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05화 (105/275)

< 105. 대전쟁시대(8) >

연은 몽골 초원과 중앙아시아에 보낸 유학자들을 다두 왕국에도 보냈다.

'유학만큼 조선에 충성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없지.'

조선의 유학자들은 조선말을 막 깨우친 다두 왕국 백성들에게 복잡한 것을 가르칠 순 없었다.

대신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도리를 교육했다.

연은 멀리 떠나는 유학자들에게 경고했다.

유교에서 기본이 되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곡해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 교육하라 말했다.

'벼리(綱)라는 말은 본보기가 된다는 뜻인데 섬기라는 말로 기만했다간 영원히 묻힐 줄 아시오. 그대들이 추구하는 유학을 널리 퍼트리고 싶으면 권위를 버리고 공자께서 가르친 참뜻대로 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연은 x선비들을 제거하기 위해 나름대로 유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21세기에서 들었던 내용은 없었다.

'이 새끼들이 모두 사기 친 거였네.'

오륜에 나오는 부자유친(父子有親)만 하더라도 서로 사랑(仁)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서로 존중하라는 예(禮)의 정신이 담겨 있었다.

아직 조선의 국교는 유교인지라 연은 굳이 유학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대신 조선을 섬기는 용도로 지원하기로 했다.

아무튼 마닐라를 정복하면서 다두 왕국의 카마찻 왕은 놀란 게 한둘이 아니었다.

다두 왕국 전사들은 마닐라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수천 명이나 되는 긴 칼과 긴 창을 든 놈들을 죽이면서 왔다.

"전하, 긴 칼을 들고 달려들었던 놈들은 이곳 원주민들이 아니었습니다."

"뭐! 그럼 놈들이 누구란 말이냐?"

카마찻 왕의 물음에 다두 왕국 장군은 긴 칼을 내보였다.

"놈들의 말로는 다이묘를 섬기는 의용군이라 했는데 아무리 봐도 왜구 같습니다."

"크흠···. 어찌 놈들이 이곳까지 와서 설친단 말이더냐?"

다두 왕국도 일본과 거래한 적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왜구의 침략을 겪었다.

네덜란드에 점령을 당한 뒤로는 대만에 왜구가 모습을 나타내진 않았지만, 일본의 무역선인 주인선(朱印船)만 보면 다두 왕국 백성들은 치가 떨렸다.

무역선인지 해적선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게······."

다두 왕국 장군은 자신이 조사한 대로 설명했다.

왜놈 용병들을 잡아 신문한 결과 일본 열도는 현세의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갑자기 일본에 나타난 몽골족들은 닥치는 데로 약탈하고 살인을 저질렀다.

다이묘들이 나섰지만, 궁술에 일가견이 있는 몽골족들을 쉽게 제거할 수 없었다.

젊은 몽골족들로 이루어진 약탈자들은 처음에는 큰 기세를 떨치지 못했다.

하나, 말을 얻으면서부터 그들은 강해지기 시작했다.

말 탄 몽골족들은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기가 막힌 기마술로 활을 쏘며 도망가기에 긴 창과 긴 칼을 가진 일본의 병사와 사무라이는 그냥 표적이나 다름없었다.

조총으로 대항했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기병에게는 발사 속도가 느린 조총은 무용지물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다이묘들은 조선에서 수석총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조선은 과거의 일을 들먹이며 팔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양을 통해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쇄국령 때문에 일본과 거래하는 서양 세력은 네덜란드뿐인데, 어느 순간 그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혼란에 빠진 일본 열도에서 먹을 것이 궁해졌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병사들은 쇄국령을 무시하고 주인선을 훔쳐 타고선 마닐라까지 건너와 용병 짓을 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일본은 동남아시아를 포함하여 서양까지 교류하고 있었다.

1639년 제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스가 쇄국정책을 실시하기 전까지 350척이나 되는 주인선을 타고 다니면서 태국, 대만,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과 교역했다.

물론 왜구 짓은 기본이었다.

동남아시아 각지에 도항한 일본인들은 태국의 아유타야, 베트남의 호이안, 필리핀의 마닐라 등지에 일본인 마을을 만들어 거점으로 삼고 무역을 하며 정착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는 그 시절에 방문한 일본인의 낙서가 남아 있었다고 하니 가보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기리시탄을 탄압하면서 쇄국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동남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일본인은 10만 명이 넘었다.

