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19화 (119/275)

< 119. 응징(3) >

"용식아, 무수 요새에 있는 조선군 사단을 현두 요새로 보내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연의 말을 들은 정용식은 묻지 않았다.

사장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명령에 따라 수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진행하는 데 있어 의심이 들거나 의문점이 있으면 연에게 바로 물어보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배웠고,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의 전통이 되었다.

'일단 수행하고 문제가 있으면 즉시 보고하라!'

이번 전쟁에서 서맥과 현두 요새 가운데에 있는 무수 요새는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

북쪽과 남쪽에서 쳐들어온 놈들은 두 곳을 먼저 점령한 후, 무수 요새로 동시에 진격하기로 협의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현두 요새에 있는 1개 예맥 기병연대와 조선군 1개 연대 그리고 카자크인들을 동원해서 포로들을 무수 요새로 데리고 가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정용식의 대답이 끝나자 은쌍식이 물었다.

"사장님 포로들을 어디에 쓰시려고 합니까?"

"쓸 곳이야 많지 않겠느냐? 수로도 파고, 광산도 개발해야 하고, 농지도 만들고, 길도 내고, 철도도 건설해야지."

"그런데 그 병력 가지고 되겠습니까? 포로들은···."

은쌍식은 정용식을 보며 물었다.

"몇 명이나 된다고 했지?"

"20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사장님, 1만 명도 안 되는 병력이 어떻게 20만 명이나 되는 포로들을 관리합니까?"

"카자크 농병들이 있지 않으냐?"

"그들은 말이 병사이지 농노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기병연대와 조선군 연대를 딸려 보내는 것 아니냐?"

연은 은쌍식의 입이 또 열리기 전에 정용식에게 말했다.

"아무튼 카자크 농병들에게 놈들에게 수거한 총을 주고 훈련을 시키라고 해라. 그런 다음 바로 출발하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놈들이 가지고 온 허접한 머스킷은 무려 10만 정이 넘었다.

그중 절반 이상을 폐기한다고 해도 카자크 농병들을 무장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 총도 한 번 봐야 하는데···.'

연은 어떻게 만든 것인지 보고 싶었다.

아무리 급조했다고 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10만 정이나 되는 총을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전력공사 아니고 선 힘들어 보였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불길한 느낌이 온몸을 스쳤지만, 연은 또 다른 무기를 개발 중이었기에 무시하고 넘어갔다.

"용식아, 농병들에게 총을 쥐여 준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 그러니 기병대와 조선군 병사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어 포로들이 사고 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사장님."

정용식의 대답이 끝나자 은쌍식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장님, 그럼 바로 모스크바로 진격할 수 있는 겁니까?"

"이미 늦었다. 전열을 가다듬고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은쌍식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현두 요새에서 모스크바까지 거리는 약 1,500km이다.

대부분 포로로 잡았지만, 도망친 놈들이 있었다.

인제 와서 놈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따라서 며칠 안에 이번 전쟁 결과가 퍼질 것이고, 루스 차르국 황제 또한 알게 될 게 틀림없다.

'런조처럼 도망가려나?'

루스 차르국의 제8대 차르이자 표트르 대제의 아버지인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로마노프는 로마노프 왕조의 기초를 다진 차르였다.

상당히 온화하다고 하지만, 강단이 있는 자였다.

그랬기에 조선에 사죄하지 않고 이 사태를 만든 거였다.

물론 책략가인 야코프의 말을 듣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알렉세이 1세 또한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1645년, 알렉세이 1세는 16세에 아버지 미하일 1세의 뒤를 이어 차르의 자리에 올랐다.

1648년 소금 반란으로 섭정이자 조언자였던 매부이자 가정교사인 보리스 이바노비치 모조로프를 추방하고 모스크바 시민들을 달랬다.

하지만 4개월 후에 시민들 몰래 보리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시민들을 기만한 거다.

1649년, 알렉세이 1세는 새로운 러시아 법전을 만들고 농노제를 합법화했다.

시민들을 합법적으로 옭아맬 수 있는 법을 만든 것이다.

그런 만큼 알렉세이 1세는 만만히 볼 수 없는 이였다.

연은 조서원의 조사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이나 다름없는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연합하고 사파비 제국을 끌어들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위험한 놈이야. 죽여야 해.'

그래서 연은 놈이 도망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장열차 수리가 끝나면 바로 진격하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참 그리고 무장열차의 연료인 경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

연은 여차하면 콩기름을 짜서 연료로 사용하라고 했다.

