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06화 (106/275)

< 106. 대전쟁시대(9) >

연은 세계 최대 크롬 광산과 예맥해 주변의 석유 욕심에 서쪽으로 무작정 진격한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찌 될지 모르는 곳이지.'

지금 그곳은 텅 빈 땅이나 다름없기에 서둘러 서쪽으로 진격한 거다.

킵차크한국의 후예들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의해 모두 멸망하고 나머지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생긴 공백은 몽골의 최후부족인 준가르가 차지하고 있었다.

연은 준가르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 모든 땅을 차지했다.

'포기할 순 없어!'

인제 와서 점령한 땅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멍청한 짓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루스 차르국이 적이나 다름없는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연합할 줄은 몰랐다.

연은 작전판을 한참 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두들 그런 연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연이 오기 전에 작전 회의가 있었는지 작전판 위 말판들이 이곳저곳으로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크음···."

한참 후 정용식을 바라보며 연이 입을 뗐다.

"너 같으면 어느 곳을 노릴 것 같으냐?"

"저라면 현두 요새로 갈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모스크바에서 가장 가깝기도 하고, 다른 두 요새와 멀리 떨어져 있어 고립된 곳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예맥 산맥이 있다고 하지만, 그리 높지 않기에 30만 명이나 되는 대병력이더라도 병력 이동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군···."

연은 정용식의 의견이 타당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을 다시 보았지만, 정용식의 예측한 게 정확했다.

자신이라도 그리할 것 같았다.

'문제는 놈들만이 아니지.'

수시로 조서원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내용은 단순하지만 않았다.

작전판을 한참 동안 바라본 연은 조용히 읊조렸다.

"30만 대 1천이라···."

요새에 있는 병사들이 전부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들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30만이 아니라 50만이라도 방어만 한다면 문제 될 것은 없지···."

하지만 경비대 1개 대대 말고는 믿을 수 없었다.

예맥 기병대, 조선군으로만 이루어진 요새 병력으로는 막기 힘들어 보였다.

기병용으로 개발한 조3 소총은 요새 방어에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예맥 기병대는 폴란드 후사르(Hussars)를 담당하기로 되어 있다.

세르비아 어로 약탈자를 뜻하는 구사르(Gusar)에서 유래된 후사르는 무섭고 강해 보이려고 어깨에 날개를 붙이고 다닌다.

중무장한 판금 갑옷과 긴 창을 이용해 적진 돌파가 주특기인 이들을 그동안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전장에 총이 등장하면서 윙드 후사르는 전처럼 무적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후사르는 1~2개의 권총과 반돌레트(bandolet)라 부르는 기병총으로 재무장되었다.

그렇다 해도 12연발 조3 소총으로 무장된 예맥 기병대를 당할 수는 없다.

하지만 쪽수가 문제였다.

예맥 기병대가 백발백중으로 전멸시키면 상관이 없겠지만, 말을 타고 움직이는 적을 말을 타고 움직이면서 맞춘다는 건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악마나 다름없이 잔인한 짓을 저지르는 윙드 후사드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조그만 마을을 이루며 사는 곳인데 이들에게 몰살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모두 조선의 백성이 될 사람들이야.'

조선말과 조선의 글인 한글만 깨우친다면, 조선인으로 동등하게 대우해주고 있다.

그것만이 대조선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은 점령지에서 그 무엇도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단지 배우고 익히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려주라고만 했다.

'강요해 봤자 좋을 게 없어. 아쉬워하며 따르게 만들어야지.'

연은 기병대 사령관 기수를 믿고 예맥 기병대를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조선군이었다.

제일 많은 병력인 조선군이지만, 전투 경험이 전혀 없었다.

이번에 조선군을 서쪽으로 보내면서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조2 소총을 줘 보냈지만, 전투 경험이 없기에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인제 와서 추가로 병력을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만주와 몽골 초원, 예맥의 땅을 지키는 기병대를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방의 겨울은 기병이라 하더라도 이동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배에 실어 보낼 수도 없고···."

철도가 있다면 걱정할 필요도 없는 상황인데 수천km나 되는 선로를 까는 일은 언제 될지 알 수 없었다.

비장의 장비를 개발하고 있고, 대흥안령산맥을 넘어 몽골고원으로 가기만 하면 평지나 다름없기에 미대륙 횡단 철도보다 빠르게 선로를 건설할 수 있다지만, 당장 급했다.

