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시찰(1) >
마쓰마에 번주를 대신하여 흑선을 방문한 두 사람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밝게 웃었다.
두 사람은 유창한 일본말을 하며 걸어 나온 이가 다른 이에 비해서 자기들만큼 체구가 작았기에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말조차 통하지 않았다면 난감할 뻔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두 사람 중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도모히로가 손을 비비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실례지만, 일본 사람입니까?""
"아니다. 난 조선전력공사에서 왔다."
"네?"
"조선전력공사를 모르느냐?"
"조선전력공사라고요? 죄송하지만, 소견이 짧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저 깃발을 보고도 모른다니, 한심하구나."
흑선 꼭대기에 나부끼는 '번개' 표시 깃발.
틀림없이 조선에서 고가품을 만들어 판다는 상단의 표시였다.
"저 표시가 조선전력공사라는 상단의 문장입니까?"
"그렇다."
"그런데 어떤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겠느냐? 생각을 해봐라."
"혹시 우리와 거래를 원하십니까?"
"흥!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그럼 이곳까지 오신 이유가···. 혹시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키 작은 대원은 품 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건넸다.
얼떨결에 두루마리를 받아든 도모히로는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펴봤다.
한참 읽어보던 도모히로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 물었다.
"네? 우리보고 이곳에서 떠나라고요?"
"그렇다. 삼일 여유를 줄 터이니 당장 짐을 싸서 이곳을 떠나라."
"그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곳은 대대로 우리가 살던 곳입니다."
"대대로 살던 사람들은 너희들이 착취하고 있는 아이누 인들이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왔으니 당장 꺼져라."
키 작은 대원은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 껄끄러웠다.
그런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뻔뻔하게 행동하라는 원장님의 말씀에 따랐다.
사실 그는 경비대 대원이 아니었다.
조서원의 일본 담당 요원이었다.
그랬기에 일본어가 유창했다.
요원은 머뭇거리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쌍심지를 치켜뜨고 윽박질렀다.
"삼일 안에 떠나지 않는다면 그 뒤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알겠느냐?"
"네?"
갑작스러운 추방 명령에 황당함을 금치 못한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찌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 *
살살 부는 봄바람에 거대한 다리가 동강이 나고, 잔잔한 물결에 댐이 무너지는 일은 바로 고유진동수 때문이다.
모든 물체는 고유진동수(Natural frequency)를 가지고 있다.
고유진동수와 같은 파형을 만나는 물체는 공진(共振, Resonance)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강하고 거대한 구조물이라도 파괴된다.
고유진동수 계산은 댐을 만들 때도 필요하지만, 다리나 선박, 자동차를 만들 때도 반드시 적용된다.
f = ω ÷ 2π.
ω = √(k ÷ m).
f = √(k ÷ m) ÷ 2π
이처럼 표현되는 고유진동수는 물체가 자연적으로 진동하는 진동수이다.
따라서 댐이나 다리, 배를 만들 때는 반드시 고유진동수를 피해서 설계해야 한다.
"이상이다. 자세한 것은 미순이에게 물어보도록 해라."
"""네, 사장님."""
며칠 전, 열식이가 만든 디젤 엔진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원은 연구원들을 모아 놓고 휘발유 엔진에 관해 강연을 열었다.
"전자기유도 법칙은 이렇듯 전압을 올릴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따라서 전자기유도를 이용하면 12V 전압을 15,000V 이상 높은 전압으로 만들 수 있다. 높은 전압은 휘발유 엔진에서 필수인 점화장치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니 실험을 통하여 확인하고 만들어내도록 해라."
"""네, 사장님."""
21세기에 쓰는 QI 스마트폰 무선 충전기도 영국의 천재 과학자인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가 발견한 전자기유도 원리를 사용한다.
'발명'이란 말은 한때 한국에서 '발명 특허'라는 명칭으로 썼지만, 이제 광고 빼고는 더는 쓰지 않는 용어이다.
세상에 모든 것이 이미 있기에 '발견'이라 말할 뿐이다.
아무튼 패러데이는 '전자기유도 법칙'을 발견했고 그 기술은 수많은 곳에서 실생활에 사용하고 있다.
발전기에서 발전한 높은 전압을 낮은 전압으로 만들 때도 사용하지만, 휘발유 엔진의 스파크플러그처럼 전압을 올릴 때도 적용한다.
전자기유도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겹쳐놓은 철편 양쪽에 따로 감아 놓은 구리 선의 수에 따라 전압을 바꿀 수 있다는 원리이다.
같은 수를 감아 놓으면 같은 전압과 주파수가 유도되기에 오디오에서 잡음을 감쇄하는 용도로도 사용하지만, 변압기나 유선 전화기 같이 절연이 필요한 곳에서는 꼭 사용해야만 하는 기술이다.
