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97화 (97/275)

< 97. 오스만, 사파비, 무굴(4) >

그동안 조선에 많은 사신과 사절들이 찾아왔다.

호랑이 없는 산 중에 늑대가 된 일본의 다이묘들이 보낸 사신들은 수시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대륙의 남명, 대명, 후금, 청나라에서 보낸 사신도 자주 왔다 갔다.

류큐 왕국을 선두로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도 사신을 보냈다.

게다가 로마 교황청에서 교황 인노첸시오 10세가 보낸 사신은 감사를 표하는 친서까지 가지고 왔다.

그만큼 조선의 위상은 날로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효종은 울고불고 사정하는 사신을 차마 쫓아낼 수 없었다.

처음으로 정전에 들어온 오스만 제국의 사신은 총을 판매할 수 없다고 하자 두어 번 더 요청한 후 이해하고 넘어갔다.

대신 조선과 교역을 확대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지중해 동편을 정복한 오스만 제국은 대항해시대 이후 줄어만 가는 중계 무역 수수료 때문에 위협을 느꼈다.

그냥 있다가는 커져만 가는 서유럽에 대항할 수 없다고 보고 육로를 통한 조선과 통상을 원했다.

그런데 다음으로 들어 온 무굴제국에서 온 사신이 문제였다.

온갖 오스만 제국에 대한 자부심과 찬양을 늘어놓았다.

조선에서 총을 구입하고자 온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무굴제국은 전 세계 GDP의 25%를 차지하고 있고, 인구 또한 1억이 훨씬 넘는 대제국이다.

전투 코끼리 부대인 상병(象兵)은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조선의 총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무굴제국에서 온 사신은 무척이나 거만하고 당당했다.

"우리 위대하신 술타네스 셀라틴께서는 돌아가신 세 번째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고자 영묘를 짓고 있습니다."

죽은 왕비의 무덤을 건축하는 것까지 자랑했다.

그런데도 효종은 사신의 말에 호감을 표했다.

정이 많은 사람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그대의 황제는 정이 많은가 보오."

"그렇습니다. 폐하. 그래서 영묘를 밝히기 위해 밤에도 불을 켤 수 있는 전구를 구해 오라 하셨습니다. 전구를 주신다면 같은 무게의 황금으로 값을 치르겠습니다. 그러니 전구를 주셨으면 합니다."

"전구라면 그냥 줄 수도 있소. 하지만 전구만 가지고는 불을 밝힐 수가 없소."

"폐하,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전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전기도 판매해 주십시오. 이 또한 원하시는 만큼 황금으로 값을 치를 수 있습니다."

전기는 물론 수도, 욕조, 세면기, 천장 선풍기, 온돌 난방까지 되어 있는 사신관은 화려하진 않지만, 최첨단 기술로 지어졌다.

단단한 콘크리트 기초에 붉은벽돌로 지어진 사신관은 21세기와 비교해도 손상이 없었다.

단지 에어컨만 없을 뿐이다.

"그대는 번개를 잡을 수 있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찌 인간이 번개를 잡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전기란 번개와 같은 것이오. 따라서 전기를 주는 방법이란 없소."

"그럼 어떻게 전구에 불이 들어옵니까?"

"그건 발전기에서 전기를 만들어 공급하기 때문이오."

"폐하, 그럼 발전기를 파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황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으니 발전기를 팔아 주십시오."

"그건 안되오. 발전기는 전략 무기와 같은 것이라 팔 수 없소."

하지만 사신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집요하게 발전기를 팔라고 요구했다.

계속되는 거부에 처음에 당당하던 사신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폐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대로 돌아가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눈물까지 뚝뚝 흘리는 사신이었다.

그 모습에 효종은 한숨만 내쉬었다.

'오래갈 나라는 아닌 것 같군.'

처음에는 죽은 아내를 위해 영묘를 짓는다는 말에 관심이 갔지만, 사신의 행동을 보니 아니었다.

'20년 동안이나 궁궐도 아닌 무덤을 짓는데 막대한 국고를 허비하고 백성들을 동원하다니···. 아무리 거대한 제국이라지만, 오래 버티기는 힘들겠구나.'

효종의 생각은 반만 맞았다.

1632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타지마할은 무려 22년이나 걸려서 완공되었다.

그 후로도 10년 넘게 추가적인 보조 작업을 거쳐다.

네 귀퉁이의 높이가 40m나 되는 타지마할은 2만 명이나 되는 예술가들이 동원됐다고 한다.

