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63화 (63/275)

< 63. 매국노 처단 >

조선 팔도는 물론 만주 곳곳에서 공사판이 벌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바위를 옮기고 흙을 포대에 담아 나르며 둑을 쌓고 있었다.

"이 저수지가 완공되면 올해는 홍수 걱정이 없겠네. 그려."

"그렇긴 하지만, 비가 너무 안 와서 탈이야."

봄부터 시작된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자는 상소가 빗발쳤다.

하지만 효종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원이 서양의 책에서 봤다는 세상의 흐름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북쪽으로 올라가면 왜 추운지 아십니까?"

"그거야 북쪽이니 그렇지 않으냐."

"맞는 말씀이지만, 정확한 답은 아닙니다."

"그럼 왜 그런다고 생각하느냐?"

원은 서양 책에서 봤다고 적당히 물을 타서 설명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땅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땅 지(地) 자와 공 구(球) 자를 써서 우리가 사는 행성을 지구라 부른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둥글다고 합니다."

"그게 참말이더냐?"

"네, 아버지. 소자가 실험해 봤는데 진짜였습니다."

원은 동그란 원판과 돛이 달린 작은 배 모형을 들고 원리를 설명했다.

효종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정말이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둥글다는 게. 그래서 달도 둥글고 해도 둥글게 보였구나."

"맞습니다. 아버지."

"그런데 봄과 가을, 여름과 겨울이 생기는 건 이해 할 수가 없구나."

"그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가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졌다니 무슨 말이냐? 알아듣게 설명을 해보거라."

원은 두 개의 원판을 탁자 위에 놓고 한참 설명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효종은 창밖 넘어 남산 쪽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짓고 있는 게 그런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냐?"

"네, 아버지. 천문을 연구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서 천문을 연구하는 곳을 만들고 있습니다."

원은 한양의 명소가 될 남산 꼭대기에 거대한 탑을 세우면서 그 옆에 천문 관측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짓도록 했다.

지금 조선은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 만든 시헌력을 쓰고 있다.

하지만 자주국을 선포했기에 조선만의 달력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정확한 태양의 움직임을 알아야만 한다.

설명을 듣고 난 효종은 원이 처음 태어났던 날처럼 환하게 웃었다.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게 자랑스럽구나. 고맙다 원아. 그렇지 않아도 우리만의 역법(曆法)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었다."

"아닙니다. 아버지. 나라를 다스리시느라 바쁘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소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역법은 '천체의 주기적 현상을 기준으로 세시(歲時, Observance)를 정하는 방법'이다.

고대로부터 문명 발전의 기본이라 중요하게 생각해 왔지만, 동양에서는 정치적인 면이 더 컸다.

역법을 제정하고 반포하는 것은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륙에서는 '하늘의 뜻을 받아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란 뜻으로 최고통치자를 천자(天子)라 불렀다.

또한 제후국은 천자가 만든 달력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랬기에 효종은 조선만의 역법을 만들고 싶었다.

"고맙다. 원아. 그나저나 도르곤은 어찌할 생각이냐?"

"그건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원은 효종에게 도르곤을 처리할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 * *

아이러니하게도 의식이가 만든 설파제의 최초 임상 실험 대상은 도르곤이었다.

그동안 설파제는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었다.

원은 도르곤을 생포해 왔는데 죽어버리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식이에게 말했다.

설파제를 도르곤에게 실험해도 좋다고.

'뒈지면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최초로 인체 실험 대상이 된 도르곤은 운이 좋았다.

각혈까지 하며 죽어가는 도르곤에게 설파제를 먹였더니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대가 조선의 태자인가?"

"그렇다."

"크흠."

도르곤은 반말로 대답하는 원을 보고서 심기가 불편한지 심음을 내뱉었다.

"나를 어찌할 생각이오?"

"돌려보내겠소."

뜻밖의 말에 도르곤은 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말이오?"

원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가 뭐요?"

"청나라와 화해 조약을 맺었기 때문이오."

"크흠."

도르곤의 심정은 복잡했다.

조선의 전력이면 청을 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고 화해를 하고 자신을 돌려보낸다니.

믿기 힘들었지만, 이미 강자가 되어버린 조선의 태자 말이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원하는 게 뭐요?"

"없소."

"크흠."

너무 단 답이라 도르곤은 원의 속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고마운 건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침묵이 오가는 가운데 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청이 우리 조선에 한 짓을 생각하면 멸해야 타당하지만,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가겠소. 그러니 명심하시오."

간단히 할 말을 끝낸 원은 자리를 벗어났다.

도르곤을 생포해 오면 하고 싶은 짓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잡아 놓고 보니 이용 가치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한 놈을 욕보이는 것보다 청나라에 내분을 조성하는 것이 더 좋지.'