아무튼 휘발유 엔진에 관해 설명하다가 고유진동수까지 설명하게 되었다.
자동차 엔진 또한 고유진동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너희들이 만들어낼 휘발유 엔진은 말이나 소가 없어도 혼자서 움직이는 자동차의 심장이 될 것이다. 그러니 명심하고 연구해서 개발하기를 바란다. 이상이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강연을 마친 원은 서둘러 자리를 이동했다.
한양에 세워질 '조선전신전화국' 기공식에도 참석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만주를 얻으면서 구리는 물론 모든 것이 풍족해졌다.
그래서 한양만이라도 전기와 유선 전화를 보급할 계획으로 조선전신전화국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런데 원이 향한 곳은 남쪽이 아니라 북쪽이었다.
백령도 북쪽에는 서쪽으로 툭 튀어나온 용연반도가 있다.
원의 목적지는 용연반도의 서쪽 끝인 장산곶(長山串)이었다.
용연군(龍淵郡)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용소(龍沼)가 있다.
한반도 서쪽 끝이라 아랑포영(阿郎浦營)과 조니포진(助泥浦鎭)이 있고 수군만호(水軍萬戶)가 배치된 국방상 요지였다.
원은 이곳에 조선군 훈련소를 만들어 놓았다.
훈련소를 둘러본 원은 소장인 훈수에게 물었다.
"모두 몇 명이라고 했지?"
"총 지원자 72,356명 중 선발된 인원은 35,200명입니다."
"많구나."
원은 기분이 좋은지 씩 하고 웃었다.
조선 신병 교육이 끝나는 8월.
교육을 받은 신병 중에서 조선군 지원자가 무려 7할이 넘었다.
그중 엄격한 심사를 거쳐 뽑은 인원만 5할이나 되었다.
반 이상이 탈락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떨어진 이들은 새로 지어지고 있는 산업 시설에서 일하기로 되어있었다.
"지원자가 생각 이상으로 많았구나."
"거의 전부나 다름없습니다. 총사령관님."
훈수는 원을 총사령관이라 불렀다.
조선의 모든 군을 통괄하는 지위에 있었기에 원이 그리 부르라고 했다.
훈련 한번 받지 않았던 원이 조선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 병장이 조선 시대에 별 5개 원수가 되었지만,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부터 조선군의 체계는 모두 원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뜻이지? 거의 전부라니?"
"미리 행정으로 빠지거나 대학 교육을 받고 싶은 신병을 빼면 9할이 넘습니다."
"아···."
제 1기 조선 신병 교육은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원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아라비아 숫자, 구구단, 사칙연산을 할 줄 알았다.
그중에서 성적이 월등히 뛰어난 신병들은 새로 만들어질 '세종 대학교'에 입학하기로 되어있다.
군재(軍才)가 뛰어난 신병은 '봉림 사관학교'에서 사관 교육을 받기로 했다.
산수와 과학적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원의 이름을 딴 '이연(李棩) 공과대학'에 입학하기로 예정되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인원은 체 1할도 되지 않았다.
"이러면 교관들이 많이 부족할 것 같은데···?"
"그래서 정용식 사령관님께 긴급 요청했습니다."
"잘했다."
원래 예상했던 조선군 지원자는 1만 명 정도였다.
그런데 만반도 작전으로 청나라를 물리치자 피가 뜨거운 젊은 청춘들이 모두 지원했다.
그러다 보니 예상을 몇 배나 초과한 조선군 병사를 얻게 되었다.
'먹고 살 식량과 넘치는 돈이 있으니 잘됐군.'
여진족처럼 백성 모두를 병사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규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진출할 곳이 너무 많아.'
아무튼 제 1기 신병 교육을 이수한 젊은이들은 원이 살아가는 조선에서 황금세대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추가로 교관들부터 모집하고 그들부터 단단히 교육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부족한 것이 없는지 잘 살펴보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병조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해라."
"네, 총사령관님. 그런데···."
훈수는 말을 하다 말고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본 원은 고개를 슬쩍 들더니 표정을 관리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해야 하는데 신분이 신분인지라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매일 같이 함께 지내는 연구원들은 이러지 않았다.
궁금하면 바로 물어봤고, 모르면 찾아오기까지 했다.
아무튼 원은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뭔데 그러느냐? 괜찮으니 말해 보거라."
"다른 건 다 좋은데 의복과 신발이 부족합니다."
"응? 무슨 말이냐? 의복과 신발이 부족하다니."
훈수는 이해하지 못하는 원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따라서 의복과 신발을 넉넉히 보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았다. 그리하도록 조치하겠다."
18세면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잘 먹고 매일 같이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눈에 띄게 무럭무럭 자랐다.
