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시찰(5) >
드넓은 평야로 이루어진 요하만은 끝도 없이 넓어 보였다.
얼마나 넓은지 지평선이 녹색으로 된 수평선 같았다.
'이 넓은 땅을 두고 굶었다니 어처구니없군.'
21세기 독일 땅만큼 넓은 곡창지대를 두고 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니, 요동을 정복하고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가 바보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를 잘 모르는 원이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여진족이 반농반목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농사는 물론 목축도 잘하지 못하였고 수렵과 약탈에 의존했다.
그러니 당장 먹고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고 약탈은 생존 수단이었다.
누르하치가 명나라와 싸우고 조선을 친 이유는 굶주림이었다.
명나라와 조선은 변경지역에서 일어난 여진족의 약탈로 피해가 심각해지자 징벌로 교역을 중단했다.
이에, 굶을 수밖에 없는 누르하치가 대놓고 전쟁을 일으킨 거다.
어느새 원이 탄 마차가 '조선석유화학' 요하 공장에 도착했다.
반듯하게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있는 요하 공장은 요하만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요하를 개발하라는 원의 명령이 떨어지자, 옹진반도에 있는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이 대거 이동했다.
지형을 정찰하고 지도를 만든 연구원들은 빠르게 분석에 들어갔다.
기름띠 흔적이 있는 곳을 경계로 정하고 설계 지침을 내놓았다.
설계 지침을 받아 든 공돌이들은 지역별로 구역을 나누고 설계 작업에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공장 건설이 시작되었다.
동쪽에 있는 산을 폭파해 필요한 바위와 자갈을 만들었다.
뻘이나 다름없는 요하만에 자갈을 깔고 모래를 덮었다.
바닷가에 바위를 쌓고 콘크리트를 부어 방파제를 만들고 항구까지 건설했다.
환경을 중시하라는 원의 말에 따라 하수 처리장부터 만들고 그곳까지 연결하는 하수도 공사를 시작했다.
근처에 흐르는 요하강에서 물을 끌어와 정수장을 만들고 상수도 공사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작업이 끝나자 대형 증기 터빈 발전소 건설에 들어갔다.
이미 해본 적이 있었기에 작업은 번개같이 진행되었다.
연구원들이 타당성을 검토하고.
공돌이들이 설계하고.
신의주에 남아있는 백성들이 와서 집과 공장을 지었다.
청나라 포로들은 주변으로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 공사에 투입됐다.
한적한 해변 마을이었던 요하만 주변은 온통 공사장으로 변해 버렸다.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축구장만 한 넓은 콘크리트 광장은 다른 곳과 다르게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콘크리트 광장에는 조선전력공사 연대 병력이 정렬해 있었다.
옹진반도에서 올라온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이 단상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단상 뒤편에 원이 탄 마차가 멈추었다.
기병대 사령관 기수가 마차의 문을 열자 잘생긴 원이 밖으로 나왔다.
원은 정렬해 있는 연구원들과 공돌이들, 경비대원들을 보며 단상으로 올라갔다.
-총사령관님께 경례!
"""멸!"""
육경과 기마대 대원들이 힘차게 외치고,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원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봐도 늠름한 대원들이 자랑스러웠다.
다시 봐도 믿음직한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이 사랑스러웠다.
설치된 마이크 앞으로 다가선 원은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이곳은 앞으로 조선의 산업 발전에 이바지할 피를 만들어 공급하는 곳이 될 것이다.
-사람은 붉은색으로 된 피가 있어야 살 수 있지만, 앞으로 운행될 기차와 자동차, 배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검은 석유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그만큼 이곳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너희들이 살아가는 조선 땅에 힘을 불어넣어 줄 중요한 물질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은 입을 꾹 다물고 눈에 힘을 줬다.
그와 달리 경비대원들은 놀란 눈치였다.
기차나 자동차가 무엇인지 들어는 봤지만, 그것이 석유로 작동된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래서인지 원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따라서 이곳은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런 중요한 곳을 만들고 지키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연설을 끝낸 원은 임시로 지어진 상황실로 이동해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의 보고를 받았다.
"어느 곳을 파더라도 검은 액체인 석유가 품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탐사 작업을 중단시켰습니다."
"잘했다. 잘못하다간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준비 작업을 충분히 한 후에 시추하도록 해라."
