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67화 (67/275)

< 67. 시찰(2) >

신의주부터 시작하는 5번 고속도로를 따라 조선의 집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원의 명을 받은 조선은행은 막대한 돈을 풀기 시작했다.

국책은행이나 다름없는 조선은행에서 돈을 풀었지만, 물가 상승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조선은행에서 발행하는 돈은 쌀 본위제였고, 가장 많이 판매되는 옷감인 조선 비단 또한 고정된 가격이라 인플레이션이란 발생할 수 없었다.

아무튼 풀린 돈 대부분은 조선전력공사에서 도로를 놓고, 저수지와 수로 만들고 집을 짓는 데 사용됐다.

원은 상단의 사장들을 불러 모아 시멘트 벽돌과 블럭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보여주고 생산하도록 했다.

또한 고급품인 점토 벽돌을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1,200도 이상 온도를 쉽게 올릴 수 있는 코크스를 공급해 주기로 했다.

원은 본격적으로 조선의 집들을 바꿔 나갈 생각이었다.

움막이나 다름없는 초가집은 위생상 좋지 않았다.

건축에서 가장 가벼워야 할 지붕이 너무 무거워 무너지는 일도 많았다.

연탄난로를 설치하려고 해도 틈이 많아 쉽지 않았다.

너무 좁아 식구가 늘어나도 걱정이었다.

그래서 대대적으로 집들을 바꿔 주기로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집의 소유권은 조선전력공사에 있기에 매년 추수기에 1년 치 임대료를 받기로 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신의주에서 시작된 '두꺼비 보금자리' 운동은 남쪽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온갖 해충의 보금자리였던 초가집이 점점 사라져 가며 조선의 집들이 변해갔다.

만주를 확보한 원은 '조선제재소(朝鮮製材所)'를 설립하고 대량으로 목제와 합판, 적삼목(Western red cedar) 기와를 공급했다.

천연 방부 물질이 내장된 적삼목은 눈, 바람, 태풍, 해일에도 끄떡없으며 영하 30도에서도 동파되지 않는다.

수명 또한 50년이 넘었다.

조선 제재소에서 적삼목을 팔면서 공개한 새로운 지붕 구조와 공사 방법은 전과 아주 달랐다.

'ㅅ'자 모양의 지붕 위에 적삼목 기와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붙이기만 하면 끝났다.

합판과 두꺼운 비닐로 씌운 지붕은 낙엽송, 가문비, 전나무, 참나무로 만든 적삼목 기와가 덮이면서 튼튼하고 단단해졌다.

지붕이 바뀐 새로운 집들이 지어지면서 마을의 모습도 점점 변해갔다.

신의주로 들어가면서 원은 흐뭇한지 씩 웃었다.

"석돌아. 보기 좋구나."

"아무리 봐도 조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장님."

두꺼비 보금자리 운동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신의주 주변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5번 고속도로를 따라 새로 지어진 집들을 보면 이곳이 조선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주에서 벌목한 목재와 시멘트 벽돌로 벽을 만들고 적삼목 지붕을 얹은 집들은 튼튼하고 깨끗해 보였다.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어 버리는 마을 길은 단단하고 깔끔한 콘크리트 포장으로 덮여 있었다.

"남쪽까지 모두 바꾸려면 한참 걸리겠구나."

"행식님께서 서두르고 있으니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석돌이와 말을 나누는 사이에 신의주 읍성이 가까워졌다.

미리 연락을 받은 조선전력공사 제2 사단 경비대 대원들이 도로를 따라 양쪽에 정렬해 있었다.

원의 마차가 지나갈 때마다 '받들어총' 자세로 예를 표하는 경비 대원들.

자부심과 존경의 눈빛이 빛났다.

신의주 경비대 본부에 원이 탄 마차가 도착하자 사단장 신수가 달려 나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멸!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육경 제2 사단 사단장 신수 사장님을 뵙습니다."

"수고."

"멸!"

경비대는 조선군 소속이 아니었다.

그래서 원을 본 신수는 사장님이란 호칭을 썼다.

원은 본부 건물로 들어가면서 대원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모두 자신이 키운 대원들이었기에 껴안아 주고 싶었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신수 사단장의 요약 보고가 끝나자 원은 손뼉을 치며 격려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지원했구나. 정말 수고가 많았다."

"아닙니다. 사장님. 모두 사장님께서 계획한 유화정책(宥和政策) 덕분입니다."

원은 만주와 시베리아를 점령하기 위해 여진족을 활용할 계획을 짰다.

그냥 내버려 두고 조선의 백성이 되라고 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했던 조선 신병 교육처럼 모집하여 훈련하고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신병에 지원한 여진족의 나이를 알 방법이 없었기에 지원자는 모두 받아들였다.

