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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력공사-79화 (79/275)

< 79. 정화(2) >

범죄란 법이 있는 문명사회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법이 없다면 범죄란 말도 성립되지 않는다.

법을 어기는 것이 범죄이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범죄를 모의하는 조직까지 만들어졌다.

한반도에서 범죄 조직을 최초로 구성한 자는 고려 시대 제3대 무신 집권자인 경대승(慶大升)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유서 깊은 군반 가문에서 태어난 경대승은 무예가 능했다.

15세 나이에 음서로 국왕의 호위대인 건룡군의 교위가 된 경대승은 가문의 힘으로 지휘관에 대항하는 견룡행수(牽龍行首)가 되었다.

아버지가 탈취한 모든 전답을 백성들에게 돌려주었을 만큼 청렴했던 경대승이었지만, 자신의 사병 집단이나 다름없는 도방(都房)이란 범죄 조직을 만들었다.

도방 이전 무신들은 용사, 장사, 무뢰배라 불리는 놈들을 임시로 고용했지만, 경대승은 이들을 정식 고용하여 체계적으로 전투 훈련을 시키고 자신만을 호위하게 했다.

경대승의 도방 조직은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불법적 군 내 사조직이었다.

그래서인지 최초로 구성된 범죄 조직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았다.

조선에도 건달, 무뢰배, 불한당, 왈패, 왈짜라 부르는 조폭들이 있었다.

그중 왈짜라 부르는 기둥서방은 신윤복이 그린 '기방난투'에 잘 묘사되어 있다.

세조 시대의 권신이었던 홍윤성 무리도 조폭이었고, 임꺽정이나 장길산, 홍길동 또한 조직화 된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라 볼 수 있다.

법이 있는데 법을 지키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로 조직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흉악한 놈들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검계이다.

이들이 돈을 받고 살인을 저지르는데 망설이지 않았던 극악무도 한 놈들이었다.

얼마 전에 원의 호위였던 동인 한 명도 이들에 의해 살해됐다.

조서원에서 나섰지만, 놈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 뒤를 봐주는 게 틀림없어.'

그러지 않고서야 조서원에서 놈들을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원은 자신의 호위를 죽인 검계를 그냥 두고 보지 않을 생각이다.

이들을 모두 잡아 탄광에 보내던지 죽여버리기로 했다.

"···음, 좋은 생각이구나."

"네, 폐하. 이번 기회에 인구조사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구 조사가 아니라 인구조사?"

"네, 폐하. 호구 조사보다는 얼마나 많은 백성이 사는지 알 수 있는 인구조사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너는 새로운 말도 잘 만들고 생각도 기발하구나."

원은 자신도 모르게 21세에게서 썼던 말이 튀어나왔다.

하도 자주 그랬기에 이젠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길로 쓰기에는 너무 아깝구나."

효종은 공사 중인 경강 대로를 보며 아쉬워했다.

이 넓은 땅에 곡식을 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원은 이곳에 콘크리트로 된 길을 만들고 있었다.

"만주에도 농사지을 땅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그렇다 하여도 너무 넓은 것 아니냐?"

"앞으로 한양은 더욱 커질 겁니다. 사람도 늘어나지만, 마차도 늘어날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미리 넓게 만들고 있습니다."

효종은 뭔가 생각이 나는지 원을 쳐다보았다.

"혹시 네가 말하는 자동차도 생각했던 거냐?"

"네, 폐하. 앞으로 마차 대신에 자동차가 다닐 겁니다. 그래서 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을 분리해 놓았습니다."

원이 이렇게 넓은 도로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된 효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효종은 고개를 돌려 한참 공사 중인 깊게 파인 곳을 보았다.

"저기 하수구 공사를 하는 곳 위로는 전기로 가는 차가 다닌다고?"

"네, 폐하. 전기로 가는 차라 전차라 부릅니다. 앞으로 전차가 다니면 한성에서 경강 다리까지 이동이 쉬워질 겁니다."

"전차라···, 빨리 보고 싶구나."

"늦어도 내년 여름에는 다니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최근 들어 봄에는 가뭄이 들고 여름에는 홍수가 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원은 홍수가 오기 전에 공사를 끝낼 생각이다.

원래라면 지반 공사를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21세기처럼 무거운 차가 아직 없기에 도로가 꺼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어찌 될지 모르기에 두껍게 콘크리트 공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경강대로 공사는 동원된 인원에 비해 진행이 아주 느렸다.

'안전한 게 최고야. 괜히 사고라도 나면 기간이 더 느려져.'

신의주부터 전주까지 콘크리트 고속도로를 설계한 공돌이들이 설계를 맡았다.

훈련도감 병사만 7천 명이 넘고 인근에서 동원된 백성도 3만 명 가까이 된다.

이렇게 5km 도 되지 않는 경강대로 공사에 엄청난 인원이 투입되었지만, 인제 서야 한쪽 인도 공사가 끝났다.

간단히 계산해도 공사 구간에 1m마다 7명 이상이 배정된 거다.

