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04화 (104/275)

< 104. 대전쟁시대(7) >

연에 의해 조선은 대제국이 되었다.

먹을 것을 걱정하는 백성들은 사라졌다.

외세의 간섭이 없어지고 침략 또한 일어나지 않았다.

고려 시대 가요 '가시리'에 나오는 가사처럼 조선에 대평성대(大平盛代)가 찾아왔다.

그렇다 해도 불만을 가진 자들은 존재했다.

x선비들이 사라지면서 눈치 빠른 자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선전하고 있지만, 그러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이들은 바로 관리들이었다.

고인물이나 다름없는 관리 중에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관상감에서 일하는 관리들이었다.

조선에서 연에 의해 과학이 발달하자, 입지가 좁아진 관상감 관리들은 불안해했다.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익히면 되지만, 이들은 그리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에 불만을 품고 말을 만들어 냈다.

남산 천문대가 문을 열자 위기의식을 느낀 이들은 유성이 떨어지고, 지진이 나고, 천둥과 번개가 칠 때마다 효종을 괴롭혔다.

'폐하, 하늘의 진노를 누그러트려야 하옵니다.'

'폐하, 삼남에서 땅이 흔들렸다고 하옵니다. 이는 지신(地神)의 분노로 인한 것이오니 가벼이 여기지 마시옵소서.'

'폐하, 달은 음을 상징하옵니다. 궁 안에 음의 기운이 가득 차 있사옵니다. 이를 그냥 두시면 나라에 큰일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전 같으면 모르지만, 연에게 자연의 원리를 수시로 듣고 있던 효종은 이런 개소리를 믿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무시할 순 없었다.

백성들이 불안해하기에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효종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곡해한 관상감 관리들은 그냥 있지 않았다.

자신들의 입지 올라갔다고 착각한 이들은 더욱 강도 높은 말을 지껄였다.

다두 왕국이란 속국이 생기자.

'폐하, 조선을 따르는 왕국이 있습니다. 그러하오니, 단을 올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천명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폐하. 천명을 받아들이시지 않으면 하늘이 노할까 걱정되옵니다.'

효종은 연이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으니 그것이 완성되면 하겠다고 했지만, 이들은 가만있지 않고 더욱 불길한 말을 내뱉었다.

효종은 짜증이 났지만, 관상감의 중요성을 알기에 내치진 못하고 무시로 일관했다.

관상감은 단순히 천문을 관측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풍수지리에 따라 터를 잡고, 책력에 따라 절기를 계산하고, 별자리의 움직임으로 국운을 점치는 일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 때문에 물시계로 시간을 측정하는 각루(刻漏)의 일이 없어지고 남산에 천문대까지 생긴다고 하자, 이들은 다급해졌다.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질까 걱정되었다.

불안감이 엄습하자 이들은 끝내 작당모의(作黨謀議)를 했다.

이런 사실은 기가 막히게도 아주 우연히 알아냈다.

효종은 백성들끼리 집단 패싸움이 일어나 사망자가 나오자 조사를 명 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밝혀진 진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다.

관상감 관리들이 포졸들에게 이끌려 나가자 연은 혀를 찼다.

'그냥 있으면 될 것을 사서 고생이네.'

연은 관상감 관리들을 위해 한양뿐만 아니라 각지에 천문대를 세워 이들을 수장으로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제풀에 사고를 쳤다.

조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경기는 축구였다.

연이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들의 체력과 전술을 기르기 위해서 도입한 축구는 어느새 모든 백성이 좋아하는 운동경기가 되었다.

동내마다 축구 조합이 만들어지고 전문 선수까지 등장했다.

축구 조합끼리 대항전이 벌어지면서 축구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여기에 투전판 조직들이 끼어들었다.

효종은 조선에서 도박을 금지하기 위해 특별조치를 내렸다.

삶이 나아진 조선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매일 같이 투전판을 전전하며 도박에 빠져들었다.

투전판에서 잃은 돈을 만회하고자 고리로 돈을 빌려 패가망신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그로 인해 시끄러워지자, 효종은 연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백성들이 일하지 않고 투전판을 전전하면서 패가망신하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어찌하면 좋겠느냐?'

'아버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 말해 보거라. 무슨 좋은 방법이 있느냐?'

효종의 말에 연은 강압적이고 기발한 착상보다는 단순하게 대응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연은 친구나 친지끼리 심심풀이로 하는 고스톱 같은 단순한 도박은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명절이면 윷놀이로 내기를 하는데, 그렇다고 모두 잡아넣을 수는 없지.'

