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시찰(3) >
신의주에서 감동의 연설을 마친 원은 심양성으로 향했다.
이번 시찰에서 중요한 목적지 중 하나인 심양은 자원의 보고인 무순과 가까웠다.
또한 버려지다시피 한 곡창지대가 주변에 널려 있었다.
평지나 다름없는 심양 주변은 최근에 확보한 산동반도보다 훨씬 넓었다.
청나라가 지원을 끊는 대신 소현세자가 받았던 땅도 심양 남쪽에 있었다.
이 땅을 소현세자의 아내이자 원의 큰어머니였던 강빈이 조선인 노예들을 사들여 농사를 지었고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 내용은 잘 알고 있는 원은 심양을 만주의 중심으로 잡고 예맥의 땅 개척에 나설 전초기지로 만들기로했다.
원은 심양을 중심으로 땅을 개간하여 곡식을 얻고, 무순에서 석탄과 철광석을 캐서 강철 산업 단지를 조성하기로 계획을 짰다.
'농토를 개발해 쌀과 밀, 콩, 감자, 옥수수만 재배해도 더는 먹는 것 때문에 고민할 이유가 없지.'
반농반목 민족인 여진족은 농사를 잘 짓지 못했다.
그에 비해 쌀농사만 하는 조선인은 19세기 말에 동북 3성을 개척하여 벼농사를 정착시켰다.
'종식이와 농식이가 만든 종자라면 더 잘 자랄 수 있을 거야. 안되면 있는 것 그냥 재배해도 충분하고.'
이미 소현세자 부부가 벼농사를 지었던 곳이라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새로 개발한 종자를 심어 보기로 했다.
'넓은 땅을 차지했는데 그냥 두고 개발하지 않는다면 멍청한 짓이지.'
원은 예수회에 부탁해서 추운 지방에서도 잘 자라는 밀 종자도 입수해 놓았다.
농식이와 종식이가 개량한 쌀 종자도 가지고 왔다.
'겨울이 춥고 길긴 하지만 이곳은 21세기에도 식량 창고라 불릴 정도로 곡물 생산량이 많았던 곳이야.'
심양성에 도착한 원은 감회가 새로웠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곳이라 눈에 익은 곳이 많았다.
원래 10m였던 성곽의 높이는 완전히 망가져 버린 후, 급히 정비했는지 3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동서남북으로 각각 2개씩 있던 성문은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조선전력공사 기병대가 정렬해 있는 가운데 선두에 있는 사령관 기수가 원이 탄 마차로 다가와 예를 올렸다.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사장님."
"주변 정리는 잘했고?"
"네, 사장님. 심양과 무순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혹시나 모를 청나라 잔당들을 처리하고자 기병대가 심양을 지키고 있었다.
수시로 정찰을 나가 목적이 불분명한 자들을 잡아들이고 무기를 들고 대항하는 자는 즉결처분했다.
"잘했다. 힘들겠지만, 당분간 수고 하도록 해라. 특히 치안에 신경 쓰고."
"네, 사장님. 백성들 모두가 잘 따라주고 있어서 어려움은 없습니다."
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양은 청나라에서 중요시하는 건주 여진의 발원지이기에 빠르게 복구되었다.
하지만 도르곤의 판단 실수로 다시 엉망이 되었다.
조선전력공사 기병대가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다면 약탈과 방화로 완전히 망가져 버렸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불온한 조짐이 보이기 전에 기병대가 심양성에 도착했다.
심양성을 점령한 기병대는 즉시 주변 관리에 들어갔다.
그랬기에 청나라가 공들여 만든 심양성 주변은 피해를 보지 않았다.
"먹을 것은 부족하지 않으냐?"
"포로들이 돌아오면서 함께 가지고 온 식량이 있어 넉넉합니다."
만주를 부속(附屬)시키고 여진족을 조선인으로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원은 유화정책을 폈다.
귀환 작전으로 심양을 지키던 여진족 병사들은 조선으로 잡혀갔다.
그래서 심양에 남은 사람은 노인과 아이,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선인으로 만들 생각인데 가족끼리 떨어져 살면 안 되지.'
전주까지 고속도로를 만든 후 포로들에게 결정하라고 했다.
다시 심양으로 돌아가길 원하면 보내 주겠다고 했다.
가족이 있는 경우는 대부분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다.
심양으로 돌아온 포로들은 무순으로 이동하여 철광석과 석탄 캐는 일을 시켰다.
가족과 다시 만난 포로들을 위해 무순 주변에 대단지 집을 짓고 거주하며 출퇴근할 수 있게 했다.
안정되고 규칙적인 생활은 청나라 포로들의 독기를 빼기에 충분했다.
언제 죽을지 모를 전쟁터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먹고 입고 잘 곳을 제공해줬기에 더는 반항하거나 불만을 표하는 포로들은 없었다.