손으로 흙을 퍼 나르고, 손으로 시멘트를 반죽한다 해도 벌써 끝났을 공사의 진행이 느린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감리 때문이었다.

걸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인지한 상사와 조합은 감리를 받기 전에 보고 또 보고 문제점이 없는지 정밀 검토했다.

그렇게 해도 손해 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었던 거다.

이제 조선에서 시멘트는 쉽게 볼 수 있었다.

청나라 병사들도 있지만, 수많은 죄인까지 추가되자 생산량은 급격히 늘어났다.

죄를 지으면 탄광으로 끌려간다는 사실을 알기에 범죄는 많이 줄었지만, 검계같이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흉악한 놈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튼 하수구 위로는 전철이 다니기에 철근 콘크리트 작업을 하고 있다.

철근 콘크리트 수명은 100년이나 된다.

그런데 어떻게 지었는지 21세기 한국의 아파트는 30년도 못 돼서 쩍쩍 갈라져 버렸다.

'70, 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가 나중에 지어진 아파트보다 튼튼하다니 아이러니하지.'

1851년 오스만 남작에 의해 만들어진 2,500km에 달하는 파리의 하수도는 21세기에도 사용하고 있다.

유럽 최악의 똥통이었던 파리는 넓은 하수도로 인해 쾌적해졌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넓이가 4m나 되는 파리의 하수구는 많은 부분에서 효과적인 일을 해냈다.

넓은 하수구 덕분에 전기, 가스, 통신 공사를 한다고 잘 만들어 놓은 도로를 깨부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원도 파리의 하수도처럼 만들 생각이었다.

'공공기관의 속달 우편물과 서류를 주고받을 수도 있지.'

파리 하수구에는 압축 공기 관로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서류를 통에 넣고 공기관에 집어넣기만 하면 원하는 곳으로 빠르게 배송되니 혁신적인 운송 시스템이 틀림없었다.

이런 것까지 생각했기에 원은 하수구가 아니라 아주 큰 하수도를 기획했다.

앞으로 세계의 중심이 될 한양.

원에 의해 완벽한 계획도시로 건설되고 있었다.

어느새 마차는 경강 다리 입구에 도착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마차에서 효종과 원이 내리자 만세 소리는 더욱 커졌다.

"대단하구나 이 넓은 강에 다리를 놓다니."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폐하."

"좋구나. 지금은 사람만 다닐 수 있지만, 나중에는 마차와 네가 말하는 전차도 다닌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경강 다리 입구에 길게 하얀 조선 비단으로 된 줄이 처져 있었다.

원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효종에게 건넸다.

"폐하, 이것을 손에 끼십시오."

"무엇이냐?"

"장갑입니다."

효종은 씩 웃더니 하얀 장갑을 착용했다.

"한 말씀 하시겠습니까? 폐하."

"아니다."

원 같으면 자기만의 생각으로 떠들어 댔겠지만, 왠지 쑥스러워하는 효종이었다.

효종은 원이 준 가위를 들고 흰 천으로 된 줄 앞에 섰다.

"이것을 자르면 되느냐?"

"네, 폐하."

효종이 가위로 흰 줄을 자르자.

-쉬이잉! 펑!

하늘 높이 폭죽이 올라가 터졌다.

"""와~~~!"""

밝은 대낮이라 효과가 크지는 않지만, 하늘 높이 색색이 퍼지는 폭죽을 보고 백성들은 환호를 질렀다.

효종이 경강 다리에 올라섰다.

추운 날씨라 싸늘한 바람이 불었지만, 난간에 덧대어 놓은 안전판이 바람을 막아 주었다.

그 순간.

쭉 늘어선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오···, 밤이 되면 운치가 있겠구나."

"네, 폐하. 이곳은 한양의 명소가 될 것입니다."

"그래 보이는구나."

궁궐에서도 사용하고 있기에 효종은 바로 알아보았다.

빨갛고 파란색으로 칠해진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가로등은 청사초롱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저 섬이 저리 컸더냐?"

"아닙니다. 폐하. 이번에 다리 공사를 하면서 넓혔습니다."

효종은 홍수가 나면 잠기는 노들섬(중지도)을 보고 신기해했다.

콘크리트로 교각을 만든다고 했는데, 그걸로 땅도 넓힐 수 있다니 욕심이 났다.

"경강 변도 저처럼 하면 안 되겠느냐?"

"계획하고 있습니다. 폐하."

"그래, 홍수에도 물난리가 나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

"염려 마십시오. 폐하. 경강 주변을 백성들의 휴식처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것보다 농지를 확보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또다시 농지 욕심이 나는 효종이었다.

그동안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기에 아직도 효종은 넓은 땅만 보면 농사부터 떠올랐다.

"이제 먹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백성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합니다."

"음···, 그렇다면 네 뜻대로 하거라."

"네, 폐하."

한참을 걸어가다가 효종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곳이 전기를 만들어 낸다는 발전소더냐?"

"네, 폐하. 당분간 저곳에서 만들어 내는 전기만 써야 하지만, 경강 위쪽에 더 큰 발전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때 되면 전기를 이용한 다양한 물품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기대되는구나."

