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예맥 기병대(2) >
무연화약은 종류도 많고 성능도 제각각이다.
1846년 독일계 스위스인 화학자 크리스티안 쇤바인(Schoenbein)이 진한 질산과 황산을 가지고 부엌에서 실험했다.
일설에 의하면 쇤바인은 실수로 엎질러진 강산 혼합물을 면직물로 된 앞치마로 닦았다고 한다.
쇤바인은 젖은 앞치마를 벽난로에 말리려 했는데 번쩍하며 앞치마가 홀랑 타버렸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나이트로셀룰로스이다.
원은 본격적으로 예맥의 땅을 확보하기 위해 시베리아로 예맥 기병대를 보냈다.
그런데 조103 기관총이 말썽을 일으킨다는 보고를 받았다.
원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강연회를 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니트로 면은 진한 질산과 황산 혼합물에 면으로 된 천을 담가뒀다가 찬물로 씻어낸 것이다."
원은 화식이와 그를 따르는 연구원들을 모아 놓고 새로운 무연화약을 개발하기 위해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의식이와 동식이도 있었다.
의식이야 설파제를 개발할 정도로 화학에 뛰어났기에 참가했지만, 동식이는 다른 이유가 있어 참석하라고 했다.
"여기에 에테르와 알코올을 부어 용해하면 콜로디온(Collodion)이란 끈적한 용액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을 얇게 펴서 말리면 필름이란 걸 만들 수 있다."
연구원들은 필름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나오자 각자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니트로 면으로 된 필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담을 수 있는 중요한 소재다. 나는 필름을 이용하여 사물을 담아낸 그림을 사진(寫真)이라 부르기로 했다. 따라서 너희들은 필름을 개발하고 동식이는 그 필름을 활용할 사진기를 만들도록 해라."
"""네, 사장님."""
"알겠습니다. 사장님."
원은 자신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혹시···, 모르지.'
죽으면 다시 21세기로 돌아가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모습을 보고 싶었다.
물론 이런 이유로 필름을 개발하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지. 발전 과정 중 하나이니 이번에 사진기도 개발하는 게 좋아.'
필름이란 무연화약을 만들고 개선하다 보면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제조 방법을 정리하다가 헛생각을 잠시 한 것이었다.
현재 무연화약은 쇤바인이 발견한 초창기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단발로 쏘기 때문에 그동안 문제가 없었지.'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전부 단발 방식이다.
조101, 102 기관총도 근본적으로 단발이었다.
기계식 자동화처럼 원통에 홈을 파서 작동되는 방식이라 손이든 모터든 동력이 필요했다.
"최근에 건식이가 개발한 조103 기관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두 알 것이다.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아는 이 있나?"
화식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화식이가 일어나 말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무연화약은 화학적으로도 불안정하지만, 찌꺼기 때문입니다."
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보라고 눈짓을 하자 화식이는 이어 말했다.
"무연화약이 흑색화약보다 연소 후 잔재가 적다고 하지만, 그래도 찌꺼기가 발생합니다. 이 찌꺼기가 가스 작동식 총기에서 노리쇠를 후퇴시키는 가스관을 오염시켜 버립니다. 그로 인하여 작동이 멈추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화식이는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무연화약은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시일이 조금만 지나도 성능이 떨어집니다. 또한 불안정합니다. 안전하게 사용하려면 다른 방법을 연구해서 새로운 화약을 개발해야 합니다."
"맞다. 잘 설명했다."
장하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원이 칭찬하자 화식이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이제는 사다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커버린 원은 칠판에 다양한 공식을 섞어서 적어나갔다.
"보는 바와 같이 알코올, 에탄올, 에테르, 에틸에테르 혼합물에 니트로 면을 넣으면 콜로디온이란 끈적한 혼합물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다시 니트로 면과 섞어 굳힌 다음 잘라내면 새로운 무연화약이 된다."
이때 의식이가 손을 들었다.
"사장님, 니트로 면 혼합물인 클로디온에 다시 니트로 면을 섞는 이유가 있습니까?"
"질문 잘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강정을 생각해 보자. 클로디온은 끈적하지만 액체다. 잘게 부순 니트로 면은 고체다. 이 둘을 합해야만 강정처럼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만든 물질을 롤러에 넣어 얇게 만들어 절단하면 지금 쓰는 무연화약보다 습기에 강하고, 시간이 지나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고, 안정적이다."
"이제 이해됐습니다. 같은 물질이라도 반죽에 따라 활용도가 다르군요."
