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대전쟁시대(5) >
누구로부터 퍼진 소문인지 모르지만, 백성들은 동요했다.
먹고살 걱정이 사라지자, 다른 걱정이 생긴 거였다.
"태자가 서양과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던데 들었어?"
"그거야 우리 조선의 옛날 땅을 침범하고 그곳에 사는 백성들을 약탈하고 죽였기 때문이잖아."
"그래도 하늘이 노하신 것 같은데. 왜 이런 말이 있잖은가.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작학관보(雀學鶴步)를 말하는 건가?"
"맞아! 작학관보. 능력도 안 되면서 욕심을 내니 하늘이 노하신 게 틀림없어."
"참말이여?"
"그러니 지진이 나고 전과 다르게 천둥 번개가 심하지 않은가?"
이렇게만 생각하면 다행이었다.
"뭣이냐. 태자가 다두 왕국을 지원하여 서반아(西班牙)를 몰아내는 것은 좋은데, 무굴제국이라고 명나라보다 크고 조선보다 10배나 큰 황제국과도 전쟁을 치른다던데 걱정이 태산 같구먼."
조선의 백성들은 다두 왕국을 좋아했다.
자진해서 조선의 속국이 되겠다는데 싫어할 백성은 없었다.
게다가 다두 왕국이 커지면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천연고무로 만든 비싼 요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었는데, 싸게 풀린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달콤한 설탕 가격이 싸지고, 열대 과일까지 쉽게 맛볼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어서 빨리 다두 왕국이 스페인을 몰아내고 마닐라를 점령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무굴제국과의 전쟁은 아니었다.
근거도 없는 소문이 왜 퍼졌는지는 모르지만, 백성들은 불안해했다.
"요즘 그것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런데 무굴제국은 집채만 한 코끼리를 타고 전쟁을 한다는데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여?"
"그러게 말일세. 코끼리는 상스러운 동물인데 이러다 천벌 받을까 무섭네."
조선에서 굶주림이 사라진 지 얼마나 됐다고 백성들은 그 시절을 잊어버리고, 다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밑도 끝도 근거도 없는 소문만 듣고.
"요즘 삼남에서 지진이 나고 천둥과 번개까지 치는 게 다 그 때문이란 말이 있던데···."
"그래? 그럼 태자 때문인 거 아니여?"
"설마···! 태자 때문이겠어? 태자비 때문이겠지."
"태자비는 왜?"
"아, 태자비의 눈이 쌍꺼풀이라는데···, 그것이 영··· 그렇구먼."
"그래?"
"음기가 세면 나라가 망한다던데···. 어제는 달이 영성까지 먹어버렸다는구먼."
"이거 큰일 났구먼."
고대로부터 하늘의 별을 관측하는 일은 중요했다.
고려 시대에 서운관(書雲觀)은 천문학(天文學), 지리학(地理學), 역수(曆數), 측후(測候), 각루(刻漏) 등의 업무를 맡아보는 국가 기관이었다.
세조 12년(1466년)에 서운관은 관상감(觀象監)으로 바뀌었고, 중요성은 더욱 올라갔다.
관상감에 배속된 관리는 생도 60명을 포함하여 모두 200명이나 되었다.
게다가 영의정을 최고 책임자로 겸직하게 했으니, 천체를 관측하는 관상감을 조선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그만큼 떠받드는 곳이기에 관상감에서 하는 말은 중요시 되었다.
그런데 관상감을 폐지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효종은 연로한 영의정 김육을 생각해서 관상감의 일을 그만두게 했다.
실질 업무를 보는 관리들만 관상감에 남게 한 거다.
효종이 모두를 위해 생각하고 한 일이었는데, 곡해하는 관상감 관리들이 있었다.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자 국가정보원이 나섰다.
그리고 알아낸 내용은 뜻밖이었다.
소문의 근원지가 바로 관상감이었던 거였다.
효종은 생각 끝에 연을 불렀다.
전처럼 주리를 틀어 자백을 받아 내는 짓은 백성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지 않아도 태자가 하는 일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전과 다르게 조선 땅에 넓은 대로가 생기고 기차가 운행되면서 백성들의 이동이 많아졌다.
