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정화(5) >
열식이가 만든 디젤 엔진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아니, 엄청났다.
"측정은 해보았느냐?"
"네, 사장님. 정확하진 않지만, 800은 넘는 것 같습니다."
"그래? 대단하구나."
원이 생각했던 기차용 디젤 엔진의 힘은 500kw 정도였다.
그런데 800kw 가 넘는다니, 시속 60km가 아니라 80km, 아니 100km 도 가능할 것 같았다.
"발해(渤海) 공장에서 가져온 경유를 사용했더니 출력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원은 요하만을 발해만으로 이름을 바뀌었다.
조선석유화학 요하 공장도 발해 공장으로 정정했다.
대륙이나 청나라말이 아닌 조선말이 표준어가 되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발해라고 자주 말했기 때문이다.
발해는 망하여 사라지고 없었지만, 요하만 근처도 발해의 영토였기에 그곳에 유민들이 살고 있었다.
사실 발해는 다종족 왕국이었다.
고구려 유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갈, 한족, 거란족, 실위족, 위구르족까지 모두 발해를 구성하는 백성들이었다.
그중에 고구려 유민이 가장 많았기에 발해는 한민족이 세운 국가라 봐도 된다는 것이 학설이다.
"그랬구나.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폭발력이 훨씬 높았나 보다."
땅콩을 정제하여 만든 바이오 디젤은 원유에서 뽑아낸 경유에 비해 문제점이 많았다.
탄소와 수소가 주성분인 경유(C14H30)에 비해 산소가 포함된 바이오 디젤은 연료관을 녹여 필터가 막히고, 어는 점이 높아 추운 곳에서는 아예 시동조차 걸리지 않는다.
메탄올을 이용해 땅콩기름에서 바이오 디젤을 얻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원은 땅콩으로 만든 바이오 디젤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땅콩기름은 밀떡 폭탄을 만드는데 필요한 글리세린 얻는 데나 써야겠다."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이제는 납을 넣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땅콩기름을 사용할 때는 노킹 현상 때문에 납을 첨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발해만에서 정제한 경유는 납이 없어도 노킹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동식이가 그러는데 황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면 이보다 효율이 더 올라갈 거라 했습니다."
"그래? 잘 됐구나. 그러지 않아도 납을 첨가한다고 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었다."
"납이나 수은은 독이나 같다고 사장님께서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독은 빼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열식이는 자신이 한 일이 자랑스러운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원도 같이 미소 지었다.
"문제는 없더냐?"
"네, 사장님. 장인들이 모두 합심해서 도움을 주셔서 그런지 지금까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차용 디젤 엔진 하나를 만드는데 옹진반도에 있는 장인급 공돌이들이 모두 모였다.
베어링에 들어가는 쇠구슬부터 캘리퍼스로 여러 번 측정하여 정밀도를 최대한 높였다.
텅스텐-니켈-철로 된 고비중 합금을 사용했기에 강도나 내구성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산소와 아세틸렌가스를 이용하면 4,000도까지 올릴 수 있기에 텅스텐을 녹여 합금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전기 아크로를 사용하면 더 쉽게 가공할 수 있지만, 아직 기술이 확정되지 않았다.
아무튼 만들어낸 디젤 엔진은 며칠째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열식이 네가 해냈구나. 장하다. 정말 장해."
원이 연구원들에게 칭찬하는 말 중 최고는 '장하다. 정말 장해'였다.
그 말을 들은 열식이의 기분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아닙니다. 사장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열식이 네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
"모두 사장님께서 지원해주시고 기다려주신 덕분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자랑하기 좋아하던 열식이가 겸손해졌다.
아마도 꿈꾸던 기차용 디젤 엔진을 개발했기 때문이리라.
"이런 기물을 만들어낸다면 언제든지 기다리고 지원하겠다. 그러니 뭐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거라."
"고맙습니다. 사장님. 하지만 아직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10일은 더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때까지 문제가 없다면 최종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그래, 장하다. 정말 장해."
또다시 원이 장하다고 말하자 열식이의 입이 활짝 벌어졌다.
원은 모르지만, 장하다는 말은 원이 없을 때 연구원들끼리 원을 흉내 내면서 서로를 치켜 주는 말로 쓰고 있었다.
"참, 소음기는 어떻게 잘 작동하더냐?"
소음기를 달면 출력이 10% 가까이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엄청난 굉음도 문제지만 인체에 해로운 매연이 너무 많이 배출된다.
"들으신 것처럼 소리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검은 매연이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아직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백금으로 도금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습니다."
원은 머플러라 말하는 소음기를 만들 때 미세한 구멍으로 구성된 통을 백금으로 도금하여 사용하라고 했다.
