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71화 (71/275)

< 71. 열도 혼란(1)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승리한 조선이지만 아무런 전쟁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또한 정전 협정도 하지 않았다.

'집단으로 미친 거 아냐?'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원이다.

그래서 알아본 왜란의 뒤처리는 한마디로.

'지랄, 병신 육갑한 거네.'

자기가 키우던 개가 어디서 얻어맞고 왔어도 화가 나는 게 사람이다.

그런데 뒤처리를 살펴보니 가관(可觀)이었다.

'미친놈 아냐?'

런조야 그렇다지만, 정신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광해군이 한 짓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농지부터 복원했어야지. 궁이 뭐가 중요한데.'

알아볼수록 화가 났다.

광해군 하면 뭔가 대단한 인물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두 번의 왜란이 끝난 후.

1608년 2월 2일 정릉 동행궁 서청에서 즉위한 광해군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중건하고 경희궁까지 지었다.

'궁궐 질 돈으로 무기를 만들어 쳐들어갔어야지!'

전생에서 연구만 하며 살아왔던 원이지만, 틈나는 대로 게임을 즐겼기에 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일꾼과 병력을 뽑아야지, 커맨드 센터를 왜 지어?'

그것도 하나가 아닌 3개씩이나 짓다니.

'유딩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

다시 보고 또 봐도 광해군이 한 짓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은 더는 지나간 역사를 살펴보지 않기로 했다.

보면 볼수록 열받고 화가 나니 어린 나이에 혈압이 올라 쓰러질 것 같았다.

원은 복받쳐 오르는 화를 풀 대상을 정했다.

그건 바로 이 모든 것의 원흉인 일본이었다.

'이번 기회에 열도를 아주 작살 내버려야지.'

후세에 뭐라 하든 말든 아주 지근지근 밟아 버릴 계획을 짰다.

* * *

패배한 도요토미 막부는 힘을 잃었다.

대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열도의 패자로 등극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본거지인 에도(도쿄)를 발전시키고 다이묘들을 견제할 묘책을 세웠다.

열도에 널려 있는 다이묘들의 힘을 먼저 빼기로 했다.

함부로 병력을 양성하지 못하게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었다.

정기적으로 다이묘의 수장을 불러 에도에 와서 살게 했다.

이로 인해 1603년부터 1868년까지 264년 동안 도쿠가와 에도 막부는 일본을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에도 시대'라 말하는 이 시기에 조선은 망해갔는데 일본은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다.

그건 모두 다이묘들의 반란을 두려워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했던 단 하나의 정책 때문이었다.

유일한 쇼군이 된 이에야스이지만 전국에 널려 있는 다이묘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낸 계책이 바로 에도에 거주하라는 인질 정책이었다.

택지가 부족한 에도이기에 다이묘들에게 줄 땅은 없었다.

그래서 이에야스는 도쿄만에 널려 있는 뻘밭을 다이묘들에게 나누어주고 택지를 직접 개발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도쿄만 일대 뻘밭은 1년 만에 여의도 절반이나 되는 면적이 매립되었고, 다이묘들이 살 수 있는 택지가 조성되었다.

21세기 도쿄에서 히비야, 신바시, 하마초라 불리는 곳이 이렇게 해서 생긴 땅이다.

일본 최대 규모이자 옥토라는 간토평야(関東平野)도 인질로 에도에 기거하던 다이묘들이 만든 곳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다이묘들은 주기적으로 에도에 거주하면서 자신들의 영지를 왔다 갔다 했다.

200~500명 정도 되는 영지 병사들을 이끌고 다녔던 다이묘들.

그들이 지나가면서 숙박하고 쓴 돈으로 인하여 일본 전역은 빠르게 발전되고 있었다.

-퍽!

에도에서 영지로 가는 다이묘나, 영지에서 에도로 가는 다이묘들이 길거리에서 머리가 터져 즉사했다.

암살자를 찾으려 했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분명 피 묻은 납탄이 발견되었지만, 총소리를 들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신을 믿는 열도의 백성들은 신이 노해서 죽였다고 떠들어 댔다.

연속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일본 전체가 긴장에 휩싸였다.

암살로 다이묘들이 죽어 나가자 도쿠가와 이에미쓰는 에도에 사는 다이묘들을 불러들였다.

누가 일을 벌였는지 모르기에 모두 모아 놓고 대책을 논의하고 범인을 밝히려는 단순한 이유였다.

