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80화 (80/275)

< 80. 정화(3) >

원은 손바닥을 쫙 펴서 앞으로 내밀었다.

"정확히 판별하는 방법은 바로 이 손안에 있다."

"네? 사장님 손안에 있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사장님 손이 부처님 손바닥입니까?"

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은쌍식은 순간 떠오른 생각이 손오공을 가지고 놀았던 부처님 손바닥이었다.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백성들이 하나같이 원을 두고 하는 말이 부처님 아니던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자신이 한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지 눈을 마주치자 사람들이 짧게 눈웃음을 쳤다.

용기를 얻은 은쌍식은 원이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먼저 말을 꺼냈다.

"사장님, 부처님 맞으시죠?"

"그게 무슨 헛소리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잘 들어라."

원은 은쌍식을 보고 경고의 눈짓을 보낸 후, 손가락 끝마디를 하나씩 짚으며 말했다.

"손가락 끝마디를 잘 살펴보거라."

모두 자신의 손가락 끝을 보았지만, 왜 보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별다른 게 없었다.

"사장님, 어떤 것을 살펴보라는 건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원은 씩 웃었다.

조선 시대에도 지문을 가지고 과학 수사를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포도대장 이완에게 넌지시 물어봤지만, 지문이란 것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흠흠신서(欽欽新書)라는 책을 순조 19년(1819)에 완성했다.

흠흠신서는 경세유표, 목민심서와 함께 1표(表) 2서(書)로 일컬어지는 정약용의 대표적인 저서다.

정약용이 관리들을 계몽하기 위해 집필한 흠흠신서는 법제서이자 형법서였다.

형사사건의 조사, 심리, 처형 과정을 다루는 수사기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 저서에도 지문에 관련된 내용은 없다.

"손가락 끝마디에는 동그란 문양이 있다. 그래서 이걸 지문(指紋, Fingerprint)이라 부른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모양의 지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지문으로 정확히 누구인지 구별할 수 있다."

"""아···!"""

원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제 알게 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문이란 사람과 원숭이에게만 있고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다."

코알라도 지문이 있지만, 원도 그것까지는 몰랐다.

알았다고 해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호주에 사는 코알라를 아는 사람은 원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문을 이용해 새로운 호패를 만들 것이다."

원은 카메라를 만든다고 해도 바로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이미지 센서를 이용한 디지털 방식이 아닌 광학식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하지만 지문을 이용한 신분패는 즉석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다.

"경비대원들은 모두 인식표를 목에 걸고 다닌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대원들이 인식표를 차고 다닌다는 것을 여기 있는 사람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원은 얇은 황동으로 만든 인식표(認識票, Identification tag)를 제작해서 경비대원들에게 상시 착용하라고 했다.

군인에게 있어 신분증 역할을 하는 인식표는 개 목걸이(Dog Tag)라고도 부른다.

보불전쟁 당시 프로이센군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수도 베를린에서 애완견에게 걸어주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사장님, 그럼 대원들이 차고 있는 인식표를 이용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하지만 쇠에 어떻게 지문을 표시할 수 있습니까?"

원은 빙긋 웃었다.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쓸데없는 소리를 가끔 해서 그렇지 은쌍식은 시키지 않아도 가려운 곳을 긁어 줬다.

"신분패는 인식표와 다르게 만들 것이다. 인식표는 거친 전쟁터에서 대원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황동으로 만들었지만, 신분패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원은 주머니에서 인식표보다 약간 큰 현대의 주민등록증 크기만 한 투명한 플라스틱을 꺼냈다.

"이처럼 뒷면에 붉은 인주로 양쪽 엄지 지장을 찍고 앞면에는 전처럼 호패에 기록된 내용을 적을 것이다."

"""아···!"""

드디어 감을 잡은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또한, 발행 즉시 양쪽에 투명한 플라스틱을 붙여 열전기로 눌러 붙여 밀봉한다."

"""아···!"""

"이렇게 하면 물에 빠져도 젖지 않고 신분패를 뜯어서 내용을 바꾸려고 하면 티나 날 게 분명하다."

원은 미리 만들어 놓은 신분패를 사람들에게 나뉘어 주었다.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눌러 붙인 곳을 떼어 낼 방법이 없어 보였다.

