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72화 (72/275)

< 72. 열도 혼란(2) >

에도(도쿄)만 앞바다에 작은 고깃배가 떠 있었다.

배 위에는 조서원의 일본 팀장인 정칠이와 요원들이 있었다.

정칠이는 에도 막부의 본거지인 에도성을 바라보며 초조한지 손바닥만 한 조선시계1을 꺼내 놓고 보았다.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에이, 서성거리지 좀 마세요. 정신 사나워 죽겠습니다. 오차가 있을 수도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터질 게 안 터지고 안 터질 게 터지고 그런 것 아닙니다."

안절부절못하는 정칠이와 달리 타이머를 설정해 놓은 요원은 한가하니 땅콩을 벗겨 먹고 있었다.

"너는 걱정되지도 않느냐?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아··· 참! 실패하면 제가 직접 들고 가서 폭파해 버릴 테니 그만 좀 앉아 계세요. 정신 사나워 죽겠습니다."

정칠이와 사촌 동생인 정삼이는 부산 두모포왜관(豆毛浦倭館) 근처에서 태어났다.

두창(痘瘡)으로 부모를 모두 잃은 두 사람은 친형제처럼 붙어 다니면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어릴 때부터 둘은 수시로 왜관을 드나들면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깡다구라 말하는 강단(剛斷)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절이었다.

어느 날 두모포왜관이 폐쇄되자 살길이 막막해진 두 사람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간 곳이 바로 조서원이었다.

그곳에서 혹독한 훈련과 사상교육을 받고 정식 요원이 된 두 사람은 수시로 일본을 왕복하면서 정보를 캐냈다.

어릴 때부터 개구멍을 통해 왜관을 들락거리던 솜씨가 이제는 바다를 건너 열도를 휘젓고 다닐 정도로 능력(能力)이 향상되었다.

침착하고 끈기 있는 정칠이와 달리 정삼이는 새로운 것만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뜯어 보길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폭발물 교육을 받을 때 두각을 나타냈다.

성격 또한 낙천적이라 고민이 있어도 머리 한번 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일하는 데 있어 책임감은 누구보다 강했고 약속은 칼같이 지켰다.

그러지 않았다면, 왜관 주변의 양아치들에게 진작에 맞아 죽었을 터이다.

땅콩을 까먹고 느긋한 표정인 정만이지만, 여차하면 밀떡 폭탄을 짊어지고 에도성으로 쳐들어갈 생각이다.

그것만이 자신이 맡은 일을 완수할 수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해서이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던 어린 시절.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마음을 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같이 훈련받은 요원들은 친형제처럼 믿고 지낼 수 있었다.

정삼이는 이번 일로 더는 요원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다이묘들이 저격당해 죽어가면서 갈수록 움직이기가 힘들어졌다.

언제 요원들이 잡혀 곤욕을 치를지 모른다.

그러기 전에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밀떡 폭탄에 연결된 시한장치를 수도 없이 검토했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정칠이는 달랐다.

"우리 가문에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너와 나뿐이다. 그런데 네가 죽으러 간다고?"

"에이, 참. 언니나 나나 가문이란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이 땅콩 다 먹을 때까지 터지지 않으면 내가 가서 해결할 터이니 좀 기다리세요."

"크흠···."

그 순간.

거대한 불빛이 번쩍거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에도성은 대낮처럼 밝게 빛났다.

붉은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와···!""

놀란 요원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쿠아앙!

엄청난 폭음 소리가 밀려 들려왔다.

두 사람은 물론 옆에 있던 요원들도 넋을 잃고 환하게 불타오르는 에도성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생각보다 폭발력이 엄청났던 거였다.

"대단하네."

"내가 뭐라고 했소. 잘 될 거라 하지 않았소."

"그래 잘했다. 이놈아. 네가 최고다. 최고!"

정칠이와 정삼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흰 이를 드러냈다.

"이럴 게 아니라 기도합시다. 기도."

"뭐? 기도 너 기리시탄이더냐?"

"그런 건 모르고 고인의 명복은 빌어줘야 한다고 합디다."

"허 참."

정칠이는 평생을 같이 살아온 정삼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천방지축 같아도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랬기에 둘 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조서원에서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도 정삼이가 어디서 주워듣고 온 것이었다.