"네, 사장님. 그러지 않아도 불이 붙은 곳이 있어서 고생 좀 했습니다."
결국 밀떡 폭탄을 터트려서 구멍을 메꿀 수밖에 없었다는 공돌이의 말에 원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렸다.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석유를 얻기도 전에 대형 참사를 겪었을지도 몰랐다.
석유를 시추하다 보면 가장 먼저 증발하는 건 LPG라 부르는 액화석유가스이다.
30도 이하에서도 증발하기에 여차하면 불이 붙어버린다.
예수회를 통해 원유를 수입하고 연구해 봤기에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석유의 위험성을 몰라 당황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만하길 다행이구나."
"사장님께서 폭파하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어찌나 불길이 사나운지 정말 죽는지 알았습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됐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장님."
사고를 친 공돌이들이 단체로 고개를 숙였다.
"괜찮으니 고개를 들어라. 앞으로 조심하면 된다."
사실 시추 중에 불이 붙으면 어떻게 꺼야 할지 원도 알지 못했다.
그냥 뉴스나 영화에서 본대로 폭파하라고만 했는데, 사고 친 공돌이들이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대처했는데 성공한 거였다.
다시 보고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석유 저장 창고부터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 잘했다. 석유가 많이 매장되어 있는 것이 확실하니 증류탑과 정제시설을 완공한 후에 석유를 뽑아내도 될 것이다."
"네, 사장님.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발전소 가동을 위해서 한 곳에 시추 구멍을 뚫어 놓았습니다."
"잘했다."
석유가 널려 있는데 굳이 석탄으로 증기 터빈 발전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발전소와 가장 가까운 곳에 시추 구멍을 뚫어 놓고 천연가스 파이프를 연결해 놓았다.
이 모든 건 수입해온 원유를 가지고 연구해 봤기에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온 공돌이들도 '가-나-휘-등-경-중'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온도에 따라 시커먼 기름이 다양하게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구원들은 처음엔 신기해했지만, 그냥 있지 않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위대한 과학자인 사장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도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물질을 도표로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 연구했다.
연구 결과는 즉시 공돌이들에게 전달되었고 필요한 장비와 시설들이 설계되었다.
"티-펌프 수급은 어찌 되고 있느냐?"
"옹진에서 만드는 즉시 보내 주고 있습니다."
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에 아이들을 모아 새로운 것을 가르칠 때 조선어로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쓸모없는 짓이란 걸 알았다.
용어가 한두 개가 아니라서 원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고 있는 용어를 그냥 쓰기로 했다.
'표기를 할 수 없어 음차를 쓸 수밖에 없다면 몰라도, 표기할 수 있는데 굳이 바꿀 필요는 없지.'
어차피 원이 말하면 바로 적용되니 쓸데없는 짓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한자가 아니라 한글을 사용하기에 포기하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원은 더 나가 알파벳까지 가르치고 기호로 사용했다.
가나다라보다는 ABCD로 표기하는 것이 눈에 확 띄어서 의미를 알기 쉬웠다.
기호로 쓰기에는 역시 알파벳이 표기하기에 편하고 좋았다.
'새로운 것을 배척하는 것은 바보짓이고, 억지로 바꾸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고 멍청한 짓이야.'
21세기에 '싸이'라는 한국 가수가 '강남스타일'이란 노래를 전 세계에 퍼트렸다.
그 어느 곳에서도 '강남스타일'이란 말을 자국의 언어로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썼다.
'강남스타일'은 의미를 가진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이렇듯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배척하거나 새로 만드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좋은 것이라면 뭐든 받아들여서 우리 문화로 만들고 확장하는 게 중요하지.'
원은 자기가 저지른 일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태어나지도 않은 천재 과학자의 이름을 도용하기에는 아무리 뻔뻔한 원이라도 꺼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테슬라 터빈'을 응용한 펌프를 '티-펌프'라 불렀다.
테슬라가 만든 테슬라 터빈의 원리는 간단했다.
여러 개의 원판을 0.4mm 간격으로 붙여 놓으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 구조로 만든 티-펌프는 잘 작동했다.
이러니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이 원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원이 말하면 따지지 않고 무조건하고 봤다.
하드디스크와 같이 생긴 테슬라 터빈은 날이 없는 매끈한 원반이다.
그런데도 그 당시 효율이 40%에 육박하는 증기 터빈보다 훨씬 높았다.
