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69화 (69/275)

< 69. 시찰(4) >

분명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데 웃고만 있는 광식이를 보며 원은 같이 웃어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해 보거라. 뭐가 필요하냐?"

"···사장님. 별거 아닌데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별거 아니니 편하게 말해 보거라."

"고맙습니다.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이곳에도 조선전력공사 분점을 개설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심양에 있지 않으냐?"

"그러긴 하지만, 그곳까지 갔다 오면 하루가 다 소비됩니다."

"음···. 알겠다."

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광식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노천 탄광과 철광산, 제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4일 일하고 하루를 쉬게 했다.

그만큼 힘든 일이라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한 했다.

무리하면 사고가 나고, 사고가 나면 작업이 중단된다.

그러느니 충분한 휴식을 주고 사고를 미리 방지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렇게 잘해주는 데도 문제가 있었다.

살집을 제공해주고, 한 달에 50문의 월급을 받고 일하기에 먹고 사는 데는 충분하고 남았다.

그런데 남는 돈이 있어도 쓸 곳이 없었다.

무순에도 직원들을 위한 상점이 있지만, 식량과 의류 같은 생필품만 팔고 있었다.

그래서 휴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심양에 갔다 오는 것이 정착되었다.

하지만 하루가 휙 지나가 버리니 더 피곤했다.

무순에도 분점을 개설해 달라는 말들이 많았지만, 누구 하나 건의하지 못했다.

아직은 그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가까운 곳이라 필요 없을지 알았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도 많으니 분점을 개설하도록 하마."

"고맙습니다. 사장님."

광식이는 무순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대표하여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사장님, 그나저나 기차는 언제 완성이 된다고 합니까? 열식이가 디젤 엔진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거야 소형 아니냐. 기차를 움직일 정도 크기를 가진 대형 디젤 엔진은 지금 개발 중이다."

"그렇습니까?"

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늦어도 올해 안에 완성할 수 있다고 들었다. 기본적인 문제점은 모두 잡아냈으니 크기만 키우면 된다고 하더구나."

"아···. 열식이가 열심히 하더니 드디어 만들어 냈군요."

"그래. 참 열심히 했지."

친구들에게 뽐내기를 좋아하는 열식이.

쉬지 않고 노력한 끝에 디젤 엔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인 불안전 연소를 해결했다.

압축하기 전에 폭발하는 현상인 노킹(Knocking) 또한 연료에 납을 첨가해 억제할 수 있었다.

처음 만든 디젤 엔진은 작은 생수병만 한 실린더 두 개가 달린 2기통 1,000cc 엔진이었다.

그런데도 1초 만에 1,500kg이나 되는 쇳덩이를 1m나 들어 올렸다.

1초에 75kg을 1m 들어 올리는 것이 1마력이니, 마력(HP)으로 따지면 20마력이다.

물론 현대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출력이다.

그런데 땅콩에서 짜낸 기름으로 그만한 효율을 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엔진 블록(Block)은 무쇠, 즉 주철로 만든다.

주조를 통한 성형이 쉽고, 강철보다 가공이 용이하고, 마모와 부식에 강하고, 압축 강도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깨지기 때문에 동식이와 광식이가 노력하여 다양한 물질을 첨가한 엔진용 편상흑연주철을 개발했다.

탄소(C) 2.6~3.2%, 규소(Si) 2.0%, 망간(Mn) 06~08%를 추가해 편상흑연주철을 만들 수 있었다.

최대한 탈황 작업을 한 주철은 현대의 엔진 블록과 비교해도 손색(遜色)이 없었다.

개발은 쉽지 않았다.

원이 비율과 성분을 알려줬지만, 함량을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수도 없이 많은 엔진 블록용 철을 만들고 물리적 충격 실험을 통해 가장 좋은 결과를 낸 철 제조법을 알아냈다.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해서 밝혀낸 거였다.

열식이가 만든 디젤 엔진은 3개나 되는 피스톤 링을 사용한다.

위에 있는 2개의 압축 링은 폭발 가스가 새는 것을 막는다.

밑에 있는 오일 링은 실리던 벽면의 유막을 형성하거나 여분의 오일을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이런 내용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다 나오지만, 관심이 없으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원은 21세기에 배웠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았기 때문에 바로 적용할 수 있었다.

조선전력공사에서는 미터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출력의 단위를 마력으로 하지 않고 일률로 계산했다.

일률은 중력의 단위인 뉴턴(N, 9.80665)을 곱하여 표시하지만, 원은 단순하게 표기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20마력 디젤 엔진의 출력을 15kW라 했다.

원래라면.

1,500kgf·m/s = 1,500 × 9.80665N·m/s = 14.7kw.

이지만. 0.3kW 정도는 무시했다.

'뭐, 나중에 중력가속도가 9.8 이란 걸 알면 그때는 바꿔야겠지.'

지금 중요한 것은 쉽게 계산할 수 있는 단위를 정하는 거였다.