"그렇다. 묽게 반죽하는 것과 단단하게 반죽하는 것은 가공 방법이 다르고, 성능도 다르고, 용도 또한 다르다."
"사장님께서는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 매번 놀랍습니다."
원은 진짜 천재인 의식이가 감탄하자 쑥스러웠지만, 무시했다.
키가 커지는 만큼 원의 낯짝도 두꺼워졌다.
"또한 여기에 다른 물질을 첨가하고 안정제를 섞어 만들면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진 안전한 무연화약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앞으로 너희들이 할 일이다. 또 질문 있느냐?"
"없습니다. 사장님. 설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PK 기관총을 본뜬 조103 기관총을 만들었는데 사용하다 보니 작동 불량이 발생했다.
원인은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무연화약이었다.
정밀한 노리쇠가 회전하며 이동하기에 미세한 무연화약 찌꺼기와 기름이 만나 말썽을 일으킨 거였다.
그래서 조103 기관총을 사용하고 나면 바로 청소해야만 했다.
'아직 멀었지.'
이제 더블베이스 화약에 관해 설명하고 개발하라 했다.
단순히 진한 질산과 황산으로 만든 나이트로셀룰로스만 사용한 걸 싱글 베이스 화약이라고 한다.
거기에 니트로글리세린을 섞으면 더블베이스가 된다.
그런데 21세기에는 나이트로구아니딘까지 섞은 트리플베이스 화약을 사용하고 있다.
'굳이 트리플베이스까지는 개발하지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 박격포 추진제로 쓰기 위해서는 더블베이스 화약은 만들어야 해.'
원은 조103 기관총이 자주 말썽을 부리자 더블베이스 화약을 개발하기로 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무연화약은 습기에 약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성능이 떨어졌다.
'석유 젤리(Petroleum Jelly)를 얻을 수 있으니 코르다이트(Cordite)부터 만들어야겠군.'
석유 젤리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바셀린(Vaseline)이다.
바셀린은 석유를 정제하면 남는 잔여물인 석유 젤리인데 상처 치료나 보습제로 널리 쓰이고 있다.
보습이 뛰어나고 안전한 바셀린은 건성 피부에도 좋고, 립밤으로도 쓰이며, 석탄 가루와 섞으면 마스카라가 된다.
상처에 바르면 이물질이나 세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막이 형성되기에 외상치료는 물론 화상에도 사용한다.
그것뿐만 아니다.
점도가 높고 매우 안정적인 기름 성분이라 철물과 가죽을 보호하는 데도 쓰인다.
립스틱의 기본 물질이기에 식칼에 발라놓아도 닦지 않고 바로 써도 된다.
물론 음식 맛이 변할 수 있기에 잘 닦아 내고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바셀린은 탄화수소 덩어리라 보관만 잘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원은 바셀린을 만들어 판매하기로 했다.
또한 나이트로셀룰로스(65%), 니트로글리세린(30%), 미네랄 젤리(5%)를 섞어서 '코르다이트 MC(Modified Cracked)'라는 영국군이 썼던 무연화약을 만들기로 했다.
미네랄 젤리(Mineral Jelly)는 석유 젤리의 순도를 높인 것으로 폭약 안정제이다.
화장품이나 의약품에 사용할 정도로 인체에 해롭지 않다.
'당분간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최종적으로 에틸 센트럴라이트(Ethyl Centralite)가 포함된 무용제(無溶劑) 무연화약을 개발해야 하지만, 코르다이트 MC만 해도 쓸만하다고 봤다.
강연을 끝내고 새로 지어진 본사로 가면서 원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바로프 이놈을 잡아야 하는데···.'
예로페이 하바로프가 흑룡강 최북단에 있는 알바진에 요새를 만들고 남쪽까지 내려와 무차별 약탈과 살인을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원은 될 수 있으면 하바로프를 생포하라고 했다.
'그냥 죽이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하라 말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사살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예맥 제5 기병연대 연대장 돌만이는 하바로프를 생포할 기가 막힌 작전을 구상했다.
* * *
하바로프는 그동안 약탈로 모아 놓은 모피를 버리고 도주 중이었다.
