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78화 (78/275)

< 78. 정화(1) >

원은 기관총 부품 하나를 들고 유심히 살폈다.

'역시 회전 노리쇠(rotating bolt)가 문제군.'

자동 연사가 가능한 가스 작동식 총기에서 노리쇠를 고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회전 노리쇠 방식은 21세기에서도 쓰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기술이다.

장전 시 노리쇠가 전진하면서 약실을 통과한다.

통과한 노리쇠 뭉치는 비틀리면서 약실의 돌기들(lugs)에 걸려 폐쇄된다.

격발 후에는 가스의 압력으로 노리쇠 뭉치가 후퇴하면서 탄피를 걸어 방출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노리쇠 뭉치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성능이 결정된다.

조101과 102 기관총은 쇠로 된 원통에 파인 홈을 따라 이 작업이 6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런데 새로 개발하는 조103 기관총은 노리쇠 뭉치 하나에 전부 집어넣어야 한다.

자동차 공장과 비교하면.

전통적인 라인을 따라 생산하던 방식이 조101과 102 기관총이고.

다품종 소량 생산하면서 도입된 대차 라인(FBL, Flexible Body Line) 방식이 조103 기관총으로 볼 수 있다.

원은 맥심 기관총을 본 적이 없지만, 칼라시니코프 기관총이라 부르는 PK 장난감 기관총을 본 적이 있고 작동하는 원리도 알고 있다.

하지만 건식이에게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가스 작동식 기관총의 원리를 간단히 설명만 해줬다.

총기 출구에 구멍을 뚫어서 가스 배출구를 뒤로 연결하면 그 압력에 의해 노리쇠를 자동으로 후퇴시킬 수 있다는 것만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조101 기관총에 사용된 6개의 뭉치를 하나로 만들어 보라고 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건식이가 헤매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라지만, 대만에서 발생한 사고를 보고 받고 마음이 바뀌었다.

'아끼다 똥 된다.'

연구원들의 창의력 계발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원들의 목숨이지.'

앞으로 드넓은 영토를 관리하려면 경기관총도 필요하다고 봤다.

"조101 기관총의 구조는 직접 만들어 봤으니 잘 알 것이다."

"그거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다시 만들라고 해도 바로 만들 수 있습니다."

원은 당당하게 말하는 건식이를 보며 밝게 미소 지었다.

연속된 실패로 자신감마저 상실해버렸다면 다시 끌어 올리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건식이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한 원은 고민이 많았다.

고심 끝에 생각을 바꾼 원은 아침부터 서둘렀다.

대만 사고도 있지만, 건식이가 침울해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힘찬 것 보니 좋구나.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니 기대하마."

"고맙습니다. 사장님."

원이 기대한다는 말에 건식이가 허리를 과하게 굽혔다.

천재급 연구원들 사이에도 서로 간의 경쟁심이 존재했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한두 명씩 성과를 내자 알게 모르게 느끼는 것이 있었나 보다.

공돌이로 살아왔던 원이지만, 그런 상황을 모를 수가 없었다.

'어차피 세상이 그렇고 인간 또한 변하지 않지.'

출퇴근 시간이 칼이 아니라 느슨해도 별말 하지 않은 한국 최고의 연구소였지만, 그곳에도 정치는 존재했다.

수많은 파벌도 있었다.

파벌과 상관없이 지냈던 공식이지만, 그게 나쁘다고 보지 않았다.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지.'

지나친 경쟁은 망하는 지름길이지만, 선의의 경쟁은 활력이라고 생각했다.

'구분하기 어렵지만, 아직은 괜찮아.'

어려서인지 아니면 못된 물과 가까이하지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아직 연구소에서 파벌은 생기지는 않았다.

"쌍식아."

"부르셨습니까? 사장님."

"가져온 것을 꺼내 봐라."

"여기 있습니다. 사장님."

은쌍식은 품 안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꺼내주었다.

그것이 뭔지 아는 건식이와 건순이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처음 조101 기관총을 개발할 때도 이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은 종이를 탁자 위에 폈다.

"이 부분을 잘 보거라. 이렇게 경사진 면을 따라 완만하게 비틀려야지만, 원활하게 작동된다. 조101 기관총을 보면 6개의 핵심 부품이 모두 각도가 다르지 않으냐."

"아···! 알겠습니다. 사장님."

건식이는 이해가 되는지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그동안 헤맸던 부분을 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또한 노리쇠와 약실의 폐쇄 돌기도 잘 설계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원은 건식이에게 직접 그린 도면을 보여주며 하나씩 설명했다.

건식이는 지금까지 가스 작동식 총기를 만들고 있었기에 이해가 빨랐다.

"사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지 이해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좋은 결과가 있길 기대하마."