복잡하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소한 500kW는 되어야 기차를 끌 수 있는데.'

열식이가 만든 2기통 1,000cc 엔진의 출력은 15kW이다.

따라서 33개가 더 추가되어야 500kW 출력을 낼 수 있는 디젤 엔진이 된다.

그래서 원은 1.8ℓ 생수병 보다 약간 큰 2,000cc 용량을 가진 8기통 디젤 엔진을 개발하라고 했다.

'엔진 두 개를 붙이면 500마력은 넘을 거야. 그 정도면 객차나 화물차 20개 정도는 충분히 끌 수 있지.'

증기 기관 기차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무겁다.

엔진만 탑재된 기관차의 무게만 230톤이 넘고, 석탄과 물을 싣고 다니는 화차 또한 200톤이 넘는다.

연비 또한 개판이다.

열효율이 10%라 1km 움직이는데 1kg의 석탄과 1kg의 물이 필요하다.

그것도 효율이 좋은 증기 기관일 경우이다.

매연은 분무기 수준이고 유지보수 또한 힘들다.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주요 부품의 구조가 복잡해서 정비성이 지랄 같다.

수시로 모든 배관과 증기 기관을 조여주지 않으면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다.

실제로 증기 기관차를 한번 수리하는데 3~6개월 정도 걸렸다고 하니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기관인지 상상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연료 공급 문제, 엔진이 크고 앞에 있어서 시야가 좁다는 문제, 열차 준비시간이 길다는 문제 등 수많은 단점이 많다.

이에 비해 디젤 엔진 기관차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얼마나 좋은지 판단할 수 있다.

'두세 개씩이나 되는 화차만 달고 다니지 않아도 효율적이지.'

무순 제철소 시찰을 마친 원은 광식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철도가 완공되고 기차가 다니면 이곳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니 문제점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요청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기차가 개통되면 철과 구리를 많이 실어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크롬을 꼭 찾아내겠습니다."

"그래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다."

원은 차마 이곳에 크롬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의지에 불타는 광식이의 눈빛을 보고 미리부터 실망을 안겨줄 순 없었다.

'열심히 뒤지다 보면 다른 광물도 찾아낼 수 있겠지.'

심양으로 돌아간 원은 하루를 더 머물고 다음 여정 지로 떠났다.

훈하강을 따라 만들어진 콘크리트 도로 주변은 정말 넓고 광활했다.

곳곳에 물이 찬 습지를 메꾸고 농토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내년부터는 농사를 지을 수 있겠구나."

"그러지 않아도 행식님께서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한 가족당 10결(32,500평)의 농지를 준다고 하니 모두가 오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보통 1결을 받아 농사를 짓는다.

신의주라고 해도 2결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10결을 준다고 하자 농부들이 이번 농사만 끝나면 모두 짐을 싸겠다고 한다.

"땅 가지고 한량 짓 하며 허송세월하는 것들은 사라지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천석꾼이니 만석꾼이니 하는 것보다 조선전력공사 분점 앞에 있는 상가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더 부자라는 말이 나돌고 있습니다."

상업을 천시하던 조선이지만, 돈에 대한 욕심은 사대부나 양반들이 더 컸다.

오죽하면 평안감사도 만석꾼 앞에서는 굽신거리고 온다는 말만 들어도 버선발로 뛰어나간다고 하겠는가.

오직 먹고 살려면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어야만 했던 조선의 백성들.

드넓은 만주 땅을 개간하고 10배 나 되는 농지를 준다고 하자 더는 지주에게 굽신거릴 필요가 없었다.

양반이나 일반 백성이나 법적으로는 같은 양인이란 사실을 알게 된 조선의 백성들은 미리 서둘렀다.

조선은행에서 돈을 빌려 빚을 갚고 북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수가 이끄는 기마대와 함께 반금(盘锦, 판진)에 도착하자 세탁소를 지날 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가 났다.

원은 눈을 감고 냄새를 즐겼다.

석유 냄새가 좋다면 몸속에 회충이 있다고 하는데.

'해충이야 몸속에 우글우글하겠지.'

원은 의식이에게 구충제를 만들라고 했다.

정향, 쑥, 검은 호두껍데기로 만든 구충제로 실험하면서 그 효능은 이미 검증되었지만, 의식이는 원에게 구충제를 주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기다란 것들이 몸에서 빠져나오자 무서웠던 거였다.

의식이는 혹시라도 잘못될지 모른다며 구충제를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원에게 물어봤다면 그게 바로 사람의 몸속에서 기생하고 있는 회충이란 사실을 알았겠지만, 충격이 커서 그런지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을 하고 있었다.

원이 눈을 감고 미소를 짓고 있자 석돌이가 물었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저는 머리가 좀 아픕니다."

"석유 때문에 그런 거다. 죽지 않을 터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 그렇습니까? 저기 보이는 거무칙칙한 기름띠가 사장님께서 찾으시는 석유 맞습니까?"

"맞다. 앞으로 저 석유가 조선을 더욱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다."