또한 신의 짓이라고 떠들어대며 불안해하는 백성들을 안심시킬 필요도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열도 전체가 다시 칼과 피가 난무하는 전국시대로 변해 버릴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의 명을 받은 은진이와 삼복이는 세부적인 작전을 세웠다.

그리고 바로 1단계 작전을 수행했다.

작전명 열도정복의 제1단계는 '혼란'이었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에는 최고의 저격수가 두 명 있다.

한 명은 육경 저격수 포쌍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은진이의 동생인 해경 저격수 포삼이었다.

조서원 일본 담당 팀장인 정칠이는 이 둘을 데리고 작전에 나섰다.

정칠이가 조서원의 부원장 삼복이로부터 받은 명령은 단순했다.

그건 바로 이동 중인 다이묘들을 '저격'하여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최고라 자부하는 두 명의 저격수에 의해 작전은 거침없이 처리됐다.

다음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정칠이는 그동안 관찰하고 있던 에도 막부의 가신을 포섭했다.

정칠이는 가신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만났다.

"틀림없소?"

"네, 틀림없습니다. 제가 아들의 목숨을 두고 거짓을 할 만큼 빌어먹을 놈은 아니니 믿어 주십시오."

"만약 잘못된다면?"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가족들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저도 대마도로 가서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대인께서도 약조를 지켜 주셔야 합니다."

"그건 염려 마시오. 우리 일이라는 게 믿음을 주지 않는다면 당신 같은 자가 넘어오겠소?"

"그래서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인께서 꼭 약조를 지켜 주십시오."

"알겠소,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고 내일 다시 만납시다."

"네, 대인."

막부의 가신 정도라면 돈 정도로 포섭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서원에서 오랫동안 포섭할 만한 가신을 찾고 있었고, 대상이 결정되었다.

지금 만나고 있는 가신은 바로 그 대상이었다.

가신의 아들은 놀다가 못에 찔려 죽게 생겼다.

그때 나타난 정칠이는 알약을 하나 주었다.

'이 약을 먹으면 아들이 살 수 있소. 그렇다고 바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요. 이 약을 오랫동안 먹어야 완치할 수 있소.'

신기하게도 정칠이가 준 알약을 먹은 아들은 차도를 보였다.

그러니 정칠이의 포섭에 가신은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가신은 하나뿐인 아들을 살려야만 했다.

가신은 정칠이가 시킨 대로 아들은 죽었고 아내는 미쳐서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가신의 아내와 아들은 대마도에 가 있었다.

어찌 보면 인질이었지만, 파상풍을 치료한다는 목적이었다.

어찌 됐건 하수인이 된 가신을 통해서 막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신은 불안에 떨었다.

배신했다고 들키면 참혹하게 죽을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정칠이는 이번 일만 끝나면 대마도로 데리고 가주겠다고 약조했다.

약속을 이행한다는 확실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 수시로 아내의 서신도 전달해 줬다.

다음날 같은 시각.

에도 막부의 가신은 정칠이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타났다.

혹시 몰라 수시로 장소를 옮기며 만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혼자 나타난 정칠이를 보고 가신은 주변을 살핀 후 다가왔다.

"내일 저녁에 에도에 기거하고 있는 다이묘들과 우에사마께서 만찬을 가지신다고 했습니다."

"음···."

장칠이는 뭔가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어딜 가시는 겁니까?"

"금방 올 터이니 기다리시오."

"대인, 대인."

가신이 나지막하게 불렀지만, 정칠이는 커다란 나무 뒤로 사라졌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정칠이의 손에는 커다란 보따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것을 만찬장 아무 곳에나 잘 숨겨 두시오."

"이것이 뭡니까?"

"별거 아니요."

"풀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안 되오. 그냥 잘 숨겨 두기나 하시오."

가신은 생각보다 가벼운 보따리를 흔들어 보더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지 그것만 하면 됩니까?"

"그렇소. 그러니 오해하지 말고 잠 숨겨 놓으시오."

"알겠습니다. 하면 언제쯤 제가 대마도로 갈 수 있겠습니까?"

"정보를 다 확인하면 함께 가도록 하겠소. 그러니 좀 더 기다리시오."

"언제까지인지 말씀해 주셔야 저도 준비할 것 아닙니까?"

"늦어도 10일 안에는 우리도 돌아가야 하오."

"10일이라···.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제 가족들은···?"

정칠이는 품 안에서 서신이 들어있는 봉투를 꺼내 가신에게 전해줬다.