테슬라가 주장한 테슬라 터빈의 효율은 무려 97%이다.
고체 표면에 흐르는 유체의 점성 효과를 이용하기에 고장 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유체의 흐름으로 발생한 원판의 회전 속도가 무려 35,000rpm을 넘겨 버린 것이다.
초고속 회전을 견디다 못한 원판은 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원판의 끝은 음속을 넘겼다.
그것도 마하 10이 넘는 속도였으니 견딜 수 있는 원판을 만들 수가 없었다.
21세기에도 공학 기술상 테슬라 터빈을 이용한 발전기를 만들 수 없었다.
대신 전동기 모터와 연결해 역으로 펌프로 쓰고 있다.
원은 이런 사실을 잘 알기에 원유 수송에 쓰려고 했다.
테슬라 터빈을 이용한 티-펌프의 원리를 알려주고 만들라고 했다.
티-펌프는 물과 원유를 수송하는데 너무나 좋은 펌프였다.
'진짜 천재 과학자는 테슬라지.'
1856년에 태어난 '니콜라 테슬라'는 진짜 천재 과학자였다.
왜 그가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알려졌는지는 원은 모르지만, 부드러운 언변으로 연설도 잘했고, 8개 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언어에도 천재였다.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패셔니스트였던 전설의 엄친아가 바로 테슬라였다.
'설마 나도 미친 과학자라 불리는 건 아니겠지?'
원 또한 다국어를 구사하고 잘생겼고 뇌피설로 여진족을 조선인으로 만들었다.
원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원은 테슬라와 달랐다.
테슬라는 뉴욕에서 공진동 기계를 작동시켜 건물 전체를 붕괴시킬 뻔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는 밤마다 파란 불꽃을 일으켰고, 실험실 근처는 전기로 만든 불꽃이 수시로 튀었다.
또한 전류를 너무 많이 써버린 바람에 도시 전체가 정전된 일도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JP 모건에게 후원받아 롱 아일랜드 절벽에 지구 통신용 타워를 짓는다고 후원받은 돈을 모두 써버렸다.
결국 지원이 끊겨버린 테슬라는 신경쇠약에 걸렸고 가난한 노년을 보냈다.
아무튼 위대한 천재 과학자가 틀림없는 테슬라였지만,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와 달리 원은 자신이 부를 일구었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 돈을 찍어내는 조선은행을 가지고 있었다.
직접 만들지 않고 설계만 하고 은쌍식부터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을 굴려 새로운 기물을 만들어 냈다.
항상 '안전 제일'을 강조했기에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
'죽고 나서 뭐라 부르든 상관없지.'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원은 그따위 명예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시 태어난 원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았다.
'어차피 이름은 자연히 남게 돼.'
원하지 않아도 왕이 될 몸이다.
한민족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의 이름은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다.
원이 이리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조선의 왕은 적당히 즐기며 살 수 없었다.
왕이 된다고 해도 사대부의 간섭이 심한 조선의 왕이라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을 바꿔 버리려고 노력했다.
노력의 결과이자 앞으로 진행할 산업 혁명의 시작점인 요하 유전 시찰을 마친 원은 산해관까지 들리려다 그만두었다.
산해관을 지키는 대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가봐야겠지만, 당장 할 일이 있었다.
* * *
북해도에서 쫓겨난 마쓰마에 번주와 신하들은 즉시 에도(江戸, 도쿄)로 달려갔다.
조선전력공사에서 쳐들어왔다고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제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를 만날 수가 없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인 이에미쓰는 에도 막부를 안정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았던 일들이 연속해서 터졌다.
"죽은 다이묘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했느냐?"
"우에사마(上様), 말씀드리기 죄송하오나 암살당한 다이묘가 스무 명이 넘습니다."
"뭐라고? 스무 명이 넘는다고?"
"네, 우에사마."
이에미쓰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영주나 다름없는 다이묘의 수는 약 270명 정도이다.
그런데 1할에 가까운 다이묘가 암살을 당했다니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흠, 에도에 있는 다이묘들을 전부 불러 모아라. 누구의 짓인지 밝혀내지 못한다면 혼란을 잠재울 수 없다."
"알겠습니다. 우에사마. 즉시 모이라고 연락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명령으로 인해 열도가 다시 센고쿠 시대처럼 전국시대(戦国時代)로 변해 버릴 줄은 원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