열가소성 수지로 된 투명한 플라스틱은 열전기에 의해 녹아 붙어버렸다.

떼어낸 후 다시 붙이면 자국이 남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또한 열전기에 새겨진 고유 기기 번호와 무늬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투명한 플라스틱을 구한다고 해도 신분패 발급용 열전기가 없으면 위조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말을 주고받고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혹시라도 원이 생각하지 못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 살펴보고 위조나 변조 가능성이 있다면 서슴없이 의견을 말해 보거라."

몸은 어리지만, 정신력만큼은 꼰대나 다름없는 원이다.

그래서 노력하고 있다.

'사고가 경직되면 흐르지 않는 물과 같지.'

흐르지 않는 물은 섞기 마련이다.

'대제국을 세워 놓고도 멸망한 이유는 내부부터 썩었기 때문이지.'

원은 의견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하라고 했고, 경청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연구원들이나 은쌍식은 언제나 거침없이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 은동리의 연구원들 아니면 위조나 변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완벽해 보입니다."

지금 수준에서 위조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 민간에 기술을 이전하게 되면 위변조가 쉬워질지도 모른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지.'

원은 지폐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황동으로 만든 동전이야 상관없지만, 주로 무역에서 사용하는 금화나 은화가 풀릴 만큼 풀렸다.

'금화나 은화는 훼손되지 않으니 좋지 않아.'

아무리 잘 만든 지폐라도 세월이 지나거나 불에 타면 사라진다.

사라진 지폐는 지폐를 발행한 조선은행의 이익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지폐를 만들어 뿌려야 한다.

하지만 아직 정교한 지폐를 만들 수준은 아니었다.

"내년부터 바로 호구 조사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행식이는 계획을 짜보도록 해라."

"네, 사장님."

"포도청에 연락해 모든 도로 입구를 지키라고 해라. 앞으로 신분패가 없는 사람은 누구라도 우리가 만든 도로는 일절 이용하지 못 하게 해야 한다. 또한 신분패 없이는 조선전력공사 분점을 사용할 수 없고 장터에도 진입을 금한다. 불은 한 자는 바로 체포하라고 전해 주어라."

"네, 사장님."

여러 가지 이유로 발급받기 싫어했던 호패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신분패가 없다면 생활이 곤란해질 게 틀림없다.

'벌칙을 주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 사람이 문제야.'

비율의 차이는 있겠지만, 법 없이도 잘 살 것 같은 백성들이 대부분인 조선이다.

하지만 법이 있어도 지킬 생각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 때문에 세상이 각박해지지.'

원도 경험이 있었다.

사고치고 잠수 탄 놈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욕먹고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고 친 놈 따로 있고, 수습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지.'

학창 시절부터 군 생활, 직장 생활까지 많이 봤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뻔뻔한 놈들은 사고치고 사라졌다가 잠잠해지면 쓱 나타난다.

원은 불합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을 생각이다.

그래서 아예 그런 자들이 이동할 수 없게끔 했다.

또한 진짜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동인 중 한 명이 검계 놈들에게 살해당한 적이 있었다."

모두 숙연한 분위기로 원을 바라보았다.

특히 조서원의 수장인 은진이와 부원장인 삼복이의 표정은 미안함이 가득했다.

조선뿐만 아니라 주변국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탐색하는 조서원인데 사고를 친 검계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죄송할 수밖에.

"검계라···, 말은 좋지만, 범죄 조직일 뿐이다. 그것도 잔인한. 이놈들을 모두 잡아내려면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앞으로 이 나라 조선에서 칼이나 총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금한다."

원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항이 심할 것 같았다.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사장님."

"맞습니다. 사장님. 착호갑사도 호랑이를 잡으려면 총이 있어야 합니다."

"무예를 익히는 건 나쁜 일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도 백성들이 무예를 연마해야 합니다. 그런데 칼이나 검을 가지고 다니지 못 하게 한다니 이건 아닙니다. 사장님. 재고해 주십시오."

모두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원은 가만히 듣고 난 후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무기 허가증을 발급해주면 될 일이다. 허가받은 백성만 무기를 휴대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아···!"""

"단 무기 허가증을 발급받으려면 열 손가락 모두 지문을 찍어야 한다."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다. 무기는 소유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런 무기를 휴대하는 자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원은 자신의 지문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지문은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범죄 현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범인의 지문을 발견할 수 있다."