그래서 연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미래를 위해서도 이 방법이 좋겠어.'

21세기에도 도박은 근절되지 않았다.

근절은커녕 도박이 돈이 된다고 도박 산업을 유치하기 바빴다.

금지한다고 해도 어디선가 틀림없이 도박판이 벌어질 것은 뻔했다.

연은 생각을 간단히 정리하고 말했다.

'아버지, 투전을 목적으로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법을 제정하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대부분 투전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돈을 잃고 만회하기 위해서 돈을 빌려 더 크게 투전을 합니다. 그러면서 패가망신하게 되는 겁니다.'

'어찌 그리 잘 아느냐. 너도 해보았느냐?'

평소에는 잘 넘어가던 효종의 물음에 연은 할 말이 없었다.

'저··· 도 들었습니다.'

'그래?'

다시 태어난 연은 도박을 해본 적도 구경한 적도 없었다.

그만큼 어린 나이에도 삶이 바빴다.

하지만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경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꺼낸 말인데.

아무튼 연은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투전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은 투전을 목적으로 가족과 친지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투전판에서 돈을 빌려 투전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투전을 목적으로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그 누가 돈을 빌려주겠습니까? 돈이 있어야 투전을 할 것 아닙니까?'

'오호! 자기 돈이 아니면 투전을 할 수 없으니 패가망신까지는 하지 않겠구나.'

'그렇습니다. 아버지.'

법이 공포되자 투전판의 규모는 급속도로 작아졌다.

투전판 조직들이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지만, 백성들은 바로 신고했고 협박한 조직들은 탄광으로 끌려갔다.

소득원이 사라진 투전판 조직들은 새로운 소득원을 찾았다.

그건 바로 축구 경기의 승패를 맞추는 거였다.

승패에 따라서 내기를 하는 일은 누구나 하는 것이었기에 그 틈을 파고든 거였다.

놈들은 큰돈을 벌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건 바로 승부조작이었다.

헛발질하거나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는 선수로 인해 축구 경기의 양상이 달라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끝내는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끼리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고 사망자까지 나왔다.

'어째 21세기와 똑같냐.'

조선 훌리건들에 의해 재밌어야 할 축구 경기는 살벌해졌다.

그렇다고 모두가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금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효종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를 시켰다.

관상감 관리들은 평소에도 짭짤한 별도의 수입이 있었다.

하늘을 보고 점을 치는 일을 하기에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돈을 주고 예측을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하늘의 별을 본다고 축구 경기의 승패를 맞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관상감 관리들은 투전판 조직들과 짜고 승패를 조작했다.

그러지 않아도 효종의 발표로 투전판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

서로 득이 되자 이들은 모의를 하고 승부를 조작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승부조작으로 예측이 적중하는 일이 많아지자, 관상감 관리들은 자신감이 생겼다.

모두가 우러러보는지라 겁까지 상실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된 이들은 뜬금없는 말로 효종을 괴롭히고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조사 결과를 받은 효종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 속이구나.'

그렇다고 관상감 관리들을 그냥 둘 수는 없는 일.

남산 천문대에서 이들이 허황된 말을 꾸몄다는 것을 밝히기로 했다.

'내가 관상감 관리들을 모두 데리고 갈 터이니 준비하거라.'

민간 신문까지 발행되는 조선이라고 해도 잡아다가 주리를 틀어 자백하게 할 수 있지만, 효종은 그리하지 않았다.

효종은 이번 기회에 지진과 천둥과 번개는 자연현상이란 것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해와 달은 신이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이란 걸 밝히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백성들이 사건의 전모를 알게 하고 싶었다.

아무튼 관상감 관리들은 모두 하옥되었다.

그들과 연계된 투전판 조직들도 모두 잡아들였다.

승부조작에 참여했던 선수들도 모두 연행되었다.

조사를 마친 이들은 탄광에 끌려갈 생각에 몸서리를 쳤지만, 모두 끌려간 것은 아니었다.

주동자에게는 더한 벌이 선고되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민심을 혼란하게 만들고 효종을 괴롭힌 주동자들은 탄광행이 아니라 남대문 앞으로 끌려갔다.

-이놈들은 돈을 벌기 위해 승부를 조작하고 허황된 말로 백성들을 불안하게 한 자들이다.

