 반발은 없더냐?"

"그러지 않아도 분란의 조짐이 보인다는 보고입니다."

17세기에 세계 제1의 인구를 가진 무굴제국은 20년 넘게 타지마할을 지으면서 민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자한 1세의 셋째 아들인 아우랑제브가 아버지를 축출하고 권력을 잡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음···, 그렇단 말이지."

"네, 사장님."

"그럼, 무굴제국은 준가르 왕국에 맡기도록 하자. 둘이 싸워서 힘을 빼놓는 다음 조선군이 도착하면 그때 들어가도 늦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연과 은진이의 대화를 들은 정용식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역시, 사장님께서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셨구나.'

전후 사정을 모두 인지한 정용식은 표정이 밝아졌다.

조선군 총사령관은 연이지만, 모든 작전 수행은 정용식이 다 맡아서 하고 있었다.

정용식은 백령도에 있는 무선 기지 대붕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수시로 들어오는 무전 정보를 토대로 군을 배치하고 보급품을 처리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흐름은 알 수 있었지만, 전략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아는 연은 정용식을 수시로 불러 어떻게 전략을 세우고 대체해 나가는지 보여 주었다.

정용식이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은쌍식이 들어왔다.

"사장님, 4월 8일 오시(낮 12시) 방송으로 알리기로 했습니다."

"응? 굳이 그날을 택한 이유가 있느냐?"

"백성들이 모두 쉬는 날 아닙니까?"

"그렇다 해도···."

연은 은쌍식이 씩 웃고 있는 모습이 얄미웠지만, 다시 생각해도 그날이 좋을 듯했다.

'사람들이 모두 쉬는 날이 좋겠지.'

연은 이번 전쟁 결과를 백성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하나가 되려면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좋지.'

연은 라디오방송을 이용하기로 했다.

신문을 통해서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방법은 역시 라디오방송이 최고였다.

필요한 사람도 모집해야 했다.

그것도 빨리.

그래서 전쟁의 결과를 자세히 알리고 백성들의 선택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럼, 새로운 직원들을 모집해서 교육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거라."

"벌써 준비 다 끝내 놓았습니다. 그리니 사장님, 감히 조선을 넘본 놈들을 절대 용서하지 마십시오."

은쌍식은 그 누구보다도 조선전력공사 대원들을 아꼈다.

자신과 같이 처지에서 자라왔기에 정을 많이 쏟았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 죽은 대원들이 있었다.

그것도 자신이 알고 있는.

그래서인지 은쌍식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걱정하지 말 거라. 그러지 않아도 이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곧 있으면 놈들을 멸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준가르 왕국에 무기를 보내주고 전쟁을 시작하라고 전해라."

"네, 사장님."

히말라야 남쪽 아삼 지역에 자리를 잡은 준가르 왕국은 조선의 속국이 되겠다고 자처했다.

그에 대한 성의로 호랑이와 표범 새끼들을 보내왔다.

하지만 호토고친 왕이 보내준 호랑이와 표범 새끼는 골치였다.

성의는 고맙지만, 키우기가 마땅치 않았다.

어느새 크게 자라버린 맹수들을 급한 대로 창경궁에 우리를 만들어 사육하고 있었다.

'젠장,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들 수도 없고···.'

아이들을 위해 놀이동산과 동물원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전쟁 때문에 모든 것이 뒤로 미루어졌다.

'제길, 잘 지내고자 했는데, 호응을 안 하네.'

강한 무기와 잘 훈련된 병사들이 있지만, 연은 무력으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모든 것을 순리대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연의 마음에 동조하지 않았다.

"참,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그때 나도 그곳으로 가볼 생각이다. 그러니 쌍식이 너는 준비를 단단히 해 놓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연은 아버지인 효종이 허락해줄지 알 수 없지만, 직접 가서 그곳의 분위기를 보고 싶었다.

그래야.

'거둘지 버릴지 판단할 수 있지.'

연은 은쌍식을 데리고 한양으로 출발했다.

'잘 설득해야 할 건데···.'

하나뿐인 아들이자 차기 조선의 왕이 될 연이라 효종이 승낙할지 알 수 없었다.

