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90화 (90/275)

< 90. 준가르(1) >

원은 아시아 대륙 북쪽 지역을 전부 조선의 영토로 만들었다.

하지만 내부 정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추운 겨울에 대원들을 내보낼 수는 없었다.

예맥의 땅 곳곳에 지어진 요새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만 해도 대원들에게는 힘겨운 일이었다.

'자원만 아니면 사람 살기 힘든 땅이지.'

그래서인지 예맥의 땅 북쪽은 21세기에도 개발이 되지 않았다.

물론 가스와 유전이 있는 곳은 별개였다.

'내가 살기 힘든 곳이면 남들도 살기 힘든 곳이야.'

그런 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원주민들을 약탈하는 코사크 용병들을 그냥 둘 순 없었다.

그래서 원은 과감히 예맥산맥까지 진출하여 서양 세력이 넘어오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

그리고 그물을 걷어 올리듯 예맥의 땅에 숨어 있는 놈들의 숨통을 조여갔다.

곳곳에 요새를 짓고 원주민들을 불러들여 겨울을 지내게 했다.

안전한 요새 주변에서 사는 것을 허락했다.

세금 또한 일절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먹을 것이 없다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다.

가지고 온 모피는 정당한 가격을 주고 매입하라 했다.

원주민 말고는 그 누구도 사냥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물론 맹수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면서 원주민들에게 조선말과 한글을 가르쳤다.

'그곳에서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지.'

원은 21세기에서 미국이 알래스카 거주민들에게 했던 복지정책을 따라 하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 도망 다니던 루스 차르국 약탈자들과 코사크 용병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연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원은 조서원의 수장인 은진이와 부원장인 삼복이를 불렀다.

"준가르 놈들에 대해 알아보았느냐?"

"지봉님이 말하는 것 빼고는 새로운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추운 겨울이라 유목민들을 조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의 물음에 은진이와 삼복이가 곤란함을 표했다.

"어찌 됐건 놈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이대로 그냥 둘 순 없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장님."

"봄이 되면 즉시 요원들을 파견하겠습니다. 그리니 기다려 주십시오."

어쩐 일인지 조서원의 원장과 부원장이 같은 말을 했다.

그만큼 북방의 겨울은 위험했기 때문이다.

"너무 서두르지 말아라. 요원들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 무리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사장님."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장님."

두 사람을 돌려보낸 원은 그들이 남긴 보고서를 살펴봤다.

광활한 중앙아시아를 차지하고 있는 준가르는 몽골제국이 분해된 후, 남은 마지막 유목민 왕국이었다.

'새로운 조선의 영토와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해.'

준가르는 예맥 기병대가 이동할 때 기습하고 조3 소총까지 탈취해 갔다.

'절대 그냥 둘 순 없어.'

원은 고심 끝에 고려인 학자 지봉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명분을 만든 후에 끝장을 내주마.'

원은 먼저 준가르 영역에 사는 유목민들을 조선의 품 안에 넣기 위해 설득 작업을 시행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 * *

옹진반도는 물론 한양에도 밤새 내린 눈으로 새하얗게 변했다.

전 같으면 추위에 떨며 다가올 보릿고개를 기다려야 했지만, 풍족해진 조선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백성은 없었다.

조선 백성 대부분이 뜨뜻한 집안에서 겨울을 보낼 때 먼 길을 이동하는 백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귀성객이었다.

신의주에서 전주까지 이어지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이동하는 귀성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어디까지 가시오?"

"공주가 고향이라 그곳까지 갑니다."

"그래요? 나도 공주가 고향인데 어디 사시오."

두 사람은 신의주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왔다.

오늘 동안 기차 안에서 파는 삶은 달걀과 주먹밥을 사 먹었다.

"같이 나눠 먹읍시다."

"그래요? 고맙습니다."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은 1문이다.

그래서인지 기차 안에서 파는 것들은 모두 1문 단위였다.

장터 같으면 1문을 내면 나머지로 쌀을 받을 수 있지만, 기차 안에서는 그럴 수 없기에 양이 많았다.

원은 인플레이션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정했는데, 쌀 본위제라 그런지 물가는 전혀 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살 수 있는 물품이 많아지자, 동전 사용량은 급증하고 있었다.

"뭘 그리 많이 사셨소?"

"별거 아닙니다. 부모님께 드릴 것 몇 가지 샀습니다."

"그래요? 나도 그런데."

젊은 두 사람은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북으로 올라갔다.

한 사람은 무순에서 일자리를 찾았고, 다른 사람은 발해만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휴가는 며칠이나 받았소?"

"10일입니다."

"그래요? 나도 10일인데."