-그로 인해 사람이 죽고 이 나라 조선이 크게 흔들렸다.

형조참의 유학연은 효종에 관한 내용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대신 백성들에게 이들이 한 짓을 줄줄이 나열하였다.

-따라서 백성들을 기만하여 불안을 조성하고 나라의 근본을 흔든 놈들을 그냥 둘 수 없기에 극형에 처하기로 했다.

역적도 탄광행이지만, 민심을 혼란하게 만든 이들은 앞으로도 절대 살려 두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이번 사건의 전모는 민간 신문을 통해 자세히 밝혀졌다.

"허 참! 투전판 놈들이랑 짜고 승부를 조작했다는 말이었구먼."

"어쩐지 용하다 했지."

"우리가 속았구먼. 관상감 관리들의 말만 듣고 하늘이 노해서 우리 조선을 버린 줄만 알았네."

"그러게 말일세. 지진과 천둥 번개는 물론 달이 영성을 먹는 것도 자연현상이라는데, 그것도 모르고 태자비를 괜히 의심했네."

관상감 관리의 말을 듣고 퍼트렸던 백성은 계면쩍은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연의 아내가 된 태자비에 대한 흉문(凶聞)은 심했다.

입이 크다고, 쌍꺼풀이 졌다고, 음기가 강해 나라를 망친다는 말을 모르는 백성은 없었다.

"근데 이건 뭔 말인가?"

신문이 보다만 백성이 친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 그러나?"

"내년부터 정식으로 축구팀을 결성하고 '프로 축구 영웅전'을 개최한다고 하는데 통 뭔 말인지 모르겠네."

"어디 줘보게."

신문을 받아 든 백성은 한참을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동네마다 축구 조합을 만들어 경기를 하지 않는가?"

"그렇지."

"어떤 조합은 전문 선수를 고용하기도 하고?"

"그거야 모두 아는 것 아닌가."

"앞으로 전문 선수를 프로 선수라고 부르기로 했다네. 또한 그런 프로 선수로 구성된 조합을 팀이라고 하기로 했다고 하는구먼."

"혹시···?"

"맞네. 이것도 태자께서 만든 말이네."

이제 백성들은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모두 태자가 만든 것인 줄 알았다.

연은 조합이란 말 대신 팀이라 하고 전문이란 말 대신 프로라 부르기로 했다.

'먼저 갖다 쓰는 사람이 임자지.'

조합이나 전문이란 단어는 한자이고 팀이나 프로란 말은 아직 세상에 없는 단어다.

고대에 '짐을 끌 사슴, 개, 말, 소들이 잘 묶였다'는 의미로 쓰던 타움(Taum)이란 말이 팀으로 언제 변경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프로란 단어는 21세기 한국에서 프로페셔널을 줄여서 쓰는 말이다.

그래서 연은 먼저 쓰기로 했다.

'셰익스피어를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이유가 새로운 단어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지.'

원래 영어는 너무나 단조로운 언어라 극본용으로 쓸 수가 없었다.

대부분 독일어를 사용해 연극을 했는데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극을 집필하면서 풍부한 표현력을 창조해 냈다.

아무튼 연은 한자로 이루어진 조선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던 미래의 단어를 가져다 쓰길 주저하지 않았다.

* * *

마닐라 북쪽 앙헬레스에 목책으로 만들어 놓은 조그마한 요새는 다두 왕국의 전사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됐다.

다두 왕국 전사들은 생각보다 강한 저항 세력을 제거하면서 이곳까지 오느라 지쳤지만, 최종 목표를 두고 힘이 솟는지 눈빛이 살아 있었다.

적이 눈앞에 있다고 전처럼 나서는 전사들은 없었다.

혹독한 제식훈련 결과 전사들은 요새를 포위하고 카마찻 왕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카마찻 왕이 나타나자 전사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외쳤다.

"""천세, 천세, 천천세!"""

카마찻 왕은 흐뭇한 모습으로 전사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두 왕국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은 보니 기쁘기 한량없구나. 그대들이 있어 다두 왕국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이는 상국인 조선의 지원이 있기도 하지만, 그대들의 용맹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가 없는 일이도다. 하여, 과인은 그대들에게 드넓은 대지를 큰 상으로 내리도록 하겠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조선말이 능숙해진 다두 왕국 전사들은 조선의 문화 또한 흠모했다.

그래서인지 조선에서 쓰는 말을 외쳤다.

이는 모두 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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