그로 인해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만주와 서역으로 진출한 조선군 병사들은 휴가를 받으면 신의주까지 가는 길은 곤욕이었지만, 압록강만 넘으면 그때부터는 편하게 고향으로 갈 수 있었다.
신의주에서 기차를 타면 목포까지 12시간 안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당분간이지.'
압록강 다리를 건설하고 있기에 다리가 완공되면 심양까지 기찻길이 연결된다.
심양에서 둔황까지 선로를 깔고 있지만, 워낙 멀기 때문에 언제 될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압록강 다리만 완공되면 발해만을 지나 산해관까지도 금방 갈 수 있게 된다.
아무튼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조선군 병사들은 말이 많았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들이라면 몰라도 신병 교육을 받고 조선군이 된 이들은 생각 자체가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해졌지.'
경비대원들은 참 힘들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다.
그랬기에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을 겪었기에 함께 자라고 지낸 동료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태자인 연의 보살핌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대우를 누리고 있는지 모르는 대원들은 없었다.
그런데 조선군 병사들은 달랐다.
이들은 단지 10개월 신병 교육을 받고, 젊은 혈기에 조선군이 되고자 자원입대했다.
그들은 전투다운 전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천하무적이나 다름없었다.
기차 안에서 떠들어 대는 그들의 무용담은 천하를 점령하고도 남았다.
조선군 병사들은 만주 북쪽과 서역까지 도로와 철도를 깔고 요새를 건설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지만, 그것뿐이었다.
휴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면, 자신들이 한 일을 과대 포장하며 자랑하기 일쑤였다.
그것만 하면 나쁘지 않았다.
기차 안에서 들은 말도 퍼트렸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상한 소문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효종이 엄벌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 연은 그냥 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 조선군 병사들은 혈기가 왕성한 조선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조선을 위해 나섰습니다. 그렇다고 봐주자는 말은 아닙니다. 중요한 정보는 그들이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냥 두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남아라면 입이 무거워야 하는데 입이 너무 가볍다.'
'소자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입을 막으면 위축이 되고 위축된 만큼 조선이 작아질 수 있습니다.'
'음···.'
효종은 연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은 단속한다고 단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봉림대군 시절 청나라의 볼모로 심양에 있을 때도 근거 없는 소문은 양산되었고 빠르게 퍼졌다.
잡아내는 족족 참수를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아버지, 조선군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군 생활은 힘듭니다. 그러니 그들이 떠드는 말은 무시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무용담이 아니라 백성들을 불안하게 하는 소문입니다.'
'알았다. 한낮 병사들의 무용담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지.'
'맞습니다. 아버지.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무용담을 굳이 막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을 불안하게 하는 소문을 낸 자들은 엄하게 벌해야 합니다.'
연은 조선군 병사들이 왜 그런지 알고 있었다.
휴가 나온 친구나 선배가 하는 말은 다들 과대 포장되었거나, 자신이 한 일이 아니거나, 옆 부대에서 일어난 일을 지껄인다는 것을 입대하니 알게 되었다.
'그런 낙이라도 없으면 안 되지.'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들은 철저히 전문 전투 요원으로 양성되었지만, 조선군은 아니었다.
노비로 살다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 또한 부모 밑에서 자라왔다.
그런 그들에게 치열함이 없는 건 당연했고, 바라면 안 되었다.
'용기백배(勇氣百倍)한 데 기 죽이면 안 되지.'
그래서 효종도 동의했다.
하지만 백성을 불안하게 만드는 소문을 퍼트리는 자들은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
효종은 국가정보원이 조사한 내용을 말해주며 연에게 물었다.
"이들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입을 함부로 놀린 대가를 받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이냐?"
"그러지 않아도 관상감 관리들이 텃세를 부리는 통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번에 정리했으면 합니다."
x선비들과 조폭들을 탄광으로 보내고, 서원을 대학교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조선에서 정리할 일은 차고 넘쳤다.
'그래봐야 최후의 발악이지.'
조선에서 만 18세가 된 성인 남성은 모두 10개월 동안 신병 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
한글과 간단한 사칙연산을 배우면서 젊은 남성들은 세상을 깨우쳐 나가고 있었다.
신병 교육이 끝날 때쯤이면, 젊은 혈기에 반 이상이 조선군에 지원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도 있었다.
