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예맥 기병대(3) >
하바로프는 몰랐다.
그를 잡기 위해 예맥 기병연대가 심양에서부터 3곳으로 나누어 추격했다는 사실을.
21세기에 하바로프의 이름을 따서 하바롭스크라 부르는 곳에서 예맥 기병연대는 추격을 시작했다.
바이칼 호수 서쪽에 있는 이르쿠츠크라 부르는 곳으로 진격하여 퇴로를 차단했다.
흑룡강 최북단에 있는 알바진 요새로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알바진 요새는 블라디보스토크보다 1천km 북쪽에 있다.
북극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태평양 해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다.
내륙 깊숙한 곳이라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기후가 좋았다.
예맥 제5 기병연대 연대장 돌만이는 하바로프를 천천히 추격 했다.
미리 가서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한 달 가깝게 추격을 당한 하바로프 일행은 너무나 지치고 힘든 나머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알바진 요새에 숨겨 놓은 음식이 사라졌는데도 주변을 정찰하지 않았다.
달랑 밀가루 한 포대만 있는 것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필사의 도주를 하면서 진이 모두 빠진 거였다.
알바진 요새에 미리 도착한 돌만 연대장은 하바로프가 오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정찰했다.
아무르강(흑룡강)과 아무얼강이 만나는 곳이라 알바진 요새 근처에는 여의도의 1~5배 나 되는 퇴적물로 형성된 섬들이 있었다.
'이곳을 개간하면 자체적으로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데···.'
1천km 떨어진 심양에서 식량을 공급받기보다는 자체적으로 농사를 지어 보급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주변을 자세히 정찰하여 지도를 만들어라."
"넵!"
그러는 사이에 하바로프가 도착했고, 쉽게 생포할 수 있었다.
"연대장님, 이렇게 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사장님께서 생포하라고 하셨잖느냐."
"힘들면 사살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냐?"
"아닙니다. 연대장님. 제가 이래 봐도 여진족 출신 예맥 기병대 중대장 아닙니까?"
용해라는 조선 이름으로 바꾼 여진족 중대장은 거칠고 검게 타버린 얼굴과 달리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돌만이는 그런 용해가 귀여운지 머리를 흩트려 줬다.
"네가 신의주 신병 중에 말 타는 솜씨가 최고였다. 그런 네가 힘들다면 말이 안 되지."
"맞습니다. 연대장님.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부탁 하나 하자."
"말씀하십시오, 연대장님."
"이곳에 너희 중대가 남아 요새를 관리해 줬으면 한다."
"네?"
돌만이는 여기까지 오면서 작성한 지도를 탁자 위에 폈다.
"보시다시피, 이곳은 흑룡강의 최북단이다. 또한 농사를 지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니 네가 이곳에 남아서 요새를 보강하고 주변 원주민들을 정착시켜라. 할 수 있겠지?"
"넵! 연대장님."
"앞으로 이곳은 너 이름을 따서 '용해 요새'라 할 터이니 영광스럽게 임무를 수행하길 바란다."
"고맙습니다. 연대장님."
용해는 감격했는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비록 조선 이름으로 바꾼 것이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된 마을을 건설하는 일이다.
"제게 이런 영광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식!"
돌만이는 용해의 머리를 다시 한번 흩트려 놓았다.
신의주 신병 훈련소 마구간에서 자신의 말을 돌보던 용해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이곳에 있느냐?'
'너무 신기해서 말입니다.'
'뭐가 신기한데?'
'제 말이 생겼습니다.'
'응?'
'그것도 군마입니다. 어찌 신기하지 않겠습니까?'
'아···.'
신병 훈련소에 온 여진족들은 모두 개인 소유의 군마를 받았다.
기병대는 말과 함께 생활하기에 각자의 말을 돌보도록 했다.
가난한 야인 여진 출신인 용해는 튼튼하고 강인한 군마를 얻게 되자 신이 났다.
날마다 자신에게 배정된 말을 관리하고 쓰다듬는 일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말타기 대회만 나가면 우승은 떼어 놓은 당상(堂上, 정3품 이상 벼슬)이었다.
인마일체(刃馬一体)가 된 용해의 기병술은 대단했고, 거기에 마상 총격 실력은 넘사벽이었다.
원은 졸업생 중 우수한 성적을 거둔 여진족 병사들을 중대장으로 임명하라 했다.
같은 예맥 민족이라 말했는데 차별했다가는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하려면 확실히 해야지.'
그래서 용해는 졸업과 동시에 중대장에 임명되었다.
"연대장님, 그나저나 이놈을 데리다가 어디에 쓸 것 같습니까?"
"사장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이놈을 본보기로 삼으려고 하는 것 같다. 아니면 협상하는 데 이용하든지."
"아···. 죽이는 것보다 살려두면 쓸 곳이 많은 놈이었네요."