그런데 예맥해 서쪽 바쿠에서 노천 유전이 있다는 사실을 기수가 알아냈다.

기수는 즉시 원주민들에게 부탁하여 기름을 싣고 오라고 했다.

그와 동시에 무수 요새에 있던 동식이와 연구원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들이라면 원유에서 경유를 정제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사장님. 동식이가 연구원들과 합심해서 경유를 뽑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잘 됐구나."

21세기에 디젤차에 사용하는 고품질의 경유라면 몰라도 단순하게 경유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경유의 끊는 점은 250~350°C이다.

275°C까지 올렸을 때 그동안 발생한 가스는 모두 날려버리고 그 이상 온도에서 나오는 가스를 포집하면 된다.

물론 순수한 경유가 아니라 이것저것 성분이 섞인 혼합물이지만, 콩기름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럼 모스크바 진격은 해결됐고, 사파비 놈들이 문제네."

연이 중얼거리자, 은쌍식이 나섰다.

"사장님. 사파비와 무굴 놈들도 바로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양면 전쟁은 2개의 전선을 형성하기에 불리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하지만 연은 사파비와 무굴제국 또한 그냥 두지 않을 생각이다.

"그럼 기수가 사파비로 쳐들어가는 겁니까?"

"그건 아니다."

"네?"

"그곳은 예맥 기병대만 보낼 것이다."

"에예? 무장열차도 보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험준한 엘브르즈산맥을 무장열차가 어떻게 가겠느냐?""아···, 예."

은쌍식은 아쉬워했다.

자신이 고안해 만든 무장열차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갈 수 없다고 하니 기운이 빠졌다.

"사장님, 서맥에 주둔하고 있는 예맥 기병대라고 해봐야 2개 연대밖에 되지 않습니까? 기수가 이끄는 기병연대도 보낼 생각이십니까?"

"그건 아니다. 서맥 요새에도 기병대는 필요하니까."

서맥 요새에는 예맥 기병대만 있지 않았다.

기수가 이끄는 조선전력공사 기병대 중 최고라 부르는 기병대원들이 모여 만든 기병연대가 있었다.

그들은 실전을 쌓고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기 위해 항상 최전선에 배치됐다.

"그럼 너무 적은 인원 아닙니까?"

"대신 해수가 있지 않으냐?"

"해수요?"

"잊어버린 게냐?"

"무슨 말씀이신지···."

"해수가 도착해서 진격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지 않았느냐?"

"받긴 했는데···."

은쌍식은 말을 하다 말고 눈만 껌뻑거렸다.

분명 전해 들었다.

해수가 이끄는 함선들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하지만 전쟁이 끝나 버렸다.

그래서 뭔 일 있겠냐 싶어 신경 쓰지 않았다.

"함선에 육경 대원들이 타고 있는 건 알지?"

"네, 사장님."

"그들은 바로 사파비 제국의 서울인 이스파한으로 진격하고 있다."

"참말입니까?"

"쯔쯔···."

연은 은쌍식을 보고 혀를 차면서 작전판을 가리켰다.

"저기 다 나와 있는데 보지 못했느냐?"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송림 제철소를 갔다 오느라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은쌍식은 자신이 고안한 무장열차가 자랑스러웠다.

미리 만들어 놓은 기관차와 화차를 개조해 만든 무장열차가 있었기에 한겨울에 현두와 서맥 요새로 지원군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장열차가 있었기에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었다.

그러니 어찌 자랑스럽지 아니하겠는가.

하지만 그 때문에 심양까지 연결하는 기차 개통식이 늦어졌다.

원래는 압록강 철교가 완공되면 개통식을 하려고 준비했지만, 만들어 놓은 기차를 다른 곳에 써버렸다.

그런 연유로 은쌍식은 송림 제철소로 간 거였다.

빨리 기관차를 만들어야만 심양이나 산해관까지 운행을 할 수 있을 터이니.

"그래, 갔다 온 일은 잘됐느냐?"

"네, 사장님. 급한 대로 다음 달 말까지 기관차 두 대를 완성해 놓는다고 했습니다."

"설마 굴삭기(Excavator) 생산을 미룬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만들어 놓은 디젤 엔진이 충분해서 추가 인력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굴삭기 생산을 늦추면 안 된다."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

굴삭기 한 대면 사람 백 명이 온종일 할 일을 1시간도 안 돼서 해낸다.

