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한양 개발(2) >
원은 탁자 위에 놓인 한성을 중심으로 한 한양 지도를 보며 행식이에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한성은 옹진반도와 비교하면 똥통이다."
"맞습니다. 사장님. 비가 오지 않으면 악취가 나서 미치겠습니다."
행식이는 아직도 냄새가 나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그만큼 한성이라 부르는 사대문 안은 온통 똥 천지였다.
물론 세상 어느 곳을 가더라도 17세기 대도시는 다 그랬다.
'그렇다고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능력이 없다면 모를까 차고 넘치는데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원은 한양 개발에 앞서 행식이에게 한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행식이가 조사한 한양의 인구는 생각보다 많았다.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까지 모두 포함한 한양의 인구는 어림잡아도 20만 명이 넘었다.
'은근히 많네.'
21세기 서울과 비교하면 한 줌도 안 되는 인구수이다.
하지만 사대문 안은 만만치 않은 인구 밀집도를 보였다.
많은 사람이 살지만, 하수시설이 없는 한양은 문제가 심각했다.
특히 비가 오지 않으면 온갖 쓰레기가 떠내려와 쌓인 청계천은 악취가 진동했다.
원래 청계천은 도랑이나 다름없는 작은 자연 하천을 인공으로 넓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개천(開川)이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서울의 지명을 개정하면서 청계천(淸溪川)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청계천은 비가 와도 문제였다.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성을 옮기면서 자연 하천이던 청계천 주변이 수시로 홍수 피해를 보자 태종 시절 한 달 만에 둑을 쌓고 정비하여 개천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대문 안에 있는 5개의 지천을 따라 내려온 쓰레기와 오물이 쌓이면서 청계천은 막혔고 범람했다.
역대 왕들이 수시로 준설 공사를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개발하려면 이전시켜야 하는데···.'
한성에는 5개의 지천이 있는데 식수원이자 하수구였다.
백운동천, 삼청동천, 흥덕동천, 창동천, 남소문동천.
이 5개의 지천은 청계천으로 모여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옆에서 중랑천으로 흘러간 후 한강으로 빠진다.
그래서인지 청계천 주변은 상시 악취가 나는 빈민가였다.
'지천을 정비하고 도로를 내고 새로 집을 지으려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됐다.
'이대로 두다가는 언제 전염병이 돌지 몰라.'
조선에서 가장 많은 백성이 모여 살고, 모든 것의 중심인 한성인데도 상수도는커녕 하수도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먹고 난 배설물이 어디로 가겠는가.
비가 와야 씻겨나갈 건데 자주 발생한 가뭄으로 인해 문제가 심각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배설물로 사대문 안은 거대한 똥 밭이나 다름없었다.
원은 강남을 개발하고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이전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20만 명이면 얼마 되지 않지만, 착각하지 말자.'
원은 아직 왕이 아니었고, 왕이 된다고 해도 강제로 모든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순리대로 해야지. 문제가 없을 거야.'
강남으로 이전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놈의 종묘사직(宗廟社稷)이 뭔지.'
고대 대륙의 제도를 모방한 사직(社稷)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또한 종묘(宗廟)는 하늘의 신과 땅의 신 그리고 왕실의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기 전에 종묘와 사직부터 먼저 지었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은 사직, 동쪽은 종묘를 두었는데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랬기에 강남 이전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심심하면 나오는 대사인 '종묘사직을 생각하소서'란 말이 생각난 원은 웃음이 나왔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믿지 않는 사대부들이 할 소리는 아니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하는 조선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선비들은 초자연적 신비로운 일은 입에 담지도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왕이 한 말이 자신들에게 거슬리면 종묘사직을 꺼내 들며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아무튼 이런 문제 때문에 원은 강남을 개발하여 한성 자체를 옮기는 일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강북은 너무 좁아.'
미래를 생각하면 한양보다는 평양이 조선의 수도로서 여러모로 좋아 보였다.
하지만 말도 꺼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무력과 금력이 모두 있지만, 하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원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혼란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새로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한성을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는데 뜬금없이 새로운 곳으로 수도를 옮기자고 하면 지금 열도처럼 혼란이 일어날 게 틀림없었다.
