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75화 (75/275)

< 75. 한양 개발(3) >

한성 남쪽 용산방에 한성만큼 넓은 지역이 개발된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미 용산방 일대를 전부 사들여 놓았기에 원이 일부러 퍼트린 거였다.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모였다 하면 용산방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 들어봤는가? 용산방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한다고 하던데 참말인가?"

"나도 소문만 들었네. 상단만 아니라 조합에서도 일할 사람들을 모집한다고 떠들고 다닌다고 하네."

"조합? 훈련도감 병사들이 모인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상단을 말하는 건가?"

"맞네. 그런데 자네 들어 봤는가?"

백성은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제 청계천 근처에서 칼싸움이 벌어졌다고 하네."

"뭐라고? 칼싸움이라니. 혹시···?"

"맞네, 이문이 커서 그런지 용산방 공사를 둘러쌌고 검계 놈들이 동원됐다고 하네."

"허어···, 살벌했겠구먼. 그놈들은 사람 새끼가 아닌데 말일세."

"아니다 말인가? 두 명이나 죽고 팔다리가 잘린 이도 있었다고 하네."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백성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디 무서워서 용산방 공사에 갈 수나 있겠는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네."

"왜? 누가 보호해 준다고 하던가?"

"용산방 공사는 상단에서도 하지만 조합에서도 하지 않는가?"

"아···, 훈련도감 출신이라면 검계 놈들이라고 해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겠구먼."

"그러지. 그래서 나는 조합 쪽으로 알아보려고 하네."

"그런데 임금은 얼마나 준다고 하던가?"

"나도 모르네."

뭔가 아는 듯한 백성이지만,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러지 말고 아는 게 있으면 말 좀 해보게. 내가 한잔 사겠네."

"음···, 사실 나도 잘 모르네."

"들은 게 있을 것 아닌가."

"그거야···."

표정을 보면 분명 아는 것 같았지만, 입이 쉽게 열릴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답답한 백성은 동전 주머니를 툭 치며 말했다.

"오늘 내가 한잔 살 터이니 속 시원하게 말해 보게나."

"···정확한 건 아닌데 처음엔 하루 2문이었는데 이젠 하루 3문까지 준다고 하더군."

"그래? 정말인가?"

기술자가 아니면 하루 2문이 기본임금이다.

그런데 3문이라고 말하자 백성은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일할 사람은 한정되어 있는데 상단끼리 경쟁이 붙었다.

거기에 훈련도감 병사들로 이루어진 조합까지 나서니 임금은 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하긴 했는데···."

"왜? 무슨 일 있었나?"

"기술자도 아닌데 3문이면 골병드는 일이 아닌지 걱정이 돼서 그러지."

"음···."

오랫동안 착취당하고 살았던 백성들이라 뭐든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어찌 됐든 한 번 가서 물어보세. 그래야 뭘 하는지 알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3문을 준다는 상단이나 조합 이름 아는가?"

"남대문 앞에 가면 많이 있네."

날품팔이하던 두 사람은 서둘러 남대문으로 향했다.

넓게 포장된 남대문 앞은 소문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과 일할 사람들을 구하려는 상단원과 조합원들이 외치는 소리로 북새통이었다.

* * *

원은 광해군같이 궁궐을 먼저 짓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사람들이 살 곳을 만들고 상업을 발전시킨 후에 지어도 돼.'

도시건설 게임을 하더라도 제일 먼저 전기와 수도를 깔고 시작한다.

'도로를 놓고 집을 짓고 상업단지와 공장을 지은 다음 관공서를 세우는 게 기본이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봤던 도시건설 게임이라 원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똥통이 되어버린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부터 살 집을 지어야 해.'

재개발한다며 무조건 쫓아내면 바로 근처에 새로운 빈민가가 생길 게 뻔했다.

그래서 용산방을 개발하면서 집부터 지었다.

"사장님, 돈을 너무 많이 뿌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은쌍식은 재정 지출 규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다시 봐도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었다.

"그래봐야 조선 비단 판매 수익도 안 된다. 그리고 돈을 뿌릴 생각이면 확실히 뿌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긴 하지만, 너무 큰 금액이라 가슴이···."

"왜? 무슨 문제 있느냐?"

"아닙니다."

은쌍식은 가슴을 만지던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전처럼 비듬이 떨어지지 않았다.

효종이나 원은 백성을 착취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었다.

