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62화 (62/275)

< 62. 다두 왕국 - 지도 >

삼국지에서 이주(夷州)라 불렀던 대만.

우여곡절이 많은 곳이었다.

대만은 송나라 때부터 원나라 시대까지 섬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해양 무역이 발달했다.

하지만 명나라 때 이르러 해금 정책이 실행되자 대만의 해양 무역은 쇠퇴했다.

15세기에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자 서양 세력 중 포르투갈이 제일 처음 대만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은 대만을 식민지로 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당시 포르투갈 인구는 많이 잡아야 250만 명 정도라 역량이 딸렸기 때문이다.

1624년 네덜란드가 대만 남쪽 타이난을 점령하고 '질란디아' 요새를 건설했다.

네덜란드는 그곳에 사탕수수를 재배하며 이득을 얻었다.

1626년 스페인이 대만 북쪽 타이베이에 요새를 만들고 네덜란드와 경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두 세력은 싸울 수밖에 없었고 네덜란드가 이겼다.

승리한 네덜란드는 대만을 속국으로 삼고 단물을 빨고 있었다.

여기에 숟가락을 올리려고 조선전력공사에서 박문식을 보냈다.

비록 네덜란드의 속국으로 전락했지만, '다두 왕국'은 대만의 유일한 나라였다.

카마찻 말로에 왕은 수도 '다리다'애 거대한 흑선이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고 깜짝 놀라 뛰어나갔다.

엄청나게 큰 흑선이 바다 위에 떠 있자 겁이 났지만, 망원경을 꺼내 자세히 살폈다.

"안심해도 된다. 오기로 한 손님이다. 어서 가서 마중하도록 해라."

"네, 전하."

카마찻 왕은 흑선 꼭대기에 휘날리는 '번개' 표시 깃발을 보고 안심했다.

미리 온다는 서신을 받은지라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마중을 나갔다.

"카마찻 대왕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조선전력공사에서 온 박문식이라 합니다."

"어서 오시오. 그렇지 않아도 정성공으로부터 온다는 기별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소."

대명의 왕위에 오른 정성공은 떠오르는 조선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자신과 거래하고 있던 다두 왕국에 조선에서 사신이 간다고 미리 연락해 놓은 것이다.

대만을 조선의 영토로 인정했기에 당연했지만, 자신의 구역인 대륙의 해양에서 알짱거리는 서양 세력들이 꼴 보기가 싫어서였다.

거대한 범선에 무수히 많은 대포를 탑재하고 다니는 서양배들은 대륙의 해적왕인 정성공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라면 서양 배들을 충분히 무찌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키지도 않은 호의를 베풀었다.

원 또한 정성공을 키우기 위해 강선이 없는 강철 대포를 대명에 팔기로 했다.

그래야만 남명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목조로 만들어진 왕궁에 들어선 박문식은 카마찻 왕에게 정식으로 예를 올렸다.

"다두 왕국의 국왕 폐하께 조선전력공사를 대표하여 인사 올립니다."

"폐하라니 당치않소. 그냥 전하라 부르도록 하시오."

"원하신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전하."

하라 했다고 바로 전하라 부르자 카마찻 왕은 흠칫했다.

이런 경우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깔보든지 아예 계속 올리든지 둘 중 하나였다.

박문식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맞춰주는 화법을 사용했다.

'그래야 두말하지 않지.'

다시 남명을 찾아간다면, 한 번 맛을 본 영력제가 바뀌어 있을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성질난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을 테지.'

만약 또 그런다면 이제는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아쉬운 건 너지 조선이 아니야.'

사신이란 언제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선전력공사의 무력이 받쳐주기에 박문식은 당당할 수 있었고, 겸손하게 예를 차릴 수 있었다.

"조선전력공사가 대단하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소. 그런데 우리 왕국까지 찾아오다니 무슨 일인지 알고 싶소."

카마찻 왕은 최근에 벌어진 청나라와 조선의 전쟁을 알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팔기군을 무찔렀다는 조선전력공사의 이야기를 정성공이 서신으로 보낸 거였다.

그런 강력한 세력이 다두 왕국을 방문하자 카마찻 왕은 맘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북쪽 타이베이에 자리 잡은 네덜란드가 하루가 멀다고 압박하고 있었다.

어쩌면 조선전력공사도 네덜란드처럼 다두 왕국을 점령하려 들지도 모를 일이다.

두 세력이 알아서 싸운다면 몰라도 사이에 낀 다두 왕국은 하루아침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다두 왕국을 도와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우리를 도와준다니 고맙긴 하지만, 이유를 알고 싶소."

카마찻 왕은 박문식의 말을 믿지 못했다.

굳어진 왕의 얼굴과 다르게 박문식은 해맑게 미소 지었다.