하지만 기술이 딸려서인지 미세하다는 기준이 달랐다.
21세기에서 자동차 머플러에 들어가는 백금 촉매 장치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작은 승용차용 촉매 장치 필터만 해도 넓게 펴면 면적이 축구장 4배 만 하다.
그렇게 넓은 면적을 배기가스가 통과하기에 유해 물질이 적게 배출되는 거였다.
일산화탄소(CO), 탄화수소(HC), 질소 산화물(NOx)이 백금 촉매 필터를 통과하면서 백금과 반응하여 인체에 무해 한 이산화탄소(CO2), 물(H2O), 질소(N2)로 변환되어 배출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폭발력에 의한 압력과 뜨거운 열 때문이다.
원하는 만큼 높은 압력과 열만 얻을 수 있다면 석탄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고 철로 금도 만들 수 있다.
중세 연금술사들이 이런 원리를 알았다면 헛고생을 하지 않았을 건데, 상온에서 금을 만든다고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
아무튼 지금 달린 소음기 안에 들어 있는 매연 감쇄장치는 21세기의 촉매 장치 필터만큼 정밀하게 만들 수 없었다.
일일이 구멍을 뚫어서 만든 촉매 장치는 엄청난 크기에도 잘해야 농구장 정도라 효과가 크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니 개선해 나가면 된다. 하지만, 배출되는 가스는 사람에게 해로우니 배출구를 높이 올려 만들도록 해라."
"그런데 사장님. 높이 올리면 더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응?"
열식이가 다른 의견을 내놓자 원은 뭔가 하고 귀를 기울였다.
"시커먼 매연 가루는 떠다니다가 다시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아예 바닥으로 배출구를 만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 그렇구나. 네가 생각한 대로 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더욱 노력해서 나쁜 가스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증기 기관 열차는 어쩔 수 없이 배출구를 위에 달 수밖에 없다.
밑에서 석탄을 태우기에 연기를 위로 보내는 방법뿐이 없다.
그에 비해 내연 기관은 내부에서 발생한 강한 폭발력으로 배기가스가 나오기에 배출구를 어느 방향에 두더라도 상관없었다.
원이 열식이와 수고한 공돌이들을 격려하는 가운데 석돌이가 나타났다.
"사장님, 가보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이냐?"
"한양에서 활동하는 검계 일당을 전부 체포했다는 연락입니다."
"그래? 어서 가보자."
신분패를 발급받으러 오는 백성 중에 칼을 차고 있거나 몸에 흉터가 있는 자들은 모두 조사하라고 했다.
특히 허름한 옷을 입고 있지만, 안에 비단이 비치는 자는 검계가 틀림없으니 뒤를 밟으라 했다.
그래서 이주영이 우두머리로 있는 검계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포도대장 이완은 직접 포졸들을 이끌고 그들을 모두 검거했다.
와중에 칼 들고 설친 놈들은 모조리 총알을 먹여 주었다.
날고 기였던 놈들이라 도망치려 했지만, 사방에 총구가 보이자 칼을 버리고 순순히 체포당했다.
놈들은 감옥으로 끌려가면서도 뭔가 믿는 것이 있는지 기가 죽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놈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연일 고문을 겸한 심문이 반복되자 견디지 못한 놈들은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의 호위 대원을 죽인 자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괴인 이주영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저를 살려주신다면 옹진십팔동인을 살해한 검계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완은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 원을 찾았다.
* * *
한양에 도착한 원은 즉시 포도대장 이완을 만났다.
보고를 받고 난 원은 인상을 썼다.
이러다가 잘생긴 이마에 주름이 질까 걱정됐다.
"놈이 사법거래(司法去來)를 하자는 말이군요."
"사법 거래라···. 역시 듣던 대로 태자께서는 새로운 말을 잘 만드십니다. 맞습니다. 검계의 수장인 이주영이 동인을 살해한 검계 조직의 정보를 말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죄를 무마해 달라고 했습니다."
"음···."
원은 사법 거래를 하고 싶지 않았다.
21세기와 조폭들과 달리 놈들은 어려운 형편이 아니었다.
한양 일대에서 못된 짓을 하는 검계 조직을 검거하고 보니 성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놈들은 전부 양반 가문에서 첩이 낳은 자식인 서얼(庶孼)이거나 중인 또는 양인이었다.
창포잎처럼 생긴 칼을 차고 다니면서 온갖 못된 짓을 하던 놈들은 모여서 훈련도 했다.
한밤중에 남산에 올라가 두 패로 나누어 태평소 소리를 신호로 싸움 연습까지 한 거였다.