"그러니 너도 원주민들을 잘 관리하도록 해라. 무조건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연대장님."
아무것도 모르고 먹고살기 위해 신병 교육에 지원했던 용해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하나씩 깨우쳐 나갔다.
* * *
알바진 요새에서 하바로프를 생포했다는 소식을 들은 원은 잔치를 열었다.
새로 지어진 본사 옥상으로 은동리에 있는 핵심 직원들이 모였다.
"이곳에서 보는 서해 바다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네 눈에는 바다가 보이는구나. 신통하구나."
"헤헤, 그렇다는 말이죠."
새로운 본사는 처음과 다르게 12층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 해도 골짜기에 숨어있는 은동리에서는 바다를 볼 수는 없었다.
"은진이랑 복민이 데리고 자주 국수봉 휴양지에 놀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보는 서해 바다는 정말 멋졌습니다. 사장님께서도 한번 가보십시오."
"그곳 공사는 잘 끝냈고?"
"네, 대원들의 휴양진데 대충 만들 수는 없죠."
"잘했다. 고기 타겠다. 빨리 뒤집어라."
"네, 사장님."
원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던 돼지고기 삼겹살 부분을 그림을 그려서 썰어 오라고 했다.
"싸장님! 이거 맛이 죽이는데요?"
삼겹살에 소금만 쳐서 구웠는데도 맛이 기가 막히는지 은쌍식은 발음까지 이상해졌다.
"맛있냐?"
"네, 사장님. 둘이 먹다가 다 죽어도 모르겠습니다."
"왜? 너 혼자 다 먹으려고?"
"네, 아니, 아닙니다. 그만큼 맛있다는 말입니다."
은쌍식은 번드르르하니 기름 묻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본 은진이가 은쌍식의 옆구리를 꼬집어 데리고 갔다.
은쌍식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한쪽으로 끌려가면서 원에게 살려달라는 시늉을 했다.
둘을 본 정용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원에게 물었다.
"하바로프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현두 요새로 보내라."
"네?"
"주변 세력들에게 알려 앞으로 현두 요새 주변과 동쪽 땅은 모두 조선의 영토라 선언하고 초대하거라."
"설마···?"
"맞다. 초대한 사람들 앞에서 하바로프를 처형하고 경고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원은 예카테린부르크를 최초로 발견한 예맥 제7 기병연대 중대장 현두의 이름을 따서 '현두 요새'라 명명했다.
'고생한 만큼 영광으로 보답해줘야지.'
예맥의 땅을 개척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누구든지 최초 발견자의 이름으로 요새의 이름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순수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신봉했다.
그래서인지 고된 여정에도 예맥 기병대원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요새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렜던 거다.
"반발하면 어떻게 처리할까요?"
"그쪽에 사는 놈들은 야만인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힘으로 응징하거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또한, 예르마크 용병 대장을 모스크바 차르국에 보내 강력히 경고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배상도 요구하고."
"줄까요?"
"예맥의 땅에 사는 원주민 또한 조선인이다. 조선인을 약탈하고 살해했으니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배상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
"빌미로 남겨 두거라."
"아···, 알겠습니다. 사장님."
러시아 또는 모스크바 차르국이란 말은 원이 썼기에 사람들이 러시아 또는 차르국이라 불렀다.
하지만 포로들을 통해 입수한 정보로는 러시아의 정식 명칭은 아직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였다.
'현재 왕이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로마노프라고 했지. 그의 아들이 '표트르 대제'인가?'
역사를 잘 모르기에 알 수 없지만, 아직 러시아제국이라 하지 않았으니 변방의 소국일 뿐이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국경을 정해 놓아야 해.'
그래서 원은 하바로프를 핑계 삼아 루스 차르국을 압박하려고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돈도 식량도 금은보화도 아니다. 땅이 가장 중요하니 주변국과 영토에 관한 조약을 맺어야 한다. 이를 명심하고 차질 없게 진행해라. 알겠느냐?"
"넵! 사장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래서 원은 현두 요새에 3개나 되는 예맥 기병연대를 배정했다.
1개 연대는 요새를 사수하고.
1개 연대는 주변을 정찰하고.
나머지 연대는 후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원은 현두 요새가 자신이 알고 있는 우랄산맥 남쪽에 있는 '예카···'라는 곳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현두 요새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곳을 단단히 지켜 서양 세력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만 드넓은 예맥의 땅을 온전히 우리의 손에 넣을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원은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삼겹살을 정용식의 접시에 올려놓았다.
"오늘은 한잔해도 좋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정용식은 안동에서 가져온 가양주와 함께 삼겹살을 맛있게 먹었다.
원도 한잔하고 싶은지 목젖이 꿀렁거렸다.
'안돼 참아야 해.'
이제 11살이지만, 원이 술을 마신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원은 15세가 될 때까지 참기로 했다.
