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예맥 기병대(1) >
우랄산맥을 기점으로 서쪽은 유럽+러시아=유라시아라 부르고 동쪽은 시베리아라 부른다.
아시아와 유럽 또는 유라시아와 연결하는 통로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실크 로드, 스텝 로드, 모피 로드가 바로 그것이다.
수천 년 동안 동서양의 교역로였던 실크 로드와 달리 스텝 로드와 모피 로드의 역사는 별로 되지 않았다.
그중 모피 로드는 16세기 중반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털 달린 짐승의 가죽을 얻기 위해 생긴 모피 로드는 모스크바 차르국의 가장 중요한 수입 통로였다.
'빌어먹을 적당히 잡았어야지.'
모스크바 북쪽에 사는 털 달린 짐승의 씨를 말려버린 차르국은 우랄산맥 넘어 동쪽 끝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캄차카반도의 페트로파블롭스크까지 진출했다.
모피를 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원주민이 가지고 있는 모피를 빼앗는 거다.
차르국과 계약했거나 고용된 이들은 모피 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원주민을 약탈하고 죽였다.
그래서 원은 우랄산맥을 털어 막기로 했다.
사실 모피 로드는 약탈과 피로 얼룩진 길이다.
1603년에 태어난 예로페이 하바로프(Yerofey Khabarov)는 상인이었다.
재정이 약한 차르국의 야쿠츠크 군사령관은 하바로프와 계약을 맺고 시베리아에서 약탈할 수 있는 권리를 줬다.
상인에서 희대의 살인마이며 약탈자로 변한 하바로프는 원주민을 살해하고, 강간하고, 죽여서 금과 은, 모피를 챙겼다.
21세기에 흑룡강(아무르강) 변에 지어진 하바롭스크시는 바로 이 살인마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도시이다.
원은 예맥 부대 졸업식장에서 이놈을 꼭 잡으라고 명령했다.
시베리아에 사는 원주민을 통해 듣게 된 하바로프는 악마와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서원의 요원들과 최정예로 구성된 기병 중대가 아무르강을 배회하는 하바로프의 병사 한 명을 사로잡아왔다.
심문 결과 알게 된 사실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바실리 포야로코프의 탐험 보고로 흑룡강 변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곡식과 모피, 금, 은이 있다는 정보를 알아낸 하바로프는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녔다.
또한 우랄산맥 아래에 코사크 용병이 지키는 요새가 있다는 정보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원은 새로운 작전을 짜고 예맥 기병연대를 서쪽으로 보냈다.
'유라시아로 넘어가는 길목을 점령하고 막아라! 그곳을 통과하려는 사람 중 모피나 무기를 든 자는 누구든지 검거하고 반항하면 죽여라.'
원은 조선전력공사 신의주 훈련소 교관들과 여진족으로 구성된 12개의 예맥 기병연대를 만들었다.
'모르지만, 기병은 기동력이 우선이야. 너무 많아도 곤란해.'
그래서 연대 단위로 3천 명씩 총 36,000명이나 되는 예맥 기병연대를 창설했다.
그중 5개의 연대를 몽골로 보내 수도인 '카라코룸'과 '우르구'라 부르는 울란바토르를 점령하라 명 했다.
원나라 때 당했던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원이 잘못 알고 있었다.
몽골은 청나라에 정복당한 후 부족 단위로 나누어져 버렸고, 5개나 되는 예맥 기병연대에 대항할 만한 세력이 없었다.
또한 21세기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점령할 필요도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무전으로 상황을 알게 된 원은 그곳에 요새를 짓고 서쪽으로 진격하라 명령했다.
우랄산맥 동쪽 시비르한국의 잔당이 존재한다는 정보가 있어 미리 출발한 기병연대를 보호하기 위해 추가로 2개의 기병연대를 더 보냈다.
예맥 기병연대는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만나게 된 몽골 부족을 복속시켰다.
또한 스텝 로드를 따라 약탈하는 코사크 용병들을 제거했다.