'좀만 일찍 개발이 완료되었으면···.'

보병에게 최상의 지원 무기인 박격포가 완성되었지만, 포탄의 안정성을 실험하느라 이번에 딸려 보내지 못했다.

'박격포만 있으면 일도 아닌데···.'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3개월 정도인데 여름이라 하여도 6,000km는 강행군해야만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한 겨울이라 불가능했다.

"족칠 수밖에 없겠구나."

연이 읊조리는 말에 은쌍식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자신이 누누이 주장했던 의견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사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고맙다."

연은 어깨에 힘이 짠 듯 들어간 은쌍식을 보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은쌍식이 말한 장비가 빨리 개발되지 않는다면 서쪽에 가 있는 경비대와 조선군이 위험해질 수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안 봐도 뻔했다.

'그럴 수는 없어.'

복수에 불타 러시아와 폴란드를 쓸어버리는 피가 철철 흐르는 정복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만약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에 패배하게 된다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오스만, 사파비, 무굴제국도 덤벼들게 틀림없었다.

'지구 인구의 반을 죽여버리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해.'

이제는 모두가 덤빈다 해도 전부 이길 수 있다.

'박격포 개발이 끝났으니 더는 두려워할 대상은 없지.'

연은 수만 명이나 되는 조선군 병사들이 죽은 후에 벌어질 끔찍한 상황을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대만에서 해경 대원 몇십 명이 죽었을 때 다두 왕국 전사들뿐만 아니라 경비대원들도 광분했다.

연은 그들의 행동을 칭찬하고 격려했다.

자신의 아이들 같은 대원들의 희생을 보고만 있지 않았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연은 그런 자신의 성격을 알기에 이번 전쟁에서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도 그것이 좋아.'

* * *

마닐라 북쪽에는 피나투보라 불리는 활화산이 있다.

1991년 3월.

1,745m 높이의 이 활화산은 폭발하면서 2.5km에 이르는 칼데라(caldera)를 형성하고 1,485m로 주저앉았다.

이런 걸 보면 백두산과 한라산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지 모른다.

피나투보산의 영향으로 산 동쪽 아래 대평원은 울창한 밀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스페인은 그곳에 앙헬레스 요새를 짓고 고무나무를 심어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앙헬레스 요새는 형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망가졌다.

조선전력공사에서 보내준 5문의 전장식 대포에 의해 박살 났기 때문이다.

다두 왕국 전사들은 곳곳에 널린 파편을 헤집고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잘 찾아봐라! 틀림없이 이곳에 있을 거다."

"넵!"

다두 왕국 전사들은 항복한 일본인 용병들을 시켜 죽은 자를 따로 모아 놓았다.

하지만 원흉이었던 놈이 없었다.

"으윽···."

어디선가 앓는 소리가 들렸다.

전사 중 한 명이 달려가 나무 조각과 돌무더기를 치우자 머리가 깨진 자 밑에 누군가 깔려있었다.

시체를 치우자 고통에 신음을 내뱉는 놈이 엎드려 있었다.

"돌려봐? 얼굴을 확인해 봐야 하니."

"넵!"

총을 겨누고 발끝으로 신음하는 놈의 몸을 뒤집었다.

온갖 오물로 인해 지저분해진 얼굴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에잇! 젠장."

다두 왕국 전사가 물을 묻힌 천으로 얼굴을 닦았다.

순간 그는 놀랐다.

일반인 복장을 하고 있어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그동안 찾고 있던 놈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으응?"

"왜 그러냐?"

"맞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냐?"

다른 전사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놈의 품 안을 뒤졌다.

"엉?"

"왜 그러십니까?"

전사는 놈의 목에 걸린 큼지막한 금 십자가를 집어 들었다.

유심히 살피던 그는 확신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틀림없다. 다행이구나. 살아있다니."

"정말입니까?"

"이것 좀 봐라."

"아···."

단순한 금 십자가가 아니었다.

반짝이는 보석이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찾았다!"

전사의 외침에 모두가 수색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앙헬레스까지 도망쳐 온 스페인령 필리핀 총독 파하르도는 안전을 위해 일반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격렬한 포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비서인 유스타시오 덕분이었다.

유스타시오가 몸을 덮쳐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이다.