천하 삼분지계라고 하지만, 대륙의 곡창 지대인 화북을 가지고 있는 청나라가 가장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청나라를 내부적으로 찢어 놓기 위해서는 도르곤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분 보다는 사분, 아니 오분 육분이 더 좋아.'

그래서 효종도 원과 상의 끝에 결론을 내리고 도르곤을 만나지 않았다.

볼모로 잡혀있을 때 도르곤이 잘해 준 적이 있었지만, 그건 무시할 수 있었다.

조선의 이익만 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이가 바로 효종이었다.

아무튼 포로로 잡힌 청나라 병사 중에서 니루 어전 이상은 모두 돌려보내기로 했다.

어차피 지배 계급이라 복종시키기 어렵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포로만으로도 충분해.'

이번 전쟁에서 죽이기도 많이 했지만, 포로로 잡은 청나라 병사도 많았다.

이들은 각지로 보내 조선의 국토 개발 사업에 투입할 예정이다.

* * *

원이 도르곤을 만나고 있을 때 효종은 의금부로 향했다.

세자였을 때 기분 나쁜 눈으로 째려보던 놈이 의금부 마당에 묶인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단상에 앉은 효종이 놈을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고개를 들라!"

기력이 없는지 꿈들 거리며 눈을 치켜뜬 놈.

용포를 입고 있는 효종을 보자 겁이 났는지 지렸다.

효종은 토끼처럼 앞니가 툭 튀어나온 정명수를 보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

"조선의 백성으로 태어나 조선을 핍박한 네놈의 낯짝이 참으로 볼만 하구나."

"저, 전하. 살려주십시오. 소신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놈···! 어찌 네놈이 조선의 신하를 자청한단 말이냐? 조선을 팔아먹고, 조선의 백성들을 핍박한 네놈이 할 말이 아니다."

"전하, 죽여주시옵소서, 제발 소인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전하, 제발···!"

"흥!"

자리에서 일어난 효종은 의금부 판사(判事)를 보며 단호하게 명 했다.

"저놈이 원하는 대로 죽여주되 만인이 보는 앞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라. 짐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나라를 욕되게 하는 자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 저자와 관련된 자들을 모두 색출해서 처형하도록 하라!"

"명을 받으옵니다. 폐하!"

그날 이후 만주까지 샅샅이 뒤져 정명수와 관련된 자들을 모두 잡아들였다.

원은 도르곤과 청나라 장수들을 돌려보내면서 정명수를 데려왔다.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조선의 반역자이기에 이제는 처형할 때가 됐다고 봤다.

물론 다른 꿍꿍이도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일벌백계(一罰百戒), 본보기로 처형해야 해.'

조선전력공사의 기술은 서서히 민간에 퍼지고 있었다.

핵심이 되는 기술은 유출하지 않았지만,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원은 효종에게 정명수를 만인이 보는 앞에서 가장 참혹하게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조선에서 정명수 같은 매국노가 두 번 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을 거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나라를 팔아먹은 놈은 씨를 말려야 해.'

연좌제가 폐지되었지만, 매국노(賣國奴, Quisling)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역모라도 가담한 적이 없으면 처벌하지 않았지만, 매국노를 처벌하는 법은 강화되었다.

원은 공식이로 살았던 세상에서 매국노의 자식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보았다.

'그 꼴은 절대 볼 수 없지.'

그래서 탄광에 보내지 않고 3대까지 사형하는 법 조항을 만들자고 요청했고 빠르게 제정되었다.

효종 또한 '없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 말이 있기에 왕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매국노 처벌은 원과 생각이 같았다.

"자네 돌멩이를 들고 어디로 가는 건가?"

"어디긴 어디야, 숭례문(崇禮門)으로 가지. 자네도 돌멩이 하나 챙겨서 같이 가세."

"석전은 금지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석전이 아니라 나라 팔아먹은 정명수 놈을 죽이러 가네."

"그래! 잠시만 기다리게 나도 같이 가세."

백성은 어디선가 큼지막한 돌덩이를 양손에 들고 왔다.

"그건 안되네. 주먹보다 작아야 한다고 하네. 또한 한 사람당 하나씩이네."

"그런 법이 어디 있는가?"

"방문에 적혀 있었네. 생각해 보게나. 자네가 던진 돌을 맞고 바로 죽어버리면 정명수 그놈만 좋지 않겠나?"

"아···! 그 생각은 못 했네."

백성은 서둘러 조그마한 돌을 찾아 들고 숭례문으로 갔다.

숭례문 한쪽 벽에 세워진 높은 장대에는 정명수가 매달려 있었고, 주변은 포졸들이 경계를 치고 지키고 있었다.