효종 3년(1651) 8월 29일.
남대문에서 노량진까지 전철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5칸으로 구성된 전철은 한 칸에 100명씩 총 500명이 동시에 탑승할 수 있었다.
한양 백성들이 그동안 기다렸던 경이롭고 신기한 철마를 보고 만세를 부를 때.
예맥 제7기병연대 3대대는 우랄산맥 밑에 있는 요새를 발견했다.
"대대장님, 바로 공격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름까지 조선식으로 바꾼 여진족 중대장 현두가 대대장인 득칠이에게 물었다.
"후속 기병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것도 좋지만, 언제 올지 모릅니다. 이곳은 겨울이 빨리 옵니다. 그러니 빨리 해치우고 요새를 만들어야 합니다."
"흠···. 놈들의 인원은 몇 명이나 되는 것 같으냐?"
"정찰대원의 보고로는 200명 정도라고 합니다."
한참 생각에 잠긴 득칠이가 중대장들을 모아 놓고 작전을 지시했다.
"현두 너는 요새 서쪽으로 가서 도주로를 차단하고, 호민이는 북쪽으로 가라. 경봉이는 남쪽으로 가고 나와 현수가 동쪽에서 항복을 권하겠다."
"""멸!"""
10개월 동안 신의주 훈련소에서 교육을 끝낸 여진족 대원들은 즉시 예맥의 땅 곳곳에 투입됐다.
그들 중 일머리가 뛰어나고, 눈치가 빠르고, 사격이 우수한 이를 골라 중대장까지 진급시켰다.
모두가 예맥의 피를 이어받은 한민족이란 생각에 차별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또한 원으로부터 시작된 교육을 내림 받았기에 '곤조'를 뜻하는 성깔이나 나쁜 근성을 부리는 악습은 전혀 없었다.
모두가 형제처럼 지내는 것이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의 전통이었다.
생각보다 경비대원들이 너무나 잘 지내고 있기에 원은 계급을 세분화하지 않았다.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계급을 세분화해서 문제가 생기면 안 되지.'
언젠가는 바꿔야겠지만, 지금은 그냥 두는 것이 좋을 듯했다.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언어 배우기가 이리 쉬웠나?'
원이 알기로는 언어라는 건 쉽게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진족 대원들은 아니었다.
단순하지만 조선말과 어순이 같고, 단어 또한 비슷한 게 많아서인지, 여진족 대원들이 조선말을 배우는 속도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말 타는 기술 또한 천부적이라 할 만큼 대단했다.
그랬기에 수천km 나 떨어진 21세기에서 '예카테린부르크'라 부르던 요새까지 빠르게 진격할 수 있었다.
대대장 득칠이는 통역으로 고용한 원주민에게 말했다.
"이것을 잡고 놈들에게 항복하라 권하시오."
"네, 대대장님."
가족이 모두 모피 상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노예처럼 끌려다녔던 원주민은 이를 악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요새 안에 있는 놈들을 모두 죽여버리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허튼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네놈들은 모두 포위됐다.
-즉시 항복하지 않으면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다.
-요새의 문을 활짝 열고 즉시 기어 나와라!
-불응하면 네놈들이 한 짓을 그대로 돌려받을 것이다.
득칠이는 고려인의 말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두었다.
고려인이 겪었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말을 할 줄 알면서 러시아말까지 하는 통역을 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운이 좋게도 10명 정도 되는 모피 약탈자들을 처리하고 구해낸 원주민이 고려인의 후손이었다.
중년이 넘어 보이는 고려인은 예맥 강 근처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쳐들어온 차르국 약탈자에 의해 가족 모두 죽고 자신은 노예가 되었다.
아무튼 러시아말을 할 줄 아는 고려인은 경비대에서 최우선 보호 대상이었다.
최전방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통역이 필요했기에 득칠이는 연대장에게 부탁해서 안전을 책임진다며 그를 데리고 왔다.