쇄국령을 내린 막부가 한순간에 사라지자 이들은 다시 동남아시아로 진출했다.

하지만 대만과 필리핀은 이미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점령한 상태였다.

서양의 무기가 무섭다는 것을 안 이들은 태국 아유타야로 많이 갔다.

야마다 나가마사란 자가 태국 아유타야 왕조의 신임을 얻어 의용군 총사령관을 지낸 적이 있기에 환영을 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살아남은 다이묘들이 막부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엎친 데 덮친 꼴로 몽골족들이 쳐들어오자 급히 도망쳐 나와 마닐라로 왔다.

대만은 어찌 된 일인지 원주민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약탈하고자 접근하는 순간 총알 밥이 되었던 거다.

그렇지 않아도 마닐라 원주민들을 관리하는데 병사가 부족했던 스페인령 필리핀 총독 파하르도는 일본인들을 대환영했다.

아무튼 스페인의 용병 노릇을 하던 일본인의 수가 무려 6천 명이 넘었다.

다두 왕국 전사들은 최신 무기나 다름없는 조선의 수석총으로 이들을 모두 제거해 나갔다.

대대로 당했던 복수심에 살려 두지 않았다.

카마찻 왕은 원주민 저항군이 생각보다 너무 크자 이해할 수 없었는데 사실을 알고 나자 혀를 찼다.

"어쩐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했더니."

마닐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이곳까지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바로 왜구나 다름없는 일본인 용병들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놈이 저곳에 있는 게 사실이더냐?"

"네, 전하. 이제는 도망갈 수 없을 겁니다."

"흠···."

카마찻 왕은 망원경을 꺼내 앙헬레스 요새를 살폈다.

"놈들이 대포를 믿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 크지 않는 통나무로 만든 요새이지만, 곳곳에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찰을 끝낸 카마찻 왕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준비하거라!"

"네, 전하."

다두 왕국 전사들은 마닐라에서부터 끌고 온 대포 5문을 요새를 향해 나란히 배치했다.

그 모습을 본 스페인 병사들과 일본인 용병들은 코웃음을 쳤다.

사정거리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마찻 왕과 전사들은 묘한 미소를 띠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멍청한 놈들!"

"죽기 전에 마지막 웃음일 겁니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말고 모두 뭉개 버려라!"

"네, 전하."

다두 왕국 전사들이 가지고 온 대포는 조선전력공사에서 보내준 전장식 대포였다.

또한 포탄과 화약도 달랐다.

이동용으로 만든 대포라 포구가 짧아 성능이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사정거리 하나만큼은 서양 대포보다 월등했다.

"전하, 발사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인정사정 보지 말고 즉시 발사하라!"

"충성!"

전사들은 조선전력공사에서 공급받은 잘게 잘라 놓은 국수 가락 같은 흑색화약이 들어 있는 면포를 포구에 넣었다.

다음으로 길쭉한 쇠 통에 콘크리트가 들어 있는 포탄을 삽입했다.

"발사!"

"""발사!"""

전사들이 마찰 격발기를 잡아당기자, 서양에서 만든 흑색화약보다 폭발력이 훨씬 강한 흑연으로 코팅된 조선전력공사에서 만든 흑색화약이 터졌다.

그러면서 길쭉한 원통형 포탄이 요새로 향해 날아갔다.

-쿠앙!

쇳덩이로만 된 포환보다 가볍고 길쭉한 콘크리트 포탄이 1km가 훨씬 넘는 거리를 날아가 요새 곳곳에 박혔다.

은동리에서 연구원들은 수많은 실험 끝에 초석:유황:목탄의 배합 비율이 15:3:2로 할 때 최상의 폭발력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게다가 흑연으로 코팅하면 정전기로 인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물론 경비대에서 쓰는 무연화약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스페인 놈들이 쓰는 흑색화약보다는 훨씬 성능이 좋았다.

그 결과 방심하고 있던 스페인 놈들에게 묵직한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첫발이라 그런지 명중한 것은 없었다.

전사들은 표적을 교정한 후 다시 대포를 발사했다.

-쿠앙!

연신 날아간 포탄에 의해 스페인의 앙헬레스 요새는 산티아고 요새처럼 지옥으로 변해갔다.

* * *

겨울이 다가오는지 북풍이 불기 시작한 은동리는 싸늘했지만, 새로 지어진 연의 집무실은 아늑하기만 했다.

은쌍식이 문을 열고 나타나 바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가보자."

