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94화 (94/275)

< 94. 오스만, 사파비, 무굴(1) - 지도 >

연은 은진이와 삼복이만 남겨두고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잠시 쉬고 있거라."

"""네, 사장님."""

은진이의 표정을 보니 뭔가 심각한 일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두 나간 후.

은진이가 눈짓을 하자 삼복이가 검은 가죽 가방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건···."

"네, 맞습니다. 전에 사장님께서 행식이에게 전해 주라고 했던 보고서 원본입니다."

"그렇구나. 내가 시간이 없어서 보질 못했는데 갑자기 꺼내든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구나."

요즘 들어 연은 무척이나 바빴다.

어린 나이라도 가정이 생겼으니 지켜야 했다.

'처음 생긴 여자친구, 아니 아내인데 잘 해줘야지.'

연은 마음에 드는 고운 태자비가 보고 싶었기에 바쁜 일정에도 자주 한양을 오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그런 이유 때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신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네.'

수만 리 길이나 되는 먼 곳에서 온 세 제국의 사신들은 무슨 생각인지 두문불출했다.

조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그런 것 같았지만, 속내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좀 전에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 어떤 부분인지 말해 보거라."

"네, 사장님."

은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맥해 남쪽에 있는 병력 말판을 이동시켰다.

"보고서 내용을 검토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예맥해와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와 겹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맥해 남쪽에서 이곳까지 진출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맥해를 전부 차지하려면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이곳까지 진출한 세력이 있다고?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어찌 된 것이냐?"

예맥해 북쪽 서맥강(우랄강) 하구에 요새와 자유 무역도시를 짓고 있는 기수로부터 주변에 위협할 만한 세력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연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처럼 예맥해 남쪽도 무주공산인 줄 알았다.

"요원들의 보고로는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고 예맥해 서쪽 캅카스산맥이라 부르는 곳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국이 있다고 합니다."

"제국?"

연은 지도 판에 놓인 말판을 따라 국경선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바단 길이 쇠퇴하고 이곳은 텅 비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란 말인가?'

은진이가 놓은 말판은 예맥해 양쪽으로 중간까지 올라와 있었다.

"틀림없는 사실이더냐?"

"네, 사장님. 요원들이 알아본 바로는 사파비 제국이 이곳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파비 제국이라고? 페르시아 제국이 아니라?"

사파비 제국이란 말을 처음 들어 본 연은 눈을 깜빡이며 지도 판과 은진이를 번갈아 보았다.

페르시아 제국이 아니라 사파비 제국이라니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네, 사장님. 사장님 말씀에 따라 요원들이 알아봤지만, 페르시아 제국이란 없었습니다."

"정말이더냐?"

"네, 사장님."

"음···."

역사만 나오면 찔리는 연이라 제 생각이 옳다고 우길 수가 없었다.

'사파비 제국이 나중에 페르시아 제국이 되는 건가?'

사실 페르시아 제국이란 말은 서양에서 이란을 차지했던 제국을 몽땅 싸잡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연이 잘못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보다."

연은 바로 시인하고 캅카스산맥 아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이 산맥까지는 특정한 세력이 없지만, 이 아래는 사파비 제국의 영역이란 말이지?"

"네, 사장님. 원래는 사카르트벨로 왕국이 있었는데 티무르에 의해 멸망한 후 현재는 사파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음···."

조서원의 요원들이 알아본 정보라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런 방향으로 훈련을 받았기에 잘못된 정보를 보낼 일은 없었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에서 대대장급 이상 고위 장교는 인사, 정보, 작전, 보급, 보안 이렇게 5명을 참모를 두고 있다.

그중 보안 참모는 조서원에서 보낸 요원이 맡고 있었다.

보안 참모는 일종의 특별 참모로서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그렇다고 보안 참모가 나치의 게슈타포같이 고위 장교들을 감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보안 참모는 거국적인 정세를 고위 장교에게 알려주고, 경비대의 안전과 조서원의 명령을 수행하는 게 임무였다.

따라서 고위 장교는 보안 참모와 사이가 좋았고, 요구가 있으면 바로 들어 주었다.

물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보안 참모와 부닥칠 일이 없었고, 보안 참모와 잘 지내면서 중요한 정보를 얻는 것이 자기 부대의 안전을 위하는 길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보안 참모들끼리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교차 검증을 하고 있다.

그랬기에 잘못된 정보가 발생할 확률은 극히 낮았다.

연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구성한 이유가 있었다.

'뭔가를 감추려고 할수록 더 궁금해하는 게 사람이지.'

감추려고 하지 않았기에 사단장급 아니면 보안 참모가 조서원 소속인지 알지 못했다.