"염려 놓으십시오. 사장님. 제가 반드시 완성된 기관총을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원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가운데 건식이는 연구소 한쪽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건식이를 따르는 연구원들과 공돌이 장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건식이가 떠나자 쭈뼛하니 서 있던 건순이가 자기 손바닥만 한 물건을 꺼내 놓았다.

"사장님, 이것 좀 봐주십시오."

"그래, 어디 보자."

한참을 살펴보던 원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거냐?"

"아닙니다. 사장님. 최종 실험까지 끝마쳤습니다. 문제라면 불발 확률이 5푼 정도 있다는 것입니다."

"흠···."

건순이가 연구하고 있던 것은 그토록 원이 원했던 보병 최고의 지원 무기인 박격포였다.

밀떡 로켓에 사용하는 고체 화약 연료가 있기에 쏘아 날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충돌 시 격발돼야 하는 신관(信管, Detonator)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뚝딱하니 개틀링 방식 조101, 102 기관총을 만들어 냈던 두 사람이지만, 신관을 개발하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가스 작동식 기관총도 만들라고 하자 건식이는 신관 개발에서 손을 놓았다.

아무래도 총기를 만드는 일이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한 거였다.

신관은 워낙 위험하기에 섬세한 건순이 혼자서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에 원은 별말 하지 않았다.

홀로 남은 건순이는 따르는 연구원들을 데리고 신관 연구를 지금까지 해왔다.

박격포뿐만 아니라 폭발하는 포탄에도 신관은 필수이다.

신관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순발신관(Fuze Quick), 즉 물체와 부닥치면 터지는 촉발 신관이 그래도 만들기가 쉬웠다.

하지만 부드러운 진흙탕 같은 곳에 빠지면 폭발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생각보다 개발이 늦어졌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신관에 뇌관을 건드리는 쇠구슬을 넣으면 될 것 같은데 뜻대로 원하는 대로 폭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신관에서 제일 중요한 첫 번째 조건은 안전성이다.

들고 있다가 땅에 떨어트렸을 때 폭발하면 절대 안 된다.

불안정한 신관은 아군을 죽이는 적에게 이로운 무기가 될 수 있기에 안정성은 정말 중요하다.

다음으로 무장성, 감지성, 기폭성 순으로 우선시 된다.

이런 문제를 모두 만족해야 하기에 그동안 연구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신관만 개발되면 조선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올라갈 수 있기에 원은 기대가 컸다.

원도 신관이란 게 무엇인지만 알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아는 만큼만 설명해 줬는데 불발률을 5%로 낮추었다니 건순이가 대단해 보였다.

"장하구나, 건순아. 정말 장해."

"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생각하기에는 5푼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강선이 있는 포를 쏘면 포탄이 회전하면서 날아갑니다."

건순이의 말을 듣는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원도 알아차렸다.

"그럼···!"

"네, 맞습니다. 사장님.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아이디어란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새로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장하구나, 정말 장해."

원의 입꼬리가 끝없이 올라갔다.

건순이가 말한 건 바로 회전력을 감지했을 때만 충격 신관을 작동하게 하는 거였다.

강선에 의한 발사된 탄의 회전력은 2,000rpm이나 된다.

분당 2,000바퀴를 돈다는 것은 초당 33바퀴를 돈다는 의미이기에 웬만해서는 운송 중에 터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회전력은 1차 적으로 뇌관을 활성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격을 받지 않으면 신관이 격발될 일은 없어 보였다.

"박격포도 강선을 새겨야겠구나."

"있으면 좋은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뒤쪽 날개를 비스듬하게 만들면 알아서 회전할 것 같습니다."

"맞다! 너 말이 맞아."

밀떡 로켓도 발사되면서 비스듬하게 붙어 있는 날개에 의해 회전하면서 날아간다.

박격포탄 또한 그런 방식으로 설계하면 된다.

회전으로 안에 있는 쇠뭉치가 돌면서 뇌관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떨어지는 순간 가속으로 격발되게 만들면 신관 문제는 해결된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원은 어찌할 줄 몰랐다.

식자 돌림 연구원 같으면 궁둥이를 팡팡 두드려주고 싶은데 순자 돌림이라 활짝 웃으며 마냥 바라보았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만 했다.

"건순아, 힘들겠지만, 포탄도 실험해 주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비록 원보다 나이가 많은 건순이지만, 원은 건순이를 보고 아빠 또는 삼촌 미소를 지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직접 가르쳤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고력을 발휘하고 있다.

원유 정제 시설도 원이 간섭할 필요가 없었다.

