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07화 (107/275)

< 107. 대전쟁시대(10) >

황해도 벽성은 해주만 안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전력공사 기병대의 주둔지였던 이곳은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들이 성지라 부른다.

해주와 은동리 중간에 있는 벽성은 대원들에게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같이 훈련을 받았던 대원들을 만날 수 있기에 대원들은 휴가를 받으면 제일 먼저 벽성에 들린다.

산해진미가 가득한 안주와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술이 모두 있는 벽성의 주막에서 휴가를 받은 경비대원들은 거침없이 먹고 마시며 쌓인 피로를 풀었다.

"해경 대원들에게 들었는데, 대만과 해남도는 이런 추위가 없다고 하던데, 알아?"

"나도 들었어. 그곳은 항상 여름 같다고 하더군. 그런데 왜?"

"그곳으로 가볼까 해서."

"왜? 남들은 다 만주로 간다던데."

"안해가 추운 것을 싫어해서 말이야."

이제 막 혼인한 경비대원 창만이는 막걸리 한잔을 거나하게 마시고 입을 쓱 훔쳤다.

몸이 약한 아내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자 창만이는 남쪽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몸이 많이 상했다.

그래서인지 날이 추우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내의 몸이 약해져 갔다.

창만이의 표정을 본 정방이는 포천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따르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었어. 언래가 아이를 낳다가 죽을 고생을 했다고."

"천만다행이었지···."

"고생했다. 홀아비는 면했네."

정방이는 창만이의 아내인 언래도 잘 알고 있었다.

셋은 옹진반도에서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던 한마을 친구들이었다.

"맞아. 설파제가 없었다면 홀아비 됐을 거야."

언래는 산후 감염으로 죽을 뻔했다.

다행히 의사가 된 의무병이 옆집에 살아서 빠른 조치로 살아날 수 있었다.

"너는 혼인하고 애 생기면 꼭 병원에 가. 그게 안전해."

"그렇지 않아도 그 소식 듣고 우리 기수는 모두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곳곳에 병원이 개설되었지만, 아직도 집에서 애를 낳는 일이 많았다.

위생에 대해 수시로 강조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모르는 백성이 많았다.

"아무튼 난 전역 신청하고 대만이든 해남도든 따듯한 곳으로 갈 생각이야."

"굳이 전역할 필요 있어? 그냥 대원으로 가도 되잖아."

"아니, 이번에 직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신청했거든."

"아···, 분점 직원 말이야?"

"맞아, 그래서 직원으로 갈 생각이야."

"나도 신청할까?"

"그러는 게 좋지 않겠어? 곧 혼인할 건데. 너 안해 될 사람에게 물어봐. 같이 가면 좋잖아."

"알았어. 생각해 보도록 하지."

얼마 전, 효종은 대만과 홍콩, 해남도가 조선의 영토가 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제주도보다 몇 배나 더 큰 새로운 영토가 그것도 남쪽에 생겼다고 하니 온 백성은 기뻐하며 잔치를 벌였다.

그와 동시에 그곳으로 갈 백성들을 모집했다.

조선전력공사는 따뜻한 남쪽으로 갈 사람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내놓았다.

그중 하나가 분점 옆에 지은 새로운 집을 10년 동안 무상 제공한다는 거였다.

이번에도 효종은 새로 확보한 영토를 조선전력공사의 소유로 했다.

'만주에 이어 대만과 홍콩, 해남도가 이 나라 조선의 영토가 되었다. 그곳은 조선의 땅이 분명하지만, 조선전력공사의 노력으로 얻은 땅이니 조선전력공사의 소위로 한다. 앞으로도 새로운 영토는 개척한 조선전력공사의 소유로 할 것이다.'

효종은 조선의 영토이기에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官吏)를 파견하여 관리(管理)하지만, 소유권은 조선전력공사에 있다고 확실히 선언했다.

한마디로 조선 왕실의 소유란 뜻이니 욕심내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와 달리 연은 새로운 영토를 민간에 팔게 되면 난개발이 되어 엉망이 될 것을 우려(憂慮)했다.

'미래에 어떤 놈이 알박기할지 어떻게 알아.'

난개발도 문제지만, 개발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개인 이기주의는 아무것도 아니지.'

연은 하루에 10명도 사용하지 않는 지하철역이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지역과 집단에서 단체로 꼬장을 부리는 이기주의는 전체를 힘들게 하고 국가 예산을 낭비할 뿐이야.'

그런 이유로 연은 새로 얻은 모든 영토를 조선전력공사의 소유로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효종은 단순하게 생각하고 처리했다.