다이묘들을 저격할 때도 위기는 있었고 그럴 때마다 정삼이가 나서서 뻔뻔한 얼굴로 해결했다.

그만큼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정삼이라 '기도'라는 말도 어디서 듣고 써먹나 보다.

어찌 됐건 수많은 사람을 날려 버렸으니 정삼이를 따라서 요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명복을 빌었다.

이와 같은 일이 교토(京都)에서도 일어났다.

1869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에는 황거(皇居)라 부르는 황궁이 있었다.

이곳에는 제110대 고코묘 천황이 기거하고 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황궁은 불타 사라져 버렸다.

실질적인 권력자인 쇼군과 그를 따르는 다이묘들이 에도성과 함께 불타 죽었다.

허수아비였지만 신으로 추앙받던 천황 또한 황궁과 함께 열도를 떠났다.

천황과 쇼군 그리고 수많은 다이묘가 사라진 열도는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 * *

원은 새로 지어진 본사 집무실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완전히 공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만족할 만큼 좋아 보였다.

피사의 사탑처럼 동그란 원형으로 지어진 12층 높이의 건물은 외벽을 대리석으로 마감하고 있었다.

원래는 황동으로 처리하려고 했지만, 정선에서 대리석을 발견했기에 그것을 갔다 쓰기로 했다.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정선에서 가져온 대리석은 훈련이 끝난 신병들의 복장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백의민족의 상징인 흰 대리석을 쓰려고 했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지.'

원이 아는 흰 대리석 산지는 이탈리아였다.

예수회에 부탁한다고 해도 그곳에서 조선까지 수입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이 걸린다.

그러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지은 본사는 높이가 높기에 승강기를 설치했지만, 아직 실험이 끝나지 않아서 원은 타고 싶어도 탈 수가 없었다.

전기가 끊기면 자동으로 정지 장치인 스토퍼가 작동되기에 추락하는 일은 절대 발생할 수 없지만, 모두가 반대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엘리베이터는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절대 추락할 수 없는 구조이다.

21세기에 공식이가 살았던 시기까지 한국에서 엘리베이터 자체가 바닥으로 추락했던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엘리베이터는 떨어지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아무튼, 원은 열도정복 1단계 작전 최종 보고를 받았다.

생각보다 깔끔하게 끝난 작전이지만, 기뻐하지는 않았다.

어찌 됐건 죄 없는 사람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래도 일본이란 나라는 역사 속에서 영혼이 흔적조차 없게 만들어 버릴 생각이다.

'위험 요소는 제거해 놓는 게 좋아.'

섬나라 특유의 호전적 성격을 가진 수뇌부들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세상에 모든 나쁜 짓을 다 했다는 유럽의 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 또한 동아시아에서 모든 나쁜 짓을 다 할 것이 틀림없었다.

'복속할 수 없다면 밟아 버려야지.'

원은 일본의 백성들이 순종적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열도의 사람들이 순종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열도정복을 포기할 생각이다.

'절대 일본이란 나라가 힘을 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순 없지.'

열도를 정복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안 된다면 영원히 후진국으로 남겨 둘 생각이었다.

'그것만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 최선이야.'

원이 오래 살 수 있다고 해도 잘해야 18세기 초반이다.

자신이 생각한 조선을 만들어 놓아도 그 이후로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기에 위험 요소는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원이 생각한 위험 요소는 열도에 사는 백성들이 아니었다.

위험 요소는 열도의 백성들을 착취하는 지배 계급이 문제라고 봤다.

그래서 지배 계급을 동시에 날려 버리는 작전을 제일 먼저 실행했다.

21세기에 선진국이라 말하는 나라 중에서 가장 후진적인 정치를 하는 일본이다.

'백성들이 순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물론 역사를 잘 모르기에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다시 생각해봐도 틀림없었다.

'순한 백성이 아니라면 지나가다가 맘에 안 든다고 칼로 쳐 죽이는데 반항 한번 하지 않는 게 이해되지 않아.'

초식동물과 같은 열도의 사람들은 사무라이라 부르는 봉건 시대의 칼잡이들이 이유 없이 칼을 휘둘러도 반항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눈치를 보며 굽실거리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20세기에 벌어진 수많은 전쟁에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돌격 명령에도 항명조차 하지 않았다.

원이 생각한 것은 순한 백성이었는데, 순한 것이 아니라 순종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태평양 전쟁 패전 직후인 1946년 2월 16일.