장교들과 대원들은 보안 참모가 사령부에서 파견된 특별 대원인 줄만 알았다.

아무튼 알고 있던 내용에 착오가 생겼다.

"거참, 곤란하게 됐네."

"그렇게 말입니다. 사장님."

삼복이도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예맥해 주변에 석유가 묻혀 있다고 하는데 포기하기에는 아까웠기 때문이다.

연은 그동안 명분 없이는 타국을 침략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기에 인제 와서 사파비 제국의 땅을 노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양아치가 될 순 없지.'

수시로 양아치론을 떠들고 다녔기에 명분 없이 사파비 제국을 남쪽으로 밀어낼 순 없는 일이다.

'제기랄, 더럽게 됐네.'

물론 계책으로 명분을 만들어 사파비 제국을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 말하며 여차하면 테러를 저지르는 놈들인데···. 젠장!'

완전히 밀어 버리고 인종청소를 한다면 모르지만, 괜히 건드려 원한을 쌓고 싶진 않았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연이 생각에 빠진 가운데 적막이 흘렸다.

지켜보던 은진이가 삼복이와 눈을 마주치더니 입을 열었다.

"사장님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응?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느냐?"

은진이를 보며 연은 귀를 쭝긋 세웠다.

배운 것 없는 은진이지만, 본능적으로 꾀가 많은 사람이다.

그러니 기발한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보고서 내용을 부원장과 검토해 봤습니다."

"그래? 뭔가 쓸만한 게 있더냐?"

"네, 사장님. 예맥해 아래는 오스만 제국, 사파비 제국, 무굴제국이 있는데 이들은 서로 종교가 다릅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아닌데."

힌두교를 믿는 백성들이 대부분인 무굴제국도 이슬람이고,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으로 알고 있는 사파비 제국 또한 이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종교가 다르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 제국 모두 이슬람을 믿고 있지만, 상황이 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은진이가 말하는 종교는 종파였다.

"아, 맞다.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누어져 있지."

"그렇습니다. 사장님.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순나파(아랍어)이지만, 사파비 제국은 시아파라고 합니다. 그래서 두 제국은 갈등을 빚고 있고 수시로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맞다. 네 말이 맞아. 내가 그것을 잊고 있었구나."

은진이는 연에게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점을 자세히 설명했다.

"음···, 계승자를 누구로 보는 것 때문에 갈라져서 싸운다는 말이지."

"단지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사장님."

수니파는 역대 할리파(칼리파)를 계승자로 여기지만,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계승자로 여긴다.

단지 이런 문제 때문에 두 종파가 갈라진 것은 아니었다.

시아파의 계승자인 알리가 쿠데타 세력에게 암살당하고, 알리의 차남인 후세인 또한 우마이야 칼리파에 의해 전멸당하면서 갈등이 극심해졌다.

게다가 페르시아인 대부분은 수니파였는데 사파비 왕조가 들어서면서 잔인하고 혹독하게 시아파를 믿으라고 강제로 개종을 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처형당했다.

그러다 보니 수니파 학자, 지식인, 예술가들이 주변 나라로 도망을 쳤고 갈등은 끝내 전쟁으로 번졌다.

'역사는 알면 알수록 누가 잘했고 잘못했다 따질 수가 없는 거구나.'

처음엔 수니파가 시아파의 계승자를 암살했지만, 다음에는 시아파가 수니파를 탄압했다.

그러니 누가 잘못했는지 따질 수가 없게 됐다.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겠네.'

연이 알고 있는 역사 지식 중에도 인과를 따지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잔인한 짓을 수도 없이 저질렀기에 보복당했지만, 나중에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강하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고, 승자에 의해 역사가 왜곡될 수밖에 없지. 하지만 진실은 감춰지지 않아.'

그래서였다.

강한 힘을 보유한 연이지만, 명분 없이 양아치 짓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강한 자가 역사를 왜곡하고 지배한다고 하지만, 쌓인 불만은 해소되지 않지.'

연 또한 원나라 때 당한 일을 가지고 몽골을 박살 내고 있지 않은가.

힘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힘이 생겼기에 수백 년 전의 일을 명분 삼아 저지르고 있었다.

"그래서 은진이 네 생각은 무엇이냐?"

"첫 번째는 캅카스산맥 아래에 있는 사카르트벨로 왕국을 지원하여 사파비 제국을 밀어내는 방법입니다."

"준가르를 무굴로 보낸 것처럼 말이냐?"

"그렇습니다. 사장님."

결국 준가르 왕국에 총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너무 가난한 왕국이라 총값을 지불할 수 없기에 나중에 받기로 하고 총과 화약을 보내 주기로 했다.