조선전력공사의 모든 것은 왕실의 소유나 같았기에 왕실에 힘을 싣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튼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는 백성에게는 여러 가지 특전이 제공되었고 많은 백성이 이를 보고 삶의 터전을 이동했다.

*

은동리 남쪽 옹진역에서 출발한 특별기차는 벽성을 지나고 있었다.

5칸으로 이루어진 특별기차를 보고 백성들은 고개를 숙이고 대원들은 거수경례했다.

반짝이는 은으로 된 '번개' 표시가 선명하게 새겨진 특별열차는 연이 타고 다니는 무장 열차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은쌍식은 차창 너머로 사람들을 보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날씨가 몹시 추운가 봅니다."

"그렇구나. 올해는 연탄가스 사고는 없어야 할 건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니 작년보다는 덜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모르니 송유관 공사를 빨리 끝냈으면 좋겠구나."

아무리 홍보를 한다지만, 오래된 집에서 연탄난로를 사용하다 사고를 당하는 백성이 아직도 있었다.

그래서 연은 연탄난로 대신 석유난로로 대체하고 싶었다.

하지만 발해만에서 이곳까지 송유관을 설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탄소강관으로 만들어진 송유관은 지반이 얼어도 손상되지 않으려면 지하 2m 깊이에 파묻어야 한다.

"중장비 공장 진행은 어찌 돼가느냐?"

"아무래도 1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은쌍식의 말에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차 생산처럼 라인을 설치할 필요는 없지만, 굴착기나 삽차 같은 중장비를 만들려면 기반 시설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연은 대동강 변에 있는 송림 제철소 옆에 중장비 생산 공장을 짓도록 했다.

옹진반도에서 송림 제철소까지는 선로가 이미 깔려있기에 옹진에서만 생산되는 디젤엔진을 실어 나르기에 편한 곳이었다.

한양이 가까워지자 연은 은쌍식에게 물었다.

"을수는 언제 온다 드냐?"

"출발했다고 하니 곧 도착할 겁니다."

"다행이구나. 고무가 많이 필요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가득 싣고 온다니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은쌍식은 자신이 고안한 새로운 기물을 생각하는지 히죽거렸다.

다두 왕국 카마찻 왕은 마닐라를 점령한 후 조사에 들어갔다.

결과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천연 고무액이 창고마다 가득 저장되어 있었던 거다.

보고를 받은 은쌍식은 연의 허락도 받지 않고 즉시 천연 고무액을 싣고 오라고 했다.

그만큼 새로운 기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고무가 필요했다.

그것도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다급했다.

"그런데 사장님, 금덩이도 잔뜩 실어 온다고 합니다."

"그래? 그곳에도 금이 있었나?"

"그건 모르지만, 금덩이가 잔뜩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연은 고무 말고는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필리핀에서 금덩이가 넘쳐난다고 하자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마닐라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져 있는 파라케일이란 곳은 17세기 이전부터 금을 캐기 시작하여 21세기에도 금을 캐고 있다.

그만큼 화산활동과 지각변동이 활발한 필리핀에는 금과 같은 귀금속이 많이 매장되어 있었다.

'스페인 놈들이 남미에서 은을 강탈하고, 마닐라에서는 금을 약탈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연이 잘못 생각한 거다.

무너진 총독 관저에서 발견한 금은 결코 필리핀에서 캤던 게 아니었다.

17세기에 이르러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이 스페인과 동아시아 전역에 1:13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륙은 달랐다.

광동 지방의 경우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은 1:6 정도였다.

그래서 스페인은 포토시에서 생산한 은을 스페인으로 바로 가져가지 않았다.

마닐라로 가져와 시세 차익을 노리고 은으로 금을 사서 모아 놓았다.

아무튼 연의 착각으로 필리핀에서 금광 개발은 활발하게 진행된다.

그로 인해 다른 광물까지 찾아내게 된다.

*

뜻하지 않게 금덩이까지 챙긴 연은 은쌍식을 데리고 남산 위로 올라갔다.

남산 타워 입구에는 선식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을 뵙습니다."

"그래, 준비는 잘 되고 있느냐?"

"네, 사장님. 날마다 반복하여 연습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구나. 첫날부터 방송 사고가 나면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선식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연은 전력 수요가 늘어나자 경강 다리 서쪽 당인리에 화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했다.

옹진반도에서 만들어 놓은 발전기가 있기에 당인리 발전소는 빠르게 완공되었다.

관리들은 중지도라 부르는 노들섬에 화력발전소가 있어 경강 동쪽 편에 짓는 게 좋다 했지만, 팔당 발전소를 만들고 있었기에 그리하지 않았다.

울상이 된 선식이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입을 열었다.

"사장님. 가슴이 떨립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가슴이 떨린다니."