홀몸이나 다름없는 젊은 포로들은 따뜻한 남쪽에 남기로 했다.
그들은 전주에서 광주, 나주, 목포까지 고속도로 만드는 일에 투입됐다.
일부이지만, 심양으로 돌아온 젊은 여진족 포로들은 신의주 신병 훈련소에 지원했다.
아직 꿈을 버리고 정착하기에는 그들의 피가 뜨거웠다.
"사장님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오늘 주무실 곳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래, 고맙다."
아이신기오로 쇼서가 기거했던 내성은 정갈하게 관리 되어 있었다.
'이곳은 왕실 여름 별궁으로 써도 되겠구나.'
원래도 청나라 황실의 여름 별궁이었기에 웅장하고 화려했다.
기수가 보물 같은 귀중품은 모두 수거해갔지만, 지어진 자체가 고풍스러웠기에 멋졌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원은 심관 또는 고려관이라 불리는 심양관을 먼저 찾았다.
"관리를 잘해 놓았구나."
"네, 사장님. 이곳은 폐하께서 기거하셨던 곳이자, 사장님께서 탄생하신 곳인데 어찌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의 왕인 효종이 기거했고, 원이 태어난 곳이라 심양관 자체가 신성시되었다.
그래서인지 경비대가 주변을 지키며 관리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원은 오래전 일들을 떠올렸다.
아담 샬을 만나 조선 막지 거래를 시작했던 곳부터 소현세자 부부가 살았던 곳까지 돌아봤다.
'바로 엊그제 같구나.'
7년이 다 되어가지만, 어제 일처럼 모든 게 생생했다.
'쌍식이도 왔으면 좋았을걸.'
원이 없는 옹진반도는 은쌍식이 관리하기로 되어 있었다.
은쌍식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그를 데리고 올 수 없었다.
"사장님, 은 실장님을 처음 만나셨던 곳이 이곳입니까?'
"맞다. 바로 저 부엌이 조선 막지와 연필을 개발했던 곳이다."
"아···!"
석돌이가 감탄하며 입을 활짝 벌렸다.
저렇게 조그마한 곳에서 시작한 조선전력공사가 이제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상단이 되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던데 그보다 훨씬 빠르게 조선이 변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저 작은 부엌에서부터 시작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사장님, 어떻게 이리 빨리 발전할 수 있었습니까?"
석돌이의 물음에 원은 씩 웃었다.
"전기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발전기부터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거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원이 살다 온 21세기는 전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전기가 끊기면 3년 안에 지구 전체가 황폐해진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으니, 인류에게 전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원은 그런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열식 발전기부터 만들었다.
그랬기에 이른 시간 안에 조선을 바꿀 수 있었다.
'증기 기관부터 만들려고 했다면···.'
원은 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도 개발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을 거야.'
쉽게 생각하는 증기 기관은 쉬운 게 아니었다.
고대부터 원리를 알았지만, 실제 작동하는 기관을 만들지 못했다.
실제 작동하는 증기 기관 또한 만들고 나서도 상업적으로 쓰기 위해 7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1705년 영국의 발명가 토머스 뉴커먼이 증기 기관을 만들었다.
그 후로도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상업적으로 쓸 수 없었다.
토머스 뉴커먼이 만든 증기 기관은 70년이 넘도록 상용화되지 않았다.
그가 사망한 이후 반백 년 가까이 된 1776년이 되어서야 탄광이나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증기 기관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1776년을 기준으로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다.
이렇듯 증기 기관은 원리만 안다고 해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동양보다 과학이 훨씬 발전한 18세기 서양에서도 70년 넘게 수정 개발한 후에야 완성된 것이 증기 기관이다.
'기반 시설이 받쳐 주지 않는다면 꿈도 꿀 수 없는 게 증기 기관이지.'
생각보다 증기 기관은 부품이 많다.
단순할 것 같지만, 복잡하다.
압력 또한 엄청나서 제철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이 없다면 작동 중에 터져버리기 일쑤였다.
원은 그런 증기 기관을 처음부터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구리로 감기만 하면 만들 수 있는 열식 발전기와 모터를 개발했다.
그랬기에 공작기계를 만들 수 있었고, 정밀 가공을 할 수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지.'
전기가 있었기에 암모니아를 합성할 수 있었고, 화약과 비료를 생산할 수 있었다.
전기가 있었기에 전기분해로 산소를 얻을 수 있었다.
전기가 있었기에 모터를 구동할 수 있었다.
모터의 구동으로 산소가 포함된 강한 바람을 불어 넣을 수 있었기에 양질의 강철 또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전기가 없었다면 무연화약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아직도 염초 밭에서 똥이나 뒤집고 있었을 거다.