5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타지마할을 건설하는 데만 21세기 가치로 1조 원에 달했다.

먹는 것 빼고 특별히 살 수 있는 변변한 상품이 없는 세상에서 1조 원이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돈이었다.

심청전에 나오는 공양미 300석의 가치가 현재로 따지면 1억 원이 되지 않는다.

조선의 세수 또한 30만 석을 넘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니 잘해야 1,000억 원 정도였다.

조선 시대에서 가장 잘나갔을 때의 재정 수입으로만 따져도 10년 치 세수를 영묘 짓는 곳에 써버린 거다.

이로 인해 무굴제국의 재정은 휘청거렸고, 막대한 세금과 과도한 수탈로 민심이 악화하면서 반란이 일어났다.

끝내 파디샤 자한은 폐위되었고, 아그라 성에 갇혀 창문을 통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타지마할을 보다가 죽었다.

하지만 거대한 제국이라 그런지 19세기까지 존속되었다.

"그대의 심정은 알겠으나 줄 수 없는 건 줄 수 없으니 이만 가보시오."

"폐하! 폐하! 소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폐하!"

효종의 축객령에도 사신은 엎드려 요청하고 또 요청했다.

당당했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허···."

효종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처형당한다며 애타게 호소하는 사신이 불쌍했지만, 그렇다고 발전기를 줄 순 없는 일이다.

"폐하! 폐하! 소인을 살려주십시오. 폐하!"

'폐하'를 외치는 사신의 목소리가 정전을 가득 채웠다.

연은 이 모습을 정전 입구에서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난리야?'

점점 곤혹스러운 변하게는 효종을 보고 연은 정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폐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너라. 그러지 않아도 너를 기다렸구나."

연을 보자 효종의 표정이 밝아졌다.

연이라면 곤란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폐하, 소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이대로 저 사신을 돌려보내는 것은 인의를 중시하는 조선에서는 가슴 아픈 일이옵니다. 그러니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리하도록 하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연은 엎드려 있는 사신을 보고 말했다.

"따라오시겠습니까?"

"네? 네."

사신도 알고 있었다.

전구와 전기는 모두 조선의 태자가 이끄는 조선전력공사에서 만든다는 것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사신은 효종에게 예를 올린 후 연을 따라 나갔다.

그 모습을 본 효종은 두통이 생겼는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대신들 또한 미묘한 감정을 표하고 있었다.

왕이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시대라 무굴제국 사신의 간절함이 남 일같이 안 했던 거다.

*

연은 무굴제국 사신을 좀 전에 있었던 정자로 데리고 갔다.

내관에게 말하여 차를 가져오라고 한 연은 고심에 빠졌다.

'어차피 길어야 10년 정도나 될까? 아니야 그 정도도 안 될 거야.'

아무리 보안을 지킨다고 하지만, 이제 민간에 기술을 이양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발전기에 관한 기술이 유출될 것 틀림없었다.

그럴 바에는.

'비싸게 팔아먹는 게 좋겠지.'

민간에 기술을 풀지 않을 수 없었다.

갈 길은 먼데 조선전력공사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유로운 개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해.'

연은 많은 것을 계산해봤다.

'르네상스 시대도 지났고, 대항해시대도 성숙기에 이르렀어. 이 대로 가다가는 먹힐지도 몰라.'

말박이들처럼 무조건 죽이면서 정복 전쟁에 나서지 않는 한 지식기반이 풍부한 유럽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복 전쟁의 끝은 좋지 않아.'

다 죽여버리는 것도 문제였다.

'사람이기 때문이지.'

전쟁에 나선 병사들은 극심한 PTSD를 안고 산다.

지금이라면 더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풀 순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연이 생각한 조선이 아니게 된다.

'아스텍처럼 될지도 모르지.'

사람이기에 사람을 죽이고 정복하는 전쟁에 계속 노출된다면 모두가 폭력적으로 변해 버릴 게 틀림없었다.

'폭력적으로 변한 집단은 끝내 말썽을 일으키지.'

역사적으로 봐도 폭력으로 일어난 나라는 폭력이나 반란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연은 대원들을 위한 휴양소를 만들고 정신 상담을 원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게 조치해 놓았다.

명분과 대의를 앞세웠다.

약탈하지 말라고 했다.

노약자는 건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지 않으면 '짐승으로 변한 너희들을 볼 것이다'란 말로 경각심을 일깨웠다.

연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베풀 수는 없는 일.