'의식주라 말하지만, 식의주지.'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

먹어야 사니 당연한 말이다.

그다음이 입어야 한다.

동물과 다르게 사람은 털이 없으니 추위를 피하려면 뭔가 입어야 한다.

'잠자는 건 마지막이지만, 이왕이면 깨끗하고 좋은 곳에서 살아야 애도 많이 낳지.'

종두법으로 천연두는 물리칠 수 있다지만, 지금 같은 한양이면 언제 전염병이 돌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인구를 늘렸는데 전염병으로 죽어버리면 그것만큼 허무한 게 없을 것 같았다.

"쌍식아, 지금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거야 사람 아닙니까?"

"오, 알고 있었구나."

"사장님께서 예맥의 땅을 확보하려면 지금 조선의 백성들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맞다. 돈을 전부 쓰더라도 인구를 늘리는 게 제일 급하다."

인구가 부족해서 대륙을 정복하지 않고 그냥 두고 있다.

예맥의 땅이라는 시베리아를 확보하고 싶지만, 당장은 보낼 사람이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자, 예맥 부대 졸업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여진족을 받아들이고 바다 건너 일본까지 흡수할 생각이었다.

"은진에게 뭐 들은 것 없느냐?"

"어떤 내용 말씀입니까?"

"저쪽 말이다. 저쪽."

"아···, 잘하고 있을 겁니다."

조서원 요원들을 다시 일본으로 보내 혼란에 빠진 일본에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

전국시대부터 수없이 전쟁을 벌여 온 일본의 다이묘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살아남은 다이묘들은 권력을 잡고자 매일 같이 싸우고 있었다.

한순간에 호랑이가 사라진 일본에서 늑대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고 수시로 일어나는 전쟁통에 수많은 젊은 피가 열도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농사를 지을 젊은이들이 죽어가면서 농지는 황폐해져 갔다.

또한 전쟁에 동원된 병사들은 엄청나게 처먹기에 약탈이 수시로 일어났다.

그 와중에 일본으로 파견된 조서원의 요원들은 소문을 퍼트렸다.

'원래 우리도 조선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알고 있소?'

'그게 무슨 말이요? 우리가 조선 사람이라니.'

'우리는 조선에서 건너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을 침략하자 하늘이 노해서 다 죽였다고 합니다.'

'설마···?'

요원들이 대충 던진 말이지만, 다양한 신을 믿는 일본인들은 점점 믿음이 깊어져 갔다.

그래서인지 대마도와 가까운 다이묘부터 대마도로 사신을 보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조선의 무기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너무나 커버린 조선에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원은 은쌍식과 함께 일본의 정세를 분석하고 난 후 다시 용산방 개발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주택단지는 어떻게 돼가는지 아는 게 있느냐?"

"잘 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수도 공사가 시작되면서 장터 안쪽 주택단지에 바로 집을 지으라고 했다.

"임대 계약은 차질 없겠지?"

"하루에 3문까지 임금이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니 새로 지은 집에서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보다 빨리 올랐네."

"요즘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겠지."

원은 일부러 사람 수에 맞게 공사구역을 분배하라고 했다.

'팔다리만 온전하면 일하게 하고 돈을 벌 수 있게 해야지.'

어리다고 늙었다고 힘이 없다고 일꾼으로 쓰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시 빈민가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지.'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고 하지만, 원은 할 수 있다고 봤다.

빈곤은 근본적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운 것이기에 그런 말이 나왔지만, 말도 되지 않는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뭔 데? 신성시되는 나라님이라면 가난도 구제하는 존재여야만 해.'

원이 생각한 조선은 단순히 거대한 영토와 넘볼 수 없는 무력을 가진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경비대를 이끌고 유럽까지 쳐들어갔지.'

원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의미 없는 짓이야. 잘 먹고 잘사는게 제일 중요해. 무력을 갖추었다면, 백성들의 삶의 질을 올리고 문화를 활성화해야 지.’

비록 전생에 공돌이였지만, 원은 문화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무척이나 중요시했다.

그래서 용산방을 개발하면서 집들 또한 넓게 짓도록 했다.

구역에 따라 다르지만, 20~50평 정도 되는 규모로 집들을 설계했다.

"평당 연 10문이면 부담 없겠지?"

"전 같으면 어림도 없겠지만, 일 년에 200문 정도는 이제 누구나 벌 수 있는 돈입니다. 한 사람만 벌어도 용산방에서 사는데 충분할 겁니다."