예상했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우리 조선도 제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문식은 원나라 때 공녀(貢女)로 끌려간 일부터 힘이 없어 조선이 당했던 시절을 카마찻 왕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조선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은 몰라도 조선과 가까운 곳은 도와주라고 태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태자라면? 바로···."

"맞습니다. 조선전력공사의 상단주이자 조선군의 수장이십니다."

"아···."

카마찻 왕은 박문식을 보고 처음에는 조선에서 보낸 사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조선전력공사에서 보낸 사절이었다.

이거나 저거나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카마찻 왕이 생각하기에는 전혀 달랐다.

현재 대만 북쪽을 점령하고 있는 서양 세력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라는 상단이었다.

그래서 카마찻 왕은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상단이라면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시다시피 우리 다두 왕국은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조선전력공사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드릴 게 없는데···."

"왜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재배하고 있는 사탕수수와 고무나무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되겠소?"

카마찻 왕 또한 산전수전을 겪었기에 비정상 거래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그러시다면 도와주는 대가로 현재 네덜란드가 점령하고 있는 지역을 조선전력공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그것은···."

카마찻 왕은 한동안 말없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지켜보던 박문식이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이런 말을 하기가 그렇지만, 조선전력공사 또한 상단입니다. 우리 다두 왕국을 그냥 두지 않을 것 같은데···."

"아, 그거라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탕수수 농장이나 고무나무에서 채취하는 생고무 모두 대왕께서 직접 관리하시고 우리와 교역하면 됩니다. 조선전력공사에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뜻밖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든 카마찻 왕은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물었다.

"정말입니까? 간섭하지 않겠다는 말이?"

"네, 다두 왕국의 일을 왜 우리가 관여 해야 합니까? 우리는 다두 왕국을 지원하고 교역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약조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당연히 해드려야죠."

박문식과 카마찻 왕은 즉석에서 합의문을 작성하고 도장을 찍었다.

다두 왕국 또한 한자 문화권이었기에 합의문은 한문으로 작성했다.

이로써 조선은 대만의 1/3을 합법적으로 얻어냈다.

'사장님께서는 어찌 이리 잘 알고 있을까?'

박문식은 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보다 무력을 지원해 주고 일부를 얻어내는 것이 더 현명하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니 서두르지 말 거라.'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너무나 쉽게 땅을 얻게 되자 박문식은 감탄했다.

원이 말한 대로 다두 왕국에 무력을 지원해 주고 네덜란드를 치고 나면 그곳은 조선의 땅이 된다.

그것도 현지 원주민의 왕이 보증해 준 합법적인 땅이다.

기쁜 마음으로 합의문 작성을 끝낸 박문식은 카마찻 왕을 모시고 조경 2호선을 구경시켜 주었다.

이 또한 원이 시킨 거였다.

"대단합니다. 네덜란드 배도 이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포의 수가···."

"네, 좀 적습니다. 하지만 발사 속도가 빠르고 위력이 강력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서양 배들이 공격해 온다 해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됩니까?"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박문식은 을수 함장에게 부탁해서 먼저 대포 사격을 보여 주었다.

'꽝'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대포는 멀리 떨어진 절벽 한쪽을 박살 내버렸다.

"대단하군요."

가늘고 긴 대포가 뒤로 살짝 밀리더니 다시 제자리로 복귀했다.

처음 본 카마찻 왕은 신기한지 대포 주위를 돌며 살폈다.

"이 받치고 있는 장치의 이름이···?"

"주퇴복좌기라 부릅니다. 대포보다 정교하여 조선전력공사 말고는 누구도 따라 만들 수 없습니다."

"아···."

카마찻 왕은 여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덜란드의 대포도 봤지만, 이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주퇴복좌기를 유심히 살폈지만, 너무 정교했기에 감탄사만 내뱉었다.

비록 전장식 대포지만, 주퇴복좌기가 있어 조경 2호선에서 발사하는 강철 대포는 3배 이상 빨랐다.

주퇴복좌기는 자동차 바퀴에 달린 쇽업쇼바라 불리는 완충기와 원리가 같다.

주퇴복좌기를 만들려면 강력한 스프링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부드럽게 작동하게 하려면 유압 실린더도 필요하다.

옹진반도에서는 이미 유압 실린더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주퇴복좌기를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참고로 주퇴복좌기를 보고 만든 최초의 자동총은 맥심 기관총이었다.

발명가 하이럼 맥심이 주퇴복좌기의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총알이 발사되면서 발생하는 반동을 역이용할 생각을 한 거였다.

또한 마찰격발기(Friction Primer)를 사용하고 있기에 발사 속도가 아주 빨랐다.

