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03화 (103/275)

< 103. 대전쟁시대(6) >

1년 전.

연은 천체 망원경용 렌즈를 만들기 위해 오랜만에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에 참석한 연구원들은 연의 질문에 서로를 바라보며 눈알을 굴렸다.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유리는 고체인가 액체인가? 누구 아는 이 있나?'

누군가 손을 들고 말했다.

'사장님, 유리는 고체가 틀림없습니다. 물처럼 흐리지 않고 딱딱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연의 입에서 나온 말을 뜻밖이었다.

'외관상 고체가 맞긴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유리는 고체를 가장한 액체가 틀림없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는 이유는 액체 상태와 같은 분자 결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압력을 가하거나 온도를 낮추면 기체가 액체가 된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안다는 듯 연구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듯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산소, 수소, 탄소, 질소 같은 원자가 서로 결합 된 것이 분자라는 것도 알 것이다.'

은동리에 있는 연구원이라면 연이 만든 원소주기율표나 몇 가지 분자식 정도는 꿰고 있었다.

'분자는 어떻게 결합 되어 있느냐에 따라 성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대표적인 예로 원유에서 나오는 휘발유(C8H18)와 경유(C12H26)를 들 수 있다.'

연은 칠판에 분자식을 적으며 말을 이었다.

'둘 다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분자를 이루는 원자의 개수가 다르기에 특성 또한 다르다. 따라서 물질의 상태를 말하는 고체, 액체, 기체는 분자 간의 결합 구조를 따져 봐야 한다.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거라.'

'''네, 사장님.'''

연의 말처럼 유리는 '과냉각된 액체'이다.

오래된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래가 두껍고 위가 얇다.

액체인 유리가 아래로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유리의 주성분인 규소의 녹는 점은 1,700도가 넘기에 만드는 원리를 모르면, 유리를 만드는 일은 강철보다 어렵다.

그동안 조선에서 만드는 유리는 소다석회유리(Soda-Lime Glass)였다.

소다(산화나트륨, 15%), 석회(산화칼슘, 9%), 규산(이산화규소, 70%)을 섞어 만드는 소다석회유리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유리이다.

유리를 만들 때, 1,700도가 넘는 녹는점을 낮추기 위해 소다를 넣지만, 액체라는 특성 때문에 형태가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석회를 추가하여 단단하게 만든다.

또한 급랭 처리하거나 열처리를 하면 강화유리가 된다.

소다석회유리에 산화마그네슘(MgO)이나 산화알루미늄(Al2O3)을 추가하면 강도가 높아진다.

하지만 투과율과 굴절률이 낮고 단단하기에 깎아서 가공하기 쉽지 않아 망원경용 렌즈를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에 비해 산화납이 첨가된 납유리는 색상 결함이 거의 없고, 물러서 가공하기 쉽고, 광택이 아주 좋다.

그래서 연은 강연회를 열어 연구원들에게 분자에 관해 설명하면서 산화납을 섞어 새로운 유리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납유리는 플린트(Flint) 유리라고도 부르는데, 처음 만들 때 수석(燧石)을 사용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무튼 납유리는 천체 망원경용 렌즈로 만들기에 좋다.

그런데 개발된 납유리는 전혀 다른 용도로 만들어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이렇게 만든 유리가 바로 크리스탈(Crystal, Lead Glass)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탈 잔은 새로운 효자 상품이지.'

연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산화납이 아닌 이산화티타늄을 첨가해 천체망원경용 렌즈를 다시 개발했다.

'다이아몬드로 깎아서 가공하면 높은 배율의 렌즈를 만들 수 있지.'

폴리프로필렌을 만들 때 사용하는 사염화티타늄(TiCl4)을 산소로 처리하면, 염소를 대체하여 이산화티타늄(TiO2)을 얻을 수 있다.

이산화티타늄을 4~6% 첨가한 유리는 단단하고 밝기와 굴절률이 매우 높기에 천체 망원경과 현미경 렌즈로 최상이었다.

'이산화티타늄은 활용도가 아주 많아.'

자연 상태로 많이 존재하는 이산화티타늄은 독성이 없다.

그래서 치약, 영양제용 캡슐, 식품의 착색제, 자외선 차단용 선크림 등을 만들 때 첨가된다.

차가운 느낌을 주는 화장품용 백색 파우더 또한 이산화티타늄을 넣어 만든다.

이산화티타늄은 강화, 항노화, 충진 기능이 있기에 타이어, 고무 신발, 고무 바닥재, 장갑, 축구공과 농구공을 만드는 데도 이용한다.

연이 이처럼 다양한 곳에 사용하는 이산화티타늄을 생산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선글라스가 필요해서지.'

