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대전쟁시대(3) >
연은 전장식 강철 대포를 개발하기 전부터 후미 장전식 대포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급히 대마도에 설치해야 할 대포가 필요했다.
후미 장전식 대포용으로 개발하고 있는 포신을 전장식 대포로 만들어 보냈다.
후미 장전식 대포 개발이 끝나지 않았기도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조선 병사에게 맡길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철은 녹는 점이 1,500도가 넘기에 구리처럼 유압으로 원통을 만들 수 없다.
그렇다고 강철을 주철처럼 틀에 부어서 원통을 만들면, 균일하지 않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기다란 직사각형 강철괴가 생산되면 유압 프레스로 내려쳐서 둥글게 모양을 만들고, 선반과 밀링머신으로 깎아내고 구멍을 뚫었다.
완성된 포신에 특수 합금으로 만든 강선용 도구를 유압 프레스로 때려 박아 강선을 새겨 넣고 열처리했다.
그래서 완성된 강철 전장포는 말 그대로 강철처럼 단단했다.
후미 장전식 강철 대포 또한 만드는 방법이 다르지 않았다.
단지 대포의 후미를 막는 두꺼운 강철 덩이와 이를 지지할 부분이 추가될 뿐이다.
아무튼 연은 후미 장전식 대포를 만들면서 2번이나 사양을 변경했다.
처음에는 암스트롱포를 본떠 만들었다.
그런데 대포의 후미를 만드는 방법이 까다로웠다.
전장식 대포와 비교해 성능이 크게 뛰어나지 않았다.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포탄과 화약을 분리한 대포를 만들었다.
그런데 발사 속도가 느리고 불편했다.
결국 75mm 팩 곡사포(Pack Howitzer)를 본떠서 세 번째 대포를 완성했다.
'리틀 다이너마이트'라는 별명을 가진 75mm 팩 곡사포는 황동 탄피를 쓰기에 흑색화약이든 무연화약이든 아무거나 써도 상관이 없었다.
단지 포구에 찌꺼기가 많이 끼는 문제만 있을 뿐이다.
75mm 팩 곡사포는 주퇴복좌기 위에 올려 고정할 수 있기에 운반이 편하고, 반동도 작다.
'포탄에 청테이프를 감아서 탄피에 꽂아 쏴도 되지.'
팔뚝만큼 길쭉한 황동 탄피를 사용하기에 탄이 작아도 청테이프를 감아 황동 탄피에 꽂아서 발사해도 잘 날아간다.
물론 정확도가 떨어지고 포구가 상할 수 있기에 해서는 안 되지만, 21세기에 팩 곡사포를 가지고 이렇게 노는 양덕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덕중지덕은 양덕후'란 말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원래 포신이 짧은 팩 곡사포는 사정거리가 8.7km였다.
그런데 조303 대포의 경우 화약을 최대로 채워 넣으면 10km 넘게 날아갔다.
원형보다 포신의 길이가 더 길었기 때문이다.
연은 팩 곡사포의 구조는 알고 있었지만, 포신의 길이는 몰랐다.
설계도를 본 적도 없었고, 제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식이 시절, 미국 유학 중에 야외 실탄 사격장을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팩 곡사포를 가지고 노는 양덕들을 보고 놀랐다.
코끼리도 잡는 거대한 총을 들고 사격하는 양덕이 있지만, 대포를 가지고 노는 양덕도 있었던 거다.
호기심에 물어봤는데 그들은 자세히 알려 주며 직접 발사도 해보라고 했다.
1927년에 개발된 75mm 팩 곡사포는 왼쪽에 달린 정밀 측정기만 빼면 구조는 정말 간단했다.
아래에 달린 주퇴복좌기와 탈부착도 쉬웠다.
6부분으로 나누어 운반할 수 있기에 공수부대나 해병대, 산악지형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했다.
6·25 때 낙동강 전선에서도 사용했었고, 미군에서 예포로도 사용 중이다.
아무튼 연은 75mm 팩 곡사포를 설계하면서 포신을 12cm 나 더 길게 했다.
'젠장, 포신의 길이가 이보다 짧았나?'
팩 곡사포의 포신 길이는 1.38m인데 제원을 알지 못한 연은 1.5m로 설계했다.
아무튼 그 덕분에 원래 팩 곡사포보다 성능이 더 좋아졌다.
'분당 5발을 자랑하는 발사 속도는 일본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
700kg이 안 되는 가벼운 무게와 분당 5발이라는 연사 속도는 수석총보다 탁월했다.
'팩 곡사포는 반자이 돌격대에게 지옥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 줬지.'
야외 실탄 사격장에서 돌아온 공식이는 동영상 사이트에서 팩 곡사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알게 된 이야기는 다양했다.