이것저것 물어보는 효종의 말에 원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효종과 원이 떠난 후.

경강 다리 양쪽에 있던 백성들이 다리 가운데로 뛰어왔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백성들은 지나가면서 서로를 보며 인사했다.

백성들은 하나같이 놀라워했다.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리라는 건 조그만 개울을 건너는 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넓은 강에도 다리를 놓을 수 있다니 건너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밤이 되자 백성들이 더욱 많아졌다.

멋들어진 청사초롱이 걸린 다리의 불빛을 보기 위해 다리 위만 아니라 주변에도 모여들었다.

그중에 행식이와 미순이도 있었다.

"어떻습니까? 행식님."

"우와, 우와."

행식이는 아름다운 경강 다리를 보며 감탄만 내뱉었다.

그 옆에서 미순이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어제 행식이가 미순이를 찾아갔다.

바쁜 와중에도 미순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밤에 보면 경강 다리가 더 좋다는데 무슨 말이더냐?'

'가셔서 직접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가자.'

'네?'

'바쁘지 않으면 나랑 같이 가서 보자고 했다.'

'네, 네.'

미순이는 얼떨결에 행식이에게 이끌려 함께 오게 됐다.

한참 청사초롱이 걸려 있는 경강 다리를 보던 행식이가 뜻밖의 말을 자신도 모르게 흘렸다.

"미순이 너만큼 곱구나."

"예? 예."

깜짝 놀란 미순이의 얼굴은 금세 홍시가 되었다.

"흠, 흠."

행식이 또한 자신이 내뱉은 말을 인지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갑자기 서먹해진 두 사람.

행식이가 앞서고 미순이가 뒤를 따랐다.

호위하던 요원들도 이상해진 분위기를 느꼈는지 조금 떨어져서 걸어왔다.

"저곳이 이번에 새로 만든 발전소더냐?"

"···그렇습니다. 행식님."

"나에게 구경도 시켜주고 설명도 해주면 좋겠는데···."

"바쁘시지 않습니까?"

"낼은 더 바쁠 것 같으니 오늘 밤이라도 여유를 갖고 싶구나."

어제 원은 한양으로 떠나면서 행식이에게 말했다.

'인구조사를 시행할 터이니 모래는 아무 약속도 잡지 말고 은동리로 오거라.'

다른 건 몰라도 원이 이렇게 말했다는 의미는.

'또 한동안 바쁘겠구나.'

그래서 행식이는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던 미순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한 거였다.

고아인 자신과 다르게 미순이는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동생들도 있었다.

행식이가 왜 모르겠는가.

권력자들이 자신을 데릴사위로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행식이는 싫었다.

조선의 행정을 책임지면서 그들이 벌인 수작이 더럽고 치사하고 졸렬했다.

물론 아닌 사대부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행식이는 똑똑한 만큼 현재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약관(弱冠, 20세)을 막 넘어선 나이에 대제국으로 커나가는 조선에서 재상이나 다름없었다.

굳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대부의 데릴사위로 갈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와 달리 미순이는 아무런 지지 기반이 없었다.

사장님이 가장 아끼시는 천재 중의 천재였다.

성격 또한 온화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눈에는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니 어찌 마음이 가지 않겠는가.

둘 다 혼기를 놓친 것도 마음에 들었다.

행식이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미순이는 복잡한 것은 빼고 행식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줬다.

하지만 행식이는 미순이의 설명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순이의 목소리와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만 쳐다보고 있었다.

* * *

다음 날 저녁.

은동리에 있는 원의 집무실에 조서원의 요인들과 행식이가 모였다.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동인을 죽인 검계를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이 나라 조선의 인구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놈들도 잡고자 한다."

"사장님. 정확이라니 어떻게 말입니까?"

은쌍식이 궁금한지 물었다.

그동안 조세를 걷기 위해 호구 조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3년마다 오는 식년(式年, 子·卯·午·酉)에 호구 조사를 시행하고 호적을 개편했지만, 양란으로 인해 서류가 불타 없어져 버렸다.

왜란이 끝난 후인 광해군 2년(1610)부터 2년 동안 다시 호구 조사를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호적을 조사하여 호적대장을 만들고 16세 이상의 양인에게는 호패(戶牌)라는 신분증을 발급했지만, 진위를 가리기에는 미흡했다.

게다가 호패를 받으면 곧 호적과 군적에 올라가니 이를 피하려고 했다.

또한 호패의 위조나 교환 같은 불법이 행하는 일이 증가하자 혼란이 격심하여 없는 것보다 못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호패를 받은 사람은 조선 인구의 10~20% 정도였다고 나와 있다.

호패를 발급받으면 일만 시키니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거다.

오죽하면 위조하다 걸리면 극형에 처한다는 말에 양반의 노비로 호적을 올리는 짓을 했겠는가.

그만큼 실용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은쌍식이 물었던 거였다.

원은 은쌍식을 보고 빙긋 웃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인 정확이란 말을 꼭 집어 물어보니 기특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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