* * *

한양에 도착한 연은 바로 효종을 찾아갔다.

혼인하자마자 떨어져 지낸 아내가 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언제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는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허락부터 받고 나서 말하는 게 낫겠지.'

연은 내관을 따라 창덕궁 후원으로 향했다.

봄꽃이 만발해서인지 후원의 정자는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폐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너라. 그러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효종은 주위를 물리친 후 말을 꺼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아버지. 모두 조선의 자식들이 용기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흐음···."

효종은 겸손하게 공을 돌리는 연의 말에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냐?"

효종의 물음에 연은 준비한 말을 꺼냈다.

"아버지, 당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쌀가마니는 누가 밟더라도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침략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응징해야 합니다."

"그건 당연한 말이다. 그래서 너는 놈들을 어찌할 생각이냐?"

"쳐들어가겠습니다."

"준비는 되어 있고?"

"네, 아버지."

효종은 연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자신을 닮아 잘생긴 연은 눈동자는 그지없이 맑았다.

결코 증오나 야망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네가 너무 크게 일을 벌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세상이 넓다는 건 알았지만, 그 넓은 땅의 반을 조선이 차지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연은 그것을 해냈다.

그것도 10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말이다. 너의 생각은 어디까지냐? 설마 모든 세상을 원하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아버지. 소자는 우리 조선이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만 힘을 키우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됐다."

내관이 차를 가지고 오자 잠시 대화가 중단됐다.

효종과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난 후 말을 꺼냈다.

"많은 군주들이 세상을 정복하려 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느냐?"

"힘으로 누르려 했기 때문입니다."

"흠···."

"아버지께서도 아시겠지만, 고무로 만든 축구공은 누르면 누를수록 높이 튀어 오릅니다. 이처럼 사람이란 누구에게 지배를 받을수록 반발이 거셉니다."

"잘 알고 있구나."

"그래서 소자, 아버지께 간청드립니다."

효종은 찻잔을 들려다가 다시 놓았다.

어째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벌써 다 컸나?'

전에는 표정만 보고도 알 수 있는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속을 알기가 힘들었다.

"말해 보거라."

"아버지, 이번 전쟁의 원흉인 루스 차르국의 황제를 잡으러 갈 생각입니다."

효종은 연의 표정을 보더니 놀라 물었다.

"설마, 네가 직접 가겠다는 말은 아니지?"

"맞습니다."

"크흠···. 아니 된다."

연은 이런 말이 나올지 당연히 알았다.

그래서 바로 준비한 말을 꺼냈다.

"소자, 비를 데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뭐, 뭐라고 했느냐?"

뜻밖의 말에 효종은 깜짝 놀랐다.

그곳이 어디라고 태자비를 데리고 간단 말인가.

하지만 효종은 연의 믿기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연유(緣由)를 말해 보거라."

"그곳은 아주 먼 곳입니다. 아무리 빨리 갔다 온다고 해도 1년은 넘게 걸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네가 꼭 그곳을 가야 할 필요가 있느냐?"

"네, 아버지. 그곳의 민심을 살피고 조선에 포함할지 아니면 버릴지 판단하고자 합니다."

"굳이 그곳을 조선에 포함할 필요가 있을까?"

효종이 생각하기로는 지금도 조선의 영토는 너무나 넓었다.

그런데 서쪽 끝에 있는 곳까지 진출해서 그곳까지 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곳은 조선과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왕이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곳은 언제 망할지 모릅니다."

"망하면 좋은 것 아니냐?"

"우리 조선 때문에 망한 자리에 누군가 들어와서 힘을 기른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흐음···."

효종은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자신 또한 청나라의 침략으로 이를 갈지 않았는가.

그런데 조선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한다면 후환만 키우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곳에 가서 백성들의 민심을 살피겠다고 한 게냐? 백성들의 민심을 조선에 우호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니고?"

"맞습니다. 아버지. 포기하고 오더라도 그들이 우리에게 원한을 갖지 않도록 만들어 놓고 오겠습니다."

"크흠···."