옹진반도와 한양까지 송유관 공사 설계도 원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모든 걸 알아서 척척 해내는 천재급 연구원들이 새로 들어온 연구원들을 가르치면서 전체적으로 수준이 올라가고 있었다.

원은 기쁜 소식에 마음이 편해졌다.

대만에서 발생한 사고로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건순이가 신관 개발 실마리를 잡자 피곤이 확 달아났다.

"건순아, 몸조심하고 뭐든 필요한 것 있으면 바로 연락하거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찜찜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무기 연구소에 들러서 새로운 무기 개발을 지원해 주려 했다.

그런데 뜻밖의 좋은 소식을 들었다.

원은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튀김 통닭은 보내라 말하고 활짝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 * *

원은 석돌이와 함께 한양으로 급히 갔다.

겨울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경강 다리 1차 공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하수도 공사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한쪽 인도를 먼저 완공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노들섬 발전소에서 한성까지 전력을 끌어 와야 하기에 한쪽 인도부터 먼저 공사를 진행했었다.

'다행이네. 아버지를 모시고 흙길로 갈 수는 없었는데.'

효종은 올해 안에 경강 다리를 완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은 돈과 인력을 쏟아부어서 공사를 서둘렀다.

효도를 떠나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지원해주는 효종에게 보답하고 싶어서였다.

효종 2년(1650) 12월.

포도대장 이완을 선두로 조선의 17대 왕 효종이 창덕궁을 나섰다.

전에는 문무 대관이 따라나섰지만, 병조에 속한 무관은 더는 관료로 활동하지 않았다.

효종은 원의 의견에 따라 행정에서 군을 제외했다.

비리의 원상인 훈련도감도 해체했다.

'원균이랑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놈들을 그냥 둘 순 없지.'

양난을 겪으면서 조선에서 무관들이 얼마나 무능한지 알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같이 대단한 무관들도 많았지만, 원균 같은 놈들은 더 많았다.

조선군 총사령관이 된 원은 그동안 있던 무관들을 전부 해임했다.

'군역의 의무가 사라진 마당에 무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이유였다.

또한 군관들은 모두 심사를 받았다.

그중 문제가 없는 군관은 포도청으로 보냈다.

그래서인지 포도대장 이완의 어깨가 오늘따라 올라가 보였다.

'얼마 되지 않았지.'

얼마나 썩었으면 조서원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 중에 쓸만한 군관이 2할이 넘지 않았다.

군관들이 하는 일이란 나라를 지키는 것이었지만, 그동안 나라를 지켰던 이들은 백성들이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라를 지키게 하는 것은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는 거나 같지.'

해고된 군관 중 불만을 품고 항의한 자도 있었지만, 바로 탄광으로 보내 버렸다.

조서원에 기록된 비리를 보여주자 사색이 된 놈들은 칼을 꺼내 반항했다.

이미 효종의 허락이 있었기에 놈들은 즉결 총살을 당했다.

아무리 날고 기는 군관이라 하지만, 총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미 원은 조선군 총사령관이었기에 효종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

원은 21세기에서 군 복무 중에 겪었던 일들이 떠올렸다.

'생계형 비리도 비리일 뿐이야. 단호하게 처리해야 해.'

나라를 지키는 군이 비리로 얼룩져있다면 또다시 양난 같은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이괄의 난처럼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다.

생계형 비리도 위로부터 내려온 악습이라 생각한 원은 과감히 쳐냈다.

'한국군의 악습은 모두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이어온 거라고 했지.'

문식이에게 들었던 말인데 정확한 건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맞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리 착한 백성들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원이 그동안 만나 봤던 조선의 백성들은 정말 착하고 순박했다.

그런 백성들을 등쳐 먹는 놈들이 있었다.

'특히 검계(劍契)가 문제지.'

숙종 이후에 기록을 발견할 수 있는 검계는 살인 청부업자나 다름없었다.

원은 이들을 모두 잡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포도청부터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

문제가 없는 날고 기는 군관들을 포도청으로 보냈다.

'이번 기회에 다 쓸어 버려야 해.'

하지만 효율적으로 검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효종과 원을 태운 마차가 남대문을 통과했다.

"""대왕마마, 만세!"""

수많은 백성이 만세를 부르자 효종은 밝게 미소 지으며 원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느냐?"

"네? 네. 아닙니다. 폐하."

"할 말 있으면 해 보거라."

원은 주위를 살피고 나서 조용히 말을 꺼냈다.

"조선을 정화(淨化)하고 싶습니다."

"정화라···. 좋은 말이지. 그런데 아직 정화할 대상이 남아있느냐?"

비리 군관까지 모두 처리했다고 알고 있는 효종은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 같은 자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이냐?"

말하는 사이에 아이디어가 떠오른 원은 씩 하니 입꼬리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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