연은 은쌍식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전략 회의실'이라 써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그래, 수고가 많구나."

지도가 그려진 넓은 작전판 탁자 끝에 앉은 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병력 배치 상황부터 알고 싶구나."

"네, 사장님."

조선전력공사 육경 사령관인 정용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긴 막대로 말판을 움직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수 사령관으로부터 받은 보고로는 이곳 현두(예카테린부르크) 요새에 경비대 1개 대대, 예맥 기병대 2개 연대, 조선군 1개 사단이 대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효종의 허락을 받은 연은 제일 먼저 루스 차르국을 박살 내고자 했다.

'감히, 사과조차 하지 않아? 뒈지려고 환장했군.'

포로로 잡은 코사크족 용병 대장 예르마크를 풀어주고 서신과 함께 루스 차르국으로 보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

원래 연은 루스 차르국에 경고한 후, 적당한 보상금을 받고 조약을 맺어 예맥의 땅을 확고히 조선의 땅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조서원 요원들의 보고를 받고 그냥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요원들이 알아낸 사실은 기가 막혔다.

'우릴 치려고 적과 연합해? 미친 게 틀림없구나.'

루스 차르국은 17세기 초 동란 시대라 말하는 대기근을 겪으면서 인구의 1/3가량이 굶어 죽었다.

또한 가짜 드미트리 전쟁으로 인해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정령까지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 폴란드-리투아니아와 함께 조선을 공격하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새로운 적이 나타나자 적과의 동침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연은 급한 대로 조선군 3개 사단을 서쪽으로 보냈다.

전투 경험이 없고 만용에 가까운 용맹만 있기에 걱정이 되었지만, 진격에 필요한 보급을 맡기는 데는 괜찮을 것 같았다.

"언제쯤 쳐들어올 것 같냐?"

"지금쯤 올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협상이 잘되지 않았는지 시기를 놓친 것 같습니다."

서양의 말박이인 폴란드는 떠오르는 조선을 쳐서 얻을 이익을 양보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루스 차르국이 당한다면 자신들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합은 성립되었다.

연은 예맥산맥 너머로 진격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들은 달랐다.

힘만 있으면 쳐들어가 정복하고 약탈하는 것이 원칙인 이들의 생각은 조선도 똑같다고 본 거였다.

"음···, 그렇다면 내년에 날이 풀리면 오겠구나."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보급은?"

"미리 넉넉히 보내 놓았습니다."

"잘했다."

예맥의 땅 서쪽 끝 예맥 산맥까지 점령했지만, 아직 그곳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용식은 조선군 3개 사단을 보내면서 식량까지 충분하게 딸려 보냈다.

보급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기에 제일 먼저 챙겼다.

"그럼 그곳에 있는 병력은 총 몇 명이나 되지?"

"조선전력공사 육경 3개 대대, 기병대 1개 연대, 예맥 기병대 6개 연대, 조선군 3개 사단이 있습니다."

"우리 전력의 1/3이 그곳에 가 있구나."

"그렇습니다."

조선의 총 병력은 조선군이 7할이 넘지만, 전력은 조선전력공사 경비대가 7할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예맥 기병대와 조선군이다.

훈련 강도와 전투 경험, 무기의 질적 차이 때문에 수적으로는 얼만 되지 않지만,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는 일당백을 능가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들려온 정보로는 루스 차르국-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의 병력이 무려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음···."

연은 작전판에 놓인 병력 배치도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분산해서 오진 않을 것이고 한곳을 노리겠지.'

현재 조선의 병력은 현두, 무수, 서맥 요새에 분산되어 있다.

각각 조선전력공사 육경 1개 대대, 예맥 기병대 2개 연대, 조선군 1개 사단씩 배치해 놓았다.

30만 명이나 되는 놈들의 병력이 한곳을 노리고 온다면 20배나 되는 병력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놈들도 총과 대포를 가지고 있다.

조선보다 성능은 달리지만, 만만히 볼 수 없었다.

청나라를 무찌를 때처럼 일방적인 학살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요새 3곳은 서로 수백km 이상 떨어져 있기에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 곳에 모여 기다릴 수는 없었다.

3곳의 요새는 요충지이기 때문에 한 곳만 뚫려도 안쪽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예맥 기병대가 있기에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지만, 수적으로 너무 많이 차이가 난다.

'너무 성급했나?'

연은 작전판에 놓인 말판을 보자 별생각이 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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