갑자기 들려오는 우렁찬 스피커 소리에 통나무로 엮어 만든 요새 안은 분주해졌다.
욕설까지 섞인 고려인의 말에 요새를 지키던 코사크 용병들은 고개를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
"큰일 났습니다! 적들이 엄청나게 몰려왔습니다."
"뭐라고? 몇 명이나 되는데?"
"우리보다 수십 배나 많습니다."
"뭐? 어떤 놈들인데 여기까지 쳐들어왔단 말이냐?"
"그건 저도···."
"청나라 놈들 같더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복장이 다릅니다."
"에잇!"
망루로 올라간 코사크 용병 대장은 깜짝 놀랐다.
서쪽과 북쪽 남쪽에는 수백 명이나 되는 기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동쪽을 바라보던 용병 대장은 더욱 놀랐다.
그곳에는 수천 마리나 되는 말들이 짐을 가득 싣고 모여 있었다.
엄청난 수의 기병들은 신기하게 생긴 총을 들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깃발은···, 조선전력공사를 표시하는 건데. 여기까지 뭔 일이지?"
유럽에도 '번개' 표시가 있는 조선전력공사의 상품들이 유통되고 있었다.
하나같이 비싼 상품이라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약탈이 주 업무인 코사크 용병 대장은 알고 있었다.
"나가 봐야겠다."
"네? 무조건 항복하라고 떠드는데···. 항복하실 겁니까?"
그 순간에도 고려인은 온갖 욕을 섞어서 항복하라고 협박하고 있었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라면 싸워보나 마나다. 일단 무슨 이유인지는 알아봐야겠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17세기라고 하지만, 청나라를 쳐부순 조선전력공사의 이야기는 실크 로드와 스텝 로드, 모피 로드를 통하여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용병 대장은 저항을 포기했다.
"대대장님. 요새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현실을 볼 줄 아는 자가 대장인가 보다."
주변이 습지나 다름없는 초원이라 그런지 멀리서도 잘 보였다.
득칠이는 일부러 각종 자재를 싣고 온 말들까지 요새에서 볼 수 있게 모두 모아 놓았다.
굳이 잘 만들어 놓은 요새를 망가트리기도 싫었고, 적도 총을 가지고 있기에 공격 중에 다칠 수도 있었다.
'이곳이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우랄산맥 입구라면 마지막 진격지가 될 거야.'
어서 빨리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었다.
스텝 로드를 따라 이곳까지 오면서 고생이 말도 못 했다.
'날 벌레들이 왜 이리 많은지···.'
곳곳에 파인 웅덩이 때문인지, 날벌레들 때문에 말을 타고도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아무튼 정확한 위치를 알려면 요새를 공격하기보다는 포로로 잡고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봐야 한다.
그래서 공격을 자체하고 무력 시위를 했다.
"놈들이 백기를 들고 오고 있습니다."
"사주 경계를 늦추지 말고 수작 부리면 바로 쏴 버려라."
"네, 대대장님."
코사크 용병 대장은 흰 깃발을 들고 천천히 말을 타고 다가왔다.
"조선전력공사에서 오셨소?"
"우리가 누군지 아니 다행이군."
"저 깃발을 보고 모를 수가 있겠소? 그런데 어쩐 일이요?"
"어쩐 일이긴, 이곳은 조선의 영토인데 네놈들이 쳐들어와서 약탈과 살인을 저지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순순히 항복하고 죗값을 받아라."
"그게 무슨 말이요? 이곳이 조선 땅이라니. 터무니없소."
"흥!"
득칠이는 품 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용병 대장에게 던졌다.
"잘 살펴보거라. 조선 땅이 맞지 않느냐?"
용병 대장 예르마크는 받아든 금화를 살펴보았다.
"이건···?"
"왜? 뭐가 잘못된 게 있느냐?"
'1648'이라 써진 금화에는 원이 대충 그린 조선을 중심으로 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모피 로드를 따라 시베리아 곳곳을 다녀 봤기에 코사크 용병 대장은 알 수 있었다.
