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대전쟁시대(13) >
효종 5년(1653).
영의정 김육이 노환으로 사면(辭免)을 청했다.
"폐하, 아쉽게도 신이 폐하를 보필하지 못할 것 같사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영상."
"고뿔을 앓고 났더니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온전히 집중할 수 없사옵니다. 근래 변고(變故)가 발생한 것도 모두 신의 부족한 몸에서 연유된 것이옵니다."
"그게 무슨 변고란 말이오. 가당치도 않소."
김육은 연의 부탁으로 겨우내 많은 일을 처리하다 보니 몸살이 났다.
'대감께 미안한 부탁을 드려야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전하.'
'프로 축구 영웅전에 참가할 프로팀을 선발해 주십시오.'
'그건···?'
'백성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긴 하지만···.'
'대감께서는 그 누구보다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대감 아니고서는 누가 그리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프로 축구 영웅전은 모든 백성의 관심사였기에 프로팀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했고, 김육만큼 믿을 사람이 없었다.
원래에도 김육은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축구 경기에서 난동이 일어나 사람이 죽자 김육은 몹시도 마음 아파했다.
김육은 연의 부탁도 있었지만, 백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
공정하게 프로 축구 영웅전에 참가할 프로팀을 선정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조선전력공사에 비하면 새 발의 피조차 안 되는 작은 기업이지만, 조선전력공사만 빼고 보면 미래의 대기업이라 할 수 있는 많은 기업이 참가 신청서를 냈다.
프로 축구 영웅전은 처음에는 8개 프로팀만 선정하여 출발하기로 했다.
매년 상황을 봐서 추가로 팀을 붙인다고 했지만, 처음 선정되는 팀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그러다 보니 경쟁이 치열했고, 말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방송공사는 매일 오전 7시, 정오, 오후 7시에 한 시간씩 라디오방송을 송출한다.
상사들은 이 시간을 이용하여 자기 기업이 프로팀에 선정되기를 희망하며 홍보를 했다.
경강상사, 개성상사, 의주상사, 평양상사, 동래상사 같은 전통 있는 상사들은 미리부터 전문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참가 신청서를 냈고, 선정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신흥 상사들이 문제였다.
건설과 토목으로 일어선 상사들도 있었지만, 산동상사, 요동상사, 전주상사처럼 조선전력공사에서 땅을 빌려 대규모 농사를 짓는 상사들도 급속도로 커졌다.
뇌물을 주다가는 적발되면 사주부터 바로 탄광행이라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회의장에서 드잡이질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아니 농사나 지을 것이지 무슨 축구팀을 운영한다고 나서는 게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은 들어 봤소.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며 나라를 지탱할 힘이란 걸 모르시오.'
'그렇게 말한다면 땅 파먹고 사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요. 더구나 우리가 있어야 곡식을 운반할 수 있지 않소.'
'땅 파는 힘은 어디서 나온단 말이오. 그건 바로 우리가 있기 때문 아니오. 무식하긴.'
'뭐! 무식하다고?'
'그래, 무식한 걸 보고 무식하다고 했는데 뭐가 잘못됐냐?'
'어따 되고 반말이야!'
결국 영의정인 김육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의 놀이에 조선 최고 관리가 나선 것이다.
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백성들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효종이기에 가능했다.
김육의 중재로 기존 5개 상사와 추가로 3개 상사가 최종 선정되었다.
훈련도감 출신들이 모여 만든 건설에 일가견이 있는 도감상사.
철도를 놓으면서 토목과 운송에 특화된 만주상사.
곡물을 다루는 호남, 요동, 산동상사가 연합한 근본 프로 축구팀이 추가됐다.
이 8개 프로 축구팀은 자신들과 연관이 있는 지역을 연고지로 정했다.
한양, 개성, 신의주, 평양, 부산, 전주, 공주, 심양에 축구 경기장을 짓고 내년부터 정식 경기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독자적으로 돈을 투입하여 축구 경기장을 지을 정도로 조선의 기업들은 규모가 거대해졌다.
이는 모두 연이 과감히 돈을 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은 아직 부족하다고 봤다.
'기업들이 더 커져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지원해 주도록 해라.'
그래서 조선전력공사가 공사비의 반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아무튼 이 모든 일을 정리하느라 김육은 쉴 날이 없었다.
원 역사에서도 대동법과 화폐유통을 주장하며 70이 넘은 나이에도 몸을 아끼지 않았던 김육이었는데 이번 일을 마치고 몸살이 났다.
