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15화 (115/275)

< 115. 대전쟁시대(18) - 지도 >

멀리서 밝게 빛나는 불꽃이 치솟자 보초탑에 있던 창공이가 벌떡 일어났다.

"대원님, 저기 좀 보십시오."

"뭔데?"

보초탑 벽에 기대 쉬고 있던 두현이와 누워서 잠을 청하던 병사들이 깨어나 일어났다.

"아까 낮에 기병대원들이 모이더니 기습한 모양입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무슨 불빛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쿠우웅' 하는 소리까지 들리며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새로운 무기로 공격한 게 아닐까요?"

창공이의 물음에 두현이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적진을 바라보았다.

그와 달리 다른 병사들도 창공이처럼 새로운 무기로 공격했다고 생각했다.

-펑! 펑!

요새에서 전직을 향해 대포가 발사되는 가운데 기수는 치솟는 화염을 보고 신음을 내뱉었다.

"사령관님, 불꽃이 엄청납니다. 화공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흐음···."

기수는 서맥 요새보다 둔덕을 높게 쌓아 올리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동안 미칠 것 같았다.

적들이 가지고 있는 대포의 성능이라면 아무리 높이 쌓아 올린다고 해도 요새까지 포탄이 날아 올 일은 없었다.

'무슨 이유로' 저런 짓을 하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알아냈다.

'화공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군.'

둔덕 너머로 보이는 불빛은 더 커졌고 넓어져 갔다.

이렇다는 의미는 기름 때문일 것이다.

준비해 놓은 기름 항아리가 터져 버리면서 적진을 휩쓸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사령관님. 불길이 수로를 따라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저 정도는 괜찮으니 염려 말아라."

"아···,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미리 기름을 수로로 흘려보냈다면 다르겠지만, 폭발로 인해 발화된 기름이 넘쳐 수로를 따라 오는 정도는 문제없어 보였다.

"큰일 날 뻔했군."

"그러게 말입니다. 역시 사장님께선 최고의 전략가이십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비록 육군 병장 출신이지만, 연은 현대식 군사교육을 이들에게 가르쳤다.

그것만 해도 총과 대포를 무기로 쓰는 경비대와 조선군에게는 충분했다.

한데, 문식이와 비교할 수 없지만, 연 또한 대체 역사 광이었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전략의 신과 같았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발생한 불길로 화공을 준비하던 사파비-무굴 동맹군 진지는 난리가 났다.

싣고 온 기름 항아리가 연달아 폭발하면서 불붙은 파편이 되어 진지 곳곳으로 날아가더니 떨어져 내렸다.

깨진 항아리에서 흘러나온 기름은 화염을 싣고 사방으로 번져 갔다.

그로 인해 막사에 옮겨붙은 불길은 꺼질 줄 모르며 타올랐다.

막사 안에서 자다가 뜨거운 불길에 놀라 깨어난 적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온몸이 불에 타며 비명을 지르는 병사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헤매었다.

그 덕분에 불길은 더욱 번져 나갔다.

사파피-무굴 동맹군은 둔덕을 쌓고 화공을 준비했지만, 되려 역공을 당했다.

조선군이 요새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준비했건만, 어찌 알았는지 기습을 당했다.

장수로 보이는 자가 불에 타 달려오는 병사를 칼로 베어 죽이고 난 후 소리쳐 외쳤다.

"뭐 하고 있나! 더 번지지 않게 막사 사이를 먼저 띄워라!"

기름띠와 함께 실려 온 불길을 보고 물을 끼얹는 멍청한 병사를 노려보며 장수는 발로 땅바닥의 찼다.

"물은 소용이 없다는 걸 모르느냐? 불길이 넘어 오지 않게 흙으로 막아라!"

하지만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병사는 멀거니 장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조선군 병사가 되려면 신병 교육대에서 기초적인 것을 배워야 한다.

간단한 것이지만, 과학에 대해서도 교육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도 모르는 사파비-무굴 동맹국 병사들에게 상식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병사들은 오직 적을 죽이는 것만 배운다.

그것도 정식으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 진급하기 위해서 눈치껏 배워야 하는 것이다.

답답한지 장수는 자신의 칼로 땅을 파 불길을 막았다.

서맥 요새 남쪽에 있는 놈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밤이 되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북쪽에 진을 치고 있던 놈들은 예맥해에서 불어온 바람에 의해 불길이 더욱 빠르게 번졌다.

불꽃이 날아와 쌓아 놓은 화약까지 터지며 무거운 대포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여기저기서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벌어지며 참상(慘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군량부터 옮겨라!"

급속도로 커지는 불길에 사파비-무굴 총사령관은 진지를 벗어나 후퇴했다.

자신이 기거하던 화려한 대형 막사가 불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본 사령관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감히! 감히!"

