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사분지계 >
특산품 수출을 개방하자는 말에 효종은 의문을 느끼고 물었다.
"독점으로 팔아야 이문이 더 남는 것이 아니더냐?"
"맞는 말씀이오나 그 이득이 소수에게 돌아간다면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조선의 이익이지 않으냐?"
"소수에게 돌아간 돈이 풀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문제입니다. 절대 조선에 득이 되지 않습니다."
"크흠···."
효종은 침음을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원의 말이 맞았다.
농지도 그렇지만, 부를 축적한 이가 이익을 풀지 않고 더 큰 이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다.
매점매석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거였다.
생각에 빠진 효종이 말이 없자 원이 조심히 효종을 불렀다.
"아버지?"
"그래 말해 보거라."
"지금 조선은 전과 다릅니다. 그까짓 특산품 팔아봐야 제가 파는 것과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는 독점을 주시면 아니 됩니다."
"'흠···."
결국 효종은 원의 말을 들어줬다.
백성들이 모두 잘살아야 조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원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
산동반도 청주성에 도착한 도르곤은 마중 나온 영친왕 아지거(阿之巨)를 보고 반갑게 껴안았다.
"몸은?"
"좋습니다."
"다 낫은 게냐?"
"네, 형님. 조선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흐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나라라 하더니···."
아지거의 말에 도르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선의 태자가 한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조선을 치러 간 자신을 치료해주고 아무런 조건도 없이 돌려보내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인의와 예의를 따지는 조선이라면 이해할만했다.
도르곤도 그랬지만 형인 아지거 또한 볼모로 잡혀 온 소현세자와 효종에게 잘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알 수 없지만, 살아 돌아왔으니 그거면 충분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제가 없는 사이에 지르가랑(濟爾哈朗)이 황제에게 붙어서 형을 죽이려 했다고 들었습니다.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양백기만 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 지르가랑을 이길 수 없다."
고개를 숙이며 흔드는 아지거.
도르곤은 그런 아지거의 어깨를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형님, 정백기의 장수들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다시 세를 일으켜 세우는 건 일도 아닙니다. 제가 몸까지 회복되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말이냐? 조선에서 장수들을 너와 함께 보냈다고?"
"네, 형님."
도르곤이 아지거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정백기의 장수들.
"""영친왕을 뵙습니다."""
정중하게 군례를 올렸다.
"모두 돌아오다니 기쁘기 한량없구나."
아지거는 기분이 좋은지 큰 소리로 껄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들만 있다면 병사들이야 언제든지 모집할 수 있다.
그러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좋아! 너와 이들이 돌아왔으니 다시 세를 모으는 것은 일도 아니다."
"맞습니다. 형님."
둘은 손을 맞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오판으로 인해 힘든 일을 겪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도르곤과 아지거는 양백기를 이끌고 남쪽으로 떠났다.
북경으로 가봐야 지르가랑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남쪽으로 가서 병사들을 모을 생각이었다.
도르곤은 먼저 한인팔기의 수장들을 포섭했다.
한인팔기의 수장들은 자신의 심복들이 감시하고 있었기에 포섭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수장들에게 군왕이란 맛있는 칭호를 주니 모두 복종을 맹세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명의 복원이 아니라 출세였으니 당연했다.
수적으로만 따지면 한인팔기는 엄청났다.
그래서인지 도르곤의 세력은 빠르게 불어났다.
다시 정백기를 일으켜 세우고 한인팔기를 수하로 거둔 도르곤은 자신감이 넘쳤다.
황제와 지르가랑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한 도르곤은 이를 꽉 깨물었다.
"기다려라! 지르가랑!"
하지만 도르곤은 몰랐다.
원이 왜 풀어줬는지.
이제 대륙은 원이 계획한 대로 도르곤의 세력이 추가되어 사분지계가 되었다.
* * *
봄부터 가뭄이 지속되었다.
가뭄으로 저수지 공사와 경강 다리 공사는 수월했지만, 백성들은 우울했다.
아직도 조선 백성 대부분은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가뭄으로 논이 말라 버리고 벼가 타들어 가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중에는 목 놓아 우는 사람도 있었다.
"만득아, 그렇게 울 힘이 있으면 읍내 가서 공사장이나 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제가 기술이 없는데 그게 가능합니까?"
이장은 한심하다는 듯 만득이를 보며 혀를 찼다.
"가면 다 가르쳐 준다고 하니 어서 가보거라."
"참말입니까?"
"참말이지! 그러니 올해 농사는 포기하고 가서 일이나 해라, 일!"