추석 때도 두 사람 모두 10일 휴가를 받았지만, 기차가 개통되지 않아서 고향에 갈 수 없었다.

이제는 신의주까지만 오면 하루 안에 고향인 공주까지 갈 수 있었다.

열식이가 만든 기차용 디젤 엔진은 아직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작동되고 있었다.

한양이 가까워질수록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객차 안은 장터처럼 시끄럽게 변했다.

그래도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효종 4년(1652) 1월 1일.

계묘년(癸卯年) 새해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원은 남산 위로 올라갔다.

해 질 녘에 도착한 남산 꼭대기에는 행식이가 자기 또래 사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신다고 하니 축하드립니다.""

"그래, 너희들도 새해 복 많이 받는다고 하니 축하한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조선 시대 새해 인사는 듣기도 말하기도 묘했다.

원은 행식이 옆에 있는 사내를 보고 하얀 김을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방석인가 보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사장님. 소인 남산 탑 공사를 책임지고 있는 방석입니다."

원은 행식이에게 남산 탑 공사를 담당할 책임자를 직접 임명하라고 했다.

조선의 태자이자 조선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앞으로 영토 확장과 관리에 신경 써야 하기에 조선전력공사 내부 관리를 나눠주고 있었다.

'권한을 쥐고 분배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독재자이고 망하는 지름길이지.'

정치를 모르는 원이지만,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일을 맡기지 못한다고 하는 소리는 말이 되지 않아.'

잘못될까 봐, 실수할까 봐, 일을 맡기지 않으면 아랫사람은 발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원은 행식이가 추천한 방석이에게 중요한 남산 탑 공사를 맡겼다.

"그래,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사장님. 미천한 저에게 이런 중대한 일을 맡기셔서 고맙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석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맑고 그윽하게 들어간 눈을 보니 방석이 또한 천재급 인재가 틀림없었다.

"1단계 공사가 언제쯤 끝날 것 같으냐?"

"늦어도 여름이 오기 전에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은 조선전신전화국을 세우면서 '조선방송국'도 설립했다.

당연히 조선방송국 국장은 선식이었다.

조선 팔도와 만주까지 돌아다니면서 원이 원하는 대로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는 선식이를 모르는 사람은 조선 땅에서 찾기 힘들었다.

그만큼 인기 있는 선식이라면 조선방송국도 잘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하고 재밌어해야 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백성들을 하나로 묶으려면 라디오 앞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은 선식이가 할 일이다.

"좀 늦더라도 높이 올릴 수 있게 기초를 단단히 하거라."

"네, 사장님. 명심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은 방석이에게 진행 상황을 물어본 후 행식이와 단둘이 자리를 가졌다.

"앞으로 사신이나 사절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네가 수고 좀 해야겠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은진이에게 말해 두었다. 자료를 받으면 즉시 예조 판서 대감에게 전달하거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조선전력공사의 정보를 담당한 조서원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효종 또한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원은 조서원에서 수집한 정보를 행식이를 통해 전달할 생각이다.

예맥 기병대가 예맥해(카스피해)까지 진출하자 제일 먼저 찾아온 사신은 루스 차르국이 아닌 오스만 제국이었다.

아직 예맥해까지 세력을 넓히진 않았지만, 오스만은 그리스를 포함한 동유럽과 아프리카 북쪽 해안 대부분을 차지한 거대 제국이었다.

그런 오스만에서 보낸 사신이 서맥(아티라우) 요새를 찾아왔다.

그런데 사신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술탄께서 대조선의 황태자이신 조선전력공사의 수장을 만나 뵙고자 하십니다.'

사신의 말을 들은 기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예맥해 북쪽 서맥 강 하류에 자리 잡은 서맥 요새와 오스만의 수도인 이스탄불까지는 거리만 해도 수천km이다.

그런데 그보다 몇 배나 먼 조선에 있는 사장님을 보자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술탄께서 조선을 방문하신다면 모르지만, 조선의 태자께서 오스만을 방문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뵙고자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술탄께서는 대조선의 황태자를 존경하고 흠모합니다. 그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알고 보니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메흐메트 4세는 나이가 원보다 한 살 적었다.

아버지인 이브라힘 1세가 예니체리에게 살해된 후 메흐메트 4세는 6살의 나이로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

메흐메트 4세는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원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고 흠모했다.

이런 말을 전해 들은 원도 메흐메트 4세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제국의 술탄을 동생으로 두면 나쁠 게 없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원은 매일 같이 싸우는 유럽의 정세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하라고 말했다.

그 후로 오스만 제국의 사신이 다시 찾아왔다.

