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대전쟁시대(19) - 지도 >
개조된 무장열차 두 량이 현두 요새 남동쪽에서 나타났다.
기관차의 양옆에 달린 거대한 고무바퀴부터 전체가 시커먼 색으로 칠해진 무장열차의 모습은 적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뿌아앙' 소리를 내지르면 달려드는 무장열차를 보고 루스 차르국 병사들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기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장열차가 햇빛을 받고 빛을 발하자 누군가 소리쳤다.
"용이다! 용이 나타났다!"
그 소리에 참호 속에 숨어있던 병사들까지 고개를 내밀었다.
"저, 저, 저, 저건!"
아무리 봐도 전설 속에 나오는 용이 틀림없었다.
원래는 길쭉해야만 했던 기관차지만 양옆에 달린 커다란 고무바퀴 때문에 통통해 보였다.
게다가 빛에 반사되어 날개가 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오해 할 수밖에.
"흑룡이 나타났다!"
동양에서 용은 성스러운 수호신이지만, 서양에서는 사탄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담이나 벽에 수호의 의미로 그려 놓는 동양의 용과 달리 서양의 용은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사악한 짐승이었다.
그래서인지 용이 나타났다는 말에 공포는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수십만 명이나 되는 적군들은 행동을 멈추고 자신들이 생각하던 용을 바라보았다.
하나 같이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하늘을 보고 중얼거리며 성호를 그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를 올리는 병사도 있었다.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 계시록'에 등장한 붉은 용은 대천사 미카엘과 전쟁하는 악마였다.
악과 어둠을 나타내며 인간에게 괴로움과 해를 주는 두려운 존재였다.
기온이 바뀌는 아침이란 그런지 달려오는 무장열차에서 새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본 병사들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무장열차에서 불꽃을 품으며 기관총이 발사되자 기겁하며 외쳤다.
"용이, 용이 불을 품는다!"
병사들은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오만하고 잔인하며 난폭한 성질을 부리는 용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약한 존재를 벌레처럼 여기며 재미로 죽인다는 용이 말이다.
그런 용을 본 병사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장열차는 사람이 달리는 속도보다 빨랐다.
거침없이 전장을 내달리는 무장열차에 의해 피하지 못한 병사는 그대로 깔려버렸다.
"으악···!"
공포에 질려 도주하는 병사들도 상황이 좋지않았다.
쏟아지는 총탄에 가슴이 뚫리고 머리가 깨져 나가면서 피를 뿌렸다.
아침 햇살에 반사되는 붉은 핏방울은 지옥 같은 풍경을 연출하였다.
도주를 포기한 병사들은 검은색으로 칠해진 무장열차를 보고 기도를 올리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지옥에서 현신한 것 같은 무장열차는 현두 요새 남쪽에서 공격하던 루스 차르국 병사들부터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무장열차가 북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참호를 파고 접근하던 폴란드-리투아니아 병사들 또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기관차 앞에 화차 위에 설치된 기관총에서 정신없이 총알이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옆구리를 기습당한 적들은 괴물을 향해 총을 쏴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최대한 철을 배제하고 철판-알루미늄-나무로 보호된 무장열차는 허접한 총에서 발사된 총알 따위는 무시했다.
잘해야 600m 정도 나가는 적의 대포를 맞아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도주를 포기한 병사는 참호 속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그게 바로 자신의 무덤이 될 줄은 몰랐다.
화차마다 무수히 많이 달린 고무바퀴는 참호를 깔아뭉개며 지나갔다.
참호 속에 숨어있던 병사는 그대로 땅에 파묻혔다.
다급히 대포를 돌려 겨냥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기관총에서 난사된 총알에 의해 포대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조103 기관총의 문제점을 개선해서 만든 조104 기관총은 가스 작동식이라 사용하기에 편했다.
방아쇠만 당기면 분당 600발 이상의 총탄이 쏟아져 나갔다.
조103 기관총은 PK 기관총을 본떠 만든 거였다.
하지만 문제점이 많아 개선하다 보니 PKP 페체네그(Pecheneg) 기관총과 같아졌다.
조103 기관총보다 무겁지만, 강제로 공기가 공급되게 설계되었기에 명중률뿐만 아니라 내구성까지 좋아졌다.
4방향으로 뚫린 방사형 소염기는 냉각 효과뿐만 아니라 연기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기에 조준하기도 편했다.