"지금도 몰라보게 변화되고 있는데 이보다 더 변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안 갑니다."

원은 마차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편하게 마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저 콘크리트 도로 때문이다."

"맞습니다. 사장님. 도로가 생긴 후로 사람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흙먼지가 날리는 좁은 도로 때문에 바퀴가 달린 마차나 수레는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소 한 마리만 있어도 수레에 연결하면 곡식이나 물건을 한가득 싣고 이동할 수 있으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넓은 콘크리트 도로 때문에 조선의 아침은 더는 조용하지 않았다.

수많은 상인이 수레를 끌고 새벽부터 장터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매일 같이 장터는 사람들로 인해 붐볐다.

"앞으로 석유에서 나온 찌꺼기로 더욱 부드러운 도로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들리는 마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참말입니까?"

석돌이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원과 콘크리트 도로를 번갈아 봤다.

원이 타고 있는 4두 마차는 스프링과 유압실린더가 달려 승차감이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좋다고 말하니 상상할 수 없었다.

"또한 석유로 고무도 만들 수 있다."

"네? 대만에서 가지고 온 고무 말씀입니까?"

"그렇지. 그건 천연 생고무이고, 석유로 만든 것은 합성고무라 한다."

"아···, 그럼 축구공이나 농구공도 싸지겠네요."

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만에 많이 있는 고무나무에 채취한 고무 원액을 수입해 오고 있지만, 운반비까지 생각하면 싸게 팔 수 없었다.

또한 양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타이어는 만들 수가 없었다.

대신 천연고무 원액을 틀에 넣고 쪄서 라텍스 매트리스를 만들었다.

원은 침대까지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만, 아버지 효종에게는 매트리스만 보냈다.

'온돌이라 그게 더 낫지.'

목화솜으로 만든 요와 달리 푹신하고 좋은 '천연고무 요'가 마음에 들었는지 효종은 원에게 더 보내 달라고 말했다.

원의 어머니인 인선왕후와 빈, 숙의, 숙원에게도 주고 싶다고 했다.

원은 만든 김에 누나와 동생들에게도 천연고무 요를 보냈다.

두께가 5cm 나 되는 천연고무 요는 어느새 소문이 났는지 구매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한정 수량이라 많이 팔 수는 없었다.

돈이 있다고 해도 권력이 있다고 해도 살 수 없는 천연고무 요는 그렇게 새로운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축구공이 싸지면 저도 하나 사야겠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느냐?"

"네, 사장님. 동무들과 축구를 하면서 놀면 정말 행복합니다."

원은 조선전력공사 분점 장터 옆에 넓은 운동장을 만들라고 했다.

자갈을 깔고 모래로 덮은 운동장은 배수가 잘되었다.

휴일이면 동네 축구 대항전도 벌어졌다.

축구장 한쪽에 콘크리트로 포장된 농구장 또한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모래밭으로 된 씨름판도 만들어 놓았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노는 곳이지만, 명절이 되면 조선전력공사에서 황소를 걸고 장사 씨름 대회를 열었다.

조선에서 축구와 농구, 씨름은 가장 유행하는 운동 경기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뛸 수 있는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돼지 오줌보로 만든 축구공은 탄성이 엿 같아서 축구 경기는 격투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원은 새로운 축구공을 만들기로 했다.

생고무 원액에 유황을 섞어 반죽한 후 150°C로 가열하면 단단하고 질기며 탄력까지 우수한 고무가 만들어진다.

이 고무로 처음 만든 제품은 다름 아닌 축구공과 농구공이었다.

원은 귀한 생고무를 가지고 비싸게 팔 수 있는 천연고무 요를 많이 만들지 않았다.

대신 축구공과 농구공을 많이 만들었다.

'먹고살 만해진 후에는 문화를 즐기게 돼 있지.'

질기고 탄력 있는 고무에 가죽을 씌운 축구공이나 고무로만 되어 있는 농구공을 만드는 단가는 엄청 비쌌다.

그래도 활성화하기 위해 원가에 팔았다.

돼지 오줌보로 만든 공과 다르게 고무로 만든 축구공은 발로 차면 뻥뻥 하늘을 날았다.

콘크리트 바닥이지만, 통통 잘 튀는 농구공으로 하는 경기는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내기까지 성행했다.

하지만 수명이 문제였다.

축구공이야 망가진 가죽을 새로 입히면 된다지만, 고무로만 된 농구공은 여기저기 붙여서 때운 자국이 많았다.

그래서 합성고무를 생산하여 대량으로 싸게 공급할 계획이다.

'널려있는 석유로 합성고무를 만들 수만 있다면 먼 곳에서 고무를 가져오지 않아도 돼.'

석탄에서 뽑아낼 수 있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으로 합성고무를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실패의 연속이었다.

'석유에서 부타디엔(BD, Butadiene)을 뽑아내면 되는데···.'

석유로 어떤 합성고무부터 만들 것인가 생각하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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