따라서 굴삭기를 빨리 만들어 내야만 확보한 영토를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

발해만에서 시작된 송유관 공사가 생각보다 지지부진했다.

2m 깊이 땅을 파고 송유관을 묻어야 하기에 쉽지 않았다.

그런데 굴삭기만 있으면 가장 힘든 땅 파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사장님, 그런데 무굴 놈들은요?"

은쌍식의 물음에 연은 씩 웃었다.

"사파비를 친 후 무굴로 가도 늦지 않다."

"네?"

"준가르가 있지 않으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가끔 기발한 생각을 하는 은쌍식이지만 뭔가에 꽂히면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무장열차와 기관차, 굴삭기까지 신경 쓰다 보니 준가르 왕국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연은 준가르 왕국과 있었던 일을 설명 해줬다.

다른 이들도 듣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자세히 알려줬다.

"······그래서 준가르 왕국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먼저 준가르가 무굴제국을 치고 있는 사이에 사파비부터 치고 넘어가면 된다. 이번에 훈련을 마친 조선군을 함께 보내면 좋겠지만,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아···, 알겠습니다."

무굴제국은 시간을 두고 공략하기로 했다.

'영국이 한 것처럼 해야겠지.'

조서원은 일전에 무굴제국의 사신으로 온 이로부터 정보를 받고 있었다.

델리에 파견한 조서원의 요원이 보내 정보에 의하면.

대륙보다 더 많은 인구가 사는 무굴제국이지만, 지역별로 분리되어 있었다.

무굴제국은 강력하긴 하지만, 조선처럼 모든 행정을 중앙에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관리들에게 세금 징수권을 주고 그 돈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다.

넓은 영토를 확장했지만, 조선처럼 무선통신이 없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보고였다.

그런데도 자한 1세는 죽은 황비의 무덤을 짓는다고 국고를 낭비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샤 자한 나바드를 델리에 짓고, 카슈미르에 777개의 정원을 짓고 있었다.

'이제부터 망해가는 시기지. 내가 그 시기를 앞당겨 주지.'

연은 인도 쪽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히말라야산맥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조선전력공사의 고객이라 생각했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감히 조선을 침공해!'

열식발전기와 전구를 보내줬지만, 이젠 무굴제국은 쳐야 할 적일 뿐이다.

'타지마할이 완공된 이후로 망해가지.'

지금은 무굴제국이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얼마 가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거대한 공사가 끝나면 제국이라도 무사하지 못했지.'

과거부터 수많은 군주들이 치세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세우려고 무리하게 건물을 짓거나 토목공사를 하면서 망해갔다.

광해군만 하더라도 왜란 직후에 굶어 죽는 사람이 팔도에 천지인데도 궁궐을 짓는다며 무리하다가 쫓겨났다.

대륙의 수(隋) 왕조는 군대까지 동원해서 운하를 파다가 붕괴했다.

같은 예는 아니지만, 20세기에도 '마천루의 저주'라 일컫는 일은 수도 없이 발생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된 1931년은 세계 대공황이었다.

세계무역센터와 시어스 타워가 들어선 1970년대에는 석유 파동으로 사상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이 발발했다.

1991년 도쿄도청, 1993년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가 완공된 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면서 20년, 30년 동안 이어졌다.

물론 연은 그런 것을 믿지 않았다.

'무리했기 때문이지. 저주는 아니야.'

연은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군주나 지도자의 욕심으로 인해 무리하게 일을 벌여서 발생한 거라고 봤다.

'아니면 상황 파악을 못 해서던가.'

공식이가 근무했던 곳은 세계적인 전자통신연구소였지만, 시대에 뒤처진 엉뚱한 기술에 매달리다가 발목 잡힌 일도 있었다.

그랬기에 연은 항상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누구라도 궁금하면 물어보라 했고, 그걸 귀찮아하지 않고 대답해줬다.

밤이 깊어갔지만, 은동리는 밝기만 했다.

곳곳에 지어진 연구소에서 밤도깨비 같은 연구원들이 돌아다녔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동무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다.

비록 대승을 거두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두가 열심이었다.

연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전력공사 핵심 직원들은 무굴제국을 공략하기 위해 단계별로 작전을 세분화시키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은쌍식이 작성된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이 내용을 한번 봐주십시오."

"이리 줘봐라."

연은 내용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정리됐구나. 즉시 선식이에게 보내 알리도록 해라."

"네, 사장님."

은쌍식이 전략회의실을 나가자 연은 조서원의 수장인 은진이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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