일반적으로 마찰격발기는 황화안티몬과 염소산칼륨 혼합물을 사용하지만, 성냥을 만들어 팔고 있었기에 안전하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연화약과 연질 폴리프로필렌으로 감싸진 포탄을 사용하기에 포구를 특별히 손질하지 않아도 되었다.

폴리프로필렌은 분자식(C3H6)n에서 보는 것과 같이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져 있기에 발사되면서 깨끗하게 타버린다.

연신 감탄하고 있는 카마찻 왕에게 박문식이 다가가 말했다.

"더 놀랄만한 무기도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네! 네?"

조경 2호선의 무력을 보자 대답조차 공손해진 카마찻 왕은 박문식의 물음에 깜짝 놀랐다.

이런 대포보다 더 강한 무기가 있다니.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보, 보고 싶습니다. 보여 주시겠습니까?"

"네. 보시면 놀라 실 겁니다."

박문식은 빙긋 웃으며 을수 함장에게 눈짓했다.

-우이잉, 두르륵, 두르륵.

무수한 탄환들이 조102 기관총에서 튀어 나가 목표가 된 절벽에 수많은 파편을 만들어 내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와···!"

카마찻 왕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저런 무기가 있다는 말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카마찻 왕이 물었다.

"그럼 우리와 함께 네덜란드를 공격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직접 물리치셔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정성공 왕께 팔고 있는 무기를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원하신다면 공격하는 시점에서 요새의 대포 정도는 박살을 내놓겠습니다."

"아···!"

카마찻 왕은 조선전력공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자 박문식의 손을 꽉 잡았다.

표면적으로는 다두 왕국이 네덜란드를 몰아내는 것이지만, 뒤에서 확실히 지원해 준다는 말이 아닌가.

"고맙습니다. 계약은 했지만, 믿지는 못했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믿을 수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카마찻 왕은 알고 있었다.

해적 두목인 정성공이 어떻게 나라를 세울 수 있었는지.

조선전력공사에서 무기를 대주고 뒤에서 지원해 주면 능히 네덜란드는 몰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수시로 압박해 오는 네덜란드의 강압에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그런데 강력한 조선전력공사가 뒤를 봐준다면 네덜란드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가시겠습니까?"

"어디를 말이요?"

"가져온 무기를 내려야 합니다. 수고스럽겠지만 도움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소. 당장 갑시다."

카마찻 왕이 신하에게 명 하자 벌거벗다시피 한 다부진 원주민들이 선착장에 모였다.

조경 2호선에서 수석총 1만 정과 엄청난 양의 흑색화약이 원주민들에 의해 빠르게 옮겨졌다.

지켜보던 박문식은 생각에 빠졌다.

'절대 강압해서는 안 된다. 표정조차 조심해야 한다.'

'태자 전하, 그냥 정복하면 안 되겠습니까?'

'정복하면 누가 관리할 생각이냐? 네가 할 생각이 있으면 그리 해도 된다.'

'아닙니다. 전하. 하오나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원은 박문식에게 식민지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말해주었다.

'잘못하면 손해가 날 장사였다니···. 전하, 고맙습니다. 또 하나 배웠습니다.'

'지금 당장 대만을 우리 손에 넣어봐야 좋을 게 없다. 우리가 필요한 땅과 설탕, 고무만 얻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니 급하게 서두르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대만을 정복해서 관리해봐야 득 될 것이 전혀 없다. 만주를 확보한 상태에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으니 우호 관계를 만들어 놓고 필요한 것을 거래하도록 해라.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전하.'

원과 나눴던 대화를 되새김한 박문식은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태자께서는 세상 이치를 어찌 이리 잘 아신단 말인가. 참으로 놀라우신 분이다."

그러면서 뒷짐 지고 있는 손을 꽉 쥐었다.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성심껏 따르기만 해도 내가 생각한 몇 배 이상 많은 것을 보고 얻을 수 있을 테니."

잠시 개경에 들렀을 때, 상단주인 아버지와 배다른 형제들까지 자신을 대하는 게 바뀌어 있었다.

멸시하던 눈빛은 사라지고 잘 보이려는 눈빛이 역력했다.

반쪽짜리지만, 대륙의 황제를 만나 알현했다.

당당히 말을 꺼내도 무시하지 않았다.

또한, 대륙에 새로운 왕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제는 작지만 한 나라의 왕인 카마찻에게도 진심이 담긴 존경을 받고 있다.

"처음 태자를 모신다고 했을 때, 이 정도까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박문식은 밝게 미소 지었다.

"홍콩은 어떤 곳일지···. 가보면 알겠지."

대만 원주민에 대한 기본적인 사격 교육을 해주기로 했다.

교육이 끝나면, 조경 2호선의 다음 여정은 홍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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