가장 작은 집은 대지 20평에 건평 10평, 연면적은 20평이다.

2층짜리 집은 방 3개와 부엌, 화장실이 내부에 있는 현대식 구조로 다양하게 설계해 놓았다.

"살집은 됐고···, 일자리가 문제인데···."

"노량진 일대에 공업 단지를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경강 다리가 있으니 이동하기에 불편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긴 한데···."

원은 될 수 있으면 한양 주변에 일자리를 많이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서울로 사람들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가 일자리 때문이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울 주변으로 젊은이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더욱 집중되었다.

지방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수록 서울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인구의 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울 주변에 모여 살았다.

'전 지역을 고루 발전시켜야 하는데···.'

당장 급한 건 한양이었다.

지금이야 한양 개발로 일자리가 많으니 상관이 없지만, 개발이 끝나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공장을 지을 수도 없었다.

"쌍식아, 뭐 좋은 게 없을까?"

"무엇 말입니까?"

"노량진에 공장을 짓더라도 팔 수 있은 물건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

"아, 그거요. 전에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자전거를 만들면 어떻게 씁니까?"

"자전거?"

"네, 사장님. 단단한 도로가 생기면 자전거가 필요할 거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음···."

자전거는 이미 개발해 놓았지만, 생각보다 부품이 많고 고무 공급이 아직 많지 않아 보류 중이었다.

'나프타를 열분해하면 합성고무의 원료인 부타디엔을 얻을 수 있으니 괜찮을 것 같은데.'

조선석유화학 발해 공장에서 점점 더 많은 원유를 정제하고 있다.

'아직 나프타를 쓸 곳이 없으니 합성고무를 만드는 데 사용하면 좋을 것 같군.'

나프타는 휘발유나 제트유에 첨가하여 옥탄가를 높이는 데도 사용하지만, 다양한 합성제품을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하지만 석탄에서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뽑아내고 있기에 당장 필요 없었다.

"그럼, 노량진 일대에 자전거와 가구, 플라스틱 사출 공장을 짓도록 하자."

"가구와 플라스틱 사출 공장까지요?"

"앞으로 가구도 많이 필요한 것 아니냐? 집만 좋으면 뭐 하냐? 가구도 있어야 하고 식기도 필요할 것 아니냐."

"아···, 알겠습니다. 사장님."

자전거 조립과 가구, 플라스틱 사출 공장 정도면 한양에 사는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금을 많이 걷으려면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야 해.'

급격하게 커지는 조선이지만, 조선전력공사에서 내는 세금을 빼면 세수는 얼마 늘지 않았다.

조선이란 나라는 조선전력공사가 없다면 적자였다.

은동리 대강당에 사람들을 모아 설명한 이유가 조선의 일자리를 늘리고 상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돈을 풀어서 자본을 가진 기업들을 많이 만들려는 목적도 있었다.

* * *

그동안 엉망이었던 남대문 앞에 넓은 광장이 생기고 쭉 뻗은 도로도 만들고 있다.

도로 가운데 있는 하수구 위로 전철이 다닐 수 있게 선로가 깔렸다.

물론 현대식 전철이 아니라 20세기 초반 전철이다.

'전철이야 별다른 제어가 필요 없으니 가능하지만, 전기자동차는 언제 될지 모르겠군.'

원은 내연기관도 건너뛰고 바로 전기자동차를 개발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리튬 배터리를 만들려고 해도 제어할 기술이 없으니···.'

리튬 배터리는 폭발의 위험이 있다.

제어 소자를 만들지 못하면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트랜지스터를 양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지었고 수율을 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런데 전기자동차는 수많은 전력제어 기술이 필요하다.

'당장 라디오 만드는데 필요한 트랜지스터도 어찌 될지 모르는데 기다려야지.'

좀처럼 반도체 생산 수율이 올라가고 있지 않았다.

전처럼 3%라는 터무니없는 수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할 만큼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반도체 공장을 완공해 놓고도 양산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한양 개발 계획을 끝낸 원은 진이 빠지는지 의자에 퍼져 버렸다.

'그나저나 문식이는 왜 소식이 없지?'

홍콩에 정박지를 만들고 돌아온 박문식은 다시 대만으로 떠난 후에 통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원은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보내야겠어.'

조경2 호선을 타고 간 박문식이 걱정되자 원은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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