효종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연이 태자비를 데리고 간다고 했는지.

연은 1년이라고 말했지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자비와 함께 간다고 말했던 것 같다.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대신들과 상의도 해봐야 하니 이만 물러가도록 해라."

"네, 아버지."

연은 효종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태자비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일을 충분히 인지 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 * *

조선전력공사 해경 사령관인 해수는 멀리 보이는 항구를 바라보았다.

"신기하군. 이곳까지 오면서 보이는 건 황무지뿐이었는데 이런 곳에 발달 된 무역항이 있다니."

신의주를 지키고 있는 조선전력공사 제2사단장인 신수가 해수 곁으로 다가서며 말을 붙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는군요."

"춥기만 한 예맥의 땅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조경함 3척은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박하고 있었다.

사파비 제국의 수도인 이스파한을 점령하는 곳이 목적이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해수는 출항하기 전에 연이 당부한 말이 떠올랐다.

'굳이 저항하거나 덤비지 않으면 윽박 하지 말거라.'

'놈들은 우리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모두 적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들은 우리처럼 나라에 충성하지 않을 거라는 조서원의 보고가 있었다. 그러니 적대하지 않는 게 좋을 듯싶다. 적을 만들어서 좋을 게 없지 않으냐?'

그런 말을 들었기에 해상에 조경함을 정박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해수는 육경 2사단 병력을 새로운 전함을 태우고 페르시아만 깊숙한 곳에 있는 부셰르까지 왔다.

급히 명령을 수행해야 했기에 대만에 있는 산토도밍고 요새를 들르지 않고 마닐라로 직행했다.

그곳에서 과일과 식수를 보충한 해수는 다시 믈라카 해협이라 부르는 싱가포르 해협을 지나 스리랑카를 거쳐 페르시아만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12,000km나 되는 먼 거리였지만, 조경 5, 6, 7호선은 거침없이 항해 했다.

길이 100m에 폭이 30m나 되는 새로운 함선은 선체의 철판 두께가 전과 같이 3cm였지만, 별도로 나무 구조가 필요 없었다.

망간을 20%나 첨가한 고망간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철도의 선로를 만들면서 망간을 함유한 철이 인성과 인장강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망간의 함량을 지속해서 높여 새로운 고망간강을 만들어 냈다.

끊임없는 연구원들의 노력으로 21세기 LNG 선박에서나 사용하는 고망간강을 벌써부터 사용할 수 있었다.

단지 노력뿐만 아니었다.

엄청난 인원과 시설을 투입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21세기라면 높은 임금과 투자비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밥만 먹여주면 되는 세상이라 가능했던 거였다.

물론 밥만 먹여주지 않았다.

조선전력공사 연구원들은 최상의 대우를 받았다.

원하기만 하면 한양이든 평양이든 경호를 받으며 놀러 갈 수 있었다.

은쌍식과 은진이의 집처럼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최고급 현대식 집을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도 연구원들은 은동리 기숙사에서 지내는 걸 좋아했다.

언제라도 식당에 가면 공통의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었다.

신기한 개발품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왔다.

놀 것이 없는 세상에서 연구원들에게 은동리는 하나의 놀이터였다.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는 법.

은동리의 연구원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겼다.

꼰대라 부를 만한 사람이 없는 은동리다.

그랬기에 새로운 함선도 빠르게 개발할 수 있었다.

새로운 조경함은 갤리온의 포격 정도는 튕겨낼 수 있는 강도를 지녔지만, 암초에 좌초될 수 있기에 다양한 기술을 추가해 넣었다.

나무 구조물이 없는 새로운 함선은 격벽의 원리를 도입했다.

물 조절(Ballast Water) 통도 달았다.

평형수가 있어야 배가 더 안정적이라는 연의 말에 수도 없이 반복한 실험으로 최상의 결괏값을 알아냈다.

다음날, 해수는 멀리서 다가오는 쪽배를 보았다.

"인제야 오는군."

"그렇군요.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온 건지 알기에 겁이 났을 겁니다."

"그랬겠지."

해수는 쪽배가 다가오자 작전 참모에게 말했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자."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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