"폐하, 하늘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몸을 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몸을 보전하지 못하고서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신을 파직하시고 몸이 온전한 이를 등용하셔서 나라를 편안하게 하시옵소서."
"그건 아니 될 일이요. 영상이 없다면 짐이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단 말이오. 쉬면서 몸을 보전하도록 하시오."
"폐하···!"
"더는 영상의 말을 듣지 않겠소. 그러니 당장 이곳을 떠나 병원으로 가도록 하시오. 여봐라! 영상을 모시지 않고 뭐들 하느냐!"
효종은 김욱의 병환이 깊어질까 염려하여 조선전력공사에서 운영하는 가장 큰 곳인 용산방 병원에 입원시켰다.
이제는 백성들도 아프면 마을 의원이나 읍내 병원을 찾아갔다.
의원과 병원에는 의무병 출신 의사만 있지 않았다.
그곳에는 침을 놓고 진맥을 하는 한방 의사들도 함께 있었다.
조선의 의술은 서양에서 온 것이 아니기에 양방이란 말은 없었다.
대신 새롭다는 뜻으로 신방(新方)이라 했다.
신방와 한방(韓方) 의사들은 서로 연구를 도우며 의학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아무리 좋은 보약이라도 치료할 수 없는 종기 같은 세균 감염은 초기에 설파제 몇 알만 먹으면 바로 가라앉기에 한방 의사들은 우기지 못했다.
그런데도 신방 의사와 한방 의사의 사이가 좋았다.
치료가 끝나면 기를 돕는다는 목적으로 환자들은 보약을 꼭 사 갔다.
그만큼 조선 백성들의 삶에 여유가 있었다.
신방이나 한방 의사를 찾는 환자들은 진료비로 1문을 내지만, 큰 병이 발견되면 아예 돈을 내지 않았다.
전부 무료로 치료하라는 연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확실히 정해 놓아야 해.'
연은 천조국이라 말하는 21세기 미국 의료가 개판을 넘어서 깽판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국방에 들어가는 돈이 천조가 안 되는데 엉망인 의료비로 5천조에 육박하는 돈을 허비하는 나라지.'
그런데도 미국의 의료는 수십억 원을 내지 않는 한 질이 낮았고 실제 의료비에 쓰는 돈은 턱도 없이 적었다.
전체 의료 보험료 중 보험회사가 인력과 전산처리 비용으로 절반 이상을 사용했다.
'도둑놈들이 활개치기 전에 의료 지원은 기틀을 잡아야 해.'
의원과 병원을 짓고 운영하는 데 막대한 돈이 들어가지만, 그 누구도 걱정하는 백성은 없었다.
조선전력공사의 상품은 지금도 엄청나게 팔려나가고 있었고, 조선은행에 쌓이는 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백성들은 단지 고마움만 표했다.
조선은행에서 발행하는 화폐는 쌀 본위제라 원하면 바로 쌀로 바꿔 주었기에 화폐에 대한 불신은 전혀 없었다.
이러다 보니 조선의 화폐는 바다 건너 일본, 다두 왕국뿐만 아니라 대륙의 네 나라와 서양에서도 통용되었다.
물론 서양으로 건너간 동전은 대부분 은화와 금화였다.
그래서인지 욕심을 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끝내 연합하여 조선을 치기로 했다.
'지금 떠오르는 조선을 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 당할 것이오.'
'조선은 타국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소. 그러니 우리는 관여하지 않겠소.'
'그 말을 믿으시오.'
'믿을 수밖에 없지 않소. 괜히 나섰다간 패하기라도 한다면 어쩔 것이오.'
'잘 생각해 보시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생각하고 말게 뭐가 있겠소. 조선의 물품을 중개만 해도 돈을 버는데 말이오.'
'그런 조선을 쳐서 나눠 가진다면 어떻겠소.'
'크흠···.'
조선에는 황금과 은덩이가 산처럼 쌓여 있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각종 신기한 물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런 조선을 치고 그 모든 것을 나눠 가지자는 말에 욕심 덩어리가 이성을 마비시켰다.
결국 놈들은 도적질을 모의하고 연합했다.
이 일을 기획한 나라는 루스 차르국이었다.
미하일 표도로비치의 아들로 태어난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황제는 알렉세이 1세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예맥의 땅에서 쫓겨난 후, 자신의 잘못을 인지했지만, 사죄할 생각이 없었다.
주변국과 여러 차례 전쟁을 겪기도 했지만, 루스 차르국 전역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재정 상태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적이나 다름없는 폴란드-리투아니아를 끌어들였다.