화공을 준비했는데 역으로 당했다.

절대 요새를 벗어날 것 같지 않았던 놈들이 기습하다니.

"모두 껍질을 벗겨 죽여버리겠다!"

자신이 세운 전략이 허망하게 무너지자 분노가 불길보다 더 높게 치솟았다.

은쌍식이 말한 '불맛'에서 실마리를 얻은 연에 의해 놈들은 아닌 밤중에 지옥과 같은 재앙을 맞이하고 있었다.

* * *

그와 달리 현두 요새에서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날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는 해가 지고 어두워졌는데도 끝나지 않았다.

-펑! 펑!

하늘 높이 조명탄이 떠올라 밝게 비추는 사이에 양측의 총격전은 치열해져 갔다.

-무리하지 마라!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몸을 보호하라!

-놈들이 다가오면 밀떡 폭탄을 쏘라!

-곧 지원군이 온다고 하니 총알을 아끼지 말고 퍼부어라!

작전 참모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보초탑 위에 있는 창공이도 열심히 탄창을 갈아 끼웠다.

두현이 또한 조101 기관총의 총신이 빨갛게 익는데도, 손잡이를 돌리느라 손가락 사이에 물집이 잡히는 데도, 연신 사격을 가했다.

'두두둥' 거리는 소리와 함께 참호에서 고개를 내민 놈들을 향해 가차 없이 총알을 쏟다 부었다.

저격병들 또한 보초탑 사이에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 총구를 내밀고 방아쇠를 당겨서 두더지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예맥 기병대원도 거들었다.

화살에 밀떡 폭탄을 붙여 적을 향해 날렸다.

그 덕분에 놈들은 철조망 근처까지 오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들리지 않았다.

총소리로 인해 귀가 먹었는지 옆에서 말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적을 향해 총을 쏘았다.

적을 파악하기 위해 솟아 올린 조명탄도 어느새 다 떨어져 갔다.

다행이라면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적들이 쏘는 총에 의해 발생한 연기로 인해 적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피곤함에 전 눈을 힘겹게 뜨고 흐릿한 윤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어느덧 해가 떠올랐다.

태양의 붉은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놈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작정했는지 죽고 죽으면서도 달려들었다.

참호에 쌓여가는 시체를 밖으로 던져 둔덕을 더 높게 쌓았다.

허접한 총으로 쏘다가 총신이 터져 나가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직 화약과 총알을 장전하고 요새를 향해 쏘기 바빴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그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조선군 병사 중에 공황(恐慌) 상태를 보이는 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장교들이 나서서 그들은 성루 아래로 끌어내렸다.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놈들이 다 죽을 때까지 해야 하지 않겠냐?"

"하!"

코에서는 화약 냄새가, 입안에서는 고약한 마늘 냄새가 풍겼다.

"이러다 점령당하는 것 아닙니까?"

"불길한 소린 꺼내지도 마라!"

뻘겋게 익어버린 총을 놓고 다른 총을 잡아 든 대원은 장전하고 노리쇠를 후퇴한 후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탄이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빠아앙! 빠아앙!

"이건 기차 기적 소리 아닙니까?"

"어? 맞는데."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본 병사가 외쳤다.

"기차다!"

"지원군이 왔다!"

틀림없었다.

고향에 갈 때 신의주에서 타고 갔던 기차였다.

어떻게 이곳에 기차가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지원군이 왔다.

* * *

연이 현두, 무수, 서맥 요새를 지원한 방법을 찾고 있을 때 은쌍식이 의견을 제시했다.

'사장님. 서쪽 최전방까지 갈 수 있는 차를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말이냐?'

북녘땅에 추운 겨울이 찾아오자 세상이 모두 얼어붙었다.

그래서 지원군를 보낼 수가 없었다.

'혹시 탱크를 만들자고 하는 것 아니지? 탱크를 만든다고 해도 띠 바퀴가 견딜 수 있는 거리는 잘해야 400km 정도라 안 돼.'

'에이, 그걸 어떻게 바로 만듭니까. 터무니없습니다.'

은쌍식은 송림 제철소 옆에 중장비 공장을 지으면서 티 바퀴라 부르는 캐터필러(Caterpillar)에 관한 개념을 알고 있었다.

탱크에 관한 설명도 들었다.

그래서 연은 은쌍식이 탱크를 만들자는 말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은쌍식이 말한 건 바로 기차를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지금 압록강 다리가 완공되면 심양까지 운행할 기차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기차를 이용하자는 말입니다.'

'무슨 소리냐? 기차는 선로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어.'

연의 말에 은쌍식은 자부심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큰 바퀴를 달면 되지 않겠습니까?'

'응?'