몽골 초원과 예맥해로 진출한 대원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드넓은 황무지와 모래밭에서 반사되는 햇빛을 감당하지 못하고 눈이 망가지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산화철을 첨가해 색이 들어있는 선글라스용 유리를 만들었지만, 좋지 않았다.

'무겁고 투과율이 낮아.'

이산화티타늄을 첨가해서 만든 유리는 투과율이 높고 선명하다.

단단하기에 얇게 만들어도 잘 깨지지 않는다.

자외선을 차단하고 반사 방지 코팅(Anti-Reflective Coating)까지 된다.

이런 좋은 점이 많기에 이산화티타늄이 첨가된 새로운 유리는 색안경용으로는 최상이었다.

아무튼 연은 선글라스용 색유리를 만들려다가 고배율 천체 망원경과 현미경용 렌즈까지 만들게 되었다.

* * *

어두운 밤인데도 남산 주변 일대가 북적거렸다.

효종의 행차 소식에 백성들이 남산으로 몰려들었다.

남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고, 간격에 맞춰 세워진 가로등에는 전구 불이 켜져 있었다.

곳곳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효종은 남산 천문대를 방문했다.

천체 망원경을 처음 본 효종은 입이 딱 벌어졌다.

"크구나."

"별로 큰 게 아닙니다. 조만간 이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것만 해도 큰 데, 훨씬 더 크다니 기대되는구나."

이번에 만든 천체 망원경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효종에게는 느낌이 달랐다.

그동안 손안에 들어가는 작은 망원경만 보다가 150mm나 되는 큰 렌즈가 탑재된 천체 망원경을 보자 엄청나게 커 보였다.

"이 천체 망원경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300배 이상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00배라···, 감이 오지 않는구나."

"한 번 보시면 아실 겁니다."

남산 천문대는 조선전력공사의 소유이다.

연구원이 달을 향해 망원경 설정을 끝내자, 효종은 고개를 숙여 접안렌즈에 눈을 맞췄다.

천체 망원경은 안정된 자세로 보는 것이 좋기에 반사 망원경(反射望遠鏡, Reflecting Telescope)으로 만들었다.

반사 망원경은 굴절 망원경과 비교해 상이 또렷하진 않지만, 대구경으로 만들기 쉽고 색수차가 발생하지 않는다.

"오···!"

갑자기 효종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나오자 신하들은 무안한지 고개를 숙였다.

연은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아버지 연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네.'

이제 황제국이나 다름없는 조선의 왕인 효종이 체통을 버리고 이러는 이유가 있었다.

관상감 관리들에게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기하구나. 그런데 곳곳에 파인 것은 무엇이냐?"

효종은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태양계 밖에서 날아온 운석에 의해 파인 구멍입니다. 작게 보이지만, 한양보다 훨씬 넓고 어떤 것은 조선 팔도 보다 큰 것도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저기 움푹 들어간 곳은 무엇이냐?"

"바다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처럼 달에도 산이 있고 깊은 바다가 있는데 달에는 물이 없어 어둡게 보이는 것입니다."

접안렌즈에서 눈을 뗀 효종은 관상감 관리들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예로부터 관상감은 천제의 운행을 관측하여 길흉과 관련된 점성(占星)과 택일(擇日)을 해왔다. 그러니 너희들도 태자가 새로 만든 천체 망원경으로 달을 보고 길흉이 있는지 살펴보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효종의 부드러운 말투에 관상감 관리들은 순서대로 달을 관찰 하였다.

그러는 동안 효종은 관상감 관리들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연에게 물었다.

"달 표면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이 운석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도 다 태양계 밖에서 날아오는 것이더냐?"

"맞습니다. 폐하. 달은 공기가 없어 바로 표면으로 떨어져 큰 흔적을 남기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는 공기로 가득 차 있기에 지구로 떨어지는 운석은 공기와 마찰하여 불에 타버리면서 밝게 빛나는 것입니다."

효종은 손을 휙휙 내저으며 주먹을 쥔 후 다시 물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손안에 느껴지는 것이 있다니 그게 바로 공기란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폐하. 연구원들이 조사한 바로는 공기는 기체이기 때문에 밀도가 높지 않습니다. 밀도가 높지 않으니 느낄 수는 없지만, 공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구나?"

"네, 폐하. 눈으로 볼 순 없지만, 바람이 불면 공기가 이동하면서 밀도가 달라지고, 서로 밀도가 다른 공기끼리 충돌하면 번개가 치고 그로 인해 천둥이 울리는 것입니다."

"천둥과 번개는 네가 전에 말한 것처럼 단지 기상이변이란 말이구나?"

"네, 폐하."