그런 놈들의 우두머리인 이주영과 사법거래라니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호위 대원 중 한 명을 살해한 자를 잡아야 하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장, 놈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놈을 굳이 보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놈이 원하는 거래를 내가 직접 해보고자 합니다."
"알겠습니다. 전하. 놈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직접 가서 봤으면 합니다."
"그러시다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원은 포도대장 이완을 따라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감옥 안은 전처럼 어두침침하지 않고 밝았다.
포도청에서 자체 사용하는 열식 발전기는 성능이 낮아서 많은 전등을 켤 수 없었다.
그런데 노들섬 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받게 되자 감옥 내부도 횃불 대신 전등으로 모두 바꾸었다.
"저놈이 이주영입니다."
"흠···."
얼굴에 흉측한 칼자국 있어 보기에도 칼 밥을 먹고 사는 자가 틀림없었다.
"이놈! 태자 전하께서 오셨는데 어서 무릎을 꿇지 않고 뭐 하느냐?"
짚 더미에 누워 있던 이주영은 이완의 호통에 번개같이 일어나더니 원을 보고 놀라 다시 엎드렸다.
"태,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네 놈이 조건을 달았다고 했느냐?"
"네, 태자 전하. 소인도 살고 싶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살려는 주마. 대신 불어야 할 대상이 있다."
"대상이라니요? 동인을 살해한 검계 조직 말고 또 누구를 원하십니까?"
원은 한 걸음 다가가 창살 안에 있는 놈을 쳐다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네놈 뒤를 봐주는 사대부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냐?"
"네? 그건···."
"어차피 불기로 했으면 확실히 불어야 한다. 아니면 남대문 앞에 걸릴 것이다."
이주영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제 조선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은 능지처참이 아니라 남대문 앞에서 돌팔매질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런 벌을 내린다고 하니 이주영은 간담이 써늘해졌다.
그까짓 죽는 건 무섭지 않았지만, 미천한 신분인 자신의 어머니에게 해가 될까 두려웠다.
"태자 전하, 약조해주신다면···."
"이놈! 감이 어느 안전이라고···."
원이 손을 들어 이완을 진정시켰다.
"살려는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럼 태자 전하만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주영이 입을 열자 포도대장 이완이 이를 우두둑 갈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완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한양에서 이주영의 뒤를 봐주는 자는 다양했다.
사대부도 있었지만, 포도청 포교, 의금부 나장의 이름이 이주영의 입에서 줄줄이 나왔다.
게다가 왕의 경호원이나 다름없는 대전별감의 이름까지 나오자 원조차도 믿을 수 없는지 긴 숨을 내쉬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가?'
21세기에도 조폭의 뒤에는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설마 해서 물어봤는데 조선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대장, 수고를 해주셔야겠습니다."
"네, 전하. 즉시 포졸들을 풀어서 전부 잡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효종의 명에 의해 범죄에 관련된 일은 포도청에서 일괄하기로 되어있다.
검계는 흉측한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이다.
그 뒤를 봐주는 것 또한 범죄이기에 포졸들이 즉시 출동하였다.
"태자 전하. 그런데 저놈은 어찌하시렵니까?"
"탄광으로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전하."
한양이 완전히 뒤집혔다.
한양 뒷골목을 주름잡던 검계가 검거되면서 도박장과 기방, 술집 등에서 기생하던 왈짜들까지 모두 체포령이 떨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명문 사대부 가문에 포졸들이 들이닥쳐 검계의 뒤를 봐주고 사주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게다가 대전별감까지 체포되자 백성들은 기가 막혔던지 말들이 많아졌다.
"그러면 그렇지. 태자 전하의 호위 대원까지 죽인 놈들이니 뭔가 믿는 게 있었던 거지."
"맞소. 뒤를 봐주는 높은 분들이 있으니 놈들이 설치고 다녔겠지."
"이제라도 모두 잡아들인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밤에 나다니기가 무서웠는데 말입니다."
원과 포도대장 이완에게 모든 내용을 들은 효종은 대로(大怒)했다.
"이 나라 조선을 어지럽히는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네, 폐하."""
조선전력공사의 통신망으로 효종의 어명이 전국으로 하달되었다.
지방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양반이나 지주들이 포졸들에 의해 속속 잡혀 들었다.
또한 원의 명을 받은 옹진십팔동인 제1 호위대가 즉시 평양으로 출동했다.
호위 대원을 죽인 검계는 평양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이었다.
원의 호위였던 옹진십팔동인 한 명이 살해당했다.
이로써 조선 사회를 좀먹던 쓰레기와 양아치들을 제거하는 정화작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