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88화 (88/275)

< 88. 예맥 기병대(5) - 지도 >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육경 사령관 정용식은 은쌍식으로부터 원의 명령을 전달받았다.

'백령도에 있었다면 사장님께서 직접 부르셨을 건데···. 요즘 사장님께서 정신없으시지.'

원은 혼사 문제로 자주 한양에 불려 갔다.

아무리 잘난 원이라고 하지만, 어머니인 인선왕후 장씨와 안빈 이씨, 숙의 김씨, 숙원 정씨 그리고 숙안, 숙명 공주의 부름을 무시할 순 없었다.

아무튼 정용식 사령관은 즉시 기병대 사령관 기수를 불렀다.

발해만에서 조선석유화학 공장을 지키던 기수는 서둘러 산해관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급히 상의 할 일이 있다고 해서 만사 제쳐두고 왔습니다."

같은 사령관이지만, 기병대 또한 육경 소속이라 기수는 정용식에게 말을 높였다.

"다름이 아니라 사장님께서 긴급 명령을 내리셨네."

"네? 무슨 명령입니까?"

"기수 자네가 부대를 이끌고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갈 곳이 있네."

"어디를 말입니까?"

정용식은 탁자 위에 놓인 지도를 가리켰다.

"이곳 서맥(아티라우)을 점령하고 요새를 짓고 주변을 정리하라는 명령이네. 이런 일은 기병대가 잘하지 않나."

"그러긴 하지만, 너무 먼 곳입니다."

"그래서 사장님께서 급히 이동하라고 하셨네. 겨울에는 움직이는 게 만만치 않으니."

"음···, 알겠습니다. 즉시 가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봐도 만 리가 넘는 길이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

사장님의 명령이라면 중요한 일이 틀림없으니.

"기수."

"네."

"둘이 있으면 말 놓는 게 어떤가?"

"네? 아···. 나야 편하고 좋지만···."

기수는 정용식의 말에 씩 웃었다.

둘은 처음부터 옹진반도에서 원에게 직접 교육을 받은 경비대원이다.

또한 나이도 비슷했다.

정용식은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태어난 날을 알지만, 기수는 모른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낸 사이라 형제나 다름없는 친구로 지냈다.

키가 작았던 기수와 함께 경비대에 지원했지만, 기수는 탈락했다.

그때 정용식이 기수를 강력히 추천했다.

심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옹진반도까지 왔고, 같이 지냈었기에 기수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장님 말씀으로는 사장님께서 이곳에 자유무역 도시를 만들고자 하신데."

"그래?"

기수는 지도를 한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와 육지와 강까지 있으니 대마도보다 더 좋을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네가 예맥 기병대를 직접 통솔해서 갔으면 해."

"무슨 문제 있나?"

"그곳까지 가는 길에 코사크 놈들이 수시로 덤비나 봐."

"이런! 죽일 놈들이 뒈지려고 발악을 하는군."

기수는 루스 차르와 코사크란 말만 들어도 화가 났다.

청나라 놈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악랄했기 때문이다.

"알았어. 내가 가서 다 죽여버리고 올게."

"고맙다."

"고맙기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청나라의 노예로 고생했던 기수지만, 최근 예맥 기병대의 보고를 받고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사장님께서 말한 루스 차르국과 코사크 용병들은 악마와 같았다.

그들은 예맥의 땅에 사는 원주민들을 약탈하고 겁탈하고 죽이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감히 조선전력공사의 기병대를 공격하다니 그냥 둘 순 없었다.

기수가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자, 정용식이 어깨를 두드려 줬다.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흥분하면 어떡하냐. 너답지 않게."

"미안해. 놈들이 저지른 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흥분했나 봐."

정용식은 기수의 마음을 이해했다.

말은 안 했지만, 기수의 부모님과 누이들이 청나라 놈들에게 어떻게 죽었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가수. 가면서 이번에 교육이 끝난 대원들도 함께 데리고 가야 해."

"응? 육경 대원들이야 너 소관이잖아."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생각 같아서는 내가 가고 싶긴 한데, 나야 이곳과 백령도를 왔다 갔다 해야 하잖아."

"그러긴 하지."

산해관은 조선을 지키는 아주 중요한 곳이라 육경 사령관인 정용식이 수시로 방문하여 점검했다.

"그러니 네가 수고 좀 해줘."

기수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뭔가 생각이 난 듯 정용식에게 물었다.

"아직 명령하신 인원을 채우지 못했는데 괜찮겠어?"

"가면서 요새를 짓고 조선군을 그곳에 남겨 놀 거야."

"아···. 뭔 말인지 알겠다."

기수는 원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청나라는 외몽골 지방에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원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몽골 유목민들은 언제 강도로 돌변할지 모른다.'

기본적으로 유목민들은 먹고사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빠른 기동력으로 약탈하며 살아간다.

몽골 최후의 칸인 링단 칸도 약탈하는 문제로 여진족과 갈등을 빚다가 사라졌다.