다두 왕국 전사들은 전투가 끝난 후에도 총독을 찾지 못하자, 모두가 수색에 나섰다.

놈을 찾아내지 않고서는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곳 말고는 다른 곳은 밀림이기에 놈이 도망갈 만한 곳은 없었다.

그런데 일반인 복장을 하고 있다니.

"전하께 알려 드려라."

"넵!"

말투만 보면 다두 왕국 전사들은 조선군과 구별할 수 없었다.

해남도를 오가면서 치른 수많은 전투에서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아무튼 파하르도를 찾아내자 마닐라 정복 작전은 정식으로 종료되었다.

* * *

허겁지겁 승강이에서 나온 은쌍식은 연의 집무실을 열어젖혔다.

"싸장님!"

"왜, 또!"

며칠 전에 있었던 작전 회의는 은상씩이 원하던 대로 진행하기로 결정됐다.

그 후로 은쌍식은 수도 없이 연을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요구하고 연이 만든 도면을 가지고 들락거렸다.

연은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작업에 동참하느라 날을 세면서까지 일하고 있었다.

그러느라 한양에도 가지 못했다.

아직은 색시라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태자비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며 말을 주고받는 게 너무나 좋았다.

그런데 볼 수 없으니 불만이 가득했다.

며칠 동안 날을 세느라 눈이 뻘게진 연은 은쌍식이 다시 나타나자 짜증까지 났다.

"드디어 총독 놈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산 채로 말입니다."

"잘 됐구나. 이제 그곳은 신경 쓸 필요가 없겠구나."

마닐라 남쪽도 정복해야 하지만, 조선전력공사가 지원하는 다두 왕국이라면 충분하다고 판단됐다.

'누군가에게 지배받을 거라면 다두 왕국의 지배를 받는 것이 좋지.'

필리핀 원주민들은 그냥 놔둬도 서양 세력의 노예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느니 다두 왕국의 백성이 되어 사는 것이 여러모로 좋았다.

연이 눈을 비비며 의자에서 일어나자 은쌍식이 조용히 불렀다.

"그런데 사장님."

"왜?"

"카마찻 왕이 요청한 게 좀 그렇습니다."

"뭔데, 그래?"

"다름이 아니라 총독 놈을 화형에 처하고 싶답니다."

"그래? 좋은 방법이구나. 아주 팍팍 태우라고 해라."

"그래도 됩니까?"

"안 될 게 뭐가 있겠느냐. 제 놈이 한 그대로 당해봐야지."

연은 카마찻 왕의 요청이 없더라도 파하르도만큼은 쉽게 죽이고 싶지 않았다.

놈이 마닐라 원주민들을 많이도 태워 죽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연은 카마찻 왕의 요청이 달가웠다.

'어떻게 사람을 태워 죽인단 생각을 할 수 있지?'

연은 화형이란 형벌이 조선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중세 서양에서는 툭하면 화형을 했었고, 신대륙을 점령한 스페인 놈들은 마닐라를 정복하고서도 지금까지 화형을 행하고 있었다.

화형은 너무나 가혹한 방법이기에 불교와 유교 문화가 중심이 되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선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말기에는 수도 없이 행해졌다.

물론 이것은 법적인 처벌이 아니라 보복하기 위한 학살 목적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이후 신도들을 학살하는 방법으로 일본군과 조선 관군이 자주 썼다고 한다.

이렇듯 화형 같은 잔인한 짓은 대부분 종교와 관련이 있었다.

'인간이길 거부하는 쓰레기 같은 새끼들은 다 몰아내야 해.'

연은 모든 종교를 선이라 본다.

'종교의 교리 중에 나쁜 것은 없어.'

하지만 종교를 앞세워 나쁜 짓을 일삼는 놈들을 결코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연은 신이라 말하는 자는 칼로 찌르고 총으로 무조건 쏘라고 했다.

물론 사기 진작을 위한 말이었지만, 사이비 종교 지도자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단히 씻고 나온 연은 은쌍식을 데리고 한양으로 갔다.

이제는 양순이가 옹진반도를 모두 관리하고 있었기에 은쌍식을 다시 데리고 다녔다.

연에게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은동리에서 은쌍식이 유일했다.

그러기에 제일 편했고 도움도 많이 됐다.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면서 만들고 있는 새로운 장비도 은쌍식의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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