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12화 (112/275)

< 112. 대전쟁시대(15) >

현두 요새는 둘레가 6km가 넘는 요새다.

2.5 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진 이 요새는 20세기 용산 미국기지보다 작지만 17,000명이나 되는 대원들과 병사들이 생활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렇게 넓게 요새를 만든 이유는 예맥 기병대가 보유하고 있는 말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변과 교역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현두 요새의 벽은 그리 높지 않았다.

기존의 성처럼 높은 성벽을 쌓아 봐야 쓸모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새 서쪽은 방어할 필요가 없었다.

현두강(이세티강) 물이 모여 형성된 넓은 호수가 있어서이다.

요새 남쪽과 동쪽 또한 현두강을 이용해 해자를 조성해 놓았다.

따라서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 놈들은 북쪽에 진을 치고 맹공격을 하고 있었다.

놈들은 철조망 근처까지 오지 않고 땅을 파서 둔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조선군 15사단장 현수는 명령을 내렸다.

"대포를 쏴서 날려버려라!"

"넵!"

사령관의 지시가 떨어지자 작전 참모는 즉시 마이크를 잡았다.

-대포 병은 즉시 포격을 준비하라!

-놈들이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전에 모두 날려버려라!

낌새가 이상한 것을 알고 연은 조선군 3개 사단을 현두, 무수, 서맥 요새로 나뉘어 보냈다.

그런데 조303 후미 장전식 대포를 딸려 보내지 못했다.

작지만 똘똘하다고 대원들이 '똘똘이 대포'라 부르는 조303 대포만 있었어도 놈들의 본진을 박살 내기에 충분했을 텐데 아쉬웠다.

6,000km나 되는 먼 거리를 급히 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똘똘이 대포는 막 생산 중이었다.

300만 발이나 되는 총알과 식량, 보급품을 운반해야 했다.

강철로 만든 전장식 대포만 해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봤다.

아무튼 3m 높이의 성루에 강철 대포의 포구가 전방을 향해 포신을 들어냈다.

"장전 완료!"

"장전 완료!"

"발사!"

"발사!"

-펑!

대포 병의 외침과 함께 포구에서 포탄이 불꽃과 함께 튀어 나갔다.

열심히 흙을 파서 둔덕을 만들고 있는 놈들에게 콘크리트로 가득 찬 포탄이 직격 했다.

포탄에 맞은 흙더미가 산탄 역할을 하며 주변에 있던 놈들을 넝마처럼 뚫어 버렸다.

펑! 펑! 소리와 함께 날아간 포탄에 의해 흙과 함께 놈들의 시신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곳곳에서 처참한 비명과 함께 찢어진 천 조각처럼 엉망이 된 놈들이 울부짖으며 도망쳤다.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견디지 못한 놈들은 후퇴 소리와 함께 퇴각 했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놈들이 후퇴하는데도 열받은 병사들이 그들의 뒤를 향하여 연신 방아쇠를 당기자 작전 참모가 소리쳐 외쳤다.

-총알을 아껴야 한다!

-사격 중지!

그제야 총소리가 멈췄다.

퇴각하는 적을 향하여 무분별하게 총을 쏘던 병사들이 정신을 차렸다.

총알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거였다.

메케한 화약 냄새가 풍기는 가운데 적막이 흐르는 전장에 청소부들이 나타났다.

'까악! 까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란부리까마귀(Alpine chough) 떼가 몰려들었다.

덩달아 초원수리까지 날아들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다투었다.

그 모습을 본 병사 한 명이 꺼지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참혹한 전투 끝은 언제나 그들 차지였으니.

"의무병 뭐하나! 빨리 부상병부터 챙겨라!"

"너희들이 뭘 그리 멍하게 서 있어? 놈들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총알 필요한지 물어보고 보급하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참모들이 뛰어다니면서 전투 후 경과를 확인하고 문제점이 있는지 파악하느라 내지르는 정신 없었다.

그 와중에 두현이가 지키고 있는 보초탑은 조용하기만 했다.

한동안 주저앉아 말이 없던 병사들은 서로 상태를 확인한 후 아무도 다친 이가 없자 씩 웃었다.

"담배 가지고 있나?"

"넵, 대원님."

병사 중 하나가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서 담뱃갑 채 꺼내 두현이에게 내주었다.

폴리에틸렌 비닐로 감싸져 있는 담뱃갑에는 조선의 왕실 문양인 오얏꽃이 새겨져 있었다.

효종은 왕실 종친들이 소금 전매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담배 전매를 허락했다.