만득이가 어릴 때부터 보아온 이장은 답답한지 소리를 질렀다.
사람은 진국인데 주변머리가 없는 만득이를 보면 안타까웠다.
만득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읍내에 가서 시멘트 포대를 날랐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일은 끝났고, 일당을 받은 만득이는 깜짝 놀랐다.
"하루에 2문이면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잖아!"
1문이면 한 가족이 하루 먹고 살 만하다.
그런데 2문이면 먹고 살고 남았다.
만득이는 최 진사에게 빌린 논을 옆집 아저씨에게 맡기고 본격적으로 공사판을 찾아다녔다.
일은 힘들지만, 농사짓는 일 또한 쉽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기술을 배우려고 작정했다.
성실함을 눈여겨본 공사장 반장이 만득이를 불렀다.
"만득아, 이리 좀 와봐라."
"왜 그러십니까? 반장님."
"너 내 밑에서 일 좀 배워 볼래?"
"참말입니까?"
"참말이다."
단순 허드렛일만 하던 만득이는 목공과 미장일까지 배우면서 하루 3문을 받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조선 땅 안에서 수시로 일어났다.
* * *
원도 가뭄은 어찌할 수 없었다.
지금도 수리 시설을 곳곳에 짓고 있지만, 원하는 만큼 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지만 않았다.
'이번 기회에 국토 개발이나 해야지.'
원은 은쌍식을 불렀다.
제일 먼저 확인해 볼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쌍식아, 보관된 쌀은 어느 정도나 있느냐?"
"내년 봄까지 먹을 양은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당장 도로 공사부터 하게 인력을 모집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래서 시작된 도로 공사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조선 팔도는 물론 만주까지 여기저기서 콘크리트 도로 공사판이 생겼다.
사람들이 많은 사는 마을과 마을 사이를 연결하고, 장터는 반듯하게 정리되었다.
곳곳에 콘크리트 도로가 생기면서 백성들의 이동 또한 많아졌다.
신의주부터 전주까지 뚫린 콘크리트 도로도 확장하고 있었다.
선박을 이용해 대량으로 실어 나르고 있지만, 내륙으로 수송할 수 없기에 짐을 가득 실은 마차 수송도 늘어났다.
그런데 마차의 이동이 많아지자 인사 사고가 발생했다.
소식을 들은 원은 은쌍식을 불렀다.
"쌍식아, 과적한 마차는 단속해야겠다. 그리 알고 고속도로 입구마다 단속반을 상주시키거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바로 연락해 처리하겠습니다."
원은 21세기와 같이 남북은 홀수로, 동서는 짝수로 도로 번호를 정했다.
나중에 서해안을 따라 도로를 만들 수도 있기에 처음 만든 고속도로를 1번이라 하지 않고 5번이라 했다.
'5번 고속도로'라 명명된 '신의주-전주' 간 콘크리트 도로의 소유권은 도로를 만든 조선전력공사에 있었다.
그래서 통행 관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원은 상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지 않았다.
미국 전 지역이 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프리웨이'라 말하는 무료고속도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적 마차는 단속하고 진입은 차단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사 사고나 도로가 파손된다.
은쌍식이 나가고 홀로 남은 원은 보고서를 보고 인상을 썼다.
"제길! 예송논쟁 같은 건 없을지 알았는데 이건 또 뭐야!"
원은 삼복이로부터 받은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효종 2년(1650) 8월 4일.
원의 둘째 누나인 숙안 공주(淑安公主)의 혼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대사헌에서는 상도(常道)를 떠나서 혼례를 진행하자고 했지만, x선비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조선의 공주가 혼례도 올리지 못하고 살고 있었지만, x선비들은 이때가 기회라며 미친 듯이 상소를 올렸다.
인조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숙안 공주는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선왕과 관계되는 일이라 효종도 강압할 수 없었다.
이때 나선 이들이 있었으니 한흥일(韓興一), 박서(朴遾), 이후원(李厚源), 윤순지(尹順之)였다.
심양에서부터 효종을 따랐던 이들이라 곤란한 상황을 대신 나서서 해결하고자 했다.
"폐하, 천하의 사변이 무궁한데 어찌 상경(常經)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중신들의 말에 힘을 얻은 효종은 심사숙고(深思熟考) 끝에 숙안 공주의 혼례를 간략하게나마 치루기로 했다.
딸 바보 효종은 숙안 공주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네가 언니를 잘 돌봐 줘야 한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아예 큰 집을 지어서 선물할까 합니다."
"굳이 선비들과 대적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냥 무시하거라. 어쩌면 그들의 낙(樂)은 그것뿐인 것 같구나."