원은 며칠 동안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행식아, 한성을 중심으로 외각부터 바꿔나가자."
"네?"
원은 연필과 자들 들고 지도위에 선을 쭉쭉 그었다.
"일단, 사대문 안은 그냥 두고, 남대문부터 경강 다리까지 전부 뒤집어엎자."
"네? 뒤집어엎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전부 밀어버리고 새로 짓자는 말이다."
"아···.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밖으로 빼낼 생각이십니까?"
"맞다."
원은 용산방이라 부르는 10리(4km)가 넘는 구역을 전부 밀어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경강 다리까지 큰 도로를 내야 한다."
"그건 맞습니다. 사장님."
곧 있으면 경강 다리 1차 공사가 완공되는데 남대문에서 경강 다리까지 가는 길은 엉망이었다.
"그러니 40미터 폭으로 콘크리트 도로를 깔아라."
"네? 그렇게나 넓게요?"
"넓지 않을 수도 있다."
21세기에 한강대로로 불리는 곳이지만, 그리 넓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 작게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고생할 게 뻔해.'
그래서 원은 아예 아주 넓게 도로를 만들어 버리기로 했다.
"도로 양옆도 30미터 폭으로 포장하도록 해라."
"네?"
40m 도로에 양옆으로 30m면 100m이다.
그러니 행식이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다닐 길이라 인도(人道)라 부르겠다. 차도와 인도 사이는 2미터 넓이로 화단을 만들어 나무와 꽃을 심어라. 나무는 은행나무가 좋겠다."
"은행나무요? 냄새가 심할 겁니다."
"가을 한때잖느냐?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는 해충이 없다고 하니 그리하도록 해라."
은행나무는 한때 가로수로 많이 심었지만, 가을만 되면 열매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각종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
2005년까지만 해도 전국 가로수의 24%를 차지했던 은행나무지만,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고약한 냄새로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원이 아는 바로는 은행나무야말로 가로수로서는 최고였다.
은행나무는 한반도 기후와 토질에서 잘 성장한다.
키가 크게 자라기에 넓은 그늘을 제공해 주니 여름에는 백성들의 휴식처가 될 것이다.
해충들이 싫어하는 물질을 내뿜기에 벌레들이 가까이 가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또한 열매는 약으로 쓸 정도로 사람 몸에 좋았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똥 냄새 때문에 사대문 안을 개발하려고 하시는데 은행나무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열매가 열리는 은행나무는 뽑아버리고 다시 심으면 된다."
"무슨 말씀이신지···."
"은행나무는 암수로 되어 있다. 구별하기 쉽지 않으니 나중에 열매가 열리는 나무만 제거하고 그곳에 열매가 없는 나무를 옮겨 심으면 되지 않겠느냐?"
노란 단풍이 지는 은행나무는 보기에 아름답지만, 몸에 좋은 열매에서 나는 냄새가 문제였다.
그렇다 하여도 벌레를 내쫓고 공기 정화에 좋은 은행나무는 가로수로서 너무 좋았다.
"하지만 사장님, 돈이 엄청나게 들어갈 겁니다."
"돈을 쓰려고 그러는 것이다."
"아···!"
인제 서야 원이 원하는 뜻을 이해한 행식이가 크게 입을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이 한양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돈을 풀기 위해서이다.
원은 행식이에게 돈을 풀어서 조선을 발전시키라고 했다.
그래서 전국에 도로를 내고 집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한양은 제외되었다.
개발하려면 한성이라 부르는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쫓아내야 하는데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또한 도로 가운데로 대형 하수관을 만들도록 해라."
"넵! 사장님."
"도로 양옆은 사람들이 다니거나 장터가 될 곳이니 도로보다 30cm 높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그곳 아래로 상수도와 전력선을 설치하고."
"네, 사장님."
"인도를 너무 단순하게 만들지 말고 구간마다 더 넓게 하여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작은 공원도 만들어야 한다."
"네, 사장님."
행식이는 연필을 꺼내 지도에 표시하며 적기 시작했다.
"장터 옆에는 단층으로 된 상가를 쭉 짓도록 하고."
"네, 사장님."
"상가 뒤로는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터를 넓게 잡아라."