서신을 꺼내 읽어 본 가신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완쾌되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맙습니다. 대인."

"흠, 흠. 당연해해야 할 일이니 고마워할 필요는 없소."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한 가신은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하고 보따리를 들고 떠났다.

가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정칠이 곁으로 주변에 숨어 있던 요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원 한 명을 정칠이에게 물었다.

"잘할 것 같습니까?"

"어려운 일이 아니니 문제없을 거다."

에도 막부에서 믿고 일을 맡기는 가신이라 보따리 정도는 쉽게 들고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조선시계를 보고 공돌이 중 한 명이 만든 타이머가 잘 작동될지는.

"잘 맞춰 놓았겠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팀장님. 제가 한두 번 해봅니까? 내일 저녁 시간에 맞춰 설정해 놓았습니다. 틀림없이 잘 작동할 테니 염려 놓으십시오."

"크흠. 너만 믿는다."

"정 못 믿겠으면 내기하시죠?"

입꼬리를 비틀며 웃는 요원을 보고 정칠이는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교토 팀도 잘해 내겠지?"

"연락이 갔으니 지금 작전 수행 중일 겁니다. 그나저나 착잡합니다."

"우리 손에 피가 많이 묻을수록 요원들이 피를 덜 흘릴 수 있다."

정칠이의 말에 요원은 머리를 흔들었다.

자신의 만든 기물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는 건 견디기 힘들었지만, 같이 훈련받은 요원들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그럼 우리는 떠날 준비를 하자."

"넵, 팀장님."

정칠이와 요원들은 어둠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 * *

시찰을 마치고 돌아온 원은 집무실에서 서성거렸다.

조서원의 원장인 은진이와 부원장인 삼복이는 별다른 표정 없이 원을 지켜 보고 있었다.

"오늘 밤이라고 했느냐?"

"네, 사장님."

"음···. 얼마 안 남았구나."

"확인하는 대로 조경 2호선에서 무전을 보낸다고 하니 곧 있으면 연락이 올 겁니다."

"잘돼야 할 텐데. 그래야 우리 대원들이 피 흘리지 않을 테니."

조선석유화학 건설 현장에서 현황 보고를 받고 있던 원은 기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사장님, 열도정복 1단계 작전이 곧 진행된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급히 은동리로 돌아왔다.

원래 계획은 산해관까지 시찰하고 오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에도 막부가 움직였다.

그동안 꾸준히 일본을 감시하던 조서원 일본 팀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에도 막부가 다이묘들을 모두 불러들였다는 내용이었다.

에도에는 생각보다 많은 다이묘가 기거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운 1단계 작전은 예상외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제 몇 시간 뒷면 어찌 될지 결과를 알 수 있다.

"사장님, 염려 마시고 식사라도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니다. 지금은 입맛이 없으니 결과를 보고 먹자."

"네, 사장님."

저녁도 먹지 않고 초조하니 서성이니 원을 보고 은진이가 말했지만, 원은 자리에 앉지 않고 계속 서성댔다.

은진이가 생각한 사장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셨다.

어리지만 청나라와 전쟁을 앞두고도 당황한 모습은 일절 보이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번 작전에서 초조한 모습을 보이다니 뜻밖이었다.

처음 보는 원의 모습에 은진이와 삼복이도 입이 말랐는지 침을 삼켰다.

그 순간.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석돌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찌 됐느냐?"

"성공이라고 무전 연락이 왔습니다. 사장님."

"그래? 후···!"

원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조경 2호선은 내일까지 지켜본 후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알았다. 모두 무사히 돌아오면 그때 잔치를 열기로 하고 오늘은 간단히 먹을 테니 준비해라."

"네, 사장님."

석돌이가 나간 후 자리에 앉은 원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표정이 없는 은진이와 달리 삼복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삼복아, 너무 웃지 말거라. 남은 초상났는데 그러는 것 아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죄송할 게 뭐 있느냐? 기쁜 일이지만, 너무 티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게 아쉬울 뿐이지. 가자 식욕이 돋는구나."

"네, 사장님."

원은 은진이와 삼복이를 데리고 연구소 식당으로 향했다.

언제나 연구원들이 북적거리는 식당에 도착한 원은 기쁜 마음에 이것저것 많이도 먹었다.

'전쟁 보상금 대신 아예 씨를 말려 버려야지.'

교도에서 진행되는 작전의 결과가 오지 않았지만,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곳이야 허수아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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