아무튼 연은 암스트롱포에 이어 다음에 개발하려고 했던 팩 곡사포를 바로 실전에 투입했다.
돈도 돈이지만, 건조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조경 함선과 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각을 바꿨던 거다.
그래도 아쉬운 것이 있었다.
아직 대포용 폭발하는 폭탄 개발이 끝나지 않았다.
엄청난 폭발 압력에 신관이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곡사포인 조303 대포를 평사포를 쓰고 있었다.
그래도 포신이 길기에 400m/s가 넘는 속도로 날아간 포탄은 스페인의 해안포대와 정박하고 있던 갤리온들을 완전히 부숴 놓았다.
1시간 넘게 진행된 함포 사격이 끝나자 카비테 항구 주변과 산티아고 요새 일대는 불바다가 되었다.
여기저기 치솟는 불꽃들이 멀리 떨어진 조경 3호선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성능이 대단합니다. 함장님."
"그렇게 말이다. 이 정도까지 엄청난 줄은 몰랐는데···."
"작은 데도 전에 쓰던 전장식 대포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당연하겠지. 사장님과 연구원들이 몇 번이나 포기하고 새로 만든 것 아니냐."
"그렇습니까?"
놀란 표정을 보이는 작전 참모를 보고 옆에 있던 정보 참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무기 개발 진행 상황은 정보 참모만 알고 있었던 거다.
개발이 완료되고 실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개발 진행 상황은 극비에 부쳐졌다.
새로운 무기를 기대하고 작전에 임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작전 참모의 말에 병수는 주머니에서 새로 보급받은 초코파이만 한 시계를 꺼내 시간을 보았다.
공돌이들이 노력한 끝에 시계는 계속 작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됐군. 돌아가자."
"넵!"
작전 계획대로 임무를 수행한 조경 3호선이 마닐라만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5척의 갤리온들이 마닐라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병수는 전방에 나타나 5척의 갤리온을 보고 정보 참모에게 물었다.
"지금 몇 시지?"
"새벽 4시가 막 지났습니다."
"조금도 차질이 없군."
"혹독한 훈련의 결과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병수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다두 왕국 전사들은 제식훈련을 마치고 해남도를 왕복하면서 갤리온 운영 방법을 해경 대원들로부터 배웠다.
조선전력공사 해경에도 예수회를 통해 사들인 갤리온이 2척 있었기에 해경 대원들은 운영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저들이 산티아고 요새까지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못해도 3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습니다."
마닐라만 입구에서 스페인의 요새가 있는 파시그강 어귀까지는 50km가 넘고 지금 위치에서는 30km 정도 된다.
증기터빈을 사용하는 조경 3호선이야 30km 정도는 금방 이동할 수 있지만, 범선인 갤리온은 그러지 못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움직일 수도 없다.
다행히 마닐라만 안으로 시속 10km가 넘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계절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이것까지 이번 작전을 계획하면서 예상했었다.
그동안 치밀하게 작전을 세웠다.
조경 3호선이 포격을 시작하면 동시에 다두 왕국의 갤리온들이 마닐라만 안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해가 뜨기 전에 파시그강 하구까지 가려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다두 왕국 전사들이 능숙한 솜씨로 갤리온의 돛을 조정해 조경 3호선을 스쳐 지나갔다.
병수는 함교에 설치된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행운을 빕니다. 전하."
-걱정하지 마시오. 함장. 그리고 고맙소.
카마찻 왕은 희미하지만, 멀리서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불빛을 보며 병수 함장에게 무전으로 감사를 표했다.
카마찻 왕이 타고 있는 갤리온에는 열식발전기와 무전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최초로 조선의 우방국이 된 다두 왕국이기에 연은 과감히 발전기와 무전기를 주라고 했다.
산토도밍고를 공격할 때 카마찻 왕은 박문식과 대원들이 무전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카마찻 왕은 조선의 태자인 연에게 말을 전해 달라며 박문식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무전기가 있으면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와 쉽게 연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닐라는 대만보다 훨씬 넓고 크오. 우리가 마닐라를 점령하더라도 수시로 순찰해야 하는데 무전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소. 어려운 부탁인 줄 알지만, 마닐라를 지키고 고무를 채취하여 조선에 보내기 위해서는 무전기가 효율적일 거요. 또한 언제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는데 대조선의 아우가 된 다두 왕국을 위해서라도 무전기를 주셨으면 하오. 그러니 꼭 말을 전해 주길 부탁하오.'
박문식으로부터 카마찻 왕의 말을 전해 들은 연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다두 왕국은 조선을 대신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서양의 도적놈들을 몰아낼 첨병(尖兵)이 될 나라다. 그러니 그동안 지켜왔던 원칙을 깨고 다두 왕국을 지원하도록 하라.'