폴란드는 자신들의 최정예인 윙드 후사르까지 파견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강한 조선을 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기에는 조선은 너무나 맛난 진수성찬(珍羞盛饌)이었다.
그래서 예맥해 남쪽에 있는 오스만, 사파비, 무굴 제국에 사신을 보냈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연합이 결성됐다.
모두 조선이라는 달콤한 과실이 탐났던 거다.
염탐을 겸해 보낸 사신의 보고를 받은 황제들은 조선에서 기물을 사 오기보다는 정복하여 차지하길 원했다.
그런데 동참하지 않는 나라가 있었다.
바로 오스만 제국이었다.
연을 흠모하는 메흐메트 4세가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다.
실권은 없는 그의 말을 섭정이 들어준 이유는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많아서였다.
지중해의 반 이상을 통치하는 오스만 제국이기에 내부를 다독이는 일만 해도 힘에 겨웠다.
그렇다 해도 오스만은 조선의 우방국이 아니었다.
단지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언제 밥상 위에 숟가락을 얻을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일을 감지했기에 은동리에서는 날마다 회의가 열렸다.
"그래도 오스만이 빠져서 다행이다."
"아닙니다. 사장님. 아마 내부적인 문제만 없었다면 오스만 또한 조선을 치는데 나섰을 겁니다."
연의 말에 조서원의 수장인 은진이가 정색을 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연은 사파비 제국 사신이 돌아간 이후 아무런 응답이 없자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연합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종교를 넘어선 연합이라···. 인간의 욕심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구나."
"사장님. 종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종파는 다르지만, 그들은 단일 신을 믿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자유롭게 종교를 믿을 수 있는 조선이 눈에 가시였을 겁니다."
은진이의 말에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같은 신을 믿는 종교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사장님, 종교를 따지지 않고 조선말과 조선글을 알면 조선인으로 대우해주며 혜택까지 제공한다는 소문이 예맥해 주변국에 퍼져있습니다. 그래서 조선말을 배우고 조선글을 익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로 황제들이 불편해한다고 합니다."
"확실한 정보더냐?"
"네, 사장님."
"이런···!"
연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왜 발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 나 때문이구나."
연이 소문을 퍼트리라고 한 거였다.
넓은 땅을 확보했지만, 그곳에 살 백성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였는데 그 일로 인하여 주변국들이 뭉칠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사람이 돈이자 세력인 세상인데···.'
만반도에서도 삼국시대에는 인두세를 받았다.
하지만 고려 때부터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조·용·조로 변경되었다.
중앙집권적 봉건국가로 변한 것이다.
조·용·조는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전조·공세·요역·군역으로 대치되었지만, 변질하여 수탈의 온상이 되었다.
군포가 대표적인 인두세였고, 백골징포와 황구첨정 같은 온갖 비리가 판을 쳤다.
인두세는 소비세처럼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도 부과하기에 민란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래서인지 인두세는 21세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한민국에서 지방세로 징수되는 주민세가 인두세와 비슷한 특성을 가졌지만, 1만 원 이하이기에 관리비용조차 나올지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런 인두세를 면제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로 인해 이슬람 국가들은 세를 키웠고 크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은 종교와 상관없이 인두세는커녕 혜택까지 제공해 준다고 하니 주변국들이 불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적이 되어 버렸구나."
뜻하지 않게 적을 만들어 버린 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발! 지들도 하면 될 거 아냐!'
속이 타서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연은 잘 알고 있었다.
국민을 위하는 군주나 정치인은 21세기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욕망에 굴복하여 눈과 귀를 막고 욕심을 부리다 보니 세상은 풍요로워졌지만, 더욱 각박해져 버렸다.
착잡한 마음에 투덜거리는 연을 보고 은쌍식이 나섰다.
"사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히 조선을 넘보다니. 오는 족족 모두 죽여버리면 됩니다. 우리 조선은 그만한 힘이 있지 않습니까?"
"안다. 하지만 그들의 병력은 너무나 많고 이곳에서 지원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냐?"
"그러긴 하지만, 육경이나 아니면 훈련 중인 조선군이라도 바로 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겨울이라 보낼 수도 없지만, 이놈들까지 나서면 어찌하려고?"
연은 작전판에서 대륙을 가리키며 은쌍식을 바라보았다.
"설마 놈들이 덤비겠습니까? 그렇게 당했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알 수 없지 않으냐?"
"그렇다면 새로 건조한 조경 함선을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어디로 말이냐?"
은상씩은 작전판 한 곳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