연속된 효종의 물음에 연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준비는 했지만, 예상외로 잘하시는데.'

부자의 짜고 치는 고스톱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번개가 치지 않는다면 곡식이 자랄 수 없다고 했는데 무슨 말이냐?"

"폐하, 하늘에서 번개가 치지 않는다면, 비가 내릴 수 없습니다. 번개가 쳐야 비가 내리고, 번개로 인해 공기 중에 가장 많은 질소가 뭉쳐 비와 함께 땅으로 떨어집니다. 질소는 곡식이 잘 자라게 하는 비료입니다. 그러니 번개가 쳐야지만, 비가 내리고 비와 함께 땅으로 떨어진 질소로 인해 곡식이 잘 자랄 수 있습니다."

효종은 슬쩍 관상감 관리들을 쳐다보며 연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번개가 친다고 하늘이 노했다고 하는 거냐?"

"그것은 세상의 이치를 연구하여 알려고 하지 않고, 단지 머릿속으로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무시한 망상(妄想, Delusion)입니다. 사물을 연구하는 데 있어 생각은 중요하지만, 망상만으로 끝나면 아니 됩니다. 그게 바로 미신이기 때문입니다."

"고약한지고, 감히 망상으로 짐을 농락한다는 말이냐."

연과 효종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천체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고 난 관상감 관리들이 한쪽에 모여 있었다.

효종을 그들을 보고 물었다.

"어떠냐? 육안으로 본 것과 천체 망원경이란 기물로 본 달의 모습이."

"""···?"""

그동안 자신들이 내뱉은 말이 있기에 관상감 관리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너희들이 말한 것과 달리 달은 우리가 사는 지구를 도는 위성일 뿐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달을 신격화하여 달이 영성을 잡아먹었다고 하늘이 노한다는 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이냐."

관리들 앞으로 다가간 효종은 한 명 한 명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본 것과 같이 달에 파인 구덩이는 멀리서 날아온 운석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유성이 떨어지고 천둥과 번개가 친다고 하늘이 노했으니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할 수 있느냐?"

하다 보니 흥분됐는지 효종의 옥음(玉音)이 높아지고 단호해졌다.

"짐이 누누이 말했다. 미신을 따르지 말고 천체의 원리를 연구하라고. 더는 한양 안에서는 천둥과 번개가 쳐도 다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네놈들은 믿지 않고 백성들에게 잘못된 말을 전하고 있다. 어찌 천문을 연구한다는 자들이 자연의 법칙을 밝힐 생각을 하지 않고 괴담을 만들어 퍼트리며 짐을 괴롭힌 게냐!"

"""망극하옵니다. 폐하."""

연은 곳곳에 피뢰침을 설치해 놓았다.

더는 번개가 쳐도 벼락 맞아 죽을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관상감 관리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믿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는데, 천둥과 번개가 칠 때마다 하늘이 노해서 그런 것이니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곳 연구원들을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핍박까지 하였다 들었다. 그 연유를 알고 싶구나."

"""폐하, 소신들을 죽여주시옵소서."""

효종의 물음에 관상감 관리들이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x선비들이 사직서를 내고 나가자 기세가 등등한 자들이 새로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관상감 관리들이었다.

천기를 운운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높이기에 바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커져만 가는 조선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곳은 몰라도 천문을 관측하는 관상감은 인원이 늘어나지 않을 거로 판단한 거다.

"아무리 봐도 달에서 토끼도 방아도 신도 찾을 수 없구나. 말해 보거라. 진짜 달에 토끼가 사는지. 진짜 달에 신이 있어 짐이 하는 일을 마음에 들지 않아 노했는지!"

관상감 관리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깊이 숙이고 조아렸다.

"왜 말이 없느냐? 매일 같이 짐에게 하늘이 노하여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는데, 인제 와서 어찌 말이 없는 게냐? 감히 네놈들이 짐을 농락한 것이더냐!"

"""폐하, 죽여주시옵소서."""

관상감 관리들이 엎드려 외치자 효성은 콧방귀를 끼었다.

"흥! 네놈들이 짐을 농락하고도 살성 싶더냐? 누구냐? 말하거라! 감히 짐을 농락하고자 누가 선동했느냐!"

"""죽여주시옵소서, 폐하."""

관상감 관리들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외칠 뿐이었다.

하지만 효종의 굳은 표정을 풀리지 않았다.

"여봐라!"

"폐하. 부르셨습니까?"

포도대장 이완이 효종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망상으로 거짓된 말을 퍼트려 민심을 어지럽힌 이놈들을 당장 하옥하고 죄를 물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또한 뒤가 누구인지 밝혀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새로 조직된 국가정보원 요원들은 어디서부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졌는지 조사했다.

그런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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