원은 몽골인들에게 여진족처럼 조선의 품 안으로 들어온다면 삶을 보장해 준다고 했지만,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들의 삶을 고집한다고 하지만, 위험 요소를 그냥 둘 순 없었다.

그래서 원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조선의 영토인 몽골 초원에서 조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그냥 두지 않겠다'며 소문을 퍼트렸다.

그와 동시에 즉시 예맥 기병대를 몽골 초원으로 보냈다.

'조선인이길 거부하는 자들은 모두 잡아들여라.'

원의 명을 받은 예맥 기병대는 그동안 몽골 초원에 흩어져 사는 성인 남자들을 잡아들였다.

물론 어린아이들과 여인, 노인들은 그냥 두었다.

"그런데 그들이 조선인이 될 수 있을까?"

"모르지.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겨울이 다가오는데 그냥 둘 순 없지."

"그냥 다 죽으라고 놔두면 좋을 텐데."

"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있나 봐."

"그래? 뭐 아는 것 있어?"

"잘 모르지만···."

잠시 머뭇거리던 정용식이 말을 이었다.

"이번 여정에 탄광으로 끌려갔던 역적 선비들도 데리고 가라 하셨어. 그러니 다른 뜻이 있으시겠지."

"뭐?!"

"조사해보니 단순 가담자가 많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인가 봐."

"음···. 그래도 그건 아닌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하시니···."

각자 원의 뜻을 헤아리느라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먼저 입을 연 기수의 눈이 반짝거렸다.

뭔가 떠오르는 게 있나 보다.

"혹시···."

"나도 그 생각했는데."

"고생 좀 하겠군."

기수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크게 웃었다.

"정복은 쉽지만, 관리하는 건 어렵다는 거 알지?"

"그럼, 사장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말씀이잖아."

원은 몽골 초원에서 젊은 남자들을 모두 잡아 드리라 했다.

모두 일본으로 보내 싸우기 좋아하는 놈들끼리 붙여 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노약자들을 어찌해야 할지 문제였다.

'죽고 나서 어떤 욕을 얻어먹어도 상관없지만, 노약자들까지 괴롭혔다는 말은 듣긴 싫어.'

그래서 원은 감추어둔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원래는 다른 곳에 쓰려고 했지만, 몽골에 먼저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유교 탈레반 맛 좀 봐라.'

알아본 바로는 몽골은 불교국가나 다름없었다.

불교라면 끔찍하게 싫어하는 선비들이 탄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들 중 단순 가담자와 사상이 온전한 자를 골라내라.'

그래서 골라낸 선비들을 몽골 초원에 풀어 놓기로 했다.

또한 이번에 교육을 마친 신병들을 보내 요새를 짓고 관리하기로 했다.

'조선을 섬기고 조선의 왕을 따를 수밖에 없겠지.'

평생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들이라면 멋지게 해낼 것이 틀림없었다.

"근데, 데리고 갈 사람들이 또 있어."

"응? 누군데."

"너도 알 거야. 광식이."

"응? 광식이면 식자 돌림이잖아."

"맞아. 광물 분야 천재 과학자지. 그곳에 사장님께서 원하시는 자원이 있나 봐."

"이거 상전 모시고 가는 건데···."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에서 최우선 보호 대상 중 하나는 식자 돌림과 순자 돌림 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이 있기에 조선에서 산업이 발전하고, 우수한 무기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니 기수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타고 가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맞아. 그곳까지 빨라야 석 달인데 나도 걱정이야. 한데 광식이가 가겠다고 설쳐서 보내기로 했나 봐."

"곤란한 상황이군. 가다가 병이라도 나면 큰일인데."

물론 칭기즈칸의 기병은 호라즘 제국을 정벌할 때 하루 134km를 이동했고, 유럽 원정 파발마는 하루 352km를 갔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광식이 일행을 그리 몰아칠 순 없다.

"그래서 사장님께서 특수 마차를 보내 줬어."

"그래? 어떤 건지 한번 보고 싶군."

원이 만들어 낸 거라면 뭐든 신기할 게 틀림없었다.

* * *

예맥의 땅 전초기지나 다름없는 심양에서 대규모 기병대가 출발했다.

조선인으로 구성된 기수의 기병 1개 연대.

여진족과 혼합된 예맥 기병 5개 연대.

용연 반도에서 훈련을 끝낸 조선군 2개 사단.

총 38,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이 머나먼 초장거리 여정에 나섰다.

또한 예맥 기병 2개 연대는 수시로 왕복하면서 보급을 맡기로 했다.

이를 기획하느라 보름 동안 정용식과 참모들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대군이 이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예맥 기병대는 몽골 초원과 예맥의 땅을 휩쓸면서 물이 있는 곳을 전부 지도로 만들어 놓았다.

그랬기에 이번 여정을 시도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심양에서 서쪽으로 380km 떨어진 적봉(赤峰, 츠펑)이었다.

"너희 2개 대대는 이곳에 남아 조선군이 도착하면 서역 남로와 북로로 나누어 도로를 만들고 철도 놓을 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줘라."