차를 마시고 난 무굴제국의 사신은 안정이 되었는지 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대의 살길을 열어주면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뭐든지, 뭐든지 말씀만 하시면 따르겠습니다. 태자 전하."

간절한 사신의 표정을 보고 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이렇지만, 언제 변할지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물론 그러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극소수일 뿐이다.

연은 사신을 극소수에 포함하고 싶었다.

"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그대가 조선을 위해 일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니 이 약 하나를 바로 드십시오."

"네? 이것이 무슨 약···."

사신은 내관이 차와 함께 가져온 유리병과 연을 번갈아 보며 사색이 되었다.

"별거 아닙니다. 매일 하나씩 먹으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단하면 뒷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네? 네."

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신은 유리병을 보고 사색이 되었다.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이대로 그냥 가면 처참하게 죽을 거야. 그러나 이 약을 먹고 전구와 발전기를 가져가면 죽지는 않겠지. 아니 부귀영화를 누릴지도 몰라.'

결심을 끝낸 사신은 약병에서 조그만 알약을 하나 꺼내 목 안으로 넘겼다.

조금 쓰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연은 사신이 알약을 삼키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죽상인 사신의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먹다가 안 먹으면 몸이 이상하겠지.'

생각 끝에 내관에게 급히 가져오라고 한 유리병은 몸에 좋은 홍삼으로 만든 알약이었다.

"원하시는 걸 말씀해 주십시오."

"원하는 건 없습니다. 단지 조선에 해가 될 일을 알게 되면 알려 주시면 됩니다."

"네? 그 정도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약이 떨어지면 저는 어떻게 됩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인편으로 약을 보내주겠습니다. 그러니 그자에게 정보를 주고 잘 돌봐 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예상과 다른 요구에 사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본 연은 본론을 꺼냈다.

"전구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발전기를 준다면 그대의 파디샤께서는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말씀만 하시면 제가 반드시 받아 오겠습니다."

"그럼 다이아몬드와 백금을 주실 수 있습니까?"

백금은 질산의 원료인 암모니아를 만드는 촉매로 많이 필요하지만, 조선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다이아몬드는 산업에 쓰기 위해서였다.

공식이가 다녔던 연구소도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구입하려고 자료를 검색하다 다이아몬드 역사를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인도에 다이아몬드가 많지.'

18세기 초에 브라질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기 전에는 인도에서 나는 다이아몬드가 대부분이었다.

공업용 다이아몬드는 기계, 금속, 자동차, 건축, 토목, 광산, 전자, 태양광, LED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콘크리트, 아스팔트, 다리를 절단, 절삭 하거나 전자재료, 신소재, 세라믹 재료, 가구용 목재, 자동차용 비철금속, 인쇄회로기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이아몬드는 가공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은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법을 알고 있지만, 지금 기술로는 10만 기압 이상을 만들기 어렵기에 헐값이나 다름없는 다이아몬드를 요구했다.

"그보다 더 좋은 루비나 사파이어, 황금을 드릴 수 있습니다."

"다른 건 필요 없고, 다이아몬드와 백금을 준다면, 전구와 전구를 밝힐 수 있는 발전기를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정말 감사합니다."

사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사신이 돌아간 후.

연은 다시 효종을 찾았다.

"사신은 돌아갔느냐?""네, 아버지."

"휴···, 다행이구나."

이제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조선의 왕인 효정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제국에서 온 사신의 요구는 난감했다.

"그래 무슨 말로 돌려보냈느냐?"

"발전기를 주기로 했습니다."

"응?!"

"민간에 공개하면 기술이 유출될 게 틀림없습니다."

"음···."

효종도 알고 있었다.

조선전력공사에 있는 기술들을 민간에 이양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로 연과 합의 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가 무엇이냐?"

"금강석(金剛石)입니다."

"밀떡 폭탄이 있는데 찬석(鑽石)을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

조선에도 찬석이나 금강석이라 부르는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새로운 기물을 만들고 가공하는 데 필요합니다."

"그래? 세상은 넓고 쓸모없는 것은 없다더니···."

찬석은 돌이나 쪼갤 때 쓰는 광물이었다.

"아버지."

"응?"

세상 만물에 대해 깊이 생각 중이던 효종이 연이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다.

"내년에는 큰 전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효종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냥 둬선 안 되겠지?"

"네, 아버지."

"준비는?"

"충분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그래, 할 거면 해야겠지."

조선의 왕인 효종의 승낙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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