"""아···!"""

원은 지문을 가지고 범인을 검거하는 방법을 아는 만큼 설명해줬다.

"따라서 앞으로 검이나 총 같은 무기를 가지고 다니고자 하는 자들은 별도로 무기 허가증을 발급받아야만 한다. 무기 허가 제도는 검계 같은 불한당 놈들을 검거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외국의 첩자를 구별하는 데도 신분패와 무기 허가증은 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1세기에 살아왔던 원이기에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조선은 원 때문에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조선의 기술을 탐하려는 간자(間者)들이 있지만, 아직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핵심 인력과 시설이 모두 옹진반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간에 기술을 풀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돈을 받고 기술을 외국으로 팔아넘기거나 간자에 의해서 탈취될 수 있다.

정명수를 돌로 쳐죽이는 퍼포먼스까지 했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그 정도로 정화할 수 없다.

'외국에 기술을 팔아먹는 자는 있을 수밖에 없지.'

돈도 돈이지만, 가족을 볼모로 협박한다면 배신할 수밖에 없을 거다.

아니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열도 작전도 그렇게 해서 성공한 것 아닌가.'

그래서 원은 이번에 인구 조사를 계기로 보안도 강화할 예정이다.

"앞으로 신분패 착용을 의무화한다. 신분패를 착용하지 않는 자는 일단 무조건 연행해라. 신분패가 있는데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면 벌금을 물려라. 무기 허가증이 없는데도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자는 무조건 체포해서 진의를 밝혀라. 알겠느냐?"

"""네, 사장님."""

모두가 힘차게 대답했다.

원이 수시로 보안에 대해 강조했기에 무엇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앞으로 15세가 넘은 성인이면, 남녀 구별 없이 모두 이 신분패를 착용하고 다녀야 한다."

"사장님, 15세가 안 된 아이들은요?"

역시 은쌍식이 또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15세가 되지 않은 아이가 홀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니냐?"

"아···,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보호자 없이 돌아다니는 아이는 바로 조사하라고 하겠습니다."

원은 고개를 끄덕여주고 참석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명심하고 이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행식이가 요청하면 성심성의껏 도와라."

"""네, 사장님."""

"신분패가 없는 자는 조선인이 아니다. 사대부는 물론 노비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 알고 잘 알려서 피해를 보는 백성이 없도록 하라."

"""네, 사장님."""

효종 3년(1651).

정초부터 새로운 호패인 신분패에 대한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앞으로 호패, 아니 신분패가 없으면 조선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참말인가?"

"나도 소문만 들었네. 이거 노역시키려고 그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에이, 군역도 없앴는데 노역을 시키다니 말이 되지 않네."

"그건 그렇구먼, 한데 신분패 없이 집 밖으로 나가면 바로 벌금 문다는 소리가 있던데 들어봤는가?"

"그런 말은 못 들어 봤고, 장터나 도로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말은 들었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그러긴 하지."

백성들 사이에 신분패에 관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전처럼 무시해도 되는 호패가 아니라 신분패가 없으면 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가운데 살인, 강도, 약탈, 강간 등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자랑삼아 저지르던 범죄 조직인 검계의 수장들이 모였다.

"설마 우리를 잡기 위해 호패를 신분패로 바꾸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그래봐야 위조하면 될 것 아닌가?"

"모르지. 빌어먹을 세자가 하는 짓이라 어떻게 할지 모르니."

"세자가 아니라 태자일세. 그리고 태자를 욕하는 건 그렇지 않나. 우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혹시 자네가 태자의 호위인 동인을 죽였나?"

"무슨 소리! 그런 일 없네."

딱 잡아뗐지만, 한양을 본거지로 둔 이주영이란 검계의 수장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아니면 그만이지, 왜 소리는 지르고 그러는가? 그 때문에 가장 피해 본 검계가 나 아닌가?"

"크흠. 헛소리를 하니 그러지. 아무튼 신분패야 발급받으면 될 터이고 어렵다면 위조하면 될 일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

그런데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무기 허가증이었다.

원은 무기 허가증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말라고 했다.

일단 신분패를 발급한 후에 무기 허가증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