""넵! 사령관님.""

기병과 달리 보병으로 이루어진 조선군은 이동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2개 사단으로 구성된 조선군은 실크로드를 따라 도로를 개설하고 철도 놓을 자리를 표시하고 요새를 짓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기수는 지리에 밝은 예맥 기병 2개 대대를 남겨 놓았다.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 길을 단단히 정비하라고 꼭 전해라."

"넵! 사령관님."

이번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서역으로 가는 3갈래로 된 실크로드를 정비하고 조선의 땅으로 확정 짓기 위해서이다.

정복하기 쉽지만, 관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지역의 폐주에게 관리를 맡기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었다.

'아직 민족주의란 게 없으니 이럴 때 섞어 놓아야 해.'

기수가 이끄는 기병대는 푯말만 가지고 갔다.

그와 달리 조선군은 마차마다 시멘트를 가득 싣고 길을 나섰다.

"앞으로 서역과 교역하는 중요한 길이니, 100m마다 푯말을 꼭 세워야 한다."

"넵! 사령관님."

단단히 할 일을 주지시킨 기수는 서둘러 서북쪽으로 향했다.

기수가 이끄는 기병대의 이동 경로는 실크로드가 아니었다.

말먹일 풀이 필요했기에 실크로드를 피해서 북쪽 스텝 로드로 경로를 잡았다.

스텝 로드라 말하는 초원 지역은 땅이 얼어붙을수록 통과하기 쉬웠지만, 너무 추우면 심각한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여정을 기획하면서 날씨를 염두에 두고 목표 날짜까지 정했다.

그런데 기수가 이끄는 기병대는 예상보다 한참 늦은 11월 말에 목적지인 무수(악토베)에 도착했다.

곳곳에 옅게 깔린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힘찬 외침이 들렸다.

"멸!"

현두 요새인 예카테린부르크를 점령한 예맥 제7 기병연대 대대장인 득칠이를 본 기수는 밝게 웃었다.

기나긴 여정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여기까지 마중 나와 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사령관님.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니다. 네 덕분에 차질없이 올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무선 교신을 했기에 기수는 처음 본 득칠이를 보고 반가운지 얼싸안았다.

"추운데 요새 안으로 들어가시죠. 사령관님."

"아니다. 저기 오는 마차에 탄 사람부터 안내하도록 해라."

"네? 여기까지 마차를 끌고 왔습니까?"

멀리서 다가오는 쌍두마차를 보고 득칠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빛으로 빛나는 마차가 여기저기 찌그러진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곳 광물을 탐색할 중요한 사람들이니 잘 모셔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을 건데."

"젊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잘 견디더구나.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빨리 모셔라."

"넵! 사령관님."

사실 광식이 일행은 그리 고생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멀미 때문에 토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괜찮아졌다.

젊어서 그런지 여유가 생기자 말 타는 것도 배웠다.

이번 여정을 기획하면서 원은 처음 생산된 알루미늄으로 마차를 만들었다.

알루미늄 용접 기술이 숙달되지 않아서 엉망이었지만, 리벳까지 이용해 튼튼하게 만들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마차는 4바퀴 모두 독립식 현가장치로 구성됐다.

코일스프링과 유압 피스톤이 달린 현가장치는 비포장도로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게다가 통 고무로 만든 바퀴는 쉽게 망가지지 않았다.

원은 자동차를 만들기에 앞서 실험용으로 알루미늄 마차를 만들어 이번 여정에 투입했다.

자동차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인 현가장치를 테스트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마차는 앞으로 서역과 교역하는데 단단히 한몫해낼 것이 틀림없었다.

* * *

은동리 본사 10층에 마련된 집무실 승강기가 열리자.

"싸장님!"

은쌍식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또 뭔데 저리 소란인지···."

원은 혀를 찼다.

은쌍식이 저리 발음 하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잔치를 벌일 만큼 좋은 일이던지, 아니면 긴급한 문제이든지.

"뭔 일이냐?"

"드디어 도착했다는 연락입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수시로 연락을 받고 있었지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여러 곳을 거쳐 무선 통신이 이루어졌다.

가끔은 통신이 며칠째 없는 날도 있었다.

무수까지 가는 길은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더 높은 산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단파 통신인데도 열식 발전기를 이용한 무선 통신에 가끔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왜 통신이 안 됐다고 하더냐?"

"망가진 것도 있고, 강을 건너다가 잃어버린 것도 있고, 공격도 받았다고 합니다."

"뭐? 무슨 소리냐? 누가 감히···, 어떻게 공격할 생각을 한단 말이냐? 말도 안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정찰병은 뭐하고?"

"습격당했다고 합니다."

"이런···!"

원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규모 기병대를 파견했다.

하지만 대군이 이동할 때는 몰려갈 수 없다.

대대 단위 이하로 나누어서 이동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기동력이 생명인 기병대의 경우에는 말먹일 풀과 물을 챙겨갈 수 없기에 주변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도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는 기병 대대를 급습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몇 명 안 되는 정찰병을 기습하는 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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