아시아 대륙 북방에서 약탈과 학살을 일삼는 루스 차르국과 코사크 용병들을 몰아낸 연은 다음으로 동남아시아를 주목했다.
'서양 놈들은 용서할 수 없는 도적놈들이다. 동양보다 먼저 발전했다고 해서 침략하여 약탈하고 학살하는 꼴은 내가 살아있는 한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 다두 왕국을 지원해서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응징하게 하라.'
미래의 지식으로 산업화에 성공한 연은 정당한 교역이 아닌 총과 칼로 도적질을 일삼는 서양 세력을 절대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힘이 있기 때문이지.'
힘이 없었다면 조선 또한 먹힐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힘이 있기에 참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조선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다 떠먹여 줄 수는 없지.'
연은 조선 최초의 속국이자 우방국인 다두 왕국을 지원해 주기로 하면서 관계를 동등하게 설정했다.
'그게 앞으로도 좋아.'
조선에서 다두 왕국에 주는 무기와 장비, 식량은 공짜가 아니었다.
굳이 공짜로 줄 필요도 없었다.
다두 왕국이 필리핀을 점령하면 아담한 대만의 고무나무보다 아마존에서 가져온 씨앗으로 자란 훨씬 큰 고무나무에서 원하는 만큼 천연고무 원액을 얻을 수 있다.
그것만 해도 다두 왕국은 조선에 진 빚을 갚을 수 있는데, 필리핀은 사탕수수며 열대과일 그리고 연이 원하는 다양한 광물이 풍부한 곳이다.
그래서 차관형식으로 빌려주었다.
자존심이 강한 카마찻 왕도 그런 방식을 원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다두 왕국을 지원해 줬고, 그에 대해 카마찻 왕은 감사를 표했다.
연신 고마움을 표하는 카마찻 왕의 말이 끝나자 병수는 다음으로 진행할 계획을 꺼냈다.
"그럼, 전하의 백성들을 싣고 와도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시오. 함장.
"알겠습니다. 전하. 선전을 바라며 저는 전하의 백성들을 싣고 오겠습니다."
-고맙소. 함장.
병수는 마닐라 점령을 확신했다.
계속되는 포격 중에도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적진을 관찰했다.
스페인군이 몰려있는 산티아고 요새가 확실히 박살 난 것을 보았다.
카비테 항구에 정박 중이던 갤리온까지 모조리 부서진 것을 확인했다.
이미 다두 왕국의 승리가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함장님, 저는 바로 대만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나는 이곳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겠다.
"넵, 함장님."
병수가 을수에게 대만으로 바로 올라가겠다는 보고를 마치자, 보급 참모가 생뚱맞게 말을 꺼냈다.
"함장님,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무전기까지 줘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장님의 명령이다."
"아, 그렇습니까?"
보급 참모는 조경 3호선에 예비용으로 두었던 열식발전기와 무전기를 다두 왕국의 갤리온으로 보내라는 말을 듣고 지금까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연의 명령이라고 하자 바로 수긍했다.
뭔지 모르지만,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지 보급 참모는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병수가 입을 열었다.
"창식아, 무전기를 복제할 수 있을까?"
"에이, 그걸 어떻게 복제합니까? 아무도 못 합니다."
"맞다. 복제 자체가 불가능하니 사장님께서 주셨겠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아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물어봐라. 그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
"넵! 함장님."
그저 윽박지르기만 하는 21세기와 다르게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는 달랐다.
의문이 있으면 물어봐도 된다.
물론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대원들이 연에게 궁금증을 물어보면 언제든지 자세히 설명했기에 이런 분위기가 정착되었다.
조선전력공사에서 만든 것 중 다른 건 몰라도 트랜지스터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 무전기는 논식이 말고는 그 원리를 정확히 아는 이는 없었다.
은동리에서도 논식이만이 트랜지스터의 증폭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다양한 논리회로를 개발하고 있다.
아무튼 병수는 카마찻 왕과 중요한 사항은 무전으로 연락하기로 했다.
어찌 될지 모르기도 하지만, 다두 왕국과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락해야 할 중요한 우방국이다.
'함께 피를 흘린 사이지.'
피를 나눈 형제라도 배신하는 게 인간이지만, 같이 피를 흘리며 전쟁을 겪은 전우라면 등을 맡길 수 있었다.
"출력을 최대로 올려 대만으로 바로 가자."
"넵, 함장님."
조경 3호선은 물살을 헤치며 시속 30km가 넘는 속도로 북쪽을 향해서 빠르게 나아갔다.
다두 왕국의 백성들을 마닐라로 실어 날라줘야 했다.
그래야만 마닐라에서 다두 왕국이 빠르게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이와 달리 스페인령 필리핀 총독인 파하르도는 죽다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