원은 도로를 따라 고층 건물이 지어진 21세기 서울이 보기 싫었고 답답했다.
그래서 도로 양옆에 낮은 상가를 짓고 뒤에는 고층 건물을 지을 생각이다.
'처음부터 잘 만들어야 해.'
원은 용산방 전체를 개발하면서 도시를 짓는 표준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 놔야 해.'
원은 천년 후에도 변함없이 쾌적하게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한양을 만들고 싶었다.
"다음으로 주거지를 만들도록 해라."
"네, 사장님."
나중에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넓게 시작해 놓기로 했다.
'그래야 난개발을 막을 수 있지.'
하수도 또한 프랑스 파리처럼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만들라고 했다.
'용산역 근처가 상수 침수지역이었지.'
비가 많이 내리면 삼각지부터 용산역까지 수시로 잠겼다.
그래서 도로 한가운데 대형 하수도를 만들고, 경강 다리 바로 앞에 하수처리장 겸 배수펌프를 설치하기로 했다.
'전기야 얻을 곳이 바로 옆에 있지.'
원은 경강 다리를 만들면서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중지도라 말하는 노들섬 자리가 기가 막히게 좋아 보였다.
처음에는 흐르는 한강 물을 이용해 소규모 수력 발전소를 지으려 했다.
홍수가 나도 문제없을 정도로 노들섬 높이를 높여 놓았고 콘크리트로 방벽(防壁)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석유를 확보했으니 그곳에 화력발전소를 지어도 될 것 같았다.
"중지도에 짓고 있는 화력발전소는 중요한 곳이니 철저히 방비하도록 해라."
"네, 사장님."
아직 테러라는 말이 전혀 없지만, 발전소는 가장 중요한 곳이라 안전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팔당 댐이 완공되면 전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풍부한 전력을 얻을 수 있기에 노들섬 화력발전소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전력이야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좋고, 비상사태도 염두에 둬야지.'
팔당 댐을 설계하면서 목표는 정한 발전 용량은 100MW였다.
'100MW면 21세기 인구 10만 명이 사는 대도시도 커버할 수 있는 용량이지.'
하지만 지금 당장 쓸 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경강 다리 교각을 세우면서 노들섬 화력발전소 공사도 같이했다.
열심히 표시하면서 적고 있던 행식이가 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사장님. 공사 기간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경강 다리를 완공해도 사람들이 통행할 길이 없는데 어찌합니까?"
"앞으로 조선전력공사는 감리(監理)만 한다."
"아, 상단에 공사를 맡길 생각이십니까?"
"맞다. 구역별로 정해서 상단에 공사를 맡기고 축구처럼 한번 걸리면 노란 표를 주고 두 번 걸리면 빨간 표를 줘서 공사를 중단시켜라."
행식이는 적다 말고 원을 쳐다보았다.
"빨간 표를 받은 상단은 어찌 처리 합니까?"
"배상금을 물리고 앞으로 우리가 하는 공사에는 참여하지 못하게 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축구에서는 퇴장만 하면 되지만, 공사는 안전과 직결되기에 영원히 퇴출해 버리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사장님."
"우리 직원 중에 그럴 짓을 할 사람은 없겠지만, 뇌물을 받고 감리를 소홀히 하는 것이 발견되면 강하게 처벌해라. 혹시라도 부실 공사로 사람이 다친다면 사형을 시켜라."
"넵! 사장님."
사람 목을 쳐 죽이는 것이 대수인 세상이라 그런지 행식이는 놀라지도 않았다.
원은 뇌물을 받은 자들을 어찌할까 생각해봤다.
역적모의했던 이들도 탄광으로 보냈기에 똑같이 탄광으로 볼 낼까 했지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라의 동맥이 될 도로를 공사하는데 부실을 눈감아준다면 매국노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누구든지 걸리면 봐주지 말아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장님."
다른 범죄라면 정확히 가리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부실 공사는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뇌물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공사한 상단과 감리를 맡은 자를 잡아 조사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니 사형을 시켜도 오류는 없을 것 같았다.
원과 행식이는 지도를 보며 추가 공사할 것을 선정하고 의견을 나누며 문제 될 점을 표시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