일본 정부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려고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예금 인출을 봉쇄했다.

그로 인해 돈이 헐값으로 변해버렸지만, 일본 국민은 분노만 했지, 아무런 대항조차 하지 않았다.

순하다면 분노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분노를 감추고 순종한 것처럼 보이며 나름대로 대항했다.

'일본 국민이 집에 현금을 보관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지.'

사람이란 누구나 똑같다.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에 따라 행동만 달라질 뿐.

음침하다는 일본인의 행동은 이런 이유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거짓과 허위로 국민을 속이고, 주변국을 침략하고 도발하며 피해를 주고도 사죄조차 하지 않는 뻔뻔한 일본의 정치인들.

원은 그들의 싹을 모조리 제거하라 명 했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수시로 망가트린 일본을 명칭 하여 부르는 왜(倭)라는 문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첫 번째 학설은 '왜(倭)'의 부수인 사람인(人) 변과 '화(和)'와 '위(委)'라는 문자의 뜻을 유추하여 '복종심이 강하고, 체구가 작으며, 다리가 구부러진 사람들'이 사는 곳을 말한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21세기 일본어에서 '나'를 지칭하는 일인칭 대명사에서 기원했다고 하는데 이는 일본 내 소수의 학자가 주장하는 설이다.

세 번째는 일부 학자들의 뇌피설이라 굳이 따질 필요조차 없다.

'아무튼, 복종을 잘하는 것은 틀림없어.'

그래서 원은 일본을 정복하고 복속시키려고 계획했다.

'여진족에게 한 말도 있으니···.'

어순이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은 모두 조선인이라고 뇌피설을 퍼트려 놓았다.

그러니 수습하려면 일본도 복속시켜야만 한다.

'인구도 늘려야 하고.'

현재 열도에 사는 인구는 어림잡아도 조선보다 많은 1,700만 명이 넘었다.

그들을 흡수하여 조선인으로 만든다면 3천만 명이 넘는 무시할 수 없는 백성을 가진 제국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진출할 땅이 너무 넓어.'

그래서였다.

원이 바로 일본을 쳐서 정복하지 않고 수뇌부를 제거하고 혼란에 빠트린 이유가.

18세기면 몰라도 17세기 중반인 지금은 빈 땅은 세상에 널려있다.

그곳으로 사람들을 보내야 하는데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조선의 백성들을 보낼 수는 없었다.

'물론 함께 보내야겠지.'

섞어서 보내겠지만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있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지.'

원은 혼란에 빠진 일본을 구한다는 목적으로 접근할 생각이었다.

발달 된 문명, 굶주림이 없는 세상, 이유 없이 죽지 않아도 되는 안정된 사회를 보여 주고 그들을 자연스럽게 복속할 계획이다.

'당장은 혼란스럽겠지만, 지나고 나면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야.'

혼자 생각에 빠진 원은 깜짝 놀랐다.

드라마에서 봤던 애꾸눈이 읊었던 대사였기 때문이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난 원은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본 후 계단으로 이동해 내려갔다.

내일부터는 한양 개발을 위해 계획을 착수해야 하기에 준비할 것이 많았다.

계단을 따라 원의 호위대인 옹진십팔동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언제나 원과 함께 움직이는 이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처음에는 18명이었지만, 이제는 90명이나 되었다.

18명씩 한 조로 구성된 이들은 팔도에서 이름을 날리는 무사들을 초청해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체력 또한 남달랐다.

잘 먹기도 했지만, 수시로 뛰고 달리고 수영까지 했기에 어디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원을 보호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검계라 불리는 쳐 죽일 놈들에게 동인 한 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휴가를 받고 고향에서 지내다가 시비가 붙어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즉시 조서원의 요원들이 파견되었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원은 동인들에게 묘한 행동을 했다.

원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동인들에게 일일이 손뼉을 마주쳤다.

처음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체 높은 원과 육체적 접촉을 한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자주 반복되자 이제는 방긋 웃기까지 한다.

원은 일부러 그랬다.

동료 한 명이 어처구니없는 일로 죽었지만, 범인들을 검거하지 못하자 옹진십팔동인들은 의기소침했다.

그래서 분위기도 바꿀 겸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아래로 내려가자 은쌍식이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기다리고 있느냐?"

"네, 사장님. 모두 모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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