전설에나 나오는 용처럼 철갑으로 무장한 거대한 무장열차가 나타나 전장을 휩쓸자 적들은 저항 의지를 집어던졌다.
땅에 엎드린 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와···!"""
현두 요새에서 열광적인 환호성이 쏟아졌다.
성루와 보초탑에 있는 대원들과 병사들은 총을 놓고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댔다.
그때마다 무장열차에서 '뿌아앙' 소리로 응답을 해줬다.
오늘 지원군이 도착한다고 했지만, 언제 올지 몰랐다.
전날부터 지속된 전투로 인해 총알도 떨어져 갔다.
피곤함과 함께 잠도 쏟아졌다.
이러다가 몰살당하는 것이 아닌지 겁이 났다.
그런데 날이 밝자마자 지원군이 나타났다.
그것도 고향 갈 때 신의주에서 봤던 반가운 기차 모양을 한 지원군이었다.
지원군이 나타나자 적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주하거나 엎드렸다.
보초탑에서 기관총 부사수를 하던 창공이는 가슴이 뿌듯함을 느꼈다.
천근처럼 무거워진 눈꺼풀을 치켜뜨고 환호성을 질렀다.
"대원님. 멋지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정말 멋지다."
다른 표현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냥 멋졌다.
창공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언젠가는 나도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 대원들과 병사들을 지원할 거야.'
창공이는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목에 걸린 하얀 수건을 높이 들어 휘저었다.
창공이뿐만 아니었다.
요새 안에 대기하던 병사들까지 성루 위로 올라왔다.
도주하는 적들의 모습을 보고 창공이처럼 수건을 높이 들고 휘두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야···!"""
"""멋지다!"""
동시에 현두 요새의 모든 문이 활짝 열렸다.
대기하기 있던 예맥 기병대가 출동했다.
여차하면 성루로 올라가 전투에 참여하려던 기병대원들은 힘차게 박차를 가했다.
도주하는 적을 향해 말을 몰면서 조3 소총을 겨냥했다.
12연발이나 되는 총탄이 떨어지면, 조201 리볼버 6연발 권총을 꺼내 쏘았다.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나가는 적들.
겁에 질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멍하니 서 있는 적들.
어찌 됐든 살겠다고 도망을 치는 적들.
하지만 예맥 기병대가 출동하자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더는 대항할 수 없다는 공포심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 나와 온몸을 지배한 거다.
순식간이었다.
밤새도록 지겹게 총격을 벌였건만, 거대한 고무바퀴가 달린 무장열차가 나타나자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 * *
서맥 요새도 다르지 않았다.
전날 기습으로 인해 불타버린 진지를 복구하던 놈들에게 괴물 같은 무장차량이 나타났다.
오는 동안 문제가 있어서 수리를 하느라 늦게 출발했던 또 다른 무장열차 두 량이 '뿌아앙!' 소리를 내지르며 어수선한 적의 진지로 파고들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다시 말한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무기를 버리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진지를 덮졌다.
항복하라는 소리와 함께 '두두둥 두두둥' 총알이 빗발처럼 쏟아져 나왔다.
불타버린 막사든 온전한 막사든 가리지 않고 거대한 괴물은 거리낌 없이 뭉개며 진지 내를 휩쓸었다.
손에 총이나 칼, 창, 활을 든 자들은 가차 없이 사살됐다.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코끼리가 놀라 도망을 쳤다.
발에 묶여있는 쇠사슬에 의해 코끼리 우리가 무너지면서 폭삭 주저앉았다.
공포에 질린 코끼리가 도주하면서 놈들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재앙이 일어났다.
무장열차가 서맥 요새 주변을 휩쓸고 지나가자 서맥 요새의 모든 문이 열리며 예맥 기병대가 출동했다.
현두 요새에 있었던 일처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반항하는 모습만 보여도 무조건 사살하라!"
"""멸!"""
그동안 참고 참았던 울분이 폭발했다.
기병대원들은 진지를 버리고 도망가는 적들을 추적하여 가차 없이 사살했다.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는 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도망치는 놈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놈들을 잡으러 가기에도 바빴다.
서맥 요새를 둘러싸고 포위했던 놈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죽어라 도주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곳곳에 흐르는 강줄기 때문에 도주하기가 용이치 않았다.