그래서 모집한 여진족 신병의 수가 무려 3만 명이 넘었다.

조건은 조선 신병 모집과 똑같았다.

지원자 모두에게 쌀을 살 수 있는 50문을 지급해 주었다.

훈련복과 훈련화도 똑같이 챙겨 주었다.

"조선말 교육은 어느 정도 되었느냐?"

"교관의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교육되어 있습니다."

"잘했다."

거란족과 여진족의 말은 조선말과 같은 어순이었고, 단어 또한 비슷한 게 많았다.

그래서인지 여진족 신병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조선말을 배웠다.

"이들은 앞으로 조선의 북방 영토를 개척할 첨병들이니 잘 대우해 줘야 한다. 오랑캐나 야인, 야만인이라 깎아내리는 말은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사장님."

태조 이성계에게 복속했던 여진족이었는데 조선과 척지고 살았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대부라 자처하는 문인들이 틈만 나면 멸시하는 문구를 사용했다.

그러니 혼합될 수 없었던 건 당연했다.

물론 고구려나 발해 유민들이 거란과 말갈, 여진족들에게 멸시를 받았던 사실이 있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척하면 적이 되고, 받아들이면 아군이자 백성이 된다.

'민족주의가 없으니 다행이군. 그렇지 않았다면 인종의 용광로는 꿈도 꿀 수 없었을 거야.'

원이 생각한 조선은 거대하지만 단순했다.

아직 인구 조사를 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얼추 잡아 조선의 인구는 1천만 명이 조금 넘었다.

'이 정도 인구로는 어림도 없지.'

원이 원하는 거대한 영토는 만반도에서 끝이 아니었다.

시베리아라 부르는 북녘 동토도 있지만. 더 넓은 세상을 차지하고 싶었다.

'여기서 멈추는 건 바보짓이야.'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했다.

조선말을 하고, 조선글인 한글을 읽고 쓸 줄 알며, 조선의 왕을 섬기면, 조선인으로 받아 주고 대우해 주기로 여진족 신병을 모집할 때부터 명시했다.

그랬기에 만주 벌판에 살던 젊은 여진족들이 신의주 신병 훈련소에 몰려든 거였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구나."

아직 가을이지만, 북녘이라 그런지 붉은 석양이 압록강 하구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었다.

"이곳의 해는 생각보다 짧습니다."

"그래 보이는구나."

원은 그날 저녁 장교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벌였다.

물론 대원들에게도 푸짐한 먹거리가 제공되었다.

또한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한 경비 연대는 모든 것을 제쳐놓고 음주 가무를 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다음 날 아침.

원을 태운 마차가 한때 심양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머물렀던 숙소로 향했다.

원래는 비닐 집 농사를 짓기로 한 곳이었지만, 여진족 신병 훈련소로 사용하기로 했다.

원이 도착하자.

-전군···. 차렷!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때 빼고 광을 낸 후, 훈련복을 입은 여진족 신병들이 '척'하니 부동자세를 취했다.

원이 단상으로 올라가자.

-총사령관님께 경례(敬禮, Salute)!

"""충! 성!"""

손끝을 눈썹 끝에 붙이는 절도 있는 동작을 3만 명이 넘는 여진족 신병들이 펼쳤다.

-쉬어.

-쉬엇!

그동안 제식훈련을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 모르지만, 여진족 신병들의 동작은 깔끔하니 멋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들을 위해 준비는 해왔지만, 자신의 뇌피설이라 먹혀들지 알 수 없었다.

원은 호흡을 가다듬고 오른손을 들어 북서쪽을 가리켰다.

-저곳으로 가면 예맥(濊貊)이라는 강이 있다.

원이 조선말로 연설을 시작하자 즉시 여진말로 번역된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여진말이 익숙한 대원이 즉석에서 번역해 전달한 거다.

이는 원의 말을 정확한 뜻으로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모두 예맥이라는 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강줄기를 따라 자랐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나 우리는 갈라졌고 서로를 견제하며 싸우기까지 했다.

-이제는 그 짓을 멈출 때가 되었다.

여진족 신병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교관으로 있는 경비대원들 또한 원이 뭔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원은 강한 어조로 소리를 높였다.

-다시 말해···, 여진족과 조선인의 뿌리가 같다는 뜻이다.

그제야 신병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비대원들 또한 고개를 돌려 원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 것이다.

-대륙의 언어는 우리와 완전히 다르지만, 여진말과 조선말은 비슷하다는 것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입을 벌린 신병들이 많아졌다.