"제 목소리가 백성 모두에게 동시에 들린다고 하니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런···."

연은 선식이를 째려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조선 팔도뿐만 아니라 만주까지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했던 선식인데.

'이거 영··· 불안한데.'

학교 다닐 때 선배가 있었다.

평소에는 말도 잘하고 노래도 잘해서 연예인이 돼보라는 주변의 말을 듣고 가요제에 나갔지만, 입도 못 열고 떨다가 내려 온 선배가 생각났다.

'그 선배와 다른 경우도 있나?'

아무리 봐도 선식이는 반대 성향 같았다.

"그래서 저 대신 예은이가 하면 어떻겠습니까?"

"조선 명창이라 말하는 아이 말이냐?"

"네, 사장님. 평소에는 말 한마디 못 하지만, 마이크만 잡으면 그렇게 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네, 사장님."

"너도 마이크를 잡으면 잘하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어깨가 축 늘어지며 고개를 숙인 선식이를 보자 연은 한숨이 나왔다.

명창으로 소문난 예은이라 하지만, 인지도에선 선식이를 따라갈 만한 사람이 없었다.

'온종일 노래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런 젠장.'

조선방송공사에서 실시하는 첫 단파 라디오방송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선식이가 이 모양이라니 기가 찼다.

그동안 라디오방송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

트랜지스터가 생산되는 족족 출력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양을 투입했다.

라디오를 만들기 위해 옹진반도에 대단위 공장까지 지어 놓고 인력까지 모집해 놓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라디오에 필요한 알칼리 전지까지 생산하고 있었다.

이산화망간에 아연 분말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알칼리 전지는 전해액으로 수산화칼륨(KOH)이 필요하다.

그동안 칼륨이 없는 한반도라 수산화칼륨을 만들 수 없었다.

다행히도 만주를 얻었기에 알칼리 전지를 만들 수 있었다.

'하···! 대원들에게 약속했는데, 이를 어찌하냐.'

연은 예맥산맥과 예맥해를 지키기 위해 떠나는 대원들과 조선군에게 기운을 내라고 한 말이 있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선식이의 만담을 그곳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꼭 해주겠다.'

그런데 인제 와서 선식이에게 문제가 생기다니.

'이렇게 되면 문제가 심각한데···.'

라디오방송을 시작한 이유는 선식이의 만담과 선동 때문만이 아니었다.

표준 조선말을 조선 영토 전역에 정착시키기 위해서였다.

산만 넘으면 말투가 다른 것은 물론 쓰는 단어 또한 틀리다.

그런데 선식이가 라디오방송을 못 하겠다니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선식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연은 언뜻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사람들이 없어서 흥이 나지 않는 게냐?"

"네?!"

"네가 만담을 할 때 지켜보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 거냔 말이다."

"아···,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식이는 벽을 보고 말한 적이 없었다.

덩그러니 마이크 하나 놓고 말을 하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맞군, 맞아!'

아무래도 선식이는 그 선배와 반대인 것 같았다.

선식이는 천부적인 만담꾼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즐거워했던 거였다.

"쌍식아!"

"네, 사장님."

"공개방송을 준비하거라."

"네, 공개방송이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들을 모아 놓고 라디오방송을 진행하란 말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조선방송공사의 첫 라디오방송은 공개방송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공개방송을 원하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말에 한양은 난리가 났다.

무료로 주는 입장권 얻기 위해서.

얻지 못한 입장권을 사기 위해서.

조선 최초로 암표 장사꾼이 등장했다.

* * *

티베트 라싸에서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구와하티(Guwahati)에 도착한 준가르 부족은 바쁘게 움직였다.

21세기에 인도 북동부 아삼주라 불리는 곳은 초원과 나무만이 빽빽이 지키고 있었다.

준가르 부족의 수장인 바토르 홍타이지 호토고친는 주변을 정찰하고 온 병사들의 말을 듣고 호탕하게 웃었다.

"좋구나! 좋아!"

"위대하신 칸의 앞날에 축복만이 있기를 바라옵니다."

한겨울인데도 울창한 숲으로 덮인 이곳이야말로 준가르 왕국을 세우기에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동에서 서로 흐르는 넓은 강 주변은 평지나 다름없었다.

이곳을 개간하여 목축하고 농사를 짓는다면 온 부족민이 먹고살기에 충분한 고기와 곡식을 얻을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좋아! 아주 좋아. 이곳에 준가르 왕국을 다시 세우자!"

호토고친의 외침에 그를 따라 이곳으로 온 모든 부족민은 무릎을 굶고 엎드렸다.

결심이 선 호토고친은 주변으로 병사들을 내보냈다.

그가 알기로는 이곳은 무굴제국의 영토이다.

그런데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