그것도 값비싼 보물과 금은보화를 잔뜩 들고 조선을 직접 방문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서맥 요새로 사파비 제국과 무굴 제국 사신이 찾아왔다.

그래서 원은 날이 풀리는 대로 그들을 단체로 조선으로 안내하라 했다.

어찌 됐건 호의를 가지고 조선을 찾아온 손님이다.

그들에게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감히 수작을 부릴 수 없게 할 생각이다.

그동안 사정을 모두 설명한 원은 행식이를 보고 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물었다.

"언제 국수를 먹게 해줄 것이냐?"

이제 고운 밀가루도 풍부해진 조선에서 혼인날 국수를 먹는 건 당연시 되었다.

국수의 긴 면발처럼 오래오래 장수하며 잘 살라는 의미였다.

생각보다 국수 문화는 오래되었다.

1680년경에 쓰인 저자 미상의 조리서인 요록(要錄)에 의하면, 고려 말엽에 먹었던 '태면'이 건진국수와 비슷했다.

건진국수는 밀가루와 날콩가루를 3:1로 섞어 반죽한 칼국수를 익혀 찬물에서 건져낸 것이다.

"죄송하지만, 사장님께서 먼저 국수를 주셔야겠습니다."

"응?"

"아마도 날짜가 잡힌 것 같습니다."

"그래?"

원은 어느 집 처자냐고 행식이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항상 어른 행세를 해왔는데 인제 와서 철딱서니 없이 굴 수는 없었다.

* * *

효종 4년(1652) 3월 3일.

원이 혼례를 올리는 날.

예맥의 땅 서쪽 끝에 있는 서맥 요새에서 사신들이 예맥 경비대의 호위를 받으며 조선으로 향했다.

고려인 학자 지봉 또한 조선군의 호위를 받으며 '염소의 땅'을 뜻하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이동했다.

그와 동시에 대대적인 준가르 토벌 작전이 시작됐다.

"사령관님께서 명령하셨다. 예맥 기병대를 능멸한 자들을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말라고 하셨다. 알았느냐?"

"""멸!"""

조선군 대원들이 서역 남로와 북로를 따라 도로를 내고 있을 때, 예맥 기병대는 대대 단위로 나뉘어 돈황(燉煌, 둔황) 요새를 출발했다.

오아시스 도시인 돈황은 비단길 동쪽 출발지이다.

이곳에서 3갈래로 나뉜 예맥 기병대는 서쪽으로 향하면서 닥치는 대로 무기를 소지한 자들을 검거하거나 처리했다.

천산 남로 또는 서역 북로라 불리는 쿠얼러에 도착한 예맥 기병 대대는 주변 유목민 마을을 찾아갔다.

이미 소문이 퍼졌는지 무기를 들거나 반항하는 몸짓을 하는 자들은 없었다.

"누가 이 마을을 족장이냐?"

"저입니다."

거친 황무지의 세찬 바람에 얼굴이 많이 상한 연로한 노인이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예맥 기병대 대대장은 말을 탄 채로 족장에게 물었다.

통역으로 따라온 이가 그 말을 몽골어로 바꿔 말했다.

"조선을 섬기고 따를 생각이 있느냐?"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족장은 두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대대장은 짜증이 나는지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들었을 것이다. 조선을 따르지 않는다면 떠나라고. 그런데 왜 아직도 떠나지 않았느냐?"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곳에서 살게 해주십시오."

"그럴 수는 없다. 네놈들은 언제 약탈자로 변할지 모른다. 따라서 이대로 둘 순 없다. 조선을 따를 생각이 없다면 서쪽으로 당장 떠나거라!"

하지만 족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곳은 대대로 저희가 살아왔던 터전입니다. 그런데 어찌 떠나라고 하십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곳에 그냥 살게 해주십시오."

"흥! 대대로 살아왔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다 알고 왔다. 그러니 당장 떠나거라."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그 말에도 대대장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알아본 바로는 이미 쇠퇴한 비단길 주변은 주인이 없는 곳이었다.

'준가르라는 도적놈들이 설치는 곳이지.'

자칭 칸국이라 말하는 오아시스 마을 2곳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조선을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작은 집단으로 이루어진 유목민들이 반항했다.

"조선을 따르지 않으니 그러는 것 아니냐. 어차피 준가르를 따르고 있지 않으냐? 그런데 조선을 따르지 못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냐?"

"그, 그건···."

유목민 족장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한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 순간 눈치가 빠른 대원이 말의 옆구리를 박찼다.

"이럇!"

놀란 말이 뛰어나감과 동시에 뒤에 서 있던 유목민 한 명이 급히 말 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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