동전 왼쪽 끝은 우랄산맥이었고, 가운데는 청나라와 조선이었다.
그리고 오른쪽 끝은 처음 보는 대륙이 있었다.
"이건 억지요! 1648년이면···, 그전부터 우리는 이곳에 진출해 있었소."
"흥!"
득칠이는 또 다른 금화를 꺼내 던졌다.
"이것과 비교해 보거라."
"이건 또 뭐요?"
예르마크가 받아 든 또 다른 동전에는 '3983'이란 숫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그건 작년에 발행한 동전이다. 조선은 2333년 전부터 이곳을 영토로 삼았다. 우리는 그때를 고조선이라 부르는데 고조선의 연도로 1648년에 이곳까지 영토로 확정했다. 처음 준 금화는 그럴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니 반항하지 말고 항복하고 죗값을 달게 받아라."
"말이 되지 않소. 인정할 수 없소."
"그래? 설마, 덤비겠다는 거냐?"
"그건 아니요. 하지만 우리를 죽이면 모스크바 차르국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요. 우리는 차르국과 계약을 맺고 이곳을 지키고 있소."
"오호! 그렇단 말이지. 잘 보고 차르국에 가면 말해 주거라."
득칠이는 새로 보급받은 조103 기관총 사수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두두둥! 두두둥! 두두두두둥!
살벌하게 쏟아내는 엄청난 기관총 탄환이 통나무로 되어 있는 요새의 밑면 한쪽을 박살 내버렸다.
"항, 항복하겠소! 그만하시오!"
예르마크는 자신이 이끄는 용병들이 몰살당할 게 뻔한지라 소리쳐 항복을 외쳤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의 무력이 엄청난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무지막지한 총기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요새 안에는 소형 대포가 몇 문 있지만,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한 놈도 빠지지 말고 밖으로 나오라고 해라. 안에 남아있는 놈은 모조리 죽일 것이다."
"네, 네. 알겠소."
간단하게 요새를 점령한 득칠이는 빠르게 요새 보강 작업에 들어갔다.
코사크 용병들이 말하는 이세티강 변에 세워진 요새를 확장하고 가져온 벽돌과 시멘트로 단단하게 망루를 세웠다.
"놈들은?"
"겁먹었는지 잘 따르고 있습니다. 일도 잘하고요."
"다행이군."
예르마크에게 들은 바로는 이곳이 사장님께서 말한 곳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곳에 큰 요새를 짓고 모스크바 차르국과 협상하여 국경선을 확정 지어야 한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이지.'
오면서 작성한 지도를 보고 득칠이는 씩 웃었다.
미치도록 힘들고 지겨운 여정이 마침내 끝을 보았다.
옹진반도에서 보내준 설파제라는 약이 있었기에 병사한 대원이나 말은 없었지만, 이곳까지 오기에는 쉽지 않았다.
"바로 무전을 준비하라."
"네, 대대장님."
목적지를 확보했으니 언제 올지 모르는 후발 기병대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바로 지원을 요청하고 확실한 근거지를 세워야 한다.
득칠이는 열식 발전기가 가동되자, 바로 무전기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는 칠맥삼이다. 칠맥 나와라. 이상."
-여기는 칠맥. 수신 양호하다. 말하라 칠맥삼. 이상."
처음에는 교신 끝에 '오버'란 말을 사용하라고 했지만, 어느샌가 변질하여 '오바' 또는 '오발'이라 했다.
그래서 원은 '이상'이라는 말로 바꾸라고 했다.
'오발'은 듣기에도 섬뜩했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지점을 확인하고 점령했다. 즉시 지원 요청한다. 이상."
-축하한다. 칠맥삼. 바로 지원을 보내겠다. 이상.
조선전력공사 예맥 제7기병연대 3대대장 득칠이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그런데 예맥의 땅 동쪽 흑룡강 주변은 연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