소금은 백성들에게 소중한 생필품이지만, 담배는 기호품이란 연의 말에 그렇게 한 거였다.

두현이 궐련(卷煙)을 입에 물자 병사는 성냥을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휴···, 컥, 컥, 이런 젠장."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이마신 담배 연기가 기관지를 건들었는지 두현이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너희들도 피고 싶으면 펴라."

"네."

대원들의 경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지만, 병사들은 아니었다.

조선군이 되면 한 달에 100문이나 되는 월급을 받기에 이들은 돈이 남아돌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병사들은 돈 쓸 곳이 없었다.

먹는 것은 푸짐하게 나왔고, 입고 쓰는 것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담배 같은 기호식품을 찾아 애용했다.

'화학 물질이 첨가되지 않는 담배는 그리 나쁘지 않아.'

20세기 들어 담배에 2천 가지가 넘는 온갖 해로운 물질이 첨가되면서 담배는 폐암을 유발했지만, 순수한 담뱃잎으로 만든 조선 왕실 종친들이 만들어 파는 담배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연의 생각이다.

'전체 폐암 환자 중 여성이 35%이고 이 중 87.8%는 비흡연자였지.'

선명한 전생의 기억 때문에 연은 쓸데없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면 혈관 질환에 영향을 미치기에 될 수 있으면 피우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담뱃갑에 써 놓았다.

"괜찮으십니까?"

전투 전만 해도 밝은 표정이었던 창공이가 연기를 내뿜는 두현이의 모습을 보며 물었다.

두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악몽을 꾼 것 같습니다."

"쉬고 싶습니다."

"푹 자고 싶습니다."

들떠 있던 창공이마저도 전투에 관련된 말은 꺼내지 않았다.

비록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을 처음 봤다.

그래서인지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여긴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한 명만 남고 내려가서 뭐 좀 먹고 와라."

"제가 남겠습니다."

두현이와 창공이만 남기고 다른 병사들은 보초탑을 내려갔다.

"가는 길에 우린 무사하다고 보고하고."

"넵!"

2km가 넘는 요새 북쪽 성루와 보초탑에서 전투가 끝낸 병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요새 안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병사들은 그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니며 필요한 것을 나르고 다친 병사들을 도왔다.

일부는 예맥 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요새 문을 열고 나가 놈들이 파 놓은 구덩이에 시체를 던져 놓고 흙을 덮었다.

전장식 소총을 부여잡고 죽은 자도 있었다.

흙으로 쌓아 올린 둔덕 뒤에서 화약을 넣다가 포격에 당한 것인지 한 속에 꽉 주고 있는 화약통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뿐만 아니라 온몸에 조그만 돌과 흙이 박여있었다.

병사 한 명이 죽은 자의 손에서 총을 빼내 들었다.

"이건 뭐지?"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형태였다.

전투가 대승으로 끝났지만, 누구 하나 웃는 이가 없었다.

전쟁을 겪은 적이 있는 대원들은 말이 없었고, 조선군 병사들은 처음 겪은 전쟁이 너무나 참혹했기 때문이다.

신의주 대첩 소식을 듣고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들을 흠모하며 조선군에 지원했지만, 막상 전쟁을 겪고 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이 온몸을 지배했다.

아군 중에 죽은 병사가 있다는 말도 들렸다.

그래도 병사들은 잘 먹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모르지만, 오늘따라 전투를 끝낸 병사들은 먹고 또 먹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 삶을 더 챙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그 모습을 본 보급 참모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게 전쟁이라 잘 먹여야 했다.

해 질 무렵이 돼서야 바쁘게 뛰어다닌 인사 참모가 사단장 현수에게 보고했다.

"사단장님. 보고드리겠습니다. 사망 6명. 그중 경비대원이 4명입니다."

"크흠···."

처음 전투에 나선 조선군 병사보다 전투 경험이 있는 경비대원이 더 많이 죽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충 겨냥하고 총을 쏘는 병사들과 달리 대원들은 일격 필살의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겼기에 노출이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었다.

"부상은?"

"중상자는 18명인데 모두 생명에는 지장 없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찰과상을 입은 경상자는 387명입니다."

"큼! 적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최소 3만 명 이상을 제거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교환비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승을 거두었지만, 현수는 착잡했다.

반나절 전투에 든 총탄만 120만 발이 넘었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기관총 사격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작전을 다시 짜야겠다. 그러니 대대장 이상 모두 집합시켜라."

"넵! 사단장님."

수동으로 작동되는 조101 기관총이라고 하지만, 총알 낭비가 너무나 심했다.