경비대원들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던 뜻밖의 말에 귀를 쫑긋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따라서 우리는 한 뿌리에서 나온 가족이 틀림없다.

-그러기에 더는 싸우지 말고 단합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잃어버린 예맥 강을 되찾을 수 있다.

-궈레민산옌아린(栗勒敏珊延阿林)!

그 말을 들은 신병들이 '아' 또는 '하'란 소리를 내뱉었다.

-여진족의 영산인 장백산은 조선인에게도 영산이다.

-왜 그럴까? 이제는 모두 생각해 볼 시간이다.

드디어 신병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경비대원들 또한 원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알아챘는지 정신을 바짝 차리며 집중했다.

-나는 조선의 태자이자 조선군 총사령관이다.

-내 권한으로 앞으로 여진족을 다시는 차별하지 않고 모두 조선인으로 받아들이고 대우해 주겠다.

-그러니 너희들도 충성을 맹세하고 따르길 바란다.

원은 숨을 들이켠 후 외쳤다.

-조선인으로서 조선말을 배우는 건 당연하다.

-조선인으로서 조선글인 한글을 배우고 익히는 것 또한 당연하다.

-조선인으로서 조선의 왕을 섬기고 따르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알겠느냐?

"""충! 성!"""

그 후로도 원의 뇌피설은 계속되었다.

그럴 때마다 감탄하며 '충성'이란 외침이 더욱 커졌다.

선식이를 능가하는 개구라 같은 원의 뇌피설은 끝내 여진족 신병들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냈다.

'중요한 건 하나가 되는 단합이지.'

원은 자신이 내뱉는 말을 자신조차 맞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계속 지껄였다.

'시발! 나중에 역사학자들이 욕해도 상관없어.'

원은 처음부터 작정했다.

어떻게든 여진족 신병들에게 감동을 주기로.

그래야만 했다.

넓고 넓은 추운 시베리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여진족이 꼭 필요했다.

그것도 충성을 맹세한 믿을 수 있는 여진족 전사들이 정말 필요했다.

'배움이 짧을수록 선동에 잘 넘어가지.'

그래서였다.

원이 대놓고 확실하지 않은 뇌피설을 시전한 이유가.

'뭐 사실일 수도 있지. 아니면 말고.'

중요한 건 만주에 사는 여진족들이 자신이 조선인이라 생각하게 만들고 하나로 묶는 일이었다.

-우리는 단군왕검이 세우신 고조선(古朝鮮)이라 부르는 나라에서 같은 백성이었다.

-어찌하여 이리 갈라지고 다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하나였다는 게 중요하다.

신분이 높은 이가 말하면 왠지 믿음이 간다.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원이 지껄인 말이지만, 조선에서 두 번째로 신분이 높은 원이 한 말이라 여진족 신병들은 물론 경비대원들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말하는 족족 먹혀들어 갔다.

원은 서서히 끝낼 준비를 했다.

'말 많이 해서 좋을 게 없지. 적당히 하고 끝내는 게 좋아.'

원의 말에 감동한 사람은 여진족 신병들만이 아니었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원들 또한 원의 말에 넘어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감동의 물결이 차고 넘치려는 순간.

-나는 너희들이 다시 조선인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나는 너희들이 다시 조선의 품 안으로 돌아온 것을 천지신명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그러면서 원은 백두산이 있는 곳을 향하여 엎드려 절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

원을 따라 백두산을 향하여 모두 엎드려 절했다.

장백산이라 부르는 백두산은 여진족이나 조선인이나 할 것 없이 모두의 영산이기에 경건한 마음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 * *

신의주를 떠나 심양으로 가는 길.

원은 자신이 생각해도 만족스러운지 실실 웃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석돌이는 그런 원을 보고 입을 열었다.

"사장님 말씀은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 또한 예맥족의 한 사람으로서 잃어버린 예맥의 땅을 꼭 다시 찾고 싶습니다."

원은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하구나. 그 마음 변치 말거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인제 와서 석돌이에게 다 뻥이라고 구라라고 내가 지어낸 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젯밤에 거대한 잔치가 신의주 신병 훈련소에서 벌어졌다.

여진족 신병들뿐만 아니라 훈련 교관인 경비대원들까지 서로 껴안고 춤을 추며 술을 마셨다.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 된 거야.'

신의주로 오면서 단단히 준비했던 일인데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술에 취해 하나가 된 경비대원들과 여진족 신병들은 '예맥의 땅'을 다시 찾자며 밤새도록 외쳐다.

앞으로 시베리아란 말은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예맥의 땅이라···. 멋지군.'

다음 시찰 목적지가 가까워질 때까지 원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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