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산토도밍고 요새(2) - 지도 >
전세를 살피고 난 박문식은 말했다.
"신호를 올려야겠다."
"넵!"
대원은 조201 권총에 신호탄을 꽂고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펑! 펑! 펑!
한 발도 아닌 연속 3발의 신호탄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밝은 대낮에 신호탄은 붉은색 연기를 뿜어냈다.
"허···! 이럴 줄 알았지."
멀리 바다 위에서 신호탄은 본 조경2 호선 함장인 을수는 기가 차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이런 일이 있을지 모르기에 신호를 정했 놓았다.
노란색 신호탄은 함포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고, 빨간색 신호탄은 문제가 있으니 급히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빨간색 신호탄 3발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위험도에 따라 개수를 정했는데 3발이면 긴급상황이었다.
"다두 왕국 전사들이 사고를 친 것 같다. 그것도 큰 사고 같다. 바로 출동하자."
"네, 함장님."
해류 때문에 내려놓은 닻을 급히 올리고 증기 터빈의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사정거리에 들어서면 바로 포격부터 시작해라."
"넵, 함장님."
1629년에 건립된 스페인이 만든 산토도밍고 요새는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그것도 단수이강 하구에서 2.7km 나 깊숙한 곳이다.
요새를 공격하려면 어쩔 수 없이 단수이강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21세기에 홍마오청(淡水紅毛城)이라 불리는 산토도밍고 요새로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단수이강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모두 조심해라!
-한순간도 경계를 게을리하다간 우리가 당할 수 있다.
을수 함장의 목소리가 함선 스피커를 통해서 해경 대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줬다.
노출된 바다 위 해전이라면 모르지만, 감춰진 해안포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고 처리하기에도 어려웠다.
그래서 충분히 정찰을 끝내고 공격하자고 했지만, 다두 왕국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무조건 이겨야 해.'
지나간 일을 후회할 시간이 없었다.
3발의 빨간색 신호탄이라면 긴급상황이다.
서쪽으로 흐르는 단수이강 하구는 한강만큼 넓은 곳이었다.
단수이강 남쪽은 낮은 언덕으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산토도밍고 요새가 있는 북쪽은 서울 한남동의 UN빌리지처럼 가파른 절벽 같은 곳이었다.
-쿠아앙!
요새에서 다가오는 전경2 호선을 발견했는지 대포가 날아왔다.
-펑!
그런데 언덕 위에서 포사격을 하는지 함선 바로 앞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졌다.
"즉시 남쪽으로 이동하라!"
"네, 함장님. 그런데 좌초될 위험이 있습니다."
"크흠···."
단수이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면서 서쪽으로 꺾인다.
그러면서 남쪽에 모래톱이 쌓여 있었다.
"전 속력으로 돌파하여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라!"
"넵! 함장님."
함선의 속도가 올라가자 을수는 다시 마이크를 받았다.
-함포와 기관총을 쉬지 않고 발사하라!
-꽝! 꽝!
-두드드, 두드드, 두드드드득.
산토도밍고 요새와 1km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무차별 사격을 가하며 모래톱을 벗어난 순간 남쪽으로 배를 꺾었다.
"정지하고 갈겨버려라."
"네, 함장님."
단수이강 남쪽에 자리를 잡은 조경2 호선은 산토도밍고 요새를 향하여 함포와 기관총을 연신 발사했다.
비록 전장식 화포였지만, 강선이 깊게 파여있고, 무연화약을 쓰며, 폴리프로필렌으로 감싸진 포탄이라 수시로 포구 청소를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사정거리까지 길어서 1.3km 정도 떨어져 있는 산토도밍고 요새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만든 벽돌과 설탕, 흙, 바다 조개껍데기, 찹쌀을 섞어 회반죽으로 지어진 산토도밍고 요새는 포탄과 기관총탄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요새가 무너져 가자 다두 왕국 병사들은 힘을 얻었는지 거침없이 요새 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그 순간 하늘 위에 노란색 신호탄이 떠올랐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계속 포격과 기관총을 발사하면 좋으련만 다두 왕국의 전사들까지 다칠 수 있기에 사격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안 되는군."
을수는 짜증이 났다.
오합지졸도 급이 있다면 다두 왕국 전사들은 최하였다.
'의욕만 앞선 지휘관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겁을 상실한 아군이다.'
사장님께서 한 말이 떠올랐다.
이상한 체조를 시키면서 한 명이 잘못하면 단체로 기합을 받았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따질 수는 없었다.
급이 달라도 하늘과 땅보다 더 차이나는 신분이라 감히 여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걸 알았는지 사장님께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피티체조라 했지."
피가 튈 만큼 힘든 체조라 대원들은 피티체조를 모두 싫어했다.
하지만 전장에서 단 한 명의 실수가 어떤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들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훈련에 임했다.
요즘도 신병 훈련소에서 가장 받기 싫은 훈련은 유격도 아닌 피티체조라고 했다.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었다.
꼭 한두 명은 틀렸기 때문이다.
신기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전장에서는 누구나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혼이 빠져나간 상태라고 보면 된다. 그때는 지휘관의 명령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대원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따라야 한다.'
여러 번 전쟁을 겪으면서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배를 돌려 요새 아래 항구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라."
"네, 함장님."
-모두 경계를 늦추지 마라!
-우리는 지금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중이다.
넓은 단수이강에서 조경 2호선은 돌려 산토도밍고 요새 아래 있는 항구로 다가갔다.
사주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꽝!
그런데 어디선가 날아온 포탄이 선미 대포 뒤에 쌓아놓은 화약으로 파고들었다.
유폭이 일이 났다.
-쿠아앙!