하지만 원은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둘째 누나뿐만 아니라 큰누나 집도 크게 지어줄 생각이었다.
'누구 덕분에 이렇게 잘 먹고 사는데,'
원은 벌었으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경제가 돌아가지.'
열도에서 힘들게 채굴한 은이 조선으로 왕창왕창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볼리비아의 포토시(Potosí) 은광에서 한때 250톤, 전 세계 은의 60%를 생산했다.
열도에 있는 이와미(石見) 은광 또한 전성기에는 150톤이나 되는 은을 생산했으니 1/3은 열도에서 생산된 거였다.
그랬던 이와미 은광이지만, 이제는 깊이 파고 들어가야만 은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생산량이 많았다.
서양 상선들은 가져온 물품을 열도에 팔았다.
받은 은은 대마도에서 조선의 물품으로 바꾸어갔다.
그러니 원역사와 다르게 열도의 은이 대륙이 아니라 조선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고 조선전력공사에 산처럼 쌓이고 있는 것은 바로 금덩이와 은덩이였다.
'더 지랄하면 금과 은으로 된 집을 지어 버릴 테다.'
식량난이 해결되고 보화가 가득가득 쌓였지만, 쓸데가 없었다.
그래서 만반도 곳곳에 토목사업을 벌이고 집도 개량하라고 명 했다.
효종조차 모르는 원의 부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랬기에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가능했다.
원는 태어나자마자 구상했던 테크트리를 수도 없이 고치며 수정했다.
'뭐든 하려면 일단 돈이 많아야 해.'
아무리 강한 권력이 있어도 돈이 없다면 그 권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착취나 부정으로 모을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무튼 원은 열심히 번 돈으로 둘째 누나의 집을 근사하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또한 x선비들을 완전히 뿌리 뽑아 버리기로 작정했다.
'과거에 합격도 못 한 것들이 선비는 무슨 선비야.'
조서원의 요원들이 산림의 거두들을 잠재웠지만, 아직도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x선비들은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거두들처럼 처리할 수는 없었다.
거두들이야 나이가 많았지만, x선비들은 젊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합격한 관료 중에 단체로 사직서를 내고 반항한 이들은 모두 역모죄로 엮여 탄광으로 보냈다.
남아있는 관료들은 대세에 따르며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한량들은 아니었다.
군역의 의무가 전면 폐지되자 이들은 만세를 불렀다.
더는 군역 때문에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19세가 넘은 한량들이다.
18세가 되면 신병 교육을 받아야 하기에 전전긍긍했지만, 그 시기만 넘기면 만고(萬苦)가 사라졌다.
한량들은 공부하기도 싫었는데 서원까지 사라지자 선대가 남긴 재산으로 놀고먹으면서 허구한 날 효종을 욕하는 게 일이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효종이 개혁을 하지 않았다면, 뇌물을 써서 관료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 길이 막히자 앞날이 깜깜했다.
그러니 안주 삼아 씹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저나 흉년이라니 걱정이 태산 같구나."
"염려 놓으십시오. 아버지."
"어찌 염려를 놓는단 말이냐? 다른 수가 있더냐?"
"네, 아버지. 내년 봄까지 먹을 양식은 충분합니다."
"그래? 그렇다 하여도 내년 봄 이후는 어찌할 것이냐?"
"산동반도가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구나."
조선 백성들을 모두 먹여 살릴 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곡창지대라는 말을 들었지만, 현실적이지 않아서 잊고 있었다.
남명에서 쌀 수입이 끊기고 대명에서만 수입해서는 백성들 모두를 배불리 먹일 수가 없었다.
늘어난 만주의 백성들도 굶게 할 수는 없기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런데 산동반도가 있었다.
"한데, 이런 가뭄에 그곳이라고 괜찮겠느냐?"
"그곳은 수로가 잘되어 있어서 괜찮습니다. 그래서 조선에도 저수지를 만들고 수로 또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버지. 이러시다가 병나시겠습니다."
"알겠다. 더는 걱정하지 않으마."
효종은 오랜만에 밝게 웃었다.
백성들이 먹고사는데 필요한 양식이 충분하다고 하자 마음이 놓였다.
원은 천재지변은 말 그대로 천재지변이라 말하며 덕과 관련짓지 말라고 했지만, 효종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당장 백성들이 굶어 죽게 생겼는데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덕이 없는 왕 때문에 가뭄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었다.
원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아버지 효종에게 넌지시 요구 사항을 말했다.
"아버지, 소자. 간청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