그래서 앞으로 전투에서 기관총은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감추어둔 정예병을 투입하기로 했다.

* * *

은동리 전략회의실.

이곳에 조선전력공사 육경 사령관 정용식은 없었다.

대붕이라 부르는 백령도 무선 기지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을 바로 보내 줘야 해서다.

대신 제1사단장인 천수가 나섰다.

"예상한 것처럼 현두 요새가 제일 먼저 공격을 받았습니다. 요새 안에서 방어했기에 사상자는 거의 없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총알입니다."

"얼마나 남았다고 했지?"

"400만 정도 남았다고 합니다."

"도착 날까지 견딜 수 있나?"

"놈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일은 다른 방법을 써 본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곳 사령관이 현수지?"

"네, 사장님."

"음···."

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이 잡히는 걸 느꼈다.

300만 발을 보내면서 그 정도면 놈들을 멸하는 데 충분하다고 봤다.

그런데 놈들은 예상과 다르게 전략을 구상했다.

'라인 베틀을 하지 않다니.'

추가로 들어 온 정보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현수 사단장 보고로는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뭐? 무슨 착오야?"

"오늘 전투에서 죽은 놈들은 루스 차르국이나 폴란드-리투아니아 병사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 자세히 설명해봐. 모두 알 수 있게. 우리가 잘못 생각한 거면 큰 문제다."

"제 판단으로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거로 봅니다. 보급만 충분하다면요."

13세기에 킵차크한국의 침공으로 멸망한 키예프 루스는 21세기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를 중심으로 루스인들이 세운 국가이다.

키예프 루스가 멸망한 이후 우크라이나 땅에는 갈리치아와 볼히니아 두 공국이 그 뒤를 이었지만, 끝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정복당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고 있던 우크라이나 카자크인들은 폴란드 국왕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지만, 무자비한 착취를 당했다.

그런데 농노제와 가톨릭 신앙까지 건들자 참지 못하고 봉기했다.

1648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속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보르단 흐멜니츠키가 자포로지예 카자크 수장이 되면서 자치를 주장하며 들고 일어났다.

드니프로 강 유역의 카자크 유력자의 아들로 태어난 흐멜니츠키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인 브와디스와프 4세와의 비밀 협상에도 참여할 정도의 친폴란드파였지만, 땅을 빼앗기고 가족까지 폭행하고 능욕을 당하자 참지 못했다.

이러다 할 힘이 없는 루스 차르국의 황제인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로마노프에게 신종할 것을 맹세하고 지원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루스 차르국만 믿고 폴란드와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붙어보나 마나 뻔했기 때문이다.

흐멜니츠키가 눈치만 보고 있는 가운데 알렉세이 1세가 배신을 때렸다.

조선을 함께 침공하자는 조건으로 흐멜니츠키와 우크라이나 카자크인들을 폴란드에 팔아넘긴 거였다.

"이런! 개 쌍놈의 새끼를 봤나!"

천수의 말을 듣고 있던 연은 생전 한 적이 없던 욕을 내뱉으며 벌떡 일어났다.

누구보다 사기, 배신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스 차르국의 알렉세이 1세는 이 모든 것을 더해 잔인한 짓을 서슴치 않고 벌였다.

"그러니까, 오늘 전투에서 우리가 죽인 자들이 대부분 카자크인이란 말이지."

"네, 사장님."

"이런, 찢어 죽일 놈이 있나!"

연의 이런 모습에 전략회의실에 있는 수뇌부들은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저 연을 바라보며 긴장하고 있었다.

이처럼 연이 욕을 하며 크게 화를 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전장을 정리하면서 살아남은 병사들을 조사한 결과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도 가족을 볼모로 잡고 농기구 하나를 들고 총알받이로 내보냈단 말이지. 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이런 세상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 심했다.

'빌어먹을 놈이 수작을 벌인 통에 내 새끼 같은 대원들과 병사들이 죽고 다쳤다. 절대 그냥 둘 수 없어!'

연은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을 무찌르고 적당히 땅을 양도받고 끝내려고 했다.

남쪽에도 적이 있기에 양면 전선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막을 알고 나자 분노가 치밀었다.

예맥의 땅에서 저지른 일에 대해 적당히 사죄하면 넘어가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렉세이 1세는 일을 너무 키웠다.

"이렇게 나온다면 똑같이 해주는 게 예의지."

생각을 정리한 연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쌍식아!"

"네, 사장님."

"당장 용식이를 불러와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밤이 깊었지만, 은동리 전략회의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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