파인 웅덩이 때문에 말에서 굴러떨어지는 놈도 있었다.
어떤 놈은 말을 타고 강이나 호수로 뛰어들었다.
수십만 명이나 되는 적병들은 7천 명밖에 되지 않는 기병대원들에 의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너무나 많은 적들이 도망을 갔기에 모두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의를 상실하고 무기를 버린 놈들의 수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기수는 서맥 요새 본부 옥상에 올라가 이런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기병대원들이 넓게 퍼져서 적들을 몰아 오는 모습을 보고 기수는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인상을 썼다.
"다 죽일 수도 없고···, 골치 아프군."
너무나 많은 포로 때문에 기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청나라와 전쟁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말이 통했기에 관리하기가 편했다.
하지만 이놈들은 말은 물론 문화조차 다른 놈들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대승을 거두고서도 당황스러웠다.
"사령관님, 저놈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나도 모르겠다."
기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뭔가를 봤는지 말했다.
"일단 저 호수에 처박아 놔라."
작전 참모는 기수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서맥 요새보다 몇 배나 넓은 벌이나 다름없는 호수가 동쪽에 있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작전 참모가 지시를 내리자 기병대원들은 양 떼를 몰 듯 포로들을 호수 안으로 몰아넣었다.
다행히 깊지는 않았지만,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벌이라 놈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전부 죽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놈은 악을 쓰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총알이 그를 마중 나갔다.
멋지게 차려입은 놈이 정중하게 예를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기에 대원은 총을 겨누며 호수 안으로 들어가라고 윽박질렀다.
놈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탕!
누군가가 손 총탄에 피를 흘리며 놈은 쓰러졌다.
그런 이후로 대들거나 반항하는 포로들은 없었다.
전장이 정리되자 기수가 말을 타고 무장열차로 다가갔다.
기관차 앞에 설치된 기관총을 덮고 있는 탑이 열리면서.
"멸!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아니다. 이렇게 와줘서 고맙구나."
기수는 무장열차를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원군이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터라.'
친구이자 육경 사령관인 정용식의 말에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지원군이 온다는 것인지 기대가 대었다.
그런데 기차를 개조한 무장열차라니.
"대단하군."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사장님께서 고안하신 거냐?"
"아닙니다. 은쌍식 실장님께서 제안하셨다고 합니다."
"음···."
조선전력공사의 첫 번째 직원이자 2인자인 비서실장님 또한 대단한 과학자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은쌍식은 자신이 생각한 무장열차가 대활약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연과 함께 늦은 점심으로 불면을 먹고 있었다.
"불맛이 생각보다 좋구나."
"한 그릇 더 드시겠습니까?"
"아니다. 이거면 됐다."
생각보다 훨씬 진한 불맛이 나는 불면은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인지 연은 얼큰한 국물맛이 떠올랐다.
"여기다 국물만 부으면 짬뽕이 되겠구나."
"짬뽕이요?"
은쌍식은 두 그릇째 먹다가 새로운 단어가 나오자 눈을 반짝거렸다.
"이것저것 썩었으니 짬뽕 아니냐?"
"그런 말도 있었습니까?"
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에서 짬뽕이란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짬뽕'이라는 말은 중국 말로 '밥 먹었니?'를 뜻하는 츠판(吃飯)이 변했다는 설.
중국 국수가 일본으로 건너가 짬뽕(ちゃんぽん)이 되었다는 설.
아무튼 정확한 건 없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중식이다.
그런데 연은 여러 가지를 섞는다는 의미로만 알고 있었다.
아무튼 은쌍식은 새로운 단어가 나오자, 수첩을 꺼내 적었다.
생각보다 영리한 은쌍식은 대식가이자 미식가이기에 불면을 만드는 숙수에게 말할 게 틀림없었다.
아마 며칠 안에 짬뽕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둘이 맛있게 불면을 먹고 있는데 비서실 소속인 민삼이가 다가왔다.
"사장님. 전쟁이 끝났다고 합니다."
"그래?"
연은 결과를 묻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끝났다는 의미는 지원군이 도착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얀 면 수건으로 입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난 연은 은쌍식에게 말했다.
"쌍식아, 모두 불러 모아라."
"네, 사장님. 이제 응징할 차례입니까?"
"그렇지!"
연은 고개를 끄덕이곤 발걸음을 옮겼다.
은쌍식 또한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