'기차를 최대한 가볍게 다시 조립하고 큰 바퀴를 달면 땅에서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연은 은쌍식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은쌍식의 아이디어는 현대인의 상식으로 고정된 자신과 달랐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쇠바퀴 대신에 고무바퀴라···.'

아이디어는 참신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무거운 기차를 지탱하려면 엄청난 양의 고무가 필요했다.

'지금 그걸 만들 고무가 없어서 불가능하다.'

'하···! 아쉽네요. 고무만 있으면 되는데.'

합성 고무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탄력이 문제였다.

'폴리우레탄(Polyester Urethane)을 개발했어야 했나?'

모든 면에서 우수한 특성이 있는 폴리우레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아직 없었다.

하지만 천연 생고무라면 무거운 기차를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연 고무액만 있으면 내마모성이 좋고 단단하고 질기고 인열강도까지 우수한 생고무를 만들 수 있었다.

첨가물을 조절해 강도를 실험해봐야 하겠지만, 며칠이면 된다.

가공성이 좋기에 최상의 값을 얻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고무만 있으면 되는데···. 어디서 고무가 뚝 떨어지면 좋을 텐데···.'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없자, 은쌍식은 온종일 고무만 중얼거리고 다녔다.

그러던 와중에 마닐라에서 천연 고무액을 찾아냈다고 하자 연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싣고 오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 기차에 사용할 고무바퀴를 설계하고 틀을 만들었다.

제일 문제는 조향장치와 차동장치였다.

기차의 경우에는 조향장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선로를 따라가면 되기에 핸들을 틀 이유가 없었다.

차동장치 또한 필요 없었다.

수많은 실험 끝에 기차가 곡선을 따라갈 때 양쪽 바퀴를 보정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건 바로 기차 바퀴를 원뿔 형태로 만들면 된다.

원뿔처럼 바깥쪽은 짧고 안쪽이 길게 기차 바퀴를 만들면 선로를 따라 회전할 때 오차를 알아서 바로잡는다.

원심력에 의해 중심이 자동으로 이동되면서 양쪽 두 바퀴의 회전 거리가 보정되는 거였다.

하지만 고무바퀴가 달린 기차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연구하면서 조향장치와 차동장치를 개발하고 있지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탱크처럼 각기 다른 엔진을 쓰기로 했다.

연은 즉시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을 불러 동력 전달 구조를 변경하라고 명을 내렸다.

기관차 안에는 8기통 엔진 두 대가 내장되어 있다.

한 대로는 힘이 부족하기에 두 대를 연결해서 사용한 거였다.

엔진마다 동력을 좌우 바퀴로 각각 전달하면 조향장치가 없어도 회전을 할 수 있었다.

차동장치는 만들지 않고 독립적으로 구르는 바퀴를 달기로 했다.

완성된 생고무로 만든 커다란 고무바퀴는 생각 이상으로 튼튼했다.

미리 여러 종류의 생고무를 만들면서 강도를 실험했다.

황과 흑연 분말을 첨가량을 조절해 최상의 결괏값을 얻었다.

그러는 와중에 철사로 촘촘하게 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수많은 철사가 얽혀있는 형상을 틀에 넣고 생고무 액을 부었다.

그래서 만든 바퀴는 무겁지만 단단하고 질겼다.

빙판을 예상해서 바퀴 표면에 징도 박아 넣었다.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짓이었다.

100톤 가까이 되는 기관차의 엄청난 무게로 인해 눈이건 빙판이건 압력에 의해 녹아내려 미끄러지는 일은 없었다.

한쪽 바퀴에 연결된 16,000cc나 되는 8기통 디젤 엔진은 400kw(536마력)나 되기에 거침없이 달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빠르게 이동할 순 없었다.

기관차 뒤에 경유와 보급품을 잔뜩 실은 4개나 되는 화차를 끌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엔진이 따로 놀기에 방향을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평지에서는 시속 30km 정도는 달릴 수 있었다.

계산상으로는 쉬지 않고 달리면 10일이면 6,000km를 주파할 수 있지만, 거대한 바퀴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옆으로 커져 버린 기차로 인해 때로는 길을 넓히는 작업도 해야만 했다.

다행이라면 파미르고원까지 가는 길이 평탄하다는 것이었다.

송림 제철소 옆 중장비 공장에서 부품을 만들어 급히 개조한 기차는 배에 실어 발해만으로 옮겼다.

그곳에서부터 출발한 기차형 무장열차는 현두 요새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두워지면 위험해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기병이 미리 가서 정찰하고 안내한다고 해도 산길은 위험했기에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큰 강을 만나면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늦을 수밖에 없었다.

50일을 예상하고 출발했지만, 훨씬 느린 80일이 되어서야 현두 요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뿌아앙! 뿌아앙!

기적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무장열차가 현두 요새를 공격하고 있는 적들을 향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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