경계 밖에는 어디서 몰려왔는지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손에는 돌멩이 하나씩 들고 있었다.

"저놈이 정명수인가? 굴마훈이라더니 상판대기가 토끼처럼 생겼구먼."

"그러게 말일세. 저놈이 한 짓을 생각하면 이리 죽이는 게 아니라 포를 떠야 하는데."

"이를 말인가. 저런 놈은 능지처참(陵遲處斬)해야 하는데 아쉽구먼."

대륙에서 시행 중인 능지처참(陵遲處斬)은 천천히 한 점 한 점 칼로 수백에서 수천 번을 베어내 사형을 집행하는 방법이다.

조선에서도 비슷한 능지처사(凌遲處死)란 형벌이 있었지만, 죄인의 팔, 다리, 목을 수레에 매달아 끌어서 찢어 죽이는 거열(車裂)로 대신했다.

너도나도 정명수를 보며 소리쳐 욕을 했다.

포졸들이 지키지 않았다면 벌써 처참하게 죽었을 거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의금부 판사 대감께서 오십니다.

스피커에서 커다란 소리가 나자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단상을 주시했다.

-나는 폐하를 대신하여 법을 집행하러 온 의금부 판사 김신국(金藎國)이오.

-오늘 이 자리는 조선을 팔아먹고 조선을 핍박한 정명수를 만인이 보는 앞에 형을 집행하기 위한 자리 오니, 엄숙하기를 바라오.

사람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닫았다.

-앞으로 그 누구라도 나라를 팔아먹는 자는 이처럼 처벌 할 것이요.

-설사 왕족이라 하여도 예외는 없소이다.

"""와···!!!"""

왕족까지 처벌한다는 말에 백성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선조의 개망나니 아들들은 백성들을 죽이고 희롱했지만, 처벌받지 않았다.

역모 또한 죽이지 않고 탄광으로 끌려가는 평생 노역 형을 받았다.

그런데 나라를 팔아먹는 일은 왕족조차 처벌한다고 하자 일부는 겁이 나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임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원은 고구려를 망하게 한 연개소문의 큰아들인 연남생(淵男生)의 예를 들었다.

그 누구라도 나라를 팔아먹는 자는 설사 왕자라도 반드시 처벌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 말을 들은 대신들은 깜짝 놀랐지만, 효종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형을 집행해도 좋소.

김신국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수많은 돌멩이가 정명수를 향해 날아갔다.

정신을 잃을지 모른다고 성벽 위에서 정명수에게 물을 뿌렸다.

퍽, 퍽 소리와 함께 정명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나라를 팔아먹고 백성들을 괴롭힌 악행을 그대로 돌려받으며 정명수는 죽음을 맞이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나라를 팔아먹는 행위는 그 누구라도 삼족을 멸하고 돌로 쳐 죽인다는 사실을 모르면 조선사람이 아니었다.

*

한 마을에서 초로(初老)의 노인이 걱정되는지 아들을 보고 잔소리를 해댔다.

산에서 인삼을 발견해 산해관으로 팔러 떠나는 아들이 미덥지 않았다.

"청나라 상인들과 거래할 때는 입조심 단단히 해야 한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아버지. 명심하고 조심하겠습니다."

"네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잘못하면 우리 가족 모두 죽는다. 그러니 명심하고 잊으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소자 떠나겠으니 들어가십시오."

행상을 떠나는 아들을 보는 노인의 눈빛에서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

지금까지 조선은 기술 유출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특별한 기술도 별로 없었지만, 섬이나 다름없는 한반도이기에 국경만 막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육로 교역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앞으로 있을 해양 교역을 생각하면 미리 단단히 경고해야 해.'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욕심에 나라의 중요한 정보를 넘기거나 소중한 기술을 파는 짓을 하는 매국노는 꼭 있었다.

그래서 모두가 알고 있는 정명수를 공개 처형했다.

'그래야만 소문이 나고 소문이 나야 경각심이 생기겠지.'

원이 주장한 공개 처형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물론 선식이가 정명수의 일대기를 가지고 장터를 돌면서 선동한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 * *

산해관에서 청나라와 교역할 수 있다는 방문이 붙자. 수많은 상인이 산해관으로 향했다.

조선에서 인삼 같은 특산물 수출은 몇몇 상인들의 독점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자유롭게 팔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더는 상단에 맡기지 않고 직접 교역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원은 상거래에 있어 독점이란 독약과 같다고 말하며 효종을 설득했다.

21세기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효종은 이해하지 못했다.

"독점으로 팔아야 이문이 더 남는 것이 아니더냐?"

효종의 물음에 원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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