신분에 상관없이 신병 훈련소에 들어 온 신병들에게 훈련복과 훈련화를 2벌씩 지급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작아져 버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쑥쑥 커버렸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훈수는 즉시 병조에 요청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수량이라 병조에서 난감해했다.
원의 말이 있었기에 일단 큰 옷과 신발부터 지원받았다.
결국 신체가 작은 사람은 큰 사람의 옷과 신발을 물려받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봄이 되면서 하절기 훈련복과 훈련화를 고를 때, 모두가 큰 것만 찾았다.
그러다 보니 복장이 영 우스꽝스러웠다.
그렇다고 뭐라 하기도 그랬다.
왜 그런지 다 아는데 혼낼 수도 없었다.
'제길, 나에게 말하면 되는 건데. 고지식하기는···.'
나중에 알고 보니 병조판서 구인후는 엄청난 훈련 비용을 보고 최대한 아끼려고 노력한 거였다.
작아서 못 입게 된 신병 훈련복과 훈련화를 민간에 풀 수도 없었다.
복장은 곧 신분을 상징하는 조선 시대.
훈련복과 훈련화는 신병 교육을 받았다는 명예였다.
아무튼 10만 명이 넘는 인원을 단순히 먹여주고 재워주는 비용만 해도 인조 시절 조정의 일 년 예산과 같았다.
그러니 구인후도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많이 먹을 나이인 18세.
무제한 쌀밥은 기본이고 고기까지 먹여주니 10만 명이나 되는 훈련병들의 부식비만 해도 엄청났다.
주변 사람들을 돕기 좋아했던 구인후였지만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원에게 얼마나 많은 재물이 쌓여있는지 알았더라도 구인후의 성품상 별로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뭐든지 귀한 시대였다.
"다른 건 없느냐?"
"조선군에 지원한 병사들이 조2 소총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음···."
현재 조선군에게 지급해주는 조1 소총도 수석총에 비하면 넘사벽이다.
비록 종이 탄피를 쓰지만, 후장식이라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지 신병 교육을 받는 이들이 조2 소총이 최고라며 자신들도 사용하고 싶다고 청원했다.
'아직 조4 소총을 내놓기는 그런데.'
이미 조4 소총 개발은 끝내 놓았고 실험 중이다.
하지만 보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조2, 조3 소총과는 달리 조4 소총은 가스압을 이용하기에 더 강해야 하고, 정밀 부품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압록강 수풍 수력발전소와 한강 팔당 수력발전소가 완공된 후에나 양산할 생각이었다.
당장 알루미늄 송전선을 만드는 데 전기를 써야 했기에 여유 전력이 없었다.
지구상에 흔한 은백색의 부드러운 금속인 알루미늄은 전성(展性)과 연성(延性)이 풍부하며 은박지 같은 박(箔)이나 철사로 만들 수 있다
공기 중에 방치하면 표면만 산화되기에 녹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알루미늄 가루는 금속이나 야금을 용접할 때도 사용된다.
문제는 순도 높은 알루미늄은 전기 분해로만 얻을 수 있다는 거였다.
'안돼, 송전선 건설이 먼저야.'
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당장 조선을 넘볼만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허락할 수 없다. 지금은 조1 소총만 지급할 수밖에 없으니 그리 알고 처리하도록."
"넵! 총사령관님."
또한 다른 문제도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조2 소총을 지급하면 경비대와 무력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지 않으냐?"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는 원이 가진 최대 무력 집단이다.
어릴 때부터 옹진반도와 백령도에서 함께 자라왔기에 충성심과 전우애는 의심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조선군이 될 병사들은 아니었다.
각지에서 살다가 이제 10개월 훈련을 받았을 뿐이다.
황동 탄피도 문제지만, 그들을 믿고 경비대와 동급의 무기를 지급해 줄 순 없다.
'안되지. 절대 안 되지."
어떤 놈이 총을 외부로 팔아먹을지 알 수 없다.
아무리 삼대를 멸한다지만, 세상에 미친 또라이는 어디나 있기에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경비 대원들도 각자 받은 총의 고유 총기 번호를 외우고 혼자만 쓰도록 했다.
"아무튼 수고하고, 돈 걱정은 말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즉시 신청하고 보급받도록 해라."
"넵! 총사령관님."
"훈수 네가 할 일은 최강의 조선군을 만드는 일이다. 명심하고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
"명심하겠습니다. 총사령관님."
용연반도 조선군 훈련소 시찰을 마친 원은 다시 북으로 이동했다.
'늦어도 1년 후에는 시베리아로 진출해야 해.'
이미 시베리아에는 러시아 모피 도적놈들이 진출해있다.
더 늘어나기 전에 어떻게든 이들을 모두 쫓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