'모든 게 문식이 덕분이지.'
문식이가 아니었다면, 원도 증기 기관부터 만들려고 했을지 모른다.
물만 끓이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틀림없이 그랬을 것 같다.
'x될 뻔한 거지.'
문식이의 호기심을 해결해 주기 위해 잡다한 것을 알아보았다.
그 덕분에 테크트리를 쉽게 올릴 수 있었다.
'성리학이나 배우면서 x선비들의 눈치나 보고 있었을지도 몰라.'
쉽게 만들 수 있는 스털링 기관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었고, 갈대로 종이를 만드는 방법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게 틀림없었다.
문식이 생각이 난 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친구가 보고 싶었다.
그런 원을 본 석돌이와 기수는 조용히 옆에서 기다렸다.
'생가를 방문해서 감회가 깊으시구나.'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원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가자."
"네, 사장님."
원은 생가를 떠나 무순으로 이동했다.
훈하(渾河) 강을 따라 널찍한 콘크리트 도로가 깔려있었다.
바로 옆에는 철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원의 마차가 지나가자 모두 일손을 멈추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대부분 여진족 사람들이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이었다.
원은 청나라 포로들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반항하거나 덤비면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경비대원들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처음에나 발생했지, 이제는 없었다.
잘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 줬다.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게 했다.
그러니 자신이 포로라고 생각하는 여진족은 없었다.
게다가 신의주에서 뇌피설로 떠들었던 말이 하룻밤 사이에 이곳까지 전해졌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짓고 있는 '무순 제철소'에 원의 마차가 도착하자 광식이가 밝게 웃으며 뛰어왔다.
광식이는 원을 보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먼 길 오시느라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아직 젊어서 괜찮다. 그나저나 네가 고생이 많구나."
원이 애늙은이같이 말해도 모두 그런가 했다.
"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로운 광물을 찾아내는 일을 즐거워하는 광식이는 떼를 써서 무순으로 왔다.
위험할 수 있으니 나중에 가라고 했지만, 자원의 보고라는 말을 들은 광식이는 날마다 원을 찾아와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집요한 광식이의 요청에 원은 하나의 조건을 달았다.
그것은 바로 크로뮴철석(FeCr)을 찾아내라는 거였다.
원은 예수회를 통해 크롬을 수입하려 했지만, 아직 크롬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말씀하신 크롬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괜찮다. 언젠가는 발견해 낼 것이니 포기하지는 말아라."
"고맙습니다. 사장님. 제가 꼭 크롬을 찾아내겠습니다."
빤짝빤짝 빛나는 은색의 광택이 있는 단단한 금속을 찾으라고 했지만, 다양한 광물이 매장되어 있는 푸순에도 크롬은 발견할 수 없었다.
'문식이의 말로는 진시황 병마용에서 출토된 금속제 무기에도 크롬이 사용됐다고 했는데···.'
그래서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
'결국 필리핀이나 카자흐스탄으로 가야겠구나.'
카자흐스탄과 필리핀의 작은 섬에 크롬 광산이 있다는 것만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크롬이 없다면 스테인리스 강철을 만들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아연 도금 파이프를 쓸 수밖에.'
원은 한양부터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을 만들 생각이다.
'똥통이나 다름없는 한양을 바꿔 놓아야지.'
스테인리스 도금 파이프를 만들어 사용하려고 크롬을 찾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크롬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공돌이들과 함께 무순으로 온 광식이는 곳곳을 돌아다녔다.
다양한 광맥을 찾아내고 제철소 짓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언제쯤이면 가동할 수 있겠느냐?"
"첫 번째 용광로가 곧 완공됩니다. 제강 시설은 벌써 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고생이 많았다. 가동을 시작하면 바로 선로부터 생산하도록 해라."
"네, 사장님. 생각보다 많은 망간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그래? 잘 됐구나. 망간은 건전지 만드는 데도 필요하니 여분이 있다면 옹진반도로 보내거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장님."
망간은 강철을 질기고 단단하게 해준다.
그래서 철도의 선로를 만들 때도 망간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또한 망간은 아연과 함께 알칼리 전지의 재료이다.
앞으로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게 되면 건전지로 작동하는 라디오를 팔 생각이다.
그래서 옹진반도에 1차 전지인 알칼리 건전지 공장을 만들고 있다.
무순 제철소를 돌아보는 동안 원은 많이 놀랐다.
남아도는 게 젊고 건강한 인력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수나라 시절 8년 만에 2,700km나 되는 대운하를 건설할 정도였으니 인력이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뭐, 사단장 말 한마디면 삽만 가지고도 산을 옮길 수 있는 게 군인이니.'
이 정도쯤이야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하거나 필요한 건 없느냐?"
"다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광식이의 표정을 보니 뭔가 원하는 게 있어 보였다.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