'번개' 표시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나타난 조선전력공사의 기병대에게 연전연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복장도 특이한 조선전력공사의 기병대는 연발로 사격할 수 있는 신기한 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벌어들인 돈으로 유럽에서 가장 좋다는 수석총으로 무장을 했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추풍낙엽처럼 자신의 부하들이 퍽퍽 쓰러져 버렸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을 치고 있지만, 조선전력공사 기병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급하게 몰아치지도 않았다.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하바로프는 마지막으로 결사 항쟁을 하려고 했지만, 조선전력공사 기병대는 다가오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바로프의 부관은 왜 그런지 알고 있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1649년 하바로프를 따라 흑룡강(아무르강)을 탐험하면서 엄청난 부를 챙길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작년(1650) 가을에 흑룡강으로 돌아왔지만, 원주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알바진 요새에서 겨울을 보낸 하바로프는 지원군인 코사크 용병이 도착하자 남쪽으로 내려와 약탈을 시작했다.
유럽에서 고가에 팔리는 모피만 뺐으면 될 것을 하바로프는 겁탈하고 죽이고 불을 질러 태워 죽였다.
부관은 자체를 요청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악마가 사람의 형상을 한 것 같았다.
그러니 쫓기는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저건 분명 생포하려고 하는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충분히 죽일 수 있는데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온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몇 명이나 따라오고 있지?"
"백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지원 온 코사크 용병 117명은 멋모르고 조선전력공사 기병대를 향해 돌진하다가 사라져 버렸다.
또한 자신이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들도 쫓기면서 250명 넘게 죽거나 포로로 잡혔다.
이제 남은 건 백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미치겠군. 항복할 수도 없고,"
자신이 한 짓이 있기에 잡히면 곱게 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저기 제야강이 보입니다."
"그래? 알바진 요새가 멀지 않았다. 힘내자."
아직 10월이지만, 시베리아는 겨울 같았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조선전력공사 기병대는 체구가 작은 말을 타고도 지치지 않고 추격해왔다.
얼음처럼 차가운 제야강을 건너 겨울을 보냈던 알바진 요새로 들어갔다.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밀가루 한 포대만 빼고 감추어둔 먹을 것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누가 왔다 간 건가?"
"원주민들 짓일 지도 모릅니다."
"경비병을 두고 갔어야 하는데···."
"그래도 밀가루 한 포대는 남겨 놓고 갔습니다. 양심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밀가루를 풀어서 죽을 만들어 배고픔을 해결했다.
급히 불을 때서 몸을 녹이고 있지만, 젖은 몸은 떨 떨 떨리기만 했다.
'내일 아침 날이 밝은 대로 뗏목을 만들어 타고 가면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거야.'
지겨운 조선전력공사 기병대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바로프는 마음이 편해졌다.
따듯한 벽난로에 의지한 몸은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모른다.
더 자고 싶었지만, 이상한 말이 들려 눈을 떴다.
강렬한 햇살에 눈이 부셔 손을 올려 바라보았다.
'이런! 제기랄! x 됐군.'
그 순간 모르는 말이 다시 들려왔다.
"연대장님, 이 새끼 깨어났는데요."
"그래? 먹을 것 좀 갖다줘라. 살려서 데려가야 하니."
"네, 연대장님."
하바로프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두 손과 두 발이 처음 보는 질긴 끈으로 모두 묶여 있었다.
'죽이지 않은 이유가 뭘까? 맞아, 돈 때문이겠지. 그동안 내가 모피로 번 돈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알고 살려 둔 거겠지. 돈을 주면 풀려날 수도 있을 것 같군.'
하바로프는 그동안 벌어들인 돈이 아까웠지만, 살려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하들은 전부 어디로 갔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잠든 사이에 자신을 빼고 모두 도망가버린 것 같았다.
'두고 보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복수에 불타 이를 갈고 있는 사이에 조선전력공사 대원이 먹을 것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야! 처먹어."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구수한 냄새가 나는 수프를 보자 군침이 돌았다.
하바로프는 묶인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수프를 입안에 부어 넣었다.
"컥컥, 컥"
너무 뜨거워 음식을 토해내자.
"누가 안 뺏어 먹는다. 천천히 먹어라. 갈 길이 멀다. 든든하게 먹어 둬라."
조선전력공사 대원 한 명이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더니 모르는 말을 하면서 턱짓을 했다.
아마 계속 먹으라고 하는 듯했다.
뜨거운 죽에 짜증이 나서 지껄였더니, 대원은 무섭게 인상을 썼다.
"시끄러워! 새끼야. 어디서 입을 놀리고 그래. 능지처참도 아까운 새끼가."
하바로프는 말이 통하지 않자 답답했다.
그동안 자신이 모아 놓은 재산이 얼마나 많은데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