아버지인 효종조차도 자신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원은 스스로 정한 것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순도 높은 안동 가양주와 맛있는 삼겹살을 먹고 난 정용식이 하얀 면으로 된 냅킨으로 입을 닦고 원을 바라보았다.
"몽골 포로들은 어떻게 할 예정이신지 알고 싶습니다. 일단 산해관으로 모두 보내라고 했습니다."
"잘했다. 놈들은 저곳으로 보낼 계획이다."
원은 동쪽을 가리켰다.
"저곳이라면···. 일본 말입니까?"
"그렇다. 그곳에 풀어 놓을 계획이다."
"아···, 알겠습니다."
원은 칭기즈칸의 후손들이 한 짓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공식아 너 아냐?'
'뭘?'
'원나라 때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끌려갔는지.'
'얼마나 되는데?'
'그때 고려의 인구가 500만 명 정도였어. 그런데 1254년에 끌려간 고려인만 20만 명이 넘었다.'
'20만 명이면 4%잖아.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무슨 소리! 1254년 한 해만이야. 죽은 사람은 그보다 많았고. 단 1년 동안 고려의 인구 중 10%가 넘게 순삭 당했는데 적어?'
'뭐? 징하네.'
원은 문식이가 한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원나라인 몽골과 30년 넘게 전쟁을 지속했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려인이 죽거나 끌려갔는지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
'1232년 몽골이 동남·동녀 각각 500명과 공장(工匠), 자수부인(刺繡婦人)을 바치라고 요구했어.'
'그래? 개새끼들이네.'
'그 후로 충렬왕 때부터 공민왕 때까지 80년 동안 50여 차례나 공녀(貢女)를 상납하라고 했고. 그래서 조선의 간택 제도가 개판이었지.'
'시발, 그래서 너와 내가 장가도 못하고 데이트도 못 하는 것 아냐?'
'그건 아니지만, 한민족에게는 참혹한 시기였어.'
원은 고려의 복수를 하기로 했다.
'네놈들은 공녀를 끌고 갔지만, 난 네놈들의 씨를 말려 버릴 거다.'
그래서 원은 예맥 기병대가 잡아 온 몽골 부족 남자들을 모두 일본에 풀어놓을 생각이다.
"가서 죽든지 살든지, 아니면 약탈을 하든지 마음 껏 뛰어놀게 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이이제이(以夷伐夷) 계책이군요."
'뭐, 비슷하다. 우리 땅을 침략하고 짚 밟았던 놈들끼리 잘해보라는 것이지.'
원은 일본을 점령하기에 앞서 극도의 혼란 상태로 빠트려 놓을 계획이다.
"가서 은진이를 불러오거라."
"네, 사장님."
은진이와 은쌍식은 한쪽에서 안동 가양주를 마시며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저래서 남녀 사이에 끼어들면 안 돼.'
은진이가 삼겹살을 가위로 알맞게 썰어 은쌍식의 입에 넣어주는 모습을 본 원은 시선을 회피했다.
'내 아내도 저래야 하는데.'
다행히 명성왕후 김씨 문제는 해결됐지만, 누가 자신의 부인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이럴 땐 행식이가 부럽네.'
요즘 행식이와 미순이가 사귄다는 소문이 은동리에 소곤소곤 퍼지고 있었다.
'행식이가 참석했다면, 물어보고 빨리 혼인을 올리라고 했을 텐데···.'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원은 부럽지만. 둘 사이를 축복해 주기로 했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앉아서 듣거라."
"네, 사장님."
원은 은진이에게 술을 따라주고 입을 열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 들면서 듣거라."
"고맙습니다. 사장님."
"몽골에서 잡아 온 유목민들을 일본에 풀어 놓을 생각이다. 그러니 요원들을 전부 철수시켜라."
"네? 그럼 정보는···."
"놈들은 미친놈들이나 다름없이 행동할 게 뻔하다. 요원들이 연루될 게 두렵구나. 그러니 당분간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은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원 한 명을 키워서 외국으로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니 사장님 말씀은 포섭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요원들은 대피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몇 명이나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우리가 당한 만큼 보낼 것이다. 그러니 최소 20만 명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네?!"
예맥 기병대가 몽골 초원을 돌아다니며 잡아 온 젊은 남자들의 숫자는 5만 명 정도였다.
그런데 20만 명이라면 아예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나 많이 보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너도 알다시피 여진족은 이제 우리와 같은 백성이 되었다. 하지만 몽골족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말 타고 돌아다니는 놈들이라 잡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모두 일본으로 보내 정리하고자 한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은진이는 원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원의 명을 따르는 건 자신의 숙명이자 사명이라 생각했다.
또한 조선에 위험이 될 요소는 제거하는 게 맞다고 봤다.
이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혼란에 빠진 열도는 더욱 깊은 수렁으로 잠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