'어차피 무굴제국도 몽골의 잔당일 뿐이다. 그러니 잔당끼리 싸우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무굴제국은 이슬람이었다.

하지만 오스만과 사파비와는 상황이 달랐다.

두 나라 백성들은 이슬람을 믿는 백성들이 대부분이지만, 무굴제국의 백성들 대부분은 힌두교를 믿고 있었다.

여기에 불교를 믿는 준가르 부족을 보낸다면 극심한 혼란에 휩싸일 게 틀림없었다.

"그 방법도 좋겠지만, 다른 방법도 들어 보자."

"네, 사장님. 두 번째 방법은 오스만과 사파비가 서로 싸울게 하는 겁니다."

"서로 싸우게 하다니, 지금도 싸우고 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더 크게 싸우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이냐?"

이번에는 삼복이가 나섰다.

"이번에 한양으로 온 세 제국의 사신들이 요구한 것이 바로 총입니다."

"그래?"

"네, 사장님. 서로 자기 제국에만 총을 팔아 달라며 뒤로 요청하는 통에 관리들이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

"아···."

이제야 사신들이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겉으로는 두문불출하면서 움직임이 없어 보였지만, 뒤로는 조선의 관리들에게 수작을 부리고 있었던 거다.

전 같으면 사신이 준 뇌물을 냉큼 받아먹었을 조선의 관리들이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조그만 뇌물이라도 받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탄광으로 끌려갔다.

탄광으로 끌려간 선비들이 어떤 고생을 하는지 알고 있는 관리들이라 더는 뇌물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안달이 난 사신들이 효종을 찾아뵙겠다고 수시로 간청을 드렸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였다.

서로 먼저 만나겠다고 하는 통에 결정할 수가 없어 아직 사신 접견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모두에게 총을 팔자는 말이냐? 다른 곳은 몰라도 무굴제국에는 팔 수 없다."

준가르 왕국에 총을 지원해서 무굴제국을 공격하려는 마당에 무굴제국에도 총을 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무굴에는 총을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행식이에게 준 보고서에도 절대 안 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럼 오스만과 사파비 양쪽에 총을 팔아 싸우게 만들자는 말이지?"

"그것도 아닙니다. 오스만은 사파비와 비교해 전력이 배 이상 강합니다."

연은 삼복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세 제국 중 무굴제국이 가장 강력했다.

그래서 준가르를 지원해 무굴제국을 혼란에 빠트리려 했다.

다음으로 강한 제국은 오스만이었다.

그런 오스만에 총을 넘긴다면 사파비의 앞날은 안 봐도 뻔했다.

"사파비에 총을 팔아 양 제국을 견제하자는 말이구나."

"네, 사장님. 그러면서 땅을 넘기라고 요구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은진이의 말에 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미국도 돈 주고 알래스카를 샀는데.'

상황은 다르지만, 곤란한 틈을 이용해 땅을 사는 방법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총값을 땅으로 받자는 말이구나."

"맞습니다. 사장님. 이 방법이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맞습니다. 사장님. 공개적으로 파는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 감정이 상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이번에는 삼복이가 나섰다.

둘이 장단이 맞는 걸 보니 이런 일을 예상하고 계획한 것이 틀림없었다.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지도 판을 보며 작전을 짰다.

"이곳 산맥 이름이 엘부르즈라고 했느냐?"

"네, 사장님. 엘부르즈산맥을 따라 북쪽을 넘기는 대신 총을 지원해 준다고 협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미래에는 엘부르즈산맥 남쪽은 황무지로 변해버리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따라서 힘들게 엘부르즈산맥을 넘어 예맥해 남쪽을 관리하기보단 총을 사서 오스만을 공격하는 것이 더 좋아 보였다.

"알았다. 이건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즉시 기수에게 자유 무역도시 건설을 중단하고, 대기하라고 전해라."

"넵! 사장님."

연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흑해까지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 것이다.

21세기에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라 부르는 곳은 현재 사파비 제국의 영역이다.

총을 팔아 이곳까지 얻을 수 있다면 흑해 동쪽 바다를 확보하게 된다.

'어차피, 루스 차르국은 쳐야 해.'

예맥의 땅을 더럽힌 루스 차르국에 포로로 잡은 예르마크를 보냈지만, 아직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매를 버는 짓이지.'

명분은 조선에 있으니 언제든지 공개적으로 하바로프를 처형하고, 루스 차르국을 쳐들어가면 된다.

연은 지도 판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예맥해를 전부 손에 넣을 수 있다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모두 들어오라고 해라."

"네, 사장님."

결정을 끝낸 원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을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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