연쇄 폭발로 일어난 화염이 갑판을 휩쓸어 버렸다.
깜짝 놀란 을수 함장은 함교에서 튀어나와 상황을 살폈다.
여기저기서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우왕좌왕 하는 해경 대원들을 보고 을수는 크게 소리쳤다.
"저기부터 갈겨"
기관총 사수는 을수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이 나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을수는 뛰어가 기관총 옆에 달린 모터를 떼어낸 후 손잡이를 꼽고 돌렸다.
-두드드, 두드드, 두드드드득.
연신 발사되는 기관총탄에 다음 탄을 준비하던 네덜란드 병사들이 갈기갈기 찢겨서 나갔다.
위험한 상황을 정리한 을수 함장은 뒤쪽 갑판으로 뛰어갔다.
검은 연기가 아직도 계속 치솟고 있었다.
대원들은 강물을 퍼 올려 불을 끄고 있었다.
"어찌 된 거냐?"
"펌프가 작동되지 않습니다."
"하···!"
자신의 몸과 같은 조경2 호선이 이렇게 망가지다니 을수 함장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선미에 떨어진 포탄으로 유폭이 되면서 기관실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납 배터리 또한 파괴되었는지, 아니면 전선이 끊어졌는지 기관총도 작동하지 않았고 펌프 또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어찌어찌 불을 끄고 난 후.
을수 함장은 눈물을 흘렸다.
유폭으로 인해 파괴된 선미 갑판의 모습은 처참했다.
대원들도 많이 죽고 다쳤다.
화가 끝까지 치민 을수 함장의 눈은 불타올랐다.
"모두 상륙하여 제거하라!"
"멸!"
을수 함장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참모는 즉시 명을 내렸다.
어렵게 항구에 정박한 조경2 호선에서 해경들이 쏟아져 내렸고, 거침없이 사살했다.
요새 또한 난입한 다두 왕국 전사들에 의해 네덜란드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거기에는 총독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동안 쌓인 울분을 참지 못하고 모조리 죽여버린 거였다.
*
어디서 났는지 담배 파이프를 꼬나문 을수 함장은 설명을 마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거였네."
원의 명을 받고 긴급 출항한 조경 3호선 함장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운이 너무 나빴습니다."
그래도 위로는 해야 하기에 꺼낸 말이 운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죽은 대원들을 생각하면 편치 못하네."
3호선 함장 병수는 을수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자신 같아도 그럴 것 같았다.
"선배님, 지나간 일입니다. 사장님께서 더 좋은 함선을 만들어 주실 것이니 그만 마음을 놓으십시오. 이러다 병나겠습니다."
을수의 얼굴은 홀쭉해졌다.
담배도 피지 않았는데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계속 파이프를 물고 있었다.
연기를 길게 내뿜고 난 을수는 잔잔한 단수이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버린 대원들은 돌아오지 못하네."
담배 연기가 흩어지면서 함께 생활한 대원들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
원은 조경2 호선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다.
서양 함선과 해전을 생각해서 철판으로 배를 감쌌다.
또한 화약을 보관하는 통도 철판으로 둘러놓았다.
어차피 서양 대포는 직사만 할 수 있기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요새처럼 높은 곳에서 쏜 포에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원은 아무리 강한 서양 함포라도 조경 2호선을 뚫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운이 나빠 화약 보관함이 직격당한다고 해도 튼튼한 철통이라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죽고 사는 건 하늘의 뜻인가 보구나."
조경 3호선의 무전을 받고 난 원은 착잡한 심정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단 한 명의 대원이라도 죽거나 다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런데도 죽는 대원들의 숫자가 점점 커졌다.
이번 유폭으로 죽은 해경 대원은 무려 28명이나 되었다.
폭발 당신 바로 죽은 대원도 있었지만, 너무 많이 다쳐 손을 쓰지 못하고 사망한 대원도 있었다.
비록 산토도밍고 요새에 있던 2천 명이 넘는 네덜란드인을 모두 멸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자신에게 물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 나왔다.
어찌 보면 원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문명이란 게임처럼 조선을 발전시키고 대제국을 새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게임과 다른 게 있었다.
게임에서 유닛이 죽어봐야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대원들은 진짜 사람이었다
그것도 옹진반도에서 함께 자라 온 전우나 다름없는 감정을 가진 살아있는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해경 대원이었다.
그래서 원은 게임처럼 유닛을 소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고, 자신과 같은 말을 쓰고, 자신이 통치해야 하는 백성이기에 보호하고 아꼈다.
그래서 개발하는 무기도 확실한 성능과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실험한 후에야 보급했다.
다음 날 아침.
원은 은쌍식과 함께 무기 연구소를 방문했다.
원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건식이와 건순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그래 수고가 많구나."
인사를 받고 난 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개발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사장님. 저희가 빨리 개발을 해야 했는데 많이 늦었습니다."
"아니다. 내가 더 자세히 설명해 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아닙니다. 사장님께서는 언제나 새로운 지식을 저희들에게 아낌없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원은 이번에 말썽을 일으킨 조102 기관총에 대해서도 보고를 받았다.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수동으로 작동하게 설계해 놓았지만, 막상 일이 터지자 대처가 빠르지 못했다.
을수 함장이 나섰기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새에서 추가로 발사된 포탄에 의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개발하고 있는 조103 기관총을 보러 왔다.
조103 기관총은 개발하라고 말해 놓고 일부러 자세히 알려 주지 않았다.
건순이와 건식이에게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으니 빠르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 준비된 것 좀 보자."
"네, 사장님."
원은 건순이와 건식이가 개발하고 있는 기관총 부품을 하나씩 자세히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