대학교와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이도 있었고, 산업현장에 바로 취직하는 예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조선에서 소득 역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조선은 오로지 농사를 지어 얻은 소득으로 생활하던 세상이었다.
그런데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땅을 가진 양반과 지주들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눈치 빠른 사대부와 양반, 지주들은 효종에게 대항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자본이 있고 배운 자들이라 그런지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과거 시험이 사라졌기에 더는 성리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대학과 사관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신병 교육대에서 하는 교육과정을 알아냈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을 초빙하여 숙식과 용돈을 제공하며 자식들이 신병 교육대에 가기 전에 공부를 시켰다.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태세 전환을 시도한 거였다.
그와 달리 자본이 없는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넓은 세상으로 이동했다.
새로 얻은 땅을 개척해 나가는 조선군을 따라 요새 주변에 마을을 만들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물론 연의 명령을 받은 조선은행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말을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기득권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조선은행에서 빌린 자본으로 현지인들을 고용하여 농사를 짓고 상점을 열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남아 있는 사람이 피해를 본 것도 아니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기에 남아도는 농지가 많아졌다.
전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다.
한정된 좁은 땅에서 생산되는 곡식으로 생활하던 조선이었다.
그런데 연이 예맥 기병대를 이용해 과감한 작전을 실행한 끝에 무한할 정도로 조선의 영토가 넓어졌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열식기관과 열식발전기를 민간에 판매하면서 조선의 산업구조는 빠르게 변화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18세기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조선이 바뀌고 있었다.
조선에서 급격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지만, 18세기 유럽과는 달랐다.
그건 바로 먹고살 걱정이 없다는 거다.
산동반도와 새로 개간한 요동에서 산출되는 곡식만으로도 모두가 먹고 남을 만큼 풍족해졌다.
북해도에서 키우는 소들이 늘어가면서 '쌀밥에 고깃국'은 더는 소망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생각과 말을 듣고 퍼트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었다.
'말을 만든 놈들을 벌해야지.'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게 된 연은 어찌 처리 할지 고심되었다.
'하···! 미치겠네. 시작하기도 전에 난리군.'
예맥의 땅을 더럽힌 루스 차르국을 손보려고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마도를 점령해서 남쪽을 틀어막았다.
산해관을 막아 중원 세력이 넘어 올 수 없게 했다.
예맥해까지 진출하여 서양 세력과 몽골의 찌꺼기들이 넘볼 수 없게 곳곳에 요지를 선점하고 요새를 짓고 있다.
조선 영토 안으로 그 어떤 세력도 들어 올 수 없게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조선의 영토에 사는 사람은 전부 다 해도 2천만 명도 안 되기에 내부부터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또한 준가르 부족을 지원하여 히말라야산맥 남쪽으로 쫓아 보냈다.
예맥 기병대를 활용하여 드넓은 몽골 초원과 중앙아시아를 정리하고, 더는 말박이들이 설칠 수 없게 했다.
아시아 대륙 북방을 다 차지한 거대한 영토를 가진 조선이다.
그 어떤 세력도 영토 안에서 설치지 못하게 하고, 쳐들어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삼남에서 지진 몇 번 났다고, 천둥과 번개가 좀 심하게 쳤다고 불안에 떨며 뇌피설을 사실인 양 양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조선의 관리들이 그런 짓을 했다.
'공무원은 안되지!'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관리들이 입이 싸거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말을 꺼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은 효종에게 말했다.
"저와 함께 가보실 곳이 있습니다. 아버지."
"남산 위에 있다는 천문대라는 곳이냐?"
효종의 물음에 연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아버지. 그곳에 천체 망원경을 설치했습니다. 가보시면 달에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가봐야겠구나."
효종은 달의 표면을 볼 수 있다는 연의 말에 왠지 모르게 들떠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열식기관을 처음으로 가져왔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나···?'
어린 연이 가져온 손바닥만 한 기물에 촛불을 가져다 대자 혼자서 움직이는 열식기관을 보고 얼마나 놀라고 신기했는지, 그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난 효종이었다.
연은 힘이 있다고 지배할 마음은 꿈에도 없었다.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좋지 않아. 차단할 수도 없고.'
하지만 백성을 불안하게 하는 말을 양산하고 퍼드리는 관리들은 일벌백계로 